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신념, 신화, 광신, 그리고 빠

소요유 : 2008.03.31 08:03


식사하는 중 집식구로부터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어느 라디오로부터  들었다는 것인데,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우선 대충 기억을 되살려 엮어본다.
당시에 그냥 무심히 들었던 것이라 실제와 약간 다를 수 있겠다.

어느 택시기사분이 일을 나섰다.
할머니 한분이 탑승하셨는데, 목적지에 다 도착하여 내리면서,
택시비를 깎아달라고 하였단다.
택시기사께서 곤란하다고 하니, 할머니는 화를 내시며 내리셨다.
당하는 이 역시 마음이 언짢아 못내 우울했다.

그리 다니다, 한 승객을 태우게 되었다.
그는 집이 시외니 그리 가자고 하였다 한다.
왕복 요금 4만원이니,
제법 짭짤한 거래라, 우울한 마음을 털어내고 신나게 달려갔다.
손님 집에 도착하니 그는 가진 돈이 없으니 잠시 기다리라며, 집으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사는 차에서 내려 그 집으로 들어갔다.

벌어진 광경이라니, 손님 어머니께서 말하길
“다 큰 놈 택시비까지 내가 대신 내주어야 하느냐, 이번에는 못주겠다.”
“이번 한번만 주시라.”
이리 모자간 옥신각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어머니께서는
“나도 돈이 없으니 매어 있는 저 염소를 장에 내다 팔거라.”
이리 제안을 하셨다.

결국 기사와 손님은 염소를 데리고 함께 장에 갔다.
한참을 호객 행위를 하였으나, 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사는 도대체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저 한숨만 나왔다.
그렇다한들, 가만히 있어보았자,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기사는 손님과 합세하여 열심히 호객행위를 했다.
용케 임자를 만나 염소가 팔렸다.
손님은 미안했던지, 약속한 것의 배인 8만원을 내주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기사는 또 다른 손님을 태웠다.
그 손님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기까지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 손님 왈,
“내가 지금 가진 돈이 없다.”
오늘은 웬일인가 ?
만나는 손님마다 온전한 이가 없다.
기사는 참으로 내가 왜 사는지 회의가 들었다 한다.
그 때, 그 취객은 내가 방금 산 복권을 택시비 대신 받으라고 제안한다.
게다가, 복권이 택시비보다 더 많으니 거슬러달라고 한다.
오늘은 일진이 하수상하다.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차액을 거슬러주고 복권 몇 장을 받았다.

그 날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기사.
참으로 해괴한 하루였다.
택시 모는 것을 그만두든지 말든지...
그리고는 받았던 복권을 긁었다.

그는 그날 140여 만원에 당첨되었다고 한다.

***

이 이야기를 한참 웃으며 듣자니,
나는 이내 중이(重耳)가 생각났다.
원래 중이는 중동(重瞳)에 변협(騈脅)이다.
(※ 참고 글 : ☞ 중동(重瞳))
즉 한 눈에 눈동자가 둘이고, 갈비가 뼈 하나로 통으로 된 인물이라 한다.
하여간,
후에 중이는 춘추 5패의 하나인 진문공(晋文公)이 된다.
나는 바로 이 택시기사의 이야기와 겹쳐 진문공에 관한 고사 하나가 떠오른 것이다.

중이는 정쟁에 휘말려 고국에서 도망 나와,
장장 19년간 각국을 전전하며 망명생활을 했다.

위나라를 지날 때의 얘기다.
중이는 그의 신하와 함께 아침도 못 먹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낮이 지나서야 그들은 오록(五鹿)이란 곳에 당도했다.

농부들이 논둑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중이가 신하 호언을 돌아보며 말한다.
“저 농부들에게 밥을 달라고 청해보오.”
농부가 다가온 호언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어디에서 오셨소.”
“우리는 진나랄 사람이오, 갈 길은 먼데 양식이 없으니, 밥 좀 줍시오.”
“사내대장부들이 제 손으로 벌어먹을 생각은 않고 그래 밥을 얻어 먹으러다니오.”
“우리는 안 먹어도 됩니다. 주인께서 몹시 시장하시니 한 그릇만이라도 동정해 주십시오.”
그러자 농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릇에다 흙을 가득 퍼서 호언에게 내주는 것이었다.
“이 흙이나 구워서 먹으시오.”
호언은 기가 막혔다. 이 같은 모욕과 멸시가 어디 있는가.
또 다른 신하인 위주는 화가 나,
“촌놈들이 어찌 이다지도 우리를 모욕하나뇨!”
하며 그 그릇을 빼앗아 던졌다.
중이도 크게 노하여,
“저 놈들을 엎어놓고 볼기를 쳐야겠다!”

