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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탈중앙화

decentralization : 2018.01.28 19:52


혁명과 탈중앙화


혁명은 왜 실패하는가?


근현대사에서 소위 386 세대는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재정립하는 공을 세웠다.

하지만, 저들이 권세를 잡자, 별로 오래 지나지도 않아,

이들은 제 존재를 부정하기도 하고,

뭇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존재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저들은 한 때, 강남좌파, 입진보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정권을 내주고 나서는 스스로를 폐족이라 자처하며 물러났다.

요즘엔 옛일을 잊고 다시 전면에 나서, 세상에 가장 의로운 족속들인 양 행세한다.

한데 쫓겨난 들판에서 반성은 제대로 한 것인가?


혁명(革命)이란 말을 제대로 알려면,

본디 왕(王)이 하늘로부터 명(命)을 받았다는 사고방식을 이해하여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왕권을 내리 받았다는 것이니,

이는 곧 사람의 일이 아니란 말이다.


헌데 실제는 어떠한가?

새로운 왕은 앞선 왕을 물리치고 나선다.

그러니 성(姓)이 바뀌고, 조정의 대권이 이양된다.

이게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 이르는 것이다. 

실제 창칼 같은 무력으로써 정권을 탈취하였음이로되,

이게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식으로 꾸며된다.

順乎天而應乎人

하늘을 거스리지 않고, 인심에 응하여, 왕이 된 것이지, 

내가 욕심을 부려 나선 것이 아니라 강변하기 바쁘다.


앞선 왕이 실덕하고, 하늘에 불경하고, 조상을 본받지 않고, 

정치에 힘쓰지 않고,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니,

하늘이 노하고, 백성이 원한을 품었은즉,

하늘은 명을 바꿔 새 인물을 내세우게 된다.

이게 革除天命인 바라,

고대의 정치권력 공간 이동의 해석 방법이다.


(ⓒthemerkle.com)


내가 오늘 글 하나를 대하였다.


‘비트코인이 기축통화가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이 말을 대하자 나는 이내 혁명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에 따라 붙는 댓글들을 보자 하여도, 근본적으로는 대차가 없었다.

가령 비트코인이 아니라 다른 알트코인이 기축 통화가 될 것이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를 비판하며, 비트코인의 역사적 위상, 상징성을 들어,

좀 문제가 있더라도 기축 통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나타났다.


왜 내가 이런 말들을 보며 혁명을 떠올렸는가?


흔히 오해하듯, 혁명이란 세상의 질서가 바뀐 것이 아니다.

다만 권력자가 새로운 왕으로 교체되었을 뿐이다.

백성 입장에선 이놈이 왕이 되든, 저놈이 왕이 되든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관리들은 여전히 가렴주구(苛斂誅求)에 혈안이고,

왕은 주색에 빠져 인민을 돌보지 않는다.

권력자, 정치가들은 저들만의 리그를 펴고 있을 뿐이다.

이를 중원축록(中原逐鹿)이라 부른다.

(※ 참고 글 : ☞ 명예혁명은 없다.)


나는 그래서 혁명만으로는 근본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혁명을 두고 그 누가 신질서가 만들어졌다고 하는가?


혁명은 그저 왕을 교체(交替)할 뿐이다.

늑대가 물러났지만, 늑대보다 더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란 우리네 속담은 이를 바로 증언하고 있다.


진정 새 세상을 원한다면 왕의 교체가 아니라 왕 자체를 해체(解體)하여야 한다.

민주주의란 바로 왕을 해체하고자 하는 시민 자각 운동의 결과물이다.

이것은 혁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인 것이다.


‘비트코인이 기축통화가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이 말은 혁명적이다.

따라서 그렇기에 더욱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엉터리 언명(言明)이다.

왜 그런가?


Commerce on the Internet has come to rely almost exclusively on financial institutions serving as trusted third parties to process electronic payments. While the system works well enough for most transactions, it still suffers from the inherent weaknesses of the trust based model.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상거래 금융 결제기관을 이 문서에서는 trust based model이라 칭하였다.

이 신뢰 기반 모델은 정치권역에서의 왕권과 유사하다.

