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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의 쌀(結)

소요유 : 2019.01.26 16:39


한 그릇의 쌀(結)


내가 앞에서 다룬 이야기를,

다시 가지런히 정리해보고자,

이를 도해(圖解)해보았다.


(서술 구조도)

  

(무주상보시 귀결도,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 참고 글 : ☞ 한 그릇의 쌀(Quiz)

                  ☞ 한 그릇의 쌀(解))


이제 글자 하나를 앞에 세워 두고,

이로써, 어제, 오늘 내 마음의 우물에 괸 뜻을 길어 올려 보고자 한다.


평(評)


내가 소싯적,

뭣도 모르고 그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던 중,

문심조룡(文心雕龍)을 만난 적이 있다.

게서는 評者,平理。라 이르고 있다.

즉 評이란 平理라 하고 있다.


내가 소싯적 선을 적지 아니 보았는데,

국문과 출신 처자를 만나면,

적지 아니 가슴이 설레던 기억이 있다.

철학을 전공한 처자를 만나면 더 좋았을 터이지만,

당시엔 그런 이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물의 이치는 아니더라도, 일상, 생활의 이치를,

저들처럼 궁구하는 이라면, 

이 어찌 흥분되지 않으리오.


게다가 이를 文이라, 

저 비단처럼 문채(文彩)나는 그릇에 담아, 

유려하니 펴낼 수 있는 이들이라면,

우리처럼,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공돌이들에겐, 

얼마나 신기하고, 근사한 일인가?


이렇듯, 시건방지게도, 주제넘게 문학 동네를 기웃거리며,

저들을 선망(羨望)하였었다.

헌즉, 어디서 주어들은 문심조룡을 구하여,

열심히 탐독을 하였었다.


오늘, 국문과 처자는 기러기처럼 먼 하늘가를 떠도는데,

나는 이제도, 밭에 엎드려져 그 기억을 더듬는,

그저 처량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음이다.


저기 나오는 平理란 治理쯤으로 새기면,

부족하나마, 대략 그 근방에 이를 수 있다.

헌데, 平, 正也。라 하듯,

平理는 治理에 비해,

사뭇 正, 바름에 깊이 묶여 있다.

이치를 궁구하되,

어디 치우침이 없이 바른 뜻을,

살피고, 뜻을 고른다는 의미가,

그 말을 대하면, 특별히 강조되어 지피어 올라온다.

나무 연기 향처럼,

그 말씨의 냄새를 맡노라.


評을 영어로 번역하자면,

흔히 criticize, appraise, evaluate,

이 정도에 이른다.

비평, 감정(鑑定), 평가하다 따위인데,

여기엔 아무리 하여도 平이란 의미가 직접적으로 바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들 말에선, 시비(是非)를 가린다는 뜻은 얼추 건지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治理는 몰라도, 平理의 뜻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한편, 評을 두고, 平理란 일반론을 넘어,

승리(繩理)라 규정하는 일도 있다.

여기 繩이란 그물 승이라,

그물을 뜻한다.

繩理란 그럼 理를 그물질 하는 것인가?


가슴에 큰 뜻을 품었지만,

종내 반란의 수괴로 몰려 죽고 말은,

비운의 회남왕 유안(淮南王劉安)이 지은,

회남자(淮南子)란 책이 있다.

이 유안의 이야기는 사뭇 극적이라,

중국에선, 연극, 영상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내, 이미 소개한 여씨춘추(呂氏春秋)와 겨루고자,

그는 이 회남자를 엮었다.


이들, 모두 정치적 야망과 사회적 신망을 도모하고자 하는 의도로,

격발된 혐의가 적지 않지만, 

그 아득한 시절, 책으로 엮어 남긴 흔적들이란,

우리 후인들을 적지 아니 흥분시키며, 

자극, 계발(啓發)시키고 있다.


거기 보면, 繩을 두고 이리 읊은 구절이 나오고 있다.


中央,土也,其帝黃帝,其佐後土,執繩而制四方;

(淮南子)


“중앙은 土다 그 임금은 황제(黃帝)고,

그를 뒤에서 보좌하는 이들은 선비라,

집승(執繩)으로 사방을 제압한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황제가 중앙 土에 거(居)하여,

사방(金木水火)을 제어한다는 뜻이다.

