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사는 게 전쟁이다.

소요유 : 2020. 1. 26. 17:35


사는 게 전쟁이다.


내가 소싯적 얻은 첫 직장.

직장 상사 하나가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그는 모 장관의 서자(庶子)라 하였던가?

이 자가 내 눈에 영 속물로 보였다.

일(업무)도 전문적 지식이나 쌓인 식견에 의지하지 않고,

그저 면피용 요령으로 처리하였음이니, 

하나도, 배울 바가 없었다.


헌데, 어느 날 그가 뱉어내었다.


“이게 생존 경쟁이야.”


어느 일을 두고,

내가 살기 위해,

저자에게 피해를 입힌들,

그게 대수가 아니라,

내게 이익이 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한참 어릿배기인 사회 초년생인 나.

내가 배운 바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 생경한 문법에 나는,

이 사람 너무 속물스럽다 여겼다.


실제,

그의 행동은 늘, 속되고, 얄팍하긴 하였었지.

잔뜩 폼을 잡고 살았지만,

열등감에 싸여, 그는 외모에 신경 쓰고,

외물을 빌어 자신을 주렁주렁 치장하였다.


학력도 딸리고,

그저 빽으로 들어온 이라,

제 실력으로 겨룰 수 없음이니,

제 출신 성분으로 적당히, 

자리를 지켜내고 있을 뿐.

그의 존재감은 늘 평균 기준 이하로 유리(遊離)되어 있었다.


거 있지 않은가?

쥐뿔도 없는 인간이,

유명인과 사진 찍어 걸어두며,

제 위광을 더하고,

그들의 위세를 빌어,

호가호위하는 모습들 말이다.


헌데 오늘, 영상 하나를 보았는데,

거기 이런 말이 등장한다.


‘사는 게 전쟁이란 생각이 안드냐?

전쟁이 따로 없다.

사는 게 전쟁이지.’


그러자, 문득,

내 지난 날, 그의 말이 생각이 났던 것이다.


나는 철저하니,

그를 불신하였고,

맡은 바 일은 처리하였지만,

그를 인격적으로 존중할 수 없었다.


헌데, 저 영상에서,

사기꾼 하나 있어,

그에게 한 몸 의탁하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이리 전쟁이란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출처 : utube)


사기꾼은 마침 또 하나의 사기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상대는 이리저리 채이고, 배신당하며, 힘든 삶을 이끌고 있었다.

그에게 돈도 뜯기고, 고통을 받았음에도,

저 사기꾼에게 코가 꿰이고,

이젠 그의 말을 따르는 처지에 이르고 있음이다. 

저들에겐 과연 삶은 전쟁이겠다.


전쟁(戰爭)이란 무엇인가?


전쟁이란 한 마디로, 칼, 창으로 서로 간 다툰다는 말이다.


戰者、聖人所愼也。


전쟁은 성인이 삼가는 바라 이르고 있다.


손자병법에도,

明主慮之,良將修之,非利不動,非得不用,非危不戰。라 이르고 있음이니,

도대체가, 위험에 처하지 않았으면 싸우지 말라 하였다.


하나 같이 만 부득,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싸우지 말라 이르고 있음이다.


헌데, 내가 농부가 되어 사물을 관찰하니,

사방에서 갈등을 때리고, 싸움박질을 하지 않는 현장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우선 땅 속을 보면, 수많은 미생물이 먹이를 두고,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바실러스균, 유산균, 효모균, 광합성균 등속(等屬)이,

종간(種間), 종내(種內) 투쟁에 여일이 없다.

그 뿐인가, 식물들 사이의 싸움박질도 쉼이 없다.

작물, 잡초 간 치열한 경합과 다툼은 온 들녘, 밭을 두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저들은 싸움을 도대체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 연속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이다.


(내가 자연재배를 하고 있다 하니,

아지도 못하고 사람들은 신선놀음하고 있다 여긴다.

나는 땅 속의 이 치열한 다툼의 현장을 여실하게 지켜보는 증명법사이다.

온 밭을 덮은 풀들이 갈등을 때리며 서로 영역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을 안다.

자연재배란 뜬구름 잡는 일이 아니다.

여여한 이런 천지 간의 실상을 바로 지켜보고,

이를 본으로 내성을 바로 보는 수행과 다름없다.)


하니, 이 세상은 온통 전장(戰場)임이라,

온갖 생령들은 싸우고들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 뿐인가?

촌놈들은 저 미생물보다 더 원초적이라,

한 치의 땅을 두고 다투고,

한 톨의 나락을 두고, 

명줄이 걸린 양,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음이다.


아아, 그러함이니,

저 영상 속의 사기꾼 말처럼, 삶은 전쟁터이며,

옛 직장 상사의 우쭐거림처럼 생존경쟁 속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랴?


과연 그러함인가?


한 때, 이 땅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2010년 아이패드 출시 첫날,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한다.


“It is in Apple’s DNA that technology alone is not enough—it’s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us the results that make our heart sing.”

― Steve Jobs”


(출처 : utube)


그러자 마치 큰 영감을 얻었다는 듯,

모두는 인문학을 향해 질주하였다.

인문학이 아니라, 실인즉 돈을 쫓았을 뿐이지만.

저들은 이로써 만족을 얻고,

제법 그럴싸하니 폼을 잡곤 하였다.


기실, 인문학 열풍이란 게,

기업체가 앞장서고,

어중이떠중이, 장삼이사가 기웃거릴 때부터 나는 예견하였다.

저게 미구에 제 풀에 꺾이고 말 것이란 것을. 


모든 들뜸이 그러하듯, 

이 열풍은 쉬이 삭고, 

이젠 다시 원래의 본색대로 돌아갔다.


