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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제방(百花齊放)과 암호화폐

decentralization : 2018.01.29 22:00


백화제방(百花齊放)과 암호화폐


百花齊放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새기자면,

모든 꽃들이 일제히 핀다는 뜻이다.

百은 꼭 백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많음을 상징하니, 이는 곧 모든 것을 지시한다.

또한 齊란 글자는 영어로 하자면 equal내지는 concurrent란 뜻이다.

그런즉 동등성, 동시성의 함의를 길어 올려야 한다는 점을 특별히 지적하여 두고 싶다.

허나, 염려하거니와, 모든 꽃들이 동시에 피어난다는 의미에만 머무를 일이 아니라,

모든 꽃들이 차별이 없는 경계에 들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게 제일 중요한 대목이다.


반면, 일화독방(一花獨放)은 백화제방과는 정반대의 뜻을 가졌다하겠다.

즉 단 하나의 꽃이 홀로 핀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를 대개는 부정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꽃이란 본디 자신의 본성대로 제 품격을 홀로 고고히 드러내면 족한 것이지,

다른 꽃과 견주어 선후, 미추를 따질 일이 아니다.

가령 예술작품은 독자성을 가질 때, 외려 차별적 가치를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일화독방을 마냥 부정적으로 뜻을 새길 일만도 아니다.


백 가지, 천 가지 꽃이 모두 제각각 일화독방할 때,

외려 백화제방이 실답게 이뤄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실로 백화제방은 일화독방을 전제로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부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경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각자가 모두 제 본래의 면목에 충실할 때,

모두(백화)는 각기 최상의 위(位)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즉, 위 삼자는 모두 동일한 경계를 지시하고 있다 하겠다.


현재, 정부 당국은 법정화폐만이 일화독방(一花獨放)하여야 한다며,

뭇 암호화폐를 고사(枯死) 시키려 책동(策動)하고 있다.


한편,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이들 중엔,

비트코인이 기축통화 자리를 차지하는 날이 온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며,

비트코인이 아니라 이더리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들을 지켜보자면 나는 이들이 정부당국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가령 문빠는 문이 대권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듯,

박빠는 박이 대권을 잡아야 한다고 기염을 토한다.

빠들이 서로 다른 이를 밀고 당기며 기를 쓰지만,

이들은 모두 ‘중앙화’ 진영에 속한 패거리란 점에서는 한 치도 다름이 없다.


원래 암호화폐는 탈중앙화 이념에 따라 만들어진 것임이라,

내가 기축통화가 되고, 네가 되면 아니 된다고 고집한다면,

바로 그 순간 스스로 설정한 제 이념에 반하게 된다.


탈중앙화 이념은,

중앙 세력이 없는 절대 평등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따라서 비트코인이라든가 이더리움 또는 그 밖의 어떠한 코인일지라도,

그게 기축통화가 될 것을 꿈꾸지 않는다.


남들이 빠돌이 놀음을 하는 것을 굳이 탓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로써 남을 배제하고, 자신 만의 성을 쌓고자 한다면,

나는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빠돌이의 숭배 대상은 결코 절대 권력자인 왕이 아니다.

단지 5년이란 한시적 기간 동안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적 대표에 불과하다.

마치 왕권을 가진 이라 여긴다든가, 

왕권을 갖다 바치지 못해 안달이 난 신민(臣民)들처럼 행동하는 저들은,

민주주의의 적당(賊黨)이며, 탈중앙화 이념의 훼방꾼이다.


여기 잠깐 백장야호(百丈野狐)란 공안(公案)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百丈和尚。凡參次有一老人。常隨眾聽法。眾人退老人亦退。忽一日不退。師遂問。面前立者復是何人。老人云。諾某甲非人也。於過去迦葉佛時。曾住此山。因學人問。大修行底人還落因果。也無。某甲對云。不落因果。五百生墮野狐身。今請和尚。代一轉語貴。脫野狐遂問。大修行底人還落因果。也無。師云。不昧因果。老人於言下大悟。作禮云。某甲已脫野狐身。住在山後。敢告和尚。乞依亡僧事例。師令無維那白槌告眾。食後送亡僧。大眾言議。一眾皆安涅槃堂。又無人病。何故如是。食後只見師領眾。至山後巖下。以杖挑出一死野狐。乃依火葬。師至晚上堂。舉前因緣。黃蘗便問。古人錯祇對一轉語。墮五百生野狐身。轉轉不錯。合作箇甚麼。師云。近前來與伊道。黃蘗遂近前。與師一掌。師拍手笑云。將謂。胡鬚赤更有赤鬚胡。

(無門關)


(출처 : 中国禅宗网)


백장 회해 선사가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와서 

늘 대중들 뒤에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대중이 물러가면 함께 물러가곤 하더니 

어느 날은 설법이 끝나 대중이 다 물러갔는데도 그 노인만은 남아 서 있었다.


