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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의 쌀(解)

소요유 : 2019.01.25 13:13


내가 전일 Quiz 하나를 내었다.

(※ 참고 글 : ☞ 한 그릇의 쌀(Quiz))


一碗米養個恩人,一斗米養個仇人。


“한 그릇의 쌀은 은인을 만들지만,

한 말의 쌀은 원수를 만든다.”


과연 이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가르침을 받고 자란다.

다른 사람에게 원수 삼을 짓을 하지 말고,

은혜를 베풀고 살아라.


헌데, 더 많은 쌀을 베풀고도 원수가 되며,

적은 쌀로써 은인을 기른단 말인가?


어려 배운,

문법에 기대면,

아무리 용을 써도,

저 말의 함의(含意)를 헤집어 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던 것은 잘못된 것일까?


허면, 이 이야기는 무엇인가?


(출처 : 央廣網)


서문건(徐文建)이 15세 때, 

왕자옥(王子玉)이란 노인이, 한 그릇의 만두를 얻어먹었는데,

38세 이후, 11년 동안 이 은혜를 갚았다는 기사가 2014년에 나왔다.


서문건은 사천(四川)에 사는 농민이다.

어렸을 때 가난하여, 잔반을 모아다 돼지를 키웠다.

우연히 60세의 왕자옥은 그를 보게 되었다.

왕자옥은 음식점에서 잔반을 거두는 서문건을 목도하고는,

그에게 만두 한 그릇을 건네었던 것이다.


서문건은 커서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여,

노인을 늘 찾아뵈었다.


2002년 왕자옥의 남편과 아들이 잇달아 숨지고,

양 다리까지 골절상을 입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되자, 서문건은 가족들과 상의하여,

양로원에 계신 노인을 집으로 모셔왔다.

가족과 다름없이 마음을 기우려 모셨으니,

평소에도 진지를 제일 먼저 챙겨드리고,

아프실 때에는 정성껏 수발하였다.


2014년도에 왕자옥은 돌아가셨다.


한 사람이 있어 기한(飢寒) 즉 배고픔과 추위에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어느 누가 있어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면,

평생 잊지 못하고 은인으로 기억하게 된다.


고래로 滴水之恩,當湧泉相報。라,

즉 한 방울의 은혜일지라도,

용천수처럼 부절(不絶)하니 보갚음을 한다는 말이 있다.


중국인 서문건의 기사를 접하자,

내가 평생의 가르침으로 마음속에 깊게 새겨둔 이야기를 다시금 상기 하였다.

나의 지난 글을 이에 소개해둔다.

(※ 참고 글 : ☞ 애자지원필보(睚眦之怨必報))


헌데, 은혜를 입었을 때,

이를 갚는 일은 별반 놀라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사람이라면.

왜 서문건의 이야기가 기삿거리가 되고 있음인가?

이는 역설적으로 은혜의 보갚음이라는 것이,

일상에선 낯선 것이기 때문이 아니겠음인가 말이다.


그러한즉, 기실 은혜를 갚는다는 일은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이제, 내가 평생 삶의 준거로 삼는 이야기를 마저 하여야겠다.

(※ 참고 글 : ☞ 시불망보(施不望報))


사실, 나야말로, 일완미(一碗米), 서문건 이야기를 꺼내 들자,

용천수처럼 쉼 없이 여러 생각이 솟고,

상상력이 피어올라,

한데 과녁으로 모아지고 있다.


기실, 시불망보(施不望報)

이쯤이면, 거의 결론에 이른 것이라.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본 글의 주제 후반부를 아직 다 마치지는 않았은즉,

마저 이야기를 더 부려놓고 끝내련다.


一碗米養個恩人,一斗米養個仇人。


“한 그릇의 쌀은 은인을 만들지만,

한 말의 쌀은 원수를 만든다.”


쌀 한 그릇으로 은인을 기른다는 되었다.

그럼 어이 하여, 한 말의 쌀은 원수를 사는 일이 될까?