여기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는 음양오행설에 따른,

중앙/사방에 배대된 오행을 지칭한다.


하니까, 다시 돌아와 보자면,

繩理란 마치 황제가 사방을 통어(統御, control)듯,

그리 이치를 모두 완벽히 다스리고, 통제하고, 

사정을 꿰뚫는다는 말이 되겠다.


나는 앞의 글에서,

일완미(一碗米)를 두고,

서문건(徐文建), 범수(范睢), 양설힐(羊舌肹), 월석보(越石父) 등,

여러 인물을 엮어(link) 등장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물론 이를 모두 쫓아가며 다 읽은 분이,

얼마나 될까 의문을 가지고 있다.


나의 글이 어지럽고, 가지런하지 않은즉,

이는 모두 다, 내 허물이다.

알고 있다.


나는 최초 그 앞에서는,

일완미(一碗米)를 두고,

‘과연 그 뜻은 무엇일까?’

이리 물었었다.


이 물은 뜻은,

이 이야기 자체만을 묻고 있음인가?


繩理라 하면,

그 이야기의 표면적인 사실관계, 서술 내용을 밝히는 것을 넘어,

배리(背理), 도리(道理)는 물론 곁두리까지 모두 아울러,

통어하고, 꿰뚫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道者,萬物之所然也,萬理之所稽也。理者,成物之文也;道者,萬物之所以成也。故曰:「道,理之者也。」物有理不可以相薄,物有理不可以相薄故理之為物之制。萬物各異理,萬物各異理而道盡。稽萬物之理,故不得不化;不得不化,故無常操;無常操,是以死生氣稟焉,萬智斟酌焉,萬事廢興焉。


凡理者,方圓、短長、麤靡、堅脆之分也。


凡物之有形者易裁也,易割也。何以論之?有形則有短長,有短長則有小大,有小大則有方圓,有方圓則有堅脆,有堅脆則有輕重,有輕重則有白黑。短長、大小、方圓、堅脆、輕重、白黑之謂理。理定而物易割也。

(韓非子, 解老)


기실, 한비자는 노자(老子)를 주석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여기 보면, 道와 理에 대한 한비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제 理를 중심으로 그의 생각을 살펴본다.


‘理란 사물을 이루는 文’, ....

‘사물엔 理가 있어 서로 침해할 수 없으므로,

理가 사물을 통제하며, 만물은 理를 달리 하고 있다.

만물은 각각 理를 달리 하고, 道가 만물의 理를 통괄하므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理란,

모나고 둥글고,

짧고, 길고,

거칠고, 가는 것,

단단하고, 무른 것의 나뉨을 말한다.’


‘무릇, 물건에 형체가 있는 것은 재단하기 쉽고, 나누기 쉽다.

무엇으로 그리 논할 수 있는가?

형체가 있은 즉, 장단이 있고,

장단이 있은 즉 대소가 있고,

대소가 있은 즉, 방원(方圓)이 있고,

방원이 있은 즉, 단단한 것과 무른 것이 있고,

단단한 것과 무른 것이 있은 즉, 경중이 있고,

경중이 있은 즉, 흑백이 있다.

短長、大小、方圓、堅脆、輕重、白黑 이를 일러 理라 한다.

理가 정해져 있어, 사물을 분할하기 쉬운 것이다.’


나는 특히 마지막 한비자의 글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크게 공감하였다.

나는 이와는 별도로,

여기 연천지경에 많이 있는 주상절리(柱狀節理)를 보고,

진작 理에 대한 나의 문학적 감성을 글로 쓴 적이 있다.

(※ 참고 글 : ☞ 결(理))


그것은 그렇고,

다시 돌아와, 繩理란 이런 이치를 그물로 죄다 통어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자칫 이리로만, 이해를 한다면, 이 또한 충분치 않다.

본디 그물이란, 인간의 힘으로 모두 다 통어할 수 없다.

