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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아브락사스(Abraxas)

소요유 : 2017. 7. 30. 09:28


내가 어제 비닐하우스 측창 밖의 풀을 깎았다.

우측 편 풀은 얼마 전 정리하였으나,

이번엔 좌측 편을 마저 처리하였다.


그 풀숲에 행여라도 어린 들고양이 새끼들이 있을까봐, 조심스러이 접근하였으되, 

한편으론 혹여 은신처를 없애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어제 어미가 울며 아기 고양이들을 부르는 것을 보아,

저들이 그 동안 이 풀숲에 숨어 지내었던가 보다.


오늘 아침에 보니 다행히 아기 고양이 소리가 들리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와 그늘막 안에 앉아 있는 녀석을 보았다.

갈 곳이 뻔하니, 녀석들을 모두 수습하였으리라.


鳴鶴在陰,其子和之。


학이 그늘에서 우니,

그 새끼들이 화답하다.


마치 이 글귀처럼,

아기 고양들이 어미에게 화답하며 모여들었을 모습이 환히 그려진다.


仁不忍踐履生草


어짐이란 차마 풀조차 상할까 밟을 수 없는 마음이라 하였다.


내 매번 풀을 깎을 때마다,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농사가 다 좋은데,

풀 베고, 땅에 깃든 여러 생물을 다치게도 하고,

종국엔 다자란 작물 줄기 꺾고, 열매 따며 취하노니,

이런 일들이 나를 부단히 시험하고 있다.

이 물음 앞에 서면,

언제나 타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얽히고 섥킨 존재의 배리(背理)가 영 마뜩치 않다.

이는 아직도 공부가 영 시원치 않은 소이(所以)이다.


鳴鶴在陰 其子和之

이 말은 곧잘 여러 문헌에서 인용되곤 한다.

헌데 본디 이 말은 주역 중부괘에 나오는 효사(爻辭)이다.


鳴鶴在陰,其子和之,我有好爵,吾與爾靡之。

(周易 中孚)


어미 학이 그늘에서 부르니,

새끼가 화답하다.

내게 좋은 잔이 있으니,

내 그대와 더불어 나누리.


이리 적자니 다시 불쾌한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세월호 선체는 인양하지 맙시다. 괜히 사람만 또 다칩니다.

대신 사고 해역을 추념 공원으로 만듭시다.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겁니다”


김진태가 한 말이다.


이 사람은 과연 자식을 키우고 있을까?


항차 우리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온,

고양이도 아기 고양이 키우느라,

노심초사 저리 애를 끓이고 있음인데 말이다.


鳴鶴在陰 其子和之


옛글에선 이 말을 대개는 위정자와 백성의 관계로 풀이하는 게 태반이다.

잠부론(潛夫論)에서도 군자의 덕을 닦음은,

나는 새와 물속의 고기에도 미치니,

어찌 항차 백성에 미치지 않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런 식의 상하 계급적 풀이가 영 불편하다.


이게, 가치 전복되면,

김진태와 같은 이의 의식이 작동되고,

이언주와 같이 사장을 위해 알바가 피해를 입고도 입을 다무는 것이 정당화된다.


이런 일들이 곧잘, 아니 우리 사회에선 자주 목격되고 있다.

이것은 저들이 문제가 아니라,

정작은 저들을 있게 한 우리 사회의 후진성 때문이다.
이 땅엔 니체의 낙타 단계에 머문 우중(愚衆)들이 너무도 많다.


이럴 때 살불살조(殺佛殺祖)가 얼마나 절창(絶唱)인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늘에서 어미가 울면,

당장 달겨들어 그 아가리를 찢어버려야 한다.


세상의 모든 새끼는 제 입으로 홀로 노래해야 한다.


데미안으로부터 싱클레어에게 쪽지가 전해진다.


“새는 알을 뚫고 나오기 위해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알을 뚫고 나온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


도대체 저런 이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영혼들은 누구인가?

어린 영혼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부터 저런 쪽지라도 받을 수 있지,

저들 어둔 영혼 곁엔 아브락사스는커녕 데미안조차 떠나고 없다.

가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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