한 그릇을 받자,

궁색할 때인지라, 너무도 감사한 일이라, 그 은혜에 감읍하고 만다.

헌데, 이제 다시 두 그릇이 건네지고, 세 그릇, 네 그릇이 ... 건네질 때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 바닷물에 좁쌀 한 톨 넣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홍로점설(紅爐點雪)이라, 달궈진 화로에 눈을 넣는 격인지라,

은혜는 헤퍼지고, 원망은 늘게 된다.


사람의 욕심이란, 바닷물을 다 들이킨다 한들,

그 목마름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방금 저 이명박을 보지 않았던가?


김진홍 목사라는 이가 있다.

지금 이 사람은 야릇하게 변하여,

인생유전이라 색다른 경로를 걷고 있다. 


어쨌든, 그가 예전,

빈민 구휼 활동을 할 때,

구휼미인지 구휼 밀가루분인지를 정기적으로 빈민에게 나눠주었는가 보다.

그런데 어느 날 이를 나눠주지 못할 사정이 생겼다.

해서 걸렀는데 이를 참지 못하고 이들이 나서서는,

왜 이번엔 주지 않느냐고 김목사에게 따졌다고 한다.


보지 않아도 빤히 그 장면이 읽히운다.

개중엔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을 하는 인간이 왜 아니 없겠는가?


이것은 완전히,

물에 빠진 이를 건져내었더니,

내 보따리를 왜 아니 건졌느냐며 나무라는 형국인 게라.


그런데,

나는 저리하는 저들을 나무라고 싶지도 않다.


기왕에 하는 일,

왜 아니 철저하지 못하여,

뭇사람의 신임을 져버릴 수 있음인가?


이미 얻어 든 떡인데,

이게 제 손에 돌아오지 않으면,

그 상실감이란 그 누구라도 제법 크지 않으리?


그런데.

바로 이 지점.

김목사를 탓하려는 순간.


우리는 멈춰 설 수는 없을까?

나아가려다 잠간 주춤이며 멈출 수 있는 양심(良心)의 한 오락 실 터럭.

나는 이를 염치(廉恥)라고 부른다.


이런 염치가 내 가슴 속에서 스믈스믈 비져나오면,

혹 일어나는 서운함을 거둬 기어이 나아가길 멈출 수밖에 없다.


김목사가,

책임을 지어야 하는 귀책자(歸責者)인가?

고마운 시혜자(施惠者)였는가?

이런 가늠을 바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두 가지를 의심하여야 한다.


하나는 저들이 염치가 없거나,

아니면 김목사가 남으로부터 널리 모금을 하여,

개인적으로 착복하고 이를 저들에게 나누지 못하였는가?

당시로선 김목사가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고 나는 믿는 것은 물론,

빈자를 돌보는 아름다운 이였다고 기억한다.


云何為愛。答曰。若愛乃至廣說。如是等言。盡說愛相。問曰。愛體性是何。答曰。愛有二種一染污。二不染污。染污者體是渴愛。不染污者體是信渴。愛有二種一是渴愛。二是愛。問曰。若渴愛是愛耶。答曰。若渴愛則是愛。頗有愛非渴愛耶。答曰有。不染污愛也。信亦有二種。一是信。二是愛。問曰。若信是愛耶。答曰。或有信非愛。或有信是愛。信非愛者。信而不求者是也。信是愛者。亦信亦求者是也。復有以此義作四句者。或有信非愛。或有愛非信。乃至廣作四句。信非愛者。信其事而不求也。愛非信者。染污愛是也。亦信亦愛者。愛其事而求者也。非信非愛者。除上爾所事。

(阿毘曇毘婆沙論)


아비담비바사론의 이 부분을 다 번역하지는 않으련다.

요지는 이렇다.

愛에는 두 가지가 있다.

염오(染污), 불염오(不染污).

전자는 갈애(渴愛)라, 즉 愛를 타는 목마름으로 구하고,

후자는 신애(信渴)라, 즉 목마름을 信한다.

