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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비료의 허구

농사 : 2020. 10. 16. 11:06


감사 비료의 허구


농사를 짓는 이들은 감사 비료가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

수확이 끝나고, 나무에게 고맙다고 예를 차려,

그 표시로 가을에 주는 비료를 말한다.


우리 농장은 애시당초 비료를 주지 않고 있으니,

굳이 감사 비료니, 아니니 하는 구별이 없다.

예를 차린다 하면, 

나야말로, 삼백예순날 한결같이 나무에 예를 차리고 있다 할 터.


왜 그런가?


한창 자랄 때도 비료를 아니 주었는데,

열매를 다 수확하고 난 가을에 새삼 비료를 준다면,

이 얼마나 야살스럽고, 염치없는 짓인가 말이다.


또한 일 년 내내 비료를 주지 않음은,

나무를 채찍질로 격동시켜,

과실을 많이 달고자 하는 ‘꾀함’이 없음이니,

도대체 이보다 더 예를 차릴 수 있단 말인가?


無為而物成,是天道也


아아, 함이 없으되 사물이 이뤄지니,

이것이 하늘의 도임이라.


감사 비료라고?


이것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우선은 어법 자체가 잘못되었다.


왜 그런가?


그 본뜻은, 

나무에게 감사하고자 함이 아니라,

실인즉, 내년에 더 많은 수확을 기하고자 함이니,

저것은 실로 언어의 오용이자, 기만이라 하겠다.


감사 비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의 셈법은 이러하다.


올해 충분한 영양분이 나무에 축적되어 있어야,

명년에 충실한 성장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저들은 주로 질소 비료를 준다.

말로는 질소분을 피한다 하지만,

저들이 주로 뿌리는 유박 역시 질소 함량이 많다.

다만 지효성이 있어 좀 더디게 작용할 뿐이다.


그러면 이게 뿌리를 통해 흡수되어, 잎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로써, 광합성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탄수화물을 많이 만들어내고,

이게 다시 수체로 공급되어 양분을 많이 저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말인즉슨 그럴싸하다.


헌데, 무엇이 문제인가?


기실 열매 달려 있을 때 말고는,

이제껏 그 짓을 하지 않았던가?


이제 나무가 열매 다 맺고, 

쉬고자 하는데,

다시 채찍질을 휘두르며 또 일을 하라는 격이 아닌가?


이게 무슨 감사 비료인가?

게으름 피지 말고, 일하여, 

내년에 더 많은 소출을 내놓으라는 으름장을 놓고 있음이라.

아, 저들은 삼백예순날 저리도 식물을 괴롭히고 있음이라.

고약하다.

흉쿠나!


그러함이니 감사 비료라 눙치고, 야살 떨지 말지라.

차라리, 내년에도 또 다시 나는 한껏 욕심 부려 보겠다,

이리 말하는 것이 솔직하리라.


가을엔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온 산하를 덮쳐온다.

여름에 치성했던 생명은 이제 저 가을 기운에,

모가지가 댕강 짤리우고,

땅으로 숨어들 수밖에.


故知造化之有肅殺,義在無私


실로 하늘의 조화는 숙살에 있음이니,

의(義) 또한 사사로움이 없음에 있음이다.


헌데, 감사 비료로 함은,

나무에 예를 차린다든가, 의로움을 펴는 것이 아니라,

사적 욕망에 복무하여, 이악스럽게 제 이익을 마지막까지 취하길 마다하지 않겠다는 짓이 아닌가?

이를 두고, 그 누가 있어 감히 감사 비료라 이르고 있는가?

요설을 떨지 말지라.


자, 이제 실제적인 문제를 말한다.

감사 비료가 무엇이 문제인가?


가을엔 단풍이 든다.

이게 무슨 신호인줄 아시는가?


나무도 아는 것이다.

천지에 칼과 창으로 무장한 숙살지기가 가득한 것을.

헌즉, 이젠 (성장을) 멈추고, 땅으로 들어가 쉬겠다는 표시인 게다.

이로써, 잎에 저장되어 있던 양분의 반 정도가 회수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땅으로 돌아간다.

뿌리도 이제 서서히 잠이 들게 된다.


이게 천도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그리고, 회수된 양분은 수체에 저장되어,

혹독한 겨울 추위를 대비한다.


수액에 이 양분 농도가 높을수록,

빙점(氷點)이 낮아진다.

하여 나무는 얼지 않고 겨울을 건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 비료를 주게 되면,

나무는 꽁무니를 발길질로 차여,

다시 일어나 일을 하게 된다.

이젠, 지친 몸을 쉬어도 모자랄 판에,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농부는,

나무를 일깨어 다시 일을 하라고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잠을 자도 시원치 않을 판에,

뿌리가 다시 가동하게 된다.