그 큰 그물을 어찌 인력으로 다 펴고, 끌어들일 수 있으랴?

그물에 따라 다르지만, 길이가 500 발 이상은 흔한 축에 속하고,

오늘 날엔, 수백 미터, 수 킬로에 달하는 그물도 많다.

허나, 길다고, 고기를  못 잡았다는 소식을 듣질 못했다.


用民有紀有綱,壹引其紀,萬目皆起,壹引其綱,萬目皆張。

(呂氏春秋)


“백성을 씀엔 그물의 벼리와 같은 것이 있다.

그물 벼리 하나를 당기면 만개의 그물코가 달려오고,

늦추면 만개의 그물코가 벌려진다.”


그물을 씀에 있어 그 요체는,

그물 코(目) 하나하나를 모두 다루는 것이 아니라,

끝에 꿰인 벼리(綱), 벼릿줄(紀)을 상대하면 족한 법.


繩理라 할 때, 전체를 일일이 통어한다는 뜻만을 길어 올리면,

자칫 큰 차질을 일으키게 됨이라,

노파심에서 壹引其紀, 壹引其綱 이 말씀을 덧붙여 둔다.


일완미(一碗米) 이야기를 애초 쓰게 된 까닭은,

이로써 뭇 여러 분들을 시험하기 위함이 아니라,

기실은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 먼저였다.


헌데, 이를 중심으로 이는 생각 모두를,

한 낮에 모두 쓰기엔 다른 일과 함께 넘치는 바라,

일단 제목만 정하여 두고, 다음 날을 기약하고자 하였다.


다만, 그냥 나가면 혹 잊을 염려도 있는 바라,

흔적을 남겨 그 인연의 터럭을 깔아 두고자 했다.

그러다 지나쳐 Quiz란 표제를 달아두었음이니,

이로써, 남을 부르는 일로 번지게 되었음이라.

감히 그럴 깜냥의 위인이 아니 됨에도,

이런 짓을 벌였음이니,

이는 다 나의 불찰이라 하겠다.


일완미(一碗米), 

그 이야기는 자체만으로,

결코, 그리 뜻 깊은 것이 못 된다.

게다가 이어 끌어들인, 서문건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리 생각한다.


물론 서문건 그가 나보다는 곱절 훌륭한 인물이겠지만,

이로써, 함빡 엎어져, 그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군상(群像)들을,

생각하자, 심통이 나고, 속이 상했다.


왜냐?


샘이 난 것인가?

아니다.

그는 나보다 배는 뛰어난 이인데,

어찌 그에게 심술을 부릴 수 있으랴?


군중들은,

소비만 폼나게 그럴싸 하게 하고,

뒤돌아서면, 쉬이 저들은 떠나가지 않던가?

나는 익히 안다.


소비품으로 전락한 일완미(一碗米), 서문건 이야기.

나는 필시 저러고 말,

저들의 정수리에,

동지섣달 자리끼 물처럼 차가운 물을,

퍼붓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심술은,

놀부도,

형님하고 부를 정도로,

무섭고, 독하다.

인정! 


이 이야기를 접하자,

앞에서 말한, 

서문건(徐文建),

애자지원필보(睚眦之怨必報)),

시불망보(施不望報)),

월석보(越石父),

제환공(齊桓公)&관중(管仲)의 고사가 주마등처럼 휙 지나갔다.


기왕에 이리 된 것,

혹 Quiz에 답을 주시는 분이 나타나신다한들,

나로선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評을 기대하였다.



평리(平理),

승리(繩理)라,

단순한 감상을 넘어,

그 이치를 밝히고,

은원(恩怨)의 배리를 신랄하게, 헤집는 분을 만나고 싶었다.


하였던 것인데,

두 분께서 답글을 주셨다.


상품은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없기도 하지만,

가진 것이라곤 블루베리 밖에 없다.


하여 처음부터 밖에 상품을 내다 걸 형편이 아니었다.

헌데, 댓글이나마, 상품 운운의 말은 내가 꺼내든 것이라,

책임감을 느낀다.


올 여름,

수확시,

인연이 닿으면,

이 분들을 기억하련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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