信도 역시 두 가지가 있다.

信, 愛.

여기 중요한 말씀이 있다.

或有信非愛。或有信是愛。

信非愛者는 信하되 구하지 않으며,

信是愛者는 信하되 구한다.


그러니, 이제 4가지 유형을 지어볼 수 있다.


信非愛者。信其事而不求也。

愛非信者。染污愛是也。

亦信亦愛者。愛其事而求者也。

非信非愛者。除上爾所事。


信非愛者는 그 일을 信하나, 결코 구하진 않는다.

愛非信者는 애욕에 물들어 구함에 빠져 있다.

亦信亦愛者는 그 일에 빠지고, 또한 구하는 자이다.

非信非愛者는 일에도 빠지지 않고, 구하는 바도 없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앞서 이끌어 링크를 걸어놓은,

나의 지난 글 ‘시불망보(施不望報)’를 읽으면,

좀 더 밝아지리라.


용천수처럼 생각의 구름 조각이 쏟아져 나오니,

말이 자꾸 곁순을 내어 가지를 내고 있구나.


다시 말머리를 고쳐 잡고,

마저 이야기를 잇자.


이제 이리 한 그릇의 은혜를 입은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 다음해 역시, 천재지변으로 쌀 한 톨 논밭에서 구하지 못하였다.


그는 은혜를 베푼이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빈궁기를 겨우 견디어 내고,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차,

내년에 심을 씨앗조차 없다 하소연 하였다.

그러자 그 은인은 나는 많이 가지고 있으니,

이번엔 한 말(一斗)을 가지고 가거라. 

이리 말하였다.

가난한 이는 그가 준 한 말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말의 쌀로 무엇을 하겠는가?

명년 봄, 밭에 뿌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의 창고엔 쌀이 많아 썩어날 지경이다.

게다가 돈도 많다.

그렇다면, 내게 식량과 돈을 좀 많이 주어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말이 부자의 귀에 들어갔다.

자, 이제 어찌 되었겠음인가?

부자는 화가 솟구쳤다.

그리 많이 쌀을 주었는데도, 감사한 마음을 갖지는 못하고,

도리어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내게 한을 품고 원수 대하듯 한단 말인가?


원래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었다.

헌데, 이일 이후,

두 사람은 원수가 되어,

죽을 때까지 왕래를 하지 않게 되었다.


(출처 : 愛經驗)


아아,


升米恩,斗米仇。


됫박 쌀로 은혜를 짓고,

말 쌀로 원수가 되는구나!


이제, 비로소,


一碗米養個恩人,一斗米養個仇人。


“한 그릇의 쌀은 은인을 만들지만,

한 말의 쌀은 원수를 만든다.”


이 이야기의 뜻이 이해가 되리라 본다.


허나, 아직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말을 더 하도록,

나를 내버려 두라.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는데 처가 내게 말한다.

어느 외국인 요리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제법 명성이 높은 편인데,

그 까닭은 그의 뛰어난 요리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와 관련을 맺은 사람들로부터의 호평도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예컨대, 지인 하나가 음식점을 개업했는데,

경영이 여의치 않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그 요리사가 아낌없이 조언을 하며 그를 도와주었다 한다.

이렇듯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심 없이 도움을 주었다.

그러하니, 도움을 받은 그의 지인들은 감격하여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그를 칭찬하였고 이게 그의 명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다.


그러하니, “남을 도운다는 것은 역시나 사뭇 아름다운 일이다.”

결국 나는 처와 이런 결론에 이르르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이 때 한 마디를 보태었다.

“잠깐 하나 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 있다.”


이런 서사(敍事) 구조를 가진 이야기는,

결론이 뻔히 정해져 있다.

“남을 도운다는 것은 역시나 사뭇 아름다운 일이다.”

“남을 도우면 결국 자신에게도 보탬이 된다.”

“그러하니 남을 적극 도와라.”


하지만,

나는 처에게 이리 말했다.