왕은 화폐를 발행하고, 그 권위로서 그 가치를 보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뢰는 무한정 보장되지 않는다.

화폐를 제 필요대로 무한정 찍어내기도 하며,

독점적으로 세금을 걷고, 공권력을 행사하고, 때론 무력을 행사한다.

도대체 저들의 권능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저들은 과연 하늘로부터 천명(天命)을 받았단 말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에서 보듯이,

금융기관들은 신뢰를 팔았지만, 기실은 협작질을 하고 말았지 않은가?

게다가 이들은 파산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공적 자금을 지원받고 다시 회생하였다.

시민들은 죽어나갔지만, 저 녀석들은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있다.


사토시는 이런 불공정한 세상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그렇다고 신용이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꾼 것도 아니다.

인간은 결코 선의의 존재가 아니다.

사회는 순수한 뜻과 고결한 마음이 모인 고립된 종교집단이 아니다.

실제 이런 기치를 내걸고 결성된 공동체도 나중엔 사이비 교주로 인해 곧잘 와해되곤 한다.

신뢰는 필요하다.

다만 이를 유통하고, 보증할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결제기관, 왕과 같은 중앙화 권력은 이를 신뢰를 결코 제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신뢰를 어디에서 확보할 수 있는가?

P2P(peer to peer)

사토시는 P2P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What is needed is an electronic payment system based on cryptographic proof instead of trust, allowing any two willing parties to transact directly with each other without the need for a trusted third party. Transactions that are computationally impractical to reverse would protect sellers from fraud, and routine escrow mechanisms could easily be implemented to protect buyers. In this paper, we propose a solution to the double-spending problem using a peer-to-peer distributed timestamp server to generate computational proof of the chronological order of transactions. The system is secure as long as honest nodes collectively control more CPU power than any cooperating group of attacker nodes.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이 문서에서 사토시는 a peer-to-peer distributed timestamp server가 이를 구현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또한 cryptographic proof 암호화 기술 증명으로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만, P2P로 분산화된 노드를 그는 ‘honest nodes’라 부르고 있는데, 

나는 이것은 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중앙화된 권력이 아닌 P2P와 같은 분산 기반 시스템으로 접근한 것은 탁월하다.

하지만 ‘honest nodes’는 결코 보장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을 선한 의지를 가진 존재라 규정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이것으로 신뢰가 절로 확보된다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인간은 악의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여야 한다.

때문에 암호화 기술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사토시 역시 cryptographic proof가 신뢰를 대체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선량한 노드들이라면, 어째서 암호화 하는가?

따라서 ‘honest nodes’는 적극적인 악의를 가지지 않은 노드 정도로 이해를 하면 어떨까 싶다.

하지만, 설혹 악의의 노드가 등장하더라도,

블럭체인 기술은 이들을 충분히 제압할 만한 확률적인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암호화폐 유통을 담보하기 위해 그는 P2P 분산 시스템을 고안하였다.

훌륭한 선택인지라, 나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거꾸로 저 분산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동력으로써, 암호화폐는 또한 필요하다.

세상의 그 어떠한 일이든 에너지가 소모되고, 비용이 필요하다.

탈중앙화 시스템이라 하여 이 이치를 빗겨갈 수 없다.

(지금 여기서는 public blockchain, private blockchain, 또는 consortium blockchain의 구별에 따른 논의로 확장하지 않고자 한다.)


그러니까, 탈중앙화는, 크게 두 가지 기둥으로써 구축된다.

blockchain 기술은 결제 안정성을 암호화로, proof-of-work로 유효 consensus(합의)를 이끌어내고, 

cryptocurrency는 incentive(보상)으로 시스템을 유지시킨다.

쌍두마차는 말 둘로서 달려나갈 수 있다.

어느 말이든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마차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헌즉,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구분할 수 있다든가,

블록체인 기술만 육성하겠다는 말을 난사하는 한국 정부 당국자는 너무도 무식하다.

저들은 전혀 공부가 되어 있지 않다.

엉터리 집단이다.


이제까지, 어쩌다보니, 조금 옆길을 돌보며 기초 지식을 챙긴 셈이 되고 말았다. 

