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척하기

소요유 : 2020. 11. 4. 19:12


척하기


‘... 읽은 척 ...’

‘... 아는 척 ...’


이런 제하(題下)의 책이 곧잘 출간되고 있다.


척하기란 실(實)은 아닌데, 이름(名)만 빌러 그럴싸하니 폼만 잡겠단 말이 아닌가?


名實相符


명실상부(名實相符)란 말은 요즘 아예 자취를 감췄다.

쓰는 이도 거의 없고, 아마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이조차 찾기 쉽지 않으리라.

왜냐?

명실상부하지 않은 세상이 판을 치기에,

실로 그 효용이 다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름만 가지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브랜드, 네이밍 ....

이것으로 말하고, 어필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책을 읽기보다는 얼굴 성형하는 게 훨씬 효과가 더 나고,

믿음을 실질이 아니라 이름에 기대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여기 시골에 와서,

하도 인심이 흉악스럽고, 경우 없는 이들이 태반임을 알게 되고 나서,

아예 출입구 앞에 쇠줄을 걸고 내외를 가렸다.


헌데,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을 터인가?

하여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침 거의 매일 같이 쓰레빠 짝 끌고 농장에 들리는 공무원 녀석 하나가 있었다.

블루베리에 미쳐 틈만 나면 이리 기웃거렸었는데,

이 자가 내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것이냐 물었다.


한비자를 중심 과목으로 하되,

이것은 아해들에게 자칫 위험할 수도 있은즉,

동양철학 일반으로 잘 다독여 허실을 가려 전할 예정이다 하였다.


그러자 녀석은 대뜸 이리 말한다.

언제 막걸리 받아들고 와야겠네요 한다.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다.

감히 학문을 하겠다는 곳을 술 처먹고 희학질로 더럽히겠다는 수작인가?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의 아이에겐 공부에 참여케 할 수 없다 이른다.

왜인고 하니.


‘공자, 맹자(공맹)의 도를 배우면 돈을 벌지 못한다.’


이리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공무원 되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시험도 어렵고, 모두들 고시촌에 틀어박혀 시험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그러함인데, 공무원 수준이 이 정도라면 정말 한심하다 하겠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녀석이 정말 어리석구나 싶어 더는 말하지 않았다.


기실 한비자는 중국에선 제왕학의 으뜸이라,

지금도 부유한 자제들을 학원에서 모아놓고 비밀히 가르칠 때,

가장 으뜸으로 치는 과목이다.


돈을 잘 벌고 못 버는 것은 명운이라 하겠지만,

한비자를 배우면 아마도 녀석이 기대하는 돈을 벌기에도 좋은 기초가 될 것이다.

내 생각엔 어려서부터 한비자의 오의(奧義)를 제대로 배워두면,

아마 커서는 一夫當關 萬夫莫開라,

수 만이 달겨들어도, 결코 관문을 열 수 없는,

그런 一夫가 될 수 있으리라.


명실상부 이야기하다 왜 이 이야기를 꺼내드는가?

實은 하나도 갖출 궁리 하지 못하고,

그저 名을 탐하기 바쁜 녀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럼 또 ‘척하기’ 책을 두고 왜 명실상부를 떠올렸단 말인가?


도대체 점잖은 사람이라면,

이런 따위는 책 제목만 보고도,

아예 구역질이 나서 곁에 가까이도 가지 않을 것이다.


저 책은 이중의 가장(假裝)이 있고,

세상을 속이려는 아주 고약한 의도를 감추려 하지도 않고 있다.

도대체가 이리 뻔뻔할 수가 있으며,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는가?


저자 자신도 이미 저것이 짐짓 토막 쳐 잘라내어,

꾸며낸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고,

그것을 팔겠다 작정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 역시 저기에 기대어 척하는 일에 적극 종사하겠다며,

저 근처에 서성거리며 끼어들려 하고 있음이다. 

하니 어찌 거기에 이중의 가장이 있다 하지 않을 수 있겠음인가?


원작 저자가 자기의 주장과 논설 또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선,

원래의 책 분량만큼의 공간이 필요했을 터이다.