백장 선사가 이상히 여겨 물었다.


“앞에 있는 자는 어찌된 사람이냐?”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옛날 가섭불 당시에 이 절의 주지였습니다. 

그 때 어느 학인이 ‘대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하고 묻기에 

제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이 되었으니 선사께서 한 말씀으로 

이 여우의 몸을 벗어나게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는 노인이 물었다.


“대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백장 선사가 대답하였다.


“인과에 매(昧)하지 않느니라.”


노인이 그 말에 크게 깨달아 인사하며 말하였다.


“제가 이미 벗어버린 여우의 몸이 뒷산에 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죽은 스님에게 하듯 장례를 치러 주시기 바랍니다.”


백장 선사가 유나를 시켜 ‘식후에 죽은 스님의 장례가 있다’고 대중에게 고하게 하니 

‘모두 평안하여 열반당에 한 사람의 병자도 없었는데 

어째서 죽은 스님의 장례가 있다고 하는가’ 하고 

대중이 수근대었다. 

식후 백장 선사가 대중을 데리고 뒷산 바위 밑에 이르러 

지팡이로 죽은 여우를 끄집어내어 화장을 하였다.


백장 선사가 저녁에 법당에 나와 앞의 인연을 이야기하였다. 

이 때 황벽이 일어나서 말하였다.


“고인(古人)이 잘못 대답하여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이 되었는데 

만약 잘못 대답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백장 선사가 말하였다.


“앞으로 가까이 오라. 그대를 위해 가르쳐 주리라.”


황벽은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백장 선사의 뺨을 한 대 후려쳤다. 

백장 선사가 박수를 치고 웃으시며 말하였다.


“과연 그렇구나. 오랑캐의 수염은 붉다더니 붉은 수염 오랑캐가 있구나.”


無門曰。

不落因果。為甚墮野狐。不昧因果。為甚脫野狐。


무문 왈,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여, 여우로 떨어지고 말았다.

인과에 매(昧)하지 않는다 한즉, 여우의 몸을 벗어나다.


중앙에 집중하면, 자동으로 변방이 생기며,

이에 따라 편협(偏狹)과 소외(疏外)가 일어난다.


그러니, 이를 신봉하는 이들은 모두 죽어 여우가 되고 말리라.


저 여우 노인은 용케도 백장 선사를 만나 뵈어,

오백생(五百生) 여우 몸을 벗어났다.

허나, 백장 만날 형편도 아닌데,

빠돌이 노릇하고, 암호화폐 없애버리려 책동질이나 하고 앉았음이니,

도대체 저들은 기필코 여우가 되기를 작정하고 있음이 아니더냐?


기왕에 말이나온 것이니,

내가 평소에 특히 빠돌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

이제 다시 새겨 두고자 한다.


不落因果。為甚墮野狐。不昧因果。為甚脫野狐。


이 이치를 깨우치면, 野狐五百生이 아니라, 風流五百生을 누리리라.


절집 앞에 떡하니 서서 부처를 외호(外護)하는 사천왕처럼,

암호화폐를 외호(外護)하기만 하여도,

5대손까지는 복덕이 넘치리라.

한즉, 내, 그대들에게, 이리 축수의 말을 전하노라.


인류 역사 누천년 간 누적된 병폐는 실로 중앙화 시스템 때문에 생겼다.

인터넷을 통해 이런 시스템의 질곡으로부터 인류는 처음으로 해방되는 경험을 하였다.

하지만 인터넷은 정보 교환에 있어 본질적으로 server-client 구조에 묶여 있다.

가령 여기 쓰이는 규약인 HTTP(Hyper Text Transfer Protocol)만 하더라도,

기존의 text 종속적 한계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요청/응답(request/response)의 구조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즉 여기 server는 중앙화 권력으로 client를 통제할 위치에 있다.

가령 naver, daum등 포틀은 사용자보다 우위의 위치에 서서,

언제든지, 원하는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통제하고 유통시킬 위협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탈중앙화 시스템은,

원천적으로 중앙 권력을 배제한다.

인터넷 이후 제2의 거대한 해체 실험(deconstructive experiment)이 시작되었다.

중앙 권력, 기득권으로부터의 해방은, 

이들 탈중앙화 시스템의 성공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런 믿음과 희망이 있기에,

이를 방해하는 그 어떠한 세력, 기도(企圖)에 나는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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