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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

소요유 : 2020. 7. 31. 10:02


인격


인격 평가 기준이란, 뭐 별도로 정한 그 명확한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나부터 인격을 믿을 수 없다.

오늘 다르고, 어제 다르며,

떡 앞에 설 때 하고, 똥 앞에 설 때,

각기 달리 마음이 요령 쇠불알처럼 오락가락한다.


다만, 사회에 모여 함께 살아가기에,

그가 한 행위로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인간의 내심은 잘 알 수도 없지만,

이게 평가 기준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밖으로 드러난 행동을 두고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오래간만에 어떤 아는 이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떡 하니 故박원순 사진이 올라오고,

그를 추모하는 글이 적혀져 있었다.


박원순, 

그만한 인물도 이 혼탁한 사회에선 구하기 어려운 인재라 하겠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오비이락이 아니다.

성 피해를 이유로 고소가 들어가자 일어났음이니,

그의 해명이 없다한들, 

이와 상관이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치에 닿는다 생각한다.


우리가 세월호 유족 앞에서 폭식 투쟁하는 자들을 두고,

혀를 차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차오르는 분노를 참아낼 수 없는 것은 왜 그런가?

그 무리들의 사건에 대한 판단 내용보다,

타자의 슬픔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은 물론,

이를 거푸 능욕하기 때문이 아닌가?


박원순을 지아무리 흠모한다한들,

피해자의 호소가 있는 자리.

그를 일방적으로 기릴 수 있음인가?

죽음 앞에서 아프고, 슬퍼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 죽음이 부도덕함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간절한 것일지라도 조상(弔喪)은 제 마음 안에서 치러져야 한다.

그 삼감이 없다면,

그것은 피해자를 다시 가해하고,

타자를 의식하지 않고, 제 감정에만 취한,

인간적으로 심히 미숙한 태도임은 물론, 나아가 패륜의 행위라 하겠다.


만약 피해자가 제 누이고, 딸이라도,

그러 할 수 있음인가? 

인격이라면,

이 때 만분지일이라도,

피해자의 아픔을 헤아리고,

그의 자리에 서서 사태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음인가?


혹자는 말한다.

일방적 고소만 있을 뿐,

박원순이 죄를 지은 것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니,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그를 나무랄 수 없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 

모두 안녕"


그의 유서를 보면,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말만 있을 뿐,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소명되지 않고 있다.


그는 그 까닭을 숨기고 있다.

그는 죽음의 동굴로 도피한 것은 아닌가?

천만 서울 시민의 행정을 책임질 위치에 있는 이가,

죽음으로써, 공직을 정지시키려면,

최소 그 이유를 밝히기라도 하였어야 한다.

그는 그러하지 않음으로써,

남아 있는 이들을 다시 시험하고 있다.

사내장부의 태도로 보기 어렵다.


박원순이 무죄라 믿는 이가 있다면,

그럼 피해자는 어찌 대할 것인가 묻고 싶다.

그의 피해도 확정할 수 없고 유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그래, 그렇다면,

과연 진실이 무엇인가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무죄추정원칙이란 고깔모자를 쓰고,

영원히 그를 innocent의 동굴 안에 안식(安息)시키려 한다면,

그럼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은 그 누가 있어 위로하고,

원통함을 풀어줄 수 있는가?


만약 조사 결과,

무고(誣告)로 밝혀진다면, 고소인은 의당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리 된다면, 박원순 측의 처지도 사뭇 개운해질 것이다.


그러함이니, 자명해진다.

무죄추정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저 묻는(埋)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조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중지되어야 하고,

박원순을 향한 일방적 공개 애도도 유보되어야 한다.

최소 이 정도만을 의식할 수만 있어도,

인격을 안다 하겠음이다.


박원순을 나도 좋아했었다.

최근엔 그의 태도가 영 석연치 않아,

일정 거리를 두고 관찰해오거나,

차츰 관심이 묽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어쩌다 방문한 위에서 언급한 그의 블로그를 보고,

인격을 생각해보았다.


子路問成人。子曰:「若臧武仲之知,公綽之不欲,卞莊子之勇,冉求之藝,文之以禮樂,亦可以為成人矣。」曰:「今之成人者何必然?見利思義,見危授命,久要不忘平生之言,亦可以為成人矣。」

(論語)


“자로가 성인(成人, 된사람, 인격자)에 대하여 (공자께) 여쭙다.

공자께서 이르시다.


‘장무중과 같은 지혜에, 

맹공작과 같은 청렴함,

변장자와 같은 용감함,

염구와 같은 재주에다,

예악으로써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한다면,

가히 성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이어 말씀을 하셨다.


‘오늘날이라면, 성인이 하필 이러기까지야 하겠는가?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함을 앞두면 목숨을 바칠 줄 알며,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전날의 약속을 잊지 않는다면,

가히 성인이라 이를 수 있으리라.’”


이 글을 다시 읽자,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의 유묵(遺墨)이 떠올랐다.


見利思義,見危授命


내가 소싯적 서표(書標) 하나를 얻었는데,

여기에 안중근의사가 쓴 이 글귀가 적혀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잘린 그 유명한 그림과 함께.

그 뜻을 몰라, 옥편을 뒤지고, 조각 말을 맞추던 기억이 있다.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장부는 비록 죽음을 앞에 둘지라도, 마음은 철과 같이 단단하고,

의사는 위험에 임하였을지라도, 의기는 구름과 같이 드높다.”


(출처 : 網上圖片)


죽을 때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저 말없이 사라질 일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면, 

드러내어 마음을 가시고 떠날 일이다.


아아, 

장부에겐,

철과 구름이 별도로 따로 나뉘는 것이 아니어라.


ps) 久要不忘平生之言

기실, 

최근에 겪은 일로 인해, 이 말이 떠올랐다.

하여 이와 관련된 글 하나를 적당한 때에,

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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