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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지원필보(睚眦之怨必報)

소요유 : 2008.02.19 21:51


앞의 글 ‘붉은 부담’을 올려 놓고 보니,
뒤미쳐 슬그머니, ‘애자지원필보(睚眦之怨必報)’란 말이 떠올랐다.

2008/02/19 - [소요유] - 붉은 부담

세상 일이라는 게, 일가(一價)적인 게 아니라,
무릇 다면적인 것이라, 이리 보충의 말씀을 드리며,
이 뜻에 가름하고자 한다.

이제 풀어낼 것인즉,
사기(史記)의 범수.채택 열전(范睢蔡澤列傳)에 실려 있는 얘기다.

한비자에,
장수선무(長袖善舞) 다전선고(多錢善賈)라는 말이 있듯이
이 열전의 주인공 범수는 머리가 희게 될 때까지
한참 고절(苦節)의 시대를 거치다가,
말년에 진(秦)나라 재상에 이르게 된다.

장수선무 다전선고란,
풀이 하자면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도 잘한다라는 말이니,
요즘 시쳇말로 하자면 빽이 있어야 잘 산다라는 말이다.
범수는 원래 위(魏)나라 사람이었는데,
제후에 유세하여 출세를 하려고 해도,
도무지 전망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기껏 수고(須賈)라는 사람의 식객으로 지내게 되었다.
그 후 모시고 있던 수고가 위왕의 사자가 되어 함께 제나라에 파견되었다.
제나라와 교섭은 난항이었고, 게서 수개월 지체하게 된다.
그 동안 제왕은 범수의 변설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선물을 보냈다.
범수는 사양하며 그것을 받지 않으려 하였는데,
수고는 나중에 이를 알고 격분했다.

후에 귀국한 후, 이 문제가 불거져,
제와 내통했다는 죄명으로,
범수는 위나라 재상인 위제(魏齊)로부터 고문을 당한다.
갈비가 나가고, 이가 빠질 정도의 모진 고문 끝에 거적말이가 되어
변소 안에 팽겨쳐졌다.
위제의 가신들은 술 취하여 변소간을 드나들며 거적 위에 오줌을 갈겨대며,
욕을 뵈이기까지 한다.

범수는 파수꾼에게 청하였다.
‘부탁한다. 살려만 달라 은혜를 꼭 갚겠다.’
파수꾼은 거적 안에 죽은 자를 치어버리게 해달라고 위제에게 청했다.
술에 취한 위제는 이를 허락한다.

이후의 이야기가 제법 흥미진진하나 사연이 길므로,
간략히 소개만 하는데 그치며, 이번 이야기의 주제를 풀어놀,
그 자리까지 바삐 발걸음을 옮겨 놓고자 한다.

어쨌든, 범수는 친구 정안평(鄭安平) 집에 숨어 있다가,
마침 위에 온 진(秦)나라 사신인 왕계(王稽)와 인연이 닿는다.
그의 도움으로 변장한 채, 위를 탈출한다.

당시 진나라의 왕은 소(昭)였다.
범수는 소왕에게 그 유명한 원교근공(遠交近攻)책을 헌책하여
신임을 얻고 마침내 재상이 된다.

재게 건너 뛰어, 바로 이글의 본론인 지점에 이르렀다.
“일반지덕(一飯之德)도 반드시 은혜를 갚고, 애자지원(睚眥之怨)도 반드시 갚는다.”
(一飯之德必償, 睚眦之怨必報)
범수가 밥 한그릇의 은혜도 보(報) 갚고,
눈을 흘기는 정도의 조그만 원한도 반드시 갚았다는 것이다.

일반지덕의 보상을 받은 것은 자신을 숨겨 주었던 친구 정안평과
진나라로 인도해준 왕계였다.
이들을 장군이나 태수로 끌어 올려주었다.

반면 애자지원의 당사자는 수고와 위제였다.

아니, 따지고 보면
일반지덕, 애자지원 모두에 해당하는 인물이야말로 수고(須賈)이니,
그 사연을 따라가 보자.

