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교
공부는 끝이 없다.
活到老, 學到老
늙어 죽을 때까지 공부는 지속된다.
내가 블루베리 농부인지라,
지금도 블루베리에 대하여는 공부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다른 작물에 대한 이해는 한참 부족하다.
명색이 농부인데, 이런 모자람은 결코 블루베리를 핑계로 용서가 될 수 없다.
하여, 올해부터는 텃밭에 나아가, 일반 작물에 대하여도,
배움을 넓히려 작정하였다.
우선, 토종배추를 구하려 수소문 하였다.
한 사람과 접촉하였는데,
100g에 40,000원이라 한다.
옛날 배추 중엔 소위 배추꼬랑이(꼬랭이)이라 하여,
배추 뿌리가 길게 달린 것이 있다.
나는 본디 토박이 서울 사람인데,
우리 소싯적엔 이를 꼬랭이라 불렀다.
시장에 가면 이를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이것 날로 깎아 먹어도 그럴 듯하지만,
국을 끓여 먹어도, 독특한 미향(味香)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그가 가진 것이 이것이다.
하지만,
내겐 그리 많이 필요 없을뿐더러,
그리 비싼 가격으로 구할 동인이 없다.
본디 토종 씨란,
서로 구하고, 나누는 가운데,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상과 전망을,
도화지에 분홍빛 물감으로 그리며,
기쁨을 함께 하고, 어울리는 뜻이 깊고 삼삼하다.
헌데, 40,000원이라면,
일순, 저런 뜻과 자랑과 포부는 사라지고,
그저 남은 것은 제 잇속을 셈하는 것 밖에 남음이 없다.
이리 생각하자, 저 제안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게다가, 구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구처(區處)할 수 있는 분이 따로 계시다.
다만, 폐를 끼치는 것을 꺼려,
청(請)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중인데,
공부하는 중에 염교란 곳에 눈이 머물렀다.
올해엔 필히 이를 심고 말리라 작정하였다.
염교는,
한자로는 薤, 통칭 藠頭라고 하고,
학명으로는 Allium chinense G.Don라 하며,
영어로는 scallion, a shallot라 칭한다.
일식집에 가면,
이것 하얀 뿌리 부분을 절인 것이 나오곤 한다.
내가 텃밭에 들일 식물들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학명, 중국 이름, 영어 이름 이리 모두 조사하여,
어느 사이트에서나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채비하고 있다.
그러던 중, 마침 이를 나눠 주시겠다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좌측 : 염교, 우측(右旋順次) : 사과참외, 조선파, 뿔시금치, 애호박, 잎들깨)
이 분께서 보내신 종구(種球)가 오늘 도착하였다.
게다가, 가외로,
사과참외, 조선파, 뿔시금치, 잎들깨, 애호박 등 씨앗도,
푸짐하게 챙겨주셨다.
마침, 막걸리를 조금 걸치고 있었음인데,
너무 고마워, 흉중에 급히 차오르는 감격을 이겨낼 수 없다.
바로 전화를 드려,
치사(致謝) 말씀 드렸다.
행복하다.
본디, 씨앗이란,
이로써, 제 잇속을 도모하기보다는,
나누고, 구하는 가운데,
사람 가운데, 정분을 도타이 하며,
기쁨을 함께 하는 귀한 것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다국적 종자회사의 농간에 의해,
GMO 유전자, 터미네이터(terminator) 종자니, 트레이터(Traitor) 종자로,
끔찍하니 유리되고 있는 역사 현장에 처한 우리네 삶을 돌아볼 때,
토종 씨앗은 씨앗 그 자체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넘어,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일으키는 귀한 존재이기도 하다.
대량으로 구해, 너른 밭에 뿌릴 것이라면, 의당 셈을 치뤄야할 노릇이겠으나,
이미 널리 나눔이 행해지는 토종 씨앗이며, 텃밭 수준으로 소량을 서로 교환하는 데,
이르러서야 더욱 그 참 뜻을 함께 새길 수 있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러함이니,
이리 우정 생심을 일으켜,
여러 씨앗을 나눠주시니,
그 뜻이 깊고, 중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나라 안팎 간, 씨앗을 많이 구하긴 하였으나,
그렇다한들, 잘 키우리란 보장이 없다.
너른 농장을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홀로 감당하기에,
블루베리 외 텃밭 작물을 제 때에, 돌보기가 쉽지 않다.
하여, 언제나 나중에 텃밭 농사에 대하여,
미치지 못함에 후회를 하곤 한다.
하지만, 올해엔 시간 안배를 잘 하여,
텃밭에 토종, 외래종 여러 작물들을 시험 재배하며,
농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려하고 작정하고 있다.
특히 올해엔 필히 토종 뿌리배추(경종배추)를 심어,
그 은은 그러나 삼삼한 세계로 되돌아가 옛일을 되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