그때였다. 호언이 두 팔을 벌리며 재빨리 중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흙은 나라의 근본입니다. 밥을 얻기는 쉬워도 흙을 얻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토지는 바로 국가의 근본입니다.
하늘이 농부의 손을 빌어 공자께 흙을 주시니 이는 장차 나라를 얻을 징조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그리 노하십니까?
공자는 수레에서 내리사 저 농부에게 절하고 다시 흙 한 그릇을 청하십시오.”

중이는 호언이 시키는 대로 수레에서 내려, 그 농부에게 절하고 흙 한 그릇을 청해 받았다.
농부들은 까닭을 모르고, 중이를 향해 비웃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중이는 후에 진나라 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열국의 패자가 되었다.

***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앞에 두고 나는 몇 가지 생각이 얽혀지는 것이다.

독자들은 혹 이 이야기들이 교훈으로 독해되는가 ?
예컨대,
“아무리 화가 나도 착한 마음을 내거나, 뜻을 귀히 새겨,
참으면, 후에 복으로 되돌아온다.”
이런 따위의 이야기 곁말 말이다.

하기사 나 역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짐짓 꾸며 마무리한들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 큰 꾸지람을 듣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들은 전설에 익숙하고,
신화를 구하는 간절함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서사 구조 도식은 우리가 유치원 시절부터 익히 겪어온 바다.
여기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가을 감처럼 발갛게 열리고,
신화가 구름인 양, 아련하게 둥둥 흐르고,
경이로운 동화의 세계가 열린다.

과연 그런가 ?

클로드 브리스톨 (Claude M. Bristol)의 ‘신념의 마력’이란 책이 있다.
계산을 해보니까 꼭 35년 전에 읽었던 적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른 그 책의 내용 중에,
“거울을 보고 자기가 염원하는 바를 매일 반복하여
자기 자신에게 되뇌이면 그대로 실현된다.”라는 선전이다.

궁중비사에 보면,
인형 만들어 화살을 날린다든가,
바늘로 찌르며 상대를 해코지 하는 저주굿 등속과 궤가 비슷하다.

자기확신이 결국 마력처럼 현실화된다는 것을 저자는 마력이라고 불렀다.
자기예언적성취(self-fulfilling prophecy)이니,
피그말리온(Pygmalion)효과 또는 위약(僞藥,placebo)효과 따위와 비슷한 게 아닌가 싶다.
이게 현실에서 효과가 있는지 아닌지를 떠나,
이런 류의 예언이나 확신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긴다는 것은
내겐 생리에 맞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을 속이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결과지상주의,
삿되다.
비릿한 저 시도들이 때론 가엽고 한편으론 역겹다.

염불종에서의 염불만으로 성불한다거나,
“나무관세음보살”이란 명호를 외면,
모든 환난으로부터 구제된다는 믿음은 또 어떤 것인가 말이다.

물론 이런 종교적 가르침은 브리스톨과는 다르다.
브리스톨에겐 예언실현을 위한 일방적인 신념의 효용만이 거양되고 있다.
거기엔 불교에서 말하는 반성적성찰이란 프로세스가 거세되어 있다.
불교에서 화두 잡으며 흔히 말하는,
대신근(大信根), 대의단(大疑團), 대분지(大憤志)를 놓고 본다면,
大信, 大憤이 大疑로서 즉 나의 셈법인 겸양으로 보증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일 확률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 때 대신(大信)은 곧 대지(大智)가 된다.)
도무지 브리스톨에겐 대의단(大疑團)이 없다.
때문에 저런 따위의 언설은 삿됨의 주요한 형식을 이룬다.
물론 현실에선 아닌 게 아니라 저런 방식들이 때로 거대한 성취(?)를 이루곤 한다.
이것은 속임, 사기 또는 우연의 소산일 뿐이지만, 
과정이 여하든, 결과가 중요한 세상에선
저들이 널리 찬양되는 소이다.

오늘도 예배당 혹은 불당, 신당에 나가 내생천국을 빈다든가,
대박의 꿈을 안고 복권을 매주 사는 이가 있다.
저들 기복적 또는 찰나적 신념이란 게,
도를 지나치게 되면 광신(狂信)의 노예가 된다.