이러한 형편인데,

단풍이 들 수 있겠음인가?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러고서도, 겨울에 동해를 입지 않을 도리가 있겠음이며,

봄에 냉해를 막을 역량이 갖춰질 수 있겠음인가?


아아,

나무에게 단풍을 허(許)하라.


단풍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 찬란한 슬픔이란 도대체가.



이제 알겠음인가?

인간들이란 얼마나 악독하고, 교활한가?


당신들은, 

이것이 이제 바로 연상되는가?


말인즉, 이로써 양분을 많이 생산하고,

이를 수체에 많이 보관할 수 있게 된다고 하지만,

기실 나무의 영양 기관이 활성화되어,

때론 신초가 다시 돋아나고,

나무가 물러지고 만다.


가을엔 잎이 단풍이 들고, 시들어 가며, 수체가 단단해져야 하는 법.

하지만, 감사 비료를 주면, 설혹 아무리 영양분이 많이 생성된다 한들,

이젠 쉬고 잠자리에 들, 기관들이 다시 쉼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수체는 물러지고, 싹이 다시 틔어지고,

기관들은 혹사당하며 노화된다.

뿌리는 쉬지 못하고 다시 일을 하게 된다.


천리 길을 달려온 말에게,

다시 채찍질을 가하며,

네 먹을 것을 다시 마련하거라 하며 채근하고 있는 것이다.


말은 이젠 가만히 쉬고 싶을 뿐이다.

더는 그를 괴롭히지 말지라.


사정이 이러함인데,

감사 비료라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실제 이리 혹사당한 나무들은 수명도 훨씬 단축된다.

이러고서야 어찌 명년 봄을 다시 기약할 수 있겠음인가?


양분은 많이 만들어, 수체에 잔뜩 축적시키되,

나무가 다시 꿈틀거릴지 않게 할 재주를 피워야 한다.

이게 그리 쉬운 노릇인가?

아니, 이것은 동시 만족 해(解)를 구할 수 없는,

상호 모순 관계일 뿐이다.


무엇인가 아쉬워,

무슨 짓이든 하지 않을 수 없다면,

저리 나무를 격동시키는 짓을 하지 말고,

차라리, 당분(탄수화물)을 뿌려주는 것이 한결 나을 것이다.

설탕물 말이다.

이는 이미 광합성 결과 만들어진 결과물인즉,

나무를 깨우지 않고, 수체에 직접적으로 공급을 해줄 수 있으니,

감사 비료보다는 백 곱은 더 나은 방책이 되리라.


하지만,

이 역시 욕심인지라,

나는 숙살지기 앞에 두 손 맞잡고 겸허히 서서,

천도를 따를 뿐이다.


棄智慧,反無為。


인간의 간교한 지혜를 버리고,

무위로 돌아갈 뿐인 것을.


나무를 키우려면,

가을까지 감사 비료 운운하며, 쥐어 짤 궁리를 틀 일이 아니라,

나처럼 나무가 일년 내내 자유롭게 자라도록 도울 일이다.

아니 돕는다는 생각초차 내지 않으면,

절로 가을에 이르러 수체가 단단해지고, 

수액 농도가 진한 체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함인데 하구요설(呀口搖舌)이라,

입을 벌리고, 혀를 놀려, 함부로 지껄이며, 

가을에 이르러서도,

지친 나무들을 또 다시 괴롭힐 일이 있겠음인가?


天下神器,不可為也。


천하의 신령스런 사물은,

도모하는 것이 가능치 않음이라.


故無為者,道之宗也。


아아, 그러함이니,

무위(無為)란 실로 도의 근본인 마루(宗)임이라.


無為而無不為也。

道無為而無不為也。


그래 옛 사람은 말하고 있음이니,

무위(無爲)로 하지 못함이 없다 하였음이다.


을밀농철은,

유위(有爲)를 모르거나, 

그 効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다 temporary함을 알 뿐이다.

無常.


우리 농장 언덕 위로 오르면,

마음은 가을 하늘에 띄운 연처럼 가볍고 자유롭다.

비료, 농약으로 범벅이 된,

남의 밭에 들어가면 숨이 탁탁 막혀오고,

어서 빨리 빠져나와 멀리 벗어나고 싶다.

우리 농장에선,

그저 철퍼덕 앉아, 흙이 옷에 묻어도, 마음이 한가롭다.

하다못해 텃밭에 자란, 푸성귀 하나를 뜯어 먹어도,

가슴 속으로 맑은 향이 은은히 버진다.


天下大器也,不可執也,不可為也,為者敗之,執者失之。


아아, 도란 천하대기임이라,

하나조차 執할 수 없다 하였음인데,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음인가?

여기 이 자리 더는 머무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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