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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혜와 암호화폐

decentralization : 2018. 2. 19. 19:07



유하혜와 암호화폐


유하혜(柳下惠, 前720―前621) 이 인격을 먼저 간략히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그러하자면 이내 좌회불란(坐懷不亂)과 연결된다.

이게 무엇인가?


魯人有獨處室者,鄰之釐婦亦獨處一室。夜,暴風雨至,釐婦室壞,趨而託焉,魯人閉戶而不納。釐婦自牖與之言:「子何不仁而不納我乎?」魯人曰:「吾聞男子不六十不閒居。今子幼,吾亦幼,是以不敢納爾也。」婦人曰:「子何不如柳下惠然?嫗不逮門之女,國人不稱其亂。」魯人曰:「柳下惠則可,吾固不可。吾將以吾之不可、學柳下惠之可。」孔子聞之,曰:「善哉!欲學柳下惠者,未有似於此者,期於至善,而不襲其為,可謂智乎。」

(孔子家語)


추려, 역하자면 이러하다.

어느 날 밤, 폭우가 몰아닥쳐, 과부 집이 무너졌다.

과부는 이웃에게 의탁하고자 하였다.

헌데, 이웃은 매정하게 거절한다.

그러자 과부는 유하혜의 일을 꺼내며 그를 탓한다.

그자가 변(辨)하여 이르는 말인즉슨 이러하다.


‘남자란 60살이 되기 전까지는 남녀가 유별하니 함께 할 수 없다.’


여인네가 말한다.


‘유하혜를 왜 닮지 못하는가? 

그 여인은 죄를 짓고 왔어도,

 나랏 사람이 음란하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이웃 남자가 말한다.


‘유하혜는 가능하지만, 나는 불가능하다.

내가 불가능한 일인데, 유하혜를 배우란 말이오?’


공자가 이 말을 듣고서는 이리 말하였다.


‘착하구나, 유하혜를 배우고자 하는 자는,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지극히 착한 일을 하려고 하면서도,

말만 하고, 행실이 따르지 못한다면, 어찌 지혜있다 할 수 있으랴?’


나는 유하혜 일을 먼저 말하지 않고,

그 다음의 일을 꺼내놓고 있다.

왜 그런가?

내가 생각하기에, 유하혜의 일보다, 

기실은 바로 이 장면이 더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자, 이게 과연 왜 그런가하는 의문을 품고,

이제 유하혜의 일을 되짚어 보자.


유하혜는 노나라 사람이다.

어느 날, 야숙을 하게 되었다.

한 여자가 묵어갈 수 있느냐 물었다.

유하혜는 여자가 얼어 죽을 것을 염려하여,

옷을 덮어 감싸고 품에 앉았다.

하지만, 어떠한 음심도 일으키지 않았다.  


(출처 : http://hottopic.chinatimes.com/20160414004047-260812)


유하혜는 과연 말라비틀어진 고목(枯木)인가?

여인네를 앉은 자리에, 품고도 양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지 않았는가?


최근, 이윤택(李潤澤), 고은(髙銀) 따위의 성추행 관련 이슈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름 자를 훑어보니 潤이니 澤이니, 銀 등속으로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구나.

같지 않다.

몹쓸 녀석들이다.

나는 예전에 고은의 소설 ‘화엄경’을 읽다가 내던져 두고 말았다.

차라리 화엄경을 한 번 더 읽고 말지,

작가의 어줍지 않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인도되길 거부하였던 기억이 있다.


녀석들,

하나는 연극계에서 암약하였고,

하나는 중이었다가 환속한 이다.


나는 공교롭게도,

최근 연극계 인사와 종교계 인사를 비교적 가깝게 접할 기회가 있었다.

권력의지 그리고 그 의지에 복속하고 마는 폭력적 구조를 목격하였다.


조직 폭력배들이 동원되고,

경찰이 배치되는 현장 인근에 나는 있었다.

종단에 재물을 다 빼앗기고,

시름 속에 빠진 여인을 두엇 만난 적이 있다.


이렇듯, 

나는 또한 암호 화폐가, 기축 통화에 묶이는 것이 마땅한가?

이런 의문을 갖는다.

달러에 연동되는 테더 따위도 나는 그래서 원천적으로 못 마땅하게 생각한다.

현실적 한계를 일응 인정하지만,

암호 화폐는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 대안, 저항으로 태동된 것이 아닌가?

그러할진대, 또 다시 저들에게 의지하여 reference를 왜 구하고 있는가?

이런 강렬한 자의식을 다시금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곳, 여하한 경우에 임하여,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색깔 있는 코인이 발행되길 꿈꾼다.


예컨대, 미용하기 위해선 미용 코인이,

배추를 사기 위해선 배추 코인이,

집을 사기 위해선 부동산 코인이,

제 각각 발행되고, 유통될 수는 없는가?

