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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용 효과

농사 : 2020. 6. 30. 16:23


작용 효과


비가 내리자, 식물들이 놀랄 정도로 부쩍 자랐다.

그 동안 가뭄이 지속되는 가운데, 

텃밭에 물을 조석으로 뿌려주었지만,

바쁜 가운데 충분치 않았는지, 작물은 그저 말라죽지나 않았지, 

자람이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그래 늘 말하거니와,

질소, 물, 응달 삼자는,

그 작용 내용은 다를지언정 효과는 엇비슷하다고 하였던 것이다.

즉 이 삼자는 작물을 마구 자라게 한다.

(※ 하우스 재배도 식물을 도장(徒長)하게 한다.

하지만, 작물에 따라 고온해를 입기도 한다.

위 삼자와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기에, 제외하였다.)


질소 비료를 시비하면, 눈에 띄게 작물이 크게 자란다.

하여 농민들은 비료를 주지 않고는 작물을 키울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요소 비료는 질소분 함량이 46%에 이르니,

농민 치고 이를 어여삐 여기지 않는 이가 없는 실정이다.


물만 자주 주어도 작물은 외양상 쑥쑥 잘 자란다.

내가 아는 블루베리 농부 가운데 하나는,

조그마한 포트에 심은 블루베리에 물을 수시로 주어,

멀뚱하게 키만 키워, 사람 눈을 현혹시키며,

묘목을 크게 자라게 하여, 내다파는 이가 있다.

뿌리는 미처 발달하지 않았으면서도,

지상부 수간(樹幹)만 키워내는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응달 역시 매한가지라,

적당한 수분만 공급되면, 햇빛 없이도 크게 클 수 있다.

가령 콩나물을 보아라, 햇빛을 받지 않았는데도,

물을 수시로 뿌려주면 세포가 커지면서,

몸체를 몇 십 배나 부풀린다.


이 들 삼자는 모두 허장성세로 식물의 몸체를 크게 키운다.

하여 그 작용 효과에서 모두 같은 역할을 한다.


헌데, 신기하게도 강우(降雨)는 이 삼자가 모두 한 자리에 나타난다.

질소, 물, 응달.

과시 이 세 가지가 거푸 겹쳐 큰 작용 효과를 낸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이 있으나,

기실 이는 죽순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대개의 식물은 우후(雨後) 작용 효과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비에는 적지 않은 질소분이 포함되어 있다.

농부들이 관수하는 지하수나 하천수에 비하여,

월등하니 질소분이 많다.

번개가 치면 공기 중 질소가 산소와 결합하여,

질소 화합물이 만들어지며, 이 질소 산화물이 비에 녹아 포함되게 된다.


그러함이니, 예부터 농부들이 비를 두고 단비라 함은,

그저 단순히 물 H2O를 두고만 이르는 말이 아닌 것이다.

갈증 해소를 넘어, 작물에게 질소분을 공급하는 비료와 같은 역할을 겸하는 것이다.


비가 내린 후,

텃밭에 나갔더니,

단 이틀 사이에 고추니, 가지, 토마토 등 일속이,

거의 배는 더 자라있는 양 싶다.


나는 이 앞에 서자,

이것이야말로 허장성세가 아닌가 싶은 감상이 인다.

그간 아무리 물을 주어도 잘 자라지 않던 것이,

비가 내리자 이리 클 수 있다니 말이다.


허나, 장마가 지면,

작물은 부쩍 자라는 양 싶지만,

이내 바이러스가 퍼지고, 벌레가 꼬이며, 병이 들고는 한다.

그럴 수밖에.

절간(節間)이 뻥튀기처럼 늘어나니,

수체는 연약해지고,

갖은 병충해는 그 틈새를 공략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아아,

하지만, 그냥 둘 일이다.

세상 만물은 저리 뽐내고, 자신을 치장하며, 

이 생을 한껏 발양하며, 건너고 있음인 것이라.


허나,

사람은 여기에 더하여,

비료를 주고, 농약을 치고, 제초제를 뿌리며,

저들을 더욱 채찍질하며,

허장성세의 극을 달리게 함이라.

과시 그 욕심의 흉악함을 그 무엇이 따를 수 있으랴?


불교 인식 논리학에 인과효과(artha-kriyā-kāritva)라는 개념어가 있다.

이는 어떤 효과를 산출하는 능력을 뜻한다.

(Artha-kriyā-kāritva literally means ‘the capacity to produce a useful result’.)


가령 불이라면 물체를 태우는 능력,

그릇은 물건을 담는 능력을 보지(保持)한다.

다르마키르티(Dharmakīrti, 法稱)는 인과 효과를 내는 것을 참된 존재라 보았다.

거꾸로 그런 효과가 없다면 존재라 할 수 없다 하였다.

그러니까, 어떤 인과효과를 내는 여부가,

바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판정 조건이라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과효과만으로 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인과효과를 확인할 수 없다면, 존재 역시 불명인가?

하는 의문을 일으키게 된다.


가령,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을 통한 경험이라든가,

인터넷을 통해 드러나는 효과 주체를 실체적 존재라 할 수는 없다.

이것은 현실이 아닌 가짜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경험 가운데 인식의 진위를 가리는 기준으로,

법칭은 인과효과를 끌어들여 가늠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니까, 기실 진짜냐 가짜냐의 판별을,

현실이냐 가상이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인과효과 여부에 두는 것이다.


불교의 유식철학 역시,

세상만물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본다.


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應觀法界性一切唯心造


만약 어떤 이가 삼세의 부처에 대하여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할 것이니,

모든 것은 마음이 지은 것이다.


일체유심조 이 말을 앞에 두고,

그저 단순히 세계의 창조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자칫 오해를 할 일이 아니다.


唯識論云。且如一水。四見成差。天見是寶嚴地。人見是水。餓鬼見是火。魚見是窟宅。

(心賦注)


같은 물을 두고도,

天은 보물로 보고,

사람은 물로 보묘,

아귀는 불로 보며,

물고기는 집으로 본다.


화엄경의 이 말처럼,

다만, 마음이 주체가 되어 세상을 짓고, 얽어나간다는 의미이다.


作用是性이라, 

이는, 유식철학의 소위 三性說인

遍計所執性, 依他起性, 圓成實性

가운데 앞의 둘을 지칭한다.

불교는 본디 無自性이라, 별도의 성품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轉識成智인 것이다.


작용 효과에 있어,

질소, 물, 응달이 같음을,

나는 농사 이력 3년 차에 깨우쳤다.


허나, 作用是性이라지만,

無自性임이라,

별도의 본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이다.


작물이 비를 맞아,

부쩍 키가 큰다거나,

농부가 준 비료 빨에 부쩍 자라는 것 모두는,

기실 학인의 번뇌와 매한가지라,

작용에 혹하여 그에 연연할 일이 아니라,

轉智成智를 깨우칠 일이다.


自性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본디 自性空임이라,

作用是性이라 하여,

作用을 性으로 삼을 일도 아니다.

본디 無我이거니와,

이를 고집하면 作用이 我가 되고 만다.

그러함이니, 無我는 無常과 안팎을 이루는 것이다.


집착을 여의어,

自性空을 알 일이다.

一切眾生執着不實虗妄想者。從見種種虗妄法生。

중생은 집착을 여의지 못하니, 

망상에 싸여, 갖은 야릇하고 고약한 짓거리를 저지르게 된다.

농부가 집착하는 비료, 농약 역시 망상의 결과가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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