다시 돌아와, 애초 의문을 가졌던 말 앞에 선다.


‘비트코인이 기축통화가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이 말을 뱉은 이는,

현행 기축통화인 달러나, 단위 국가 내의 법정통화를 대신하기를 꿈꾸고 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하에서도,

대통령을 왕의 대체물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아직도 그리 많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당 지어 모시고, 철마다 굿하며, 

제단에 무릎 꿇고, 엎드려 가며,

영혼을 팔아재끼는 이들이 남아 있다.

서글픈 이들이다.


왕을 쫓아낸 까닭은 새로운 왕을 맞기 위함이 아니라,

왕 그 자체에 대한 회의 때문이 아닌가?

그런즉 깨인 오늘날엔, 

민의에 따라, 한시적으로, 권력을 위임하기 위해 대표 선수를 뽑는 것이다.

대통령은 결코 왕이 아니다.

혹간 대통령을 정치 지도자라 부르는데,

나는 이 말도 꺼린다.

다만, 정치 대표라 이를 뿐이다.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은 기축통화가 아니며, 기축통화가 되어서도 아니 된다.

비트코인이 아닌 알트코인 역시 마찬가지로 기축통화가 아니며, 그리 되어서도 아니 된다. 

암호화폐는 법정통화, 기축통화의 권위를 해체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지,

결코 이들의 자리를 낚아채어 대체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놓치면, 유시민 같이 기존 질서에 고착된 사고를 여윌 수 없게 된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 

백년을 기다려도 결코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


말뚝에 매인 말은 그 중심축으로부터 그려지는 활동 반경 밖을 상상하지 못한다.

기축통화 운운하는 한, 말뚝에 매인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말뚝을 뽑아내고 드넓은 초원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말의 본성은 이 때라야 회복되며, 대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항차 기술인도 이를 꿈꾸는데, 

인문학도가 이를 상상하지 못한다면 여간 섭섭한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바란다.

비트코인이든, 알트코인이든, 저마다 생긴대로, 쓰임대로, 제 역할을 하게 하라.

백화제방(百花齊放)

모두는 각자의 품성대로 꽃을 피우고, 봄을 노래하라.


이게 탈중앙화의 이념이다.

그런즉, 왕, 기축통화 따위는 없다.

아직 있다면, 이들에 저항하라!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부처의 이 말씀이야말로 탈중앙화 이념을 완벽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세상에 별도로 왕은 없다.

만약 있다면 각자는 제 각각 자신이 왕일뿐이다.

그대, 이 언명의 기막힌 역설(逆說) 구조가 이해되는가?


비트코인이 왕이고, 알트코인은 종인 것이 아니다.

알트코인 하나하나가 모두 제 자리에 바로 위(位)하면, 거기 그곳에서 그가 왕이다.

그런즉 알트코인은 곧 비트코인이며,

모든 알트코인은 그대가 원한다면 모두 다 기축통화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별도로 기축통화라 달리 부를 것이 없다.

행여, 

아직 남아 있다면,

사토시를 향도(嚮導) 삼아,

저들을 무찔러 버려야 한다.


P2P 각 노드들은 唯我로 유일한 개체이되,

獨尊이라, 누구의 간섭 없이 홀로 귀하다.

이게 보장될 때, 온 세상은 만다라 꽃으로 덮인다.


개별 노드들은 중중무진(重重無盡)하는 인드라망(因陀羅網)처럼,

一과 多가 상즉상입(相卽相入)하며, 웅장한 화엄(華嚴)의 세계를 창출한다.


암호화폐는 바로 이 화엄장(華嚴藏) 세계에 피는 만다라화이다.

이를 부정하고 블록체인만 키우겠다는 말은,

마치, 꽃을 피지 못하게 하고, 열매만 따먹겠다는 망발에 불과하다.


一自華嚴藏,脫出香海印,花落閒鳥啼,風清明月墜。

(吹萬禪師語錄)


암호화폐 하나,

화엄장에서 일어나와,

향을 뿌리며, 

해인(海印) 진리의 도장을 찍는도다.

꽃은 지고, 새는 지저귀며,

바람은 맑고, 밝은 달은 하늘에 걸려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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