“이 이야기가 완성이 되기 위해서는, 내 말을 마저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처에게 이하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풀어 더 보태었다.


춘추오패 중에 하나이자, 으뜸 패자(覇者)인 제환공(齊桓公) 이야기다.


어느 날, 홀연 형(邢)나라가 제나라에 사람을 보내와 급히 고했다.


“적(狄,오랑캐)이 또 우리나라를 쳐들어 왔습니다.

저희는 세가 약하여 감히 지탱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저희를 구원해주십시오.”


제환공이 관중에게 묻는다.


“형나라를 구해야 할 노릇인가?”


관중이 대답하여 아뢴다.


“여러 나라 제후가 우리 제나라를 섬기는 것은 제가 저들의 재앙과 환란을 구해주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위(衛)나라를 구해주지 않았고, 

이제 또 형나라를 구해주지 않으면 패업을 이루는데 손상이 갑니다.”


제환공이 묻는다.


“그렇다면 형나라를 먼저 도와야겠소? 

아니면 위나라를 먼저 구해야겠소?”


관중이 대답하여 아뢴다.


“형나라부터 도와준 후에, 

위나라에 성을 쌓아주면 이는 백세의 공이 될 것입니다.”


제환공이 말한다.


“옳거니!”


즉각 노, 조, 주나라에 격문을 보냈다. 

섭북(聶北)에 모두 모여 우리 제와 군사를 합한 후,

형나라를 구하자는 것이었다. 

송, 조나라 군사가 먼저 당도했다.


관중이 또 아뢴다.


“적(狄)이 바야흐로 기세가 뻗치고 있습니다. 

형나라는 아직 완전히 기진맥진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적군의 기세가 클수록 우리의 노고는 배가됩니다. 

아직 형나라의 기세가 다하지 않았는데 그를 도우면,

그 공이 적으니 조금 더 기다림만 못합니다. 

형나라가 적(狄)에게 밀려 지탱하지 못하게 되면 필경 궤멸될 것입니다. 

적(狄)이 형나라를 이기면 필시 피로할 것입니다.

피로한 적(狄)을 치고, 궤멸되는 형나라를 구원하면,

힘을 아끼면서 공은 크게 세울 수 있습니다.”


제환공은 관중의 이 꾀를 채택했다.

노, 주나라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핑계를 대고는,

섭북 땅에서 둔을 쳤다.

그리고는 첩자를 보내어 형나라와 적(狄)의 형편을 살폈다.


忽邢國遣人告急,言:“狄兵又到本國,勢不能支,伏望救援!”

恒公問管仲曰:“邢可救乎?”


管仲對曰:“諸侯所以事齊,謂齊能拯其災患也。不能救衛,又不救邢,霸業隕矣!”

恒公曰: “然則邢、衛之急孰先?”


管仲對曰:“俟邢患既平,因而城衛,此百世之功也。”


恒公曰:“善。”


即傳檄宋、魯、曹、邾各國,合兵救邢,俱於聶北取齊。

宋、曹二國兵先到。


管仲又曰:“狄寇方張,邢力未竭;敵方張之寇,其勞倍;助未竭之力,其功少,不如待之。

邢不支狄,必潰,狄勝邢,必疲。

驅疲狄而援潰邢,所謂力省而功多者也。”


桓公用其謀,托言待魯、邾兵到,乃屯兵於聶北,遣諜打探邢、狄攻守消息。


결국 형나라가 거덜이 날 정도가 되도록 방치하다가,

제나라는 나중에 나서 그들을 구했다.

내막을 제대로 모르는,

형나라 모든 백성은 마냥 제환공을 칭송하고, 고마워했다.


도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저들을 환란 속으로 밀어 넣고,

나중에 의뭉 떨며 나타나 생색을 크게 내었으니,

이런 술수란 게 저들에겐 제법 득책이 되었을런가?


하지만, 상대가 이 꾀를 나중이라도 모를 텐가?

만약 이를 눈치 채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된다.