범수가 진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수고가 위나라 사신이 되어 진나라에 왔다.
범수는 당시 장록이란 변성명을 하고 있었기에
수고는 범수가 진나라 재상이 된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수고가 사자로 온 것을 안 범수는 일부러 누더기 옷을 입고
수고가 머무르고 있는 숙사에 찾아갔다.
“누군가 했더니 범수가 아닌가 ?, 그대는 무사했구나.”
“네, 덕분에”
“그래,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남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고 있습니다.”
수고는 초라한 옷차림을 보고는 동정하여,
식사를 한 뒤 솜옷 한 벌을 내주었다.
“나는 이제 재상 장록을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대는 혹시 장록과 통하는 사람을 알지 못하는가 ?”
“그거라면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저의 주인이 잘 알고 있습니다.
마차를 준비시키겠습니다.”

범수는 수고를 위해 몸소 마차를 몰고 재상 관저로 향했다.
관저의 문 앞에 오자 범수는
“잠깐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재상에게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수고가 문지기에게 물었다.
“범수가 돌아오지 않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
“범수라니요 ?”
“아까 수레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간 사람 말일세.”
“아아, 그 분은 재상 장록이십니다.”

기겁을 하고 놀란 수고는 안에 청을 넣고 들어가,
땅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며 사과했다.

“그대의 죄는 어느 정도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
“머리털보다 더 많습니다.”
“아니다, 단 3가지 뿐이다.
내 조상은 모두 위나라 사람이다.
나도 위나라를 배반할 생각은 없었다.
그대는 내가 제와 내통했다고 죄를 뒤집어 씌었다.
이게 첫 번째 죄다.
위제가 나를 변소 안에 쳐박고 욕을 보였을 때,
그대는 말리지 않았다.
이것이 두 번째 죄다.
위제의 가신들이 교대로 내게 오줌을 갈겨댈 때,
그대는 모른 체하고 있었다.
이것이 세 번째 죄다.
그렇지만 아까 내게 준 솜옷을 생각해서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이렇게 하여, 수고는 사명도 완수하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수고가 범수에게 하직 인사를 하러 갔더니,
범수는 제후의 빈객들과 함께 연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고가 안내된 곳은 연회석이 아니라,
툇마루 밑의 마당이었다.
앞에는 말에게 먹이는 여물이 놓여 있고,
좌우에는 자자형(刺字刑-얼굴에 먹을 뜨는 형벌)에
처해진 죄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먹여라.”
넙죽 엎드리게 한 수고의 입에 죄인이 여물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돌아 가거든 위왕에게 말해라,
당장 위제의 목을 가지고 오라.
그렇지 않으면 대량(大梁, 위나라 수도)을 짓밟아 버리겠다.”

이렇게 하여 실컷 봉변을 당한 수고는 위나라에 귀국하여,
그 경위를 위제에게 보고했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위제는 국외로 도망을 했다.
하지만, 천하에 아무도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몸둘 바가 궁해진 위제는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을 잘라 죽었다.
그 잘린 목은 진나라로 보내어졌다.

***

앞 글 ‘붉은 부담’에서 나는

“넘어진 그대 앞에 와서,
손을 내미는 자가 가장 위험하다.
언제고 너를 가장 먼저 거꾸러뜨리리라 !”
이리 말했다.

실은 이 말은 TV 드라마에 나온 말이다.
나는 TV를 보지 않은지 한참 전이지만,
예전에 차민수를 모델로 한 올인이란 드라마에서,
아버지역 이덕화가 이리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하여간,
일반지덕(一飯之德), 애자지원(睚眥之怨)의 보갚음과 더불어
함께 소개하며 짝을 맞춰 두고자 한다.

하지만,
이 양자는 얼핏 외양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르게,
글들이 품고 있는 함의(含意)가
서로 등져 멀리 떨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과 거짓,
신뢰와 배신,
이들이 그려내는 무늿살이
마치 갓 바른 문살 창호지에
비추인 달 그림자인 양,
혹간 늑대 그림자인 양,
어른 거리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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