입자가 제 궤도를 벗어나 exciting 되었다 제 위치로 떨어질 때,

빛이 발하여지듯, 이 누추하고 불결한 세상은,

그나마 이제 반성과 성찰의 문제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technology가 liberal arts나 humanities와 결혼하기는커녕,

실인즉 위장내지는 사기 결혼을 꿈꾸었을 뿐이다.

마치 저 영상의 사기꾼처럼,

돈 많은 여자에게 접근하여,

그의 빌딩을 절취하고, 돈을 알겨내고자 하였을 뿐이다.


기실 스티브 잡스가

technology를 두고,

liberal arts나 humanities와의 결혼 운운할 때,

과연 저것이 liberal arts나 humanities를 찬양함이 아니라,

실인즉 technology가 저들과 정략 결혼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聖 ↔ 俗

僧 ↔ 俗

眞 ↔ 假


기실 聖이란 멀리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곧 通인 것이다.

환언하면, 風俗에 두루 통한 상태를 이른다.

거꾸로 이르자면, 俗이란 습속, 욕심에 갇혀,

편협한 인식, 판단에 빠진 상태를 지시하고 있다.


헌즉, 기실 聖俗은 대립항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완벽함과 부족함의 일시적 과부족 상태로 여기는 게 조금 낫다.

나아가, 俗을 통해 聖을 배우고, 聖을 통해 俗을 비추는,

聖俗一如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함이니, 聖俗은 서로 간 결혼함으로써 무엇을 꾀하고 하는 경계를 벗어나 있다 하겠다.

그런즉, 기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technology와 liberal arts나 humanities의 결혼이란,

출발부터가 불순한 동기가 숨어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기업 가치 창출을 위한,

합목적적 의도가 내재되어 있은즉,

저들 간의 결합은 순수하지도 않고, 의도적이다.


俗의 세계는 끊임없이 갈등이 연출되고, 투쟁이 인다.

농장 안에 들고양이들이 들어와 산다.

이 춥디추운 계절을 견디어 내고,

과연 저들이 나아가는 곳이 어디일런가?


저들을 보자하니 눈물이 난다.

아프다.

왜 저 가여운 아이들은,

명(命)을 받아, 

이리 진고생을 하고 있는가?


진세(塵世), 俗의 세계는 정말로,

춥고, 배고프고, 아귀다툼이 매일 일어나는 전쟁터이다.


헌데, 사람 하나 있어,

그 현장을 지긋이 쳐다본다.

그 아픔과 슬픔을 관조하며,

눈물을 흘리는 곳에,

문득 인문학(humanities)이 나타난다.


여기 technology가 humanities과 결혼하려고 의욕하고 있다 할 수 있음인가?

그런즉, 스티브 잡스는 경영의 고수일는지 모르지만, 

결코 humanities을 제대로 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인문학은,

댓가, 목적을 구하지 않는 자리,

그저 천연의 마음이 우러나는 곳에서 싹트는 것일 뿐.

不買妻子라,

의도된 결혼의 대상이 아니다. 


出離波羅密


욕락(欲樂)을 버리고, 속됨을 여윈 행의 경지에 이르면,

잡스처럼 technology를 두고 humanities와의 결혼을 애써 기획하지 않는다.

이를 출리(出離) 즉 정념(正念)이라 이른다.


대승불교의 보살이란 인격은 바로 이 자리에 서 있다.

technology와 liberal arts나 humanities의 결혼을 의욕하지 않는 자,

이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

저 가여운 들고양이를 보고,

아픔을 함께 하고, 슬픔을 길어 올릴 때,

humanities는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보살도, 보살행을 증언할 뿐이다.

하니까, humanities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살행이 먼저이고, humanities는 단지 이를 그려낼 뿐인 것이란 말이다.


본말이 뒤집히니까,

인문학이 먼저이고,

보살도가 뒷전인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그림이 귀하고 아름다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헌즉 거꾸로 이를 통해, 보살의 인격을 사모하고 추구할 수도 있긴 하다.

이게 인문학일 뿐이다.

그저 통찰을 일깨울 뿐이지,

실천학은 아니란 말이다.


不買妻子

결혼을 꿈꾸지 말라.

다만, 보살이 되길 꿈꿀 일이다.

그대 당신이, 바로, 실천의 당체가 되어야 할 뿐인 것을.


或曰:「有人焉,曰雲姓孔而字仲尼,入其門,升其堂,伏其几,襲其裳,則可謂仲尼乎?」曰:「其文是也,其質非也。」「敢問質。」曰:「羊質而虎皮,見草而說,見豺而戰,忘其皮之虎矣。」

(揚子法言)


본디 양(羊)의 성질을 가졌는데,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 쓴다한들,

풀을 보면 즐겁고,

표범을 보면 벌벌 떠니,

호랑이 가죽을 입고 있음을 잊었느니라.


인문학으로 칠갑을 한다한들,

본바탕 소양은 따르지 못함이라,

여전히 풀 뜯는 염소 짓을 여의지 못한다.


제 아무리 liberal arts나 humanities를 노래한들,

technology가 하늘로 나르기는커녕 땅바닥으로 곤두질을 치며 놔뒹굴더라.


其文是也,其質非也。

그러함이니, 본질은 변함이 없고,

문식(文飾)만 질펀할 뿐이라 이르고 있는 것이다.


入其門,升其堂,伏其几,襲其裳

공자 학당에 입문(入門), 승당(升堂), 복궤(伏几). 습상(襲裳)

즉 마루에 오르고, 안석에 가까이 이르고, 복식을 따른다한들,

곧 공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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