결국 이런 종류의 술책이란 교묘한 위장과 숨김이,

긴장 속에서 행해져야 성공한다.

막상 도움을 받을 당시, 

상대는 궁지에 몰렸으니 이를 세세히 살필 처지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중에 한 숨 돌리고 형편이 나아졌을 때, 

이 내막을 알게 되면 그 공은 도리어 원망으로 바뀌게 된다.

이 지경이 되면 이것은 ‘도움’이 아니라 그저 거래요 흥정, 투자라 불러야 할 것이다.


나는 처에게 말했다.


“남에게 도움을 주려 할 때,

관중의 이런 술책을 취하려 함이 옳다 그르다 함을 말하려 함이 아니라,

이런 부조(扶助)의 배리(背理)가 도움의 수수(授受) 현장에 숨어 있을 수 있음을,

아지 못하면 그저 순진한 멍텅구리가 되고 말지.

그러하니 저 요리사 이야기는 내 이야기를 마저 겸해 들어야,

그 마친 끝을 제대로 보게 된다.”


마냥 순진한 이야기, 달콤한 이야기는 그래서 가끔은 경계가 필요하다.

슬픈 노릇이다.


내가 한 때,

관중을 사모하여,

그를 따르며 배움을 두터이 한 적이 있다.

헌데, 이 장면을 접하자,

영 맛이 개운치 않음이라,

그와 떨어져 관망키로 한 적이 있다.


오늘날의 齊나라인 미국엔,

관중과 같은 이가 삼태기로 많이 쟁여져 있다.


헌데, 미국을 두고, 마치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입었다는 듯,

마냥 엎어져 눈물을 흘리며 좋아라 하지 않던가?

특히 친일에 뿌리를 둔, 한국당 사람들은,

더욱 저들의 앞잽이가 되어,

친미 주구(走狗) 노릇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당시 위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자,

사정을 모르는 위문공은,

衛文公感齊再造之恩 

재조지은에 감격하며 시까지 지어 바친다.


말이 나온 김에,

그 시를 한 번 살펴볼까 한다.


投我以木瓜兮,報之以瓊琚。投我以木桃兮,報之以瓊瑤。投我以木李兮,報之以瓊玖。


“나에게 모과를 주시니, 나는 패옥으로 갚으리라.

나에게 복숭아를 주시니, 나는 구슬로 갚으리라.

나에게 오얏을 주시니, 나는 아름다운 옥으로 갚으리라.”


여기 등장하는 瓊琚, 瓊瑤, 瓊玖는 모두 옥 구슬 등의 패물로서,

답례의 예물에 쓰인다.

허니, 기껏 모과, 복숭아, 오얏 등의 하찮은 과일을 받고서는,

눈물, 콧물 흘리며 감격하여,

저들의 발치에 엎어져 바르르 떨고 있는 것이다.

헌데, 사정을 알고 보면,

뒷전에서 관중과 제환공이,

형, 위나라를 공깃돌 다루듯,

가지고 놀았지 않았던가?


마치, 트럼프가, 존 볼턴, 마이크 폼페이오 등 超매파들을 기용하여,

한국, 북한을 저들의 제물로 삼으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은혜란 이렇듯,

베푸는 이도, 베풂을 받는 이도,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닌 것이다.

실로 두려울진저!


논어에 보면,

공자가 관중을 두고 평한 말이 있다.


管仲之器小哉!


“관중은 그릇이 작노라!”


은혜는 칼날과 같다.

칼날 위에 서서도 그 날에 베이지 않으려면,

오늘 내가 말한 이야기의 서술 구조를 따라,

구슬을 꿰듯 가지런히 엮어 두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자칫 그 칼날에 몸을 상하게 되고 말리라.


관중의 책으로 관자(管子)란 것이 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정치인이 아니다.

이 책엔 병법(兵法)이란 편도 있듯이,

그는 당대의 으뜸 정치가이자, 병법가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그를 학자들은 흔히 병가(兵家)로 분류한다.

