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오일장

소요유 : 2020. 10. 26. 11:37


오일장


시골엔 오일장이 선다.

우리 지역은 4, 9일이 장날이다.


오일장이라면, 이 말을 듣자마자,

아련한 향수가 길어 올려지고,

마음이 콩닥거리며, 하던 일도 다 팽개치고,

그리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이는가?


도시인들은, 특히 여행 가서, 

그리로 지나칠 양이면,

별일도 없는데,

고개를 내밀어 기웃거리며,

이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장터를 들르게 된다.


나도 여기 시골에 와서 처음엔 몇 차례 애써 찾아가곤 하였다.

그러한데, 요즈음에, 열이 식고, 마음이 차가워져,

가본지 사뭇 오래 전 일이 되었다.


남들이 오일장에 대하여, 글을 쓰거나, 영상으로 전하는 것을 대하면,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이다.

사라져버린 옛 푸근한 정이 살아 있다느니,

물건 값이 싸다느니 하며 호들갑을 떨기 바쁘다.


이것은 거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화 되어 있다.

하니까, 오일장은 이래야 한다는 암묵적 집단 합의라도 되어 있다는 듯,

뻔한 기술(記述), 보고(報告), 이바구가 질펀하게 늘어지고 만다.

현장 조건, 내용이 어떠하든, 저들은 이 불문율에 복무한다.

일관되게 조율된 저들의 모습에 진작부터 식상하여,

가까이 하지 않고 있다.


실제 지근거리에서 알게 된 바이거니와,

오일장은 이미지에 비해 실제는 적지 아니 오염되어 있고,

상업적 동기로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기도 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팔면,

발걸음을 멈추고, 사드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의심스러운 경우가 곧잘 목격되기도 한다.


여기 시골 동네 풍경을 볼작시면,

봄이 되면 밭이나 들로 나와 나물을 캐가는 아낙들이 늘어난다.

젊은이들은 좀 나은데, 할머니들은, 힘이 부치는 것일까?

도로가에 난 풀을 뜯거나,

더러운 웅덩이 근처에서 나물을 캐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가까이에서 지켜 본 나로서는,

만약, 저게 장날에 등장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지금 시골 동네에서,

논둑에 심은 콩을 다 베고 자빠뜨렸거나,

거둬 수확이 끝난 상태다.


특히 논둑이 도로를 끼고,

차량 통행이 적지 않은 곳이 있다.

이럴 경우, 거기서 수확한 콩은 정말 수상쩍은 것이다. 

어제도 집식구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로되,

‘저것을 과연 누가 먹게 되는가?’

하여 내가 말했다.

‘차라리 전문 농장 것이 낫다.

저런 논둑에서 심어진 것은 거저 주어도 먹고 싶지 않다.’

저들은 자라는 내내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악전고투 견디며 지낸다.

끔찍한 일이다.


초기 농부가 되어 한참 배우는 일에 힘을 쓸 때,

농사도로변 가로수의 경우, 납, 구리 등의 중금속이 많이 검출이 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적지 아니 접하였다.

Pb, Zn, Cu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Cd(카드뮴), Cr(크롬)까지,

수체와 토양에서 검출되고 있다. 

차량 차체, 그리고 그 배기가스에 노출이 심하게 되어,

상당히 오염이 많이 되어 있는 것이다.




(출처 : 교통량 과밀 도로주변의 토양과 가로수, 대기중 Pb, Cu, Zn 중금속 농도와 그 상관성에 관한 연구)


(출처 : 서울시 가로수목 중 플라타너스 잎과 토양의 중금속 원소에 대한 지구화학적

분산과 오염평가)


도로변에 심어진 가로수 낙엽이나, 가지치기한 잔재물을,

해당 관서에선 곧잘 무상으로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하지만, 교통량이 많은 집중화 도시의 경우,

오염이 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이 나서 이런 것 받아다가 제 밭에다 뿌리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라 하겠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오일장처럼, 품질 관리를 신뢰할 수 없는 곳의 물건을,

함부로 구매하는 게 꺼려지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전문 농장에서 생산된 것이,

한결 안전하고, 미덥다 하겠다.

기존 시장의 경우,

위생검열이라든가, 품질 표시 등,

관의 개입에 따라 어느 정도 통제, 관리가 되고 있다.

뜨내기 상인들이 공급하는 상품은,

이런 관리 대상으로부터 빗겨나 있으니,

아무래도, 품질 신뢰도를 확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붙박이 상점이 아니기에,

상인들이 믿음을 오래도록 유지할 유인(誘因) 요소가 적다.

나의 경우 간단한 농기구를 구매하였는데,

나중에 이것이 시내 철물점보다 사뭇 비싼 것을 알게 된 경우도 있다.


요즘은 오일장에 등장하는 상품 중, 공산품의 경우,

기성 유통 물류 시스템 안으로 급히 편입되기도 한다.

하여, 시골 사람들이 자기 집 농산물을 내놓는 것보다, 

여느 시장과 다름없이 기존 유통 시스템에서 받아오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기대하는 자가 출품이 아니라,

유통망을 타고 기성 상인들이 상당수 출몰하고 있다.