공자가 뜻을 얻지 못하고 주유천하할 때다.
어느 때 陳, 蔡 나라가 군사를 보내 광야에서 공자를 포위했다.
광야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공자는 3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러나 공자는 삼일 동안 거문고를 타며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공자는 그래서 누천세(累千歲)이어 대성(大聖)이라 불리운다.
그는 복(福)이나 뜻을 거울 앞에서 신앙 또는 신념이란 이름으로 맹목적으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비록 유가의 교조(敎祖)지만,
그는 다만 광야에서 거문고인즉 몰현금(沒絃琴)을 뜯고,
무공적(無孔笛)을 불었을 뿐이다.
(※ 몰현금 : ☞ 2008/03/06 - [소요유] - 공진(共振), 곡신(谷神), 투기(投機) ①)

하기사,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도 있다.
그게 출판사의 광고용 천박한 날개죽지짓이란 혐의가 짙지만,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바 본의를 익히 알아듣는다 할손,
저들이 그 카피로 돈을 좀 만졌을진 몰라도,
나는 저들 역시 브리스톨의 후예가 아닌가 겸허히 자문하길 기대한다.
제목이 너무 천박하여 나는 저자가 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기도한 공자에 대한 비판은 우선 책 제목부터 실패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브리스톨 따위의 신념이란 것이 변질되면
개인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환각작용을 한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이 땅에 퍼져 있는 실용경제라는 게, 그것 아닌가 ?
대운하만 파면 경제가 회생하고,
국운이 열리리라는 저들의 선전과 믿음이란 무엇인가 ?
거기 협잡과 음흉한 기도가 굴뚝 속 그으름처럼 은폐되어 있고,
한편에선 자기환각에 몸을 기꺼이 던지는 우매한 대중이 있다.

복권 매주 산다고 그대가 그 대박의 주인공이 된다든 ?
믿음은, 겸손이란 자기궤환(negative feedback)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리고 꿈은 역행(力行)이란 자기연단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한낱 삿된 광신이거나 자기기만과 다름없다.

위 예에서,
즉 택시기사의 대박과 중이의 成為國王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다.
특별한 사태이자 사건인 게다.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한 사례이기에 널리 이야기 거리가 되고,
우리들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게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리란 예상은 전혀 보장 받지 못할 한낱 기대에 불과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거꾸로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게다.

여기 신화의 한계가 있는 게다.
하지만, 신화는 체험비용이 제로다.
때문에 가벼히 소위 말하는 찌질이들의 구매 단자(單子)가 된다.
나는 빠돌이들이 가엽게도 여기 노출된 환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
이 칙칙하고 음울한 시대를 걸어가노라면,
때로는 빠돌이가 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귀환할 때 돌아오지 않으면 광빠가 되고 만다.

황빠, 디빠, 노빠, 명빠, 박빠 ...
빠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 귀환할 자리는 그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잊기 때문이 아닐까 ?

노빠의 환상이란 게 몇년 갔지만,
명빠의 환상이란 것은 단 보름도 되지 않아
싸구려 옷설기 터지듯,
거름 밭에 엎어지듯,
적나라하게 뒤집어지지 않았는가 말이다.

위 이야기 사례도 마찬가지지만,
문제는,
special한 것을 general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
아니, 정작은 general이 아니라, 자기에게만 감 떨어지듯 똑 떨어져 행운이 다가오리란
special한 저 달콤한 기대에 있는 게 아닐까 ?
이 환상, 전도된 가치, 오도된 욕망이 당금(當今) 우리들의 슬픔이 아닐까 ?

하루 종일 차 몰고 돌아봐야 차비 대신 복권 받아 가라는 손님도 만나기 어렵고,
논둑에 새참 먹는 농부에게 밥 적선 구한들, 대신 흙 퍼담아 내미는 이도 없다.

만에 하나 행이라한들,
돈 대신 복권 받아,
밤새도록 긁어보아야,
그대가 대박의 주인공이 될 리 없고,
흙 그릇 아무리 받아보았자,
그대가 왕이 될 리 없다.

대운하 아무리 파봐야,
그대에겐 국물도 떨어지지 않는다.
알기나 아는가, 그대.

혹 그대가 고소영, 강부자라면 좀 나을까 ?

“反運河鬪爭”
“反運河鬪爭”
“反運河鬪爭”

대박은 어느 날 도적처럼 찾아 올 뿐인 것을.
그러하니,
大信코저 하는 이는,
정작은 먼저 大憤하고 大疑할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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