병가란 노자 도덕경을 읽어도,

이를 변용하여,

적을 치고,

땅을 병탄(倂呑)하며,

제 나라 이익을 위해 온 재주와 지혜를 다 짜낸다.


그러함이니, 

적(狄)의 침략으로 곤란해진,

이웃 나라인 형(邢)과 위(衛)를 앞에 두고도,

자신의 나라인 제(齊)의 셈판 위에 두고,

저울대 위의 물건 취급을 하였다.


대자대비(大慈大悲)


그저 자비(慈悲)라고 하면 족하지,

어찌 하여, 각 글자 앞에 대(大)자를 따로 해서 입혔는가?


대자대비(大慈大悲)


자(慈), 비(悲) 앞에 대(大)자를 붙여 대자대비(大慈大悲)라 함은

그게 한가하게 그저 크다는 뜻을 더하고자 함인가 ?

원(圓) 앞에 대(大)자를 붙여 대원(大圓)이라고 하며,

아(我) 앞에 대(大)자를 붙여 대아(大我)라고 함은 무엇인가 ?

원(圓), 아(我)를 대(大)로 덮어 극(克)하고자 함이니,

이로서, 원(圓)은 ‘원’이되 ‘원’ 아닌 ‘원’이요, 

아(我)는 ‘아’이되 ‘아’ 아닌 ‘아’가 됨이다. - 초극(超克)


자(慈), 비(悲)든, 

원(圓), 아(我) 또는 방(方)이란 모두 비릿한 몸짓이요, 영원을 향한 몸부림일지니,

문득 대(大)의 세례를 받아 초극되지 않으면 순간에 머물다 사라질 위기의 미아들인 것임이라.

그것이 어떠한 것이 되었든 간에, 

무엇을 구하는 한, 또는 무엇을 지향하는 한,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하기에 힘써 도모하려는 의지와 욕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다.


대(大)라는 prefix는 그 부족한 상태가 해결된 경지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구하되 보상을 바라지 않으며,

지향하되 거기 집착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행위자 자신이 그 행위의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매이지 않은), 

그런즉 도리 없이 외부 세계엔 은휘(隱諱)돼 자신을 드러낼 바 없다. 

그러므로 오히려 떳떳이 현재화하고 있는 과정을 말할 뿐이다.

그것은 도통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따위의 결과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진행되고 있는 과정을 소박하니 담담히 그리고 있다는데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大)는 강세 접두사가 아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이는 부정사(否定詞)일 뿐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


여기 大자 역시 韓을 부정하고 있다.

韓이 크다면 새삼 다시 大자의 세례를 가할 필요가 없다.

韓이 작기에, 이를 전제하기에,

大로 꾸미고 있는 것이다.

허니, 大韓은 작은 韓을 초극하고자 하는,

작은 나라의 몸부림, 의지의 표상일 뿐이다.

大韓이란 말 앞에 서서,

우리나라는 크구나 이리 착각을 한다면,

한참 어리석고도, 슬픈 노릇이라 하겠다.


정작 큰 나라는 국호에 大자를 붙이지 않는다.

대영제국(大英帝國),

이것도 조그마한 섬나라 특유의 자의식의 발로로 이해해야 한다.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도 매한가지다.

大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이 작은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몸부림을 엿본다.


중국, 미국이,

어디, 대중국, 대미국이라 하던가?


자비(慈悲)든, 은혜(恩惠)이든,

大자의 세례를 받아야,

안심이 되고, 지속이 가능해지리란 믿음, 그리고 그 선전이란,

역설적으로 이게 얼마나 취약한 것이란 것을,

웅변하고 있는가?


시불망보.

그리고 금강경의 태없는 보시, 즉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다시금 생각나는 오늘이다.


기실, 오늘의 주제는 漢나라의 한신(韓信)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를 두고서는 별도의 다른 공간을 가지고 다른 날 다시 다루려 한다.

오늘은 그 초다듬이 길트기 삼아, 잡설을 이리 진설(陳設)하는데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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