Bongta      

가을 하늘 아래

소요유 : 2017. 7. 28. 10:24


최근 새로 검찰총장에 임명된 문무일이,

대통령 문재인 앞에서 읊었다는 한시(漢詩)가 있다 하여 읽어보았다.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고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나그네는 맑기를 바라는데 농부는 비를 기다리며/ 뽕잎 따는 아낙은 흐린 하늘을 바라네(做天難做四月天/蠶要溫和麥要寒/出門望晴農望雨/採桑娘子望陰天)’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5/2017072503248.html)

 

조선일보에선 이 시를,

대만의 난화이진(南懷瑾)이 자신의 저서 ’논어별재(論語別裁)’에 수록한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원래 이 시는 판본이 다양하다.

 

명대(明代) 풍몽룡(馮夢龍)의 성세항언(醒世恒言)에 최초로 등장한다.

做天莫做四月天,蠶要溫和麥要寒。秧要日時麻要雨,采桑娘子要晴幹。

 

청대(清代) 원학윤(袁學瀾)의 오군세화기려(吳郡歲華記麗)에도 이와 유사한 시가 나온다.

 

일을 맡은 이가 갈랫길에 서서 고민이 많을 때,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어디다 호소할 데 없음에 이르자면,

이 시는 제법 그럴싸하니 끌어드릴 수 있겠다.

 

헌데, 나는 두 가지 점이 영 마뜩치 않구나.

 

첫째는 대저 공인(公人)이란 애오라지 국민만을 의식할 일이다.

때문에 뽕 따는 여인이나 농민 사이를 오락가락 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임명권자마저 크게 의식하면 자칫 국민에게 죄를 짓게 되는 법이다.

 

둘째는 지금은 사월 하늘이 아니라, 칠월 하늘이다.

아니 촛불-탄핵-정권교체를 지나고 있으니,

이젠 결단의 여름과 집행의 가을로 나아가고 있어야 한다.

여기 시골엔 지금 밤에는 서늘한 기운이 벌써 흐른다.

봄을 지나고 여름 가운데 이미 가을을 예비하고 있음이다.

대저 사월엔 뭇 생명들이 다투어 꿈틀거리며 제 각기 제 생을 기획하고 꿈꾼다.

저마다 저리들 대책 없이 찬란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지금은 저들 가운데 이미 썩은 종자를 골라내고, 

진작 벌레 먹은 작물을 뽑아내어야 할 시기를 지났어야 한다.

그리고 다만 튼튼한 작물을 북돋고 금빛 가을을 맞이할 준비하여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지금 한참 늦었다.

갈길이 멀다.

그러함인데 아직도 어찌 한참 철지난 사월을 걱정하고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

 

차라리 주은래(周恩來)처럼 做天難做二月天 ...

이리 2월을 빌려 말하였다면,

그가 짐짓 적폐 저항 세력을 의식하며,

눙치는 말을 하고 있구나 하고 이해해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가 더욱 영악한 이라면,

4월을 빙자하여,

피아(彼我) 모두를 속이며,

짐짓 아닌 척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가 시학(詩學)을 넘어 정치학, 법학의 경계로 진입하며,

이내 곧 숙살지기(肅殺之氣) 그 엄정한 가을 하늘 아래 서서,

모든 추악한 것들을 단호히 처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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