헌즉, 특별히 신선하다든가, 값이 싸고, 양이 많다든가 할,

여지가 많지 않다.

한 마디로, 여느 일반 시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기성 상품의 경우엔, 

품질 신뢰와, 반품 등 판매 보증을 용이하게 받을 수 있는,

기존 상점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

그 밖에, 나물, 푸성귀 등 얼핏 자가 출품 물품으로,

보이는 것들은 앞에서 지적하였듯, 

기대를 충족할 만한, 신뢰가 제공되지 않는다.


할머니가 파는 나물의 오염도를 의심하고 있는 나.

딱하다.

하지만, 거기 벌려진 곡물도 소문에 의하면,

막연히 기대하던 제 집 것이 아니라, 

중국산이라는 말도 있다.


상품 그 자체를 넘어, 

시골 할머니란 이미지에서 유발되는 특별한 감성을 구매하여 소비하려 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실질 내용이 이미지 표상과 심히 괴리되어 있다면,

슬픈 일이라 하겠다.  


기성 상점의 경우, 식품관리법에 의해,

원산지가 표기가 강제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할머니 곁엔 아닌 게 아니라,

원산지 표지도 없이 온갖 곡물이 늘어져 있어,

그 의심을 더욱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웬 종류가 저리도 많은가 말이다.

저것 한 집에서 저리 모두 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노릇이 아니다.


하여, 나는 오래 전부터,

오일장을 찾지 않는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오늘 우연히, 오일장을 취재하고 있는 유튜브 방송을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 한참 닦아 세우는 말들이,

가을 운동회 한켠에서 파는 솜사탕처럼, 연분홍빛으로 달달 빛나고,

높이 띄운 연처럼 허공으로 날아가며, 펄펄 춤을 추고 있더라.

급기야 흥분한 듯 자진모리로 고조되던 장단이,

휘모리로 넘어가며 절정을 이루고 있음이라.


문득, 저 스테로오타입들이, 

우리를 곧잘 오도하고,

때론 기꺼이 거기 몸을 싣고, 박수를 쳐대고들 있지 않은가?

저것은 환호가 아니라, 환호하여야 한다는 습속 같은 것이 아닌가?

이런 의구심이 솟아 올랐다.


마교(魔敎)에 빠지듯, 그 교의의 연못에 무작정 자신을 던져넣고야마는,

광신도들을 방불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기 저항하거나, 회의를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왜냐?

그것은 교주가 무섭기도 하지만, 정작은 그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스스로 저 연못에 자맥질하는 일은,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이다.

저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마취시키는 일은,

멍든 가슴에 위로가 되고, 번뇌에 절은 머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오일장 앞에 서면,

어렸을 때의 추억이 연분홍빛으로 물무늬 지며, 가슴으로 번져야 해.

저긴 아슴푸레 가슴을 져며오는 상실된 고향이 아직 남아 있어.

하는 당위의 강박이 우리를 열심히 오일장을 변호하고, 헹가래치게 만든다.


게다가 도시민들에 오일장은 일상이 아니라,

어쩌다 접하는 일시적 통과 경험에 불과하다.

부러라도 짐짓 마술봉을 흔들며,

온갖 은빛 환상과 오색 색종이 조각을 뿌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출처 : 網上圖片)


그 VR 가상공간에 잠겨,

눈꺼풀을 자르르 떨고, 입을 헤 벌리며,

오르가슴(orgasm)의 강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두어라,

그래보아야 도시민들에겐,

저것은 곧 스쳐지나가고 말 노루 꽁지만한 봄꿈에 불과한 것이 아니더냐?

그냥 봐주고 넘어갈 일이런가?


나는,

하지만, 나아가, 오일장뿐이 아니고,

다른 영역에서도, 곧잘, 만들어진 허구를 소비하고, 소비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오일장 말고도 구체적으로 몇 몇을 더 지적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흥이 깨져 화를 내는 이들도 나타날 것이다.

그들 오만 명이 달려들어도 하나도 두렵지 않다.

다만 내가 지금 피곤하여 더는 남기지 않으련다.


오일장 악선전하려는 게 아니다.

거기 가서 지친 마음을 뉘어 위로하고, 한 때 즐거움을 사는 이도 있을 터.

이들을 비난하려는 의도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나는 오일장, 그리고 거기서 유출되는 문화 내용, 경제적 실상을 어느 정도 알기에,

관심 자체가 그리 크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이것을 담담히 지금 그려내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名不符實로 유형화된,

또 다른 영역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각성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면 다행이라 하겠다.


헌즉, 혹여,

오일장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가 깨진 이가 있다면,

다른 시각으로 더듬어볼 드문 기회라 여기거나, 

운이 나빴다 생각하고, 옆길로 돌아가길 바란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척하기  (0) 2020.11.04
특별함과 평범함.  (0) 2020.10.27
택배사와 도토리  (0) 2020.10.26
오일장  (0) 2020.10.26
1500과 2  (0) 2020.10.25
낮도깨비  (0) 2020.10.24
소통(疏通)과 죽통(竹筒)  (0) 2020.10.23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