이런 의문을 일으키고, 

부푼 꿈을 꾼다.


가령, 내가 키우는 블루베리를 사기 위해선,

블루베리 코인을 사용하여야 하고,

이를 소비하기 위해선 당연 블루베리 코인을 가져야 하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어떠한가?

블루베리 코인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의식하지 않고,

거꾸로 블루베리를 사기 위해서 기축통화가 고민하여야 한다.

내가 가진 달러 얼마를 내야 블루베리 코인을 얻을 수 있는가?

이런 고민은 블루베리 코인을 가지지 않은 이가 부담하여야 한다.

블루베리 코인은 자족적인 것이다.

결코 달러, 원화,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주체적 잣대로 의식하지 않는다.

내가 주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다.

我是我 你是你

나는 나, 너는 너다.

이게 배타적, 불타협적 태도를 견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두는 각자가 인격적 주체임을 자각하는 순간,

대동 평화의 세상이 도래한다.

기축통화를 깨뜨려야 한다.

이게 상존하는 한,

나는 너에게 복속되고,

자본, 권력의 노예가 된다.

윤택이, 고은은,

비겁하게도,

이 틈을 노리고 들어온 불한당들이다.

我是我 你是你는 바로 이런 세계를 극복한 이상을 노래하고 있음이다.


블루베리 코인뿐이랴?

두부 코인,

상추 코인,

언챙이 코인,

절름발이 코인,

고양이 코인,

강아지 코인 ...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

모두 저마다의 코인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내가 블루베리 코인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으나,

나는 지금 이 일을 다시 할 정력이 남아 있는가?

이런 회의 때문에 잠시 멈추고 있다.

나에게 힘을 보탤 귀인이 있을까?


다시 논의를 일으킨 그 지점으로 돌아간다.

me-too

이런 자기 고백은 너무 안타깝다.

그 현장, 그 때 왜 고발할 수 없었는가?

me-too는,

언제나 남의 고백을 주춧돌 삼아,

나를 일으킨다.

안타깝다.


주춧돌을 남에게 의지하는 한,

내 집을 지으려 할 때,

그게 진정 내 집이 될런지,

십 년, 백년이 지나도록 그 때를 진정 기약할 수 없다.


나는 그래 제안한다.

me-too coin 하나 만들자.

me-too 하려는 이가,

십년, 백년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바로 이 코인 생태계에 접속하여,

기록을 남기는 거다.

익명으로,

불가역적으로, 

다만, confirmation은 51%의 다수 확증으로 담보된다.

이 때 me-too coin은, me-me coin으로 고쳐 부르게 되리라.


Satoshi Nakamoto의 백서를 몇 차 읽었다.

여러 번역본도 대하였지만, 

기술적 백그라운드가 없거나,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령 아래 문장에서 honest를 거의가 ‘정직한’으로 번역하였다.


The system is secure as long as honest nodes collectively control more CPU power than any cooperating group of attacker nodes.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나는, honest nodes는 정직한 노드로 번역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attacker nodes의 대항 상대로 최소한 악의를 가지지 않은 노드일 수는 있지만,

이게 정직함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사토시가 그런 철인적, 인격적 노드를 상정하였는지는 몰라도,

현실 세계에 그런 노드는 부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암호화폐를 만들려고 기획한 의도에 비추면,

그는 결코 이리 생각하였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노드는 대개는 채굴 이익을 위해 매진한다.

그들이 모두 부정직하다 상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게 결과적으로 생태계 안정에 기여할 뿐이다.

기술적으로 이게 가능한 틈을 사토시는 발견한 것이다.

사람은 결코 신뢰를 담보할 존재가 아니다.


이런 부정직한 노드들을 동역학적으로 묶어 구조적으로,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생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엿본 최초의 인간이 사토시다.

나는 그래서 그를 존경한다.


me-too


이것 사실 정말 슬픈 존재 형식이다.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남의 인도에 따라,

조심스럽게 따라 나설 수밖에 없다면,

이 왜 아니 슬프지 않은가?


하지만,


me-too coin은 결코 슬픈 형식이 아니다.

당당하다.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곧 바로,

me-me

전격 나의 존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형식 구조,

그게 me-too coin, 아니 me-me(I-me) coin이다.


이것 뜻이 있고,

기술적 실현 능력이 있는 이라면,

당장이라도 만들어 전파할 수 있다.


百人, 千人,

저마다 코인을 만들어야 한다.


결코 은택, 고은 이 따위 시브럴 놈들에게, 

내 인격을 유린당할 이유가 없다.

사토시는,

그럴 이유가 없음을,

기술적 장치로 전망하고, 보장하고 있다.


사토시, 암호화폐, 탈중앙화.


신세계를 열어준 이 마디 말들. 

인류 전체에게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왼통으로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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