설마하니 책을 두껍게 만들려고 공연히 말을 늘어놓았을까?

그런데 제 삼자가 이를 줄여, 아무리 재간을 부린다한들,

그 한정된 쪽수 안에서 어찌 온전히 그 내용을 다 전할 수 있으랴?


헌즉, 제 알량한 복장(腹臟)에 넣어, 소화시킨 것을 뱉어낼 뿐이다.

이 죽 한 술을 날름 받아먹고 게트림하겠다는 수작 아닌가?

이런 따위의 구린 것을 팔고, 역겨운 것을 사며,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도모하고자 함인가?


어린 아이나, 몸이 한참 축난 환자가 죽을 먹는다.

왜 그런가?

제 소화기관이 부실하기 때문이 아닌가?

헌데 digest, 즉 소화(消化)된 것을 받아먹고는,

쓱 폼을 잡고는 ‘아는 척’, ‘읽은 척’ 하겠다는 심산이니,

이는 출발부터 이미 삿되고 삿되며, 비열하고도 비열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몰래, 남이 먹다 버린 것을 주워 먹고,

척하기를 기도하고 있는 저자와 독자는 얼마나 용렬(庸劣)한가?


차라리, 만화책일지라도 시리즈 전편을 훑어내는 것이 낫다.

거긴 어쨌건 세상이 품어져 있고, 세계가 그려져 있다.

그게 설혹 부실할지라도,

거긴 한 인간의 곧은 지향, 진지한 열망이 녹아있다.

이 성실함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존중해줄 만하다.


통으로 만나고, 겪고, 느낄 일이지,

토막쳐낸 짜투라기를 주어먹고 게트림할 노릇이랴?


그대 당신이 장부라면.


高高山頂立,深深海底行。

(藥山禪師)


약산선사의 이 말씀은,

대개 이리 번역된다.


‘높이 서려면 산꼭대기에 서고, 깊이 가려면 바다 밑까지 가라.’


헌데, 나는 여기서의 핵심은 이게 아니라 생각한다.


孤孤單單


히말라야 등반도,

돈만 주면 업어서라도 정상까지 올려다 주겠다는 이를 쉬이 구할 수 있다.

산 아랫동네에서 돈다발을 흔들어보라.

한 식경도 되지 않아, 떼로 몰려드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해저 깊숙이 들어가려면 잠수함 타면 된다.

좋은 세상이다.

역시 돈만 뿌려봐라.

부대에서 훔쳐와서라도 태평양 바다 밑을 구경시켜주겠다는 이를 구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약산도, 돈도 없잖아?


孤孤單單


산에 오르려면, 

땀을 몇 동이를 흘릴 것이며,

야간에 도깨비와 귀신을 만나기도 한다.

나뭇가지에 찔리기도 하고,

계곡 물에 발을 적시기도 하는 법.


그러함이니,

정상이냐, 해저냐 하는 따위는 기실 그 다음 일이다.


孤孤單單


단독자로서,

홀로 간다면,

한 발일지라도,

귀하다할 밖에.


화이트헤드(Whitehead, 1861-1947)

‘Religion is what the individual does with his own solitariness.’

이 말 역시 孤孤單單에 가닿아있다.

神, 산, 해저, 믿음, 구원 ...

이 모든 것들이 유용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의 목적은 그 너머에 있다.

孤孤單單, solitariness로 가볼 수밖에.


그런데,

기껏 홍자성이 뱉어낸 말 찌꺼기나,

추적이 토막쳐낸 말 동강이를 주워 먹고,

척 하는 짓을 도와주겠다는 이가 뱉어낸 토사물 한가운데서 철퍼덕거리며,

척 폼을 잡고자 하겠단 말인가?


雲在青天水在瓶


푸른 하늘에 구름이 있고,

병에 물이 있는 법.


李翱의 이 말씀.

나 역시 토막 쳐 낸 이를,

내 글의 마지막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 말은 이고의 것이 아니다.

이젠 내 것이다.


내가 해석하고, 내가 재구성하여, 내가 하인으로 부리고 있을 뿐인 것을.


孤孤單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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