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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stless system

decentralization : 2021. 8. 23. 13:45


trustless system

우리는 사람은 미더워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다.

人而無信,不知其可也。大車無輗,小車無軏,其何以行之哉?
(論語)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 옳음을 알 수 없으며,
큰 수레에 끌채가 없고, 작은 수레에 끌채가 없으면, 어찌 나아가겠는가?”

信近於義,言可復也

“믿음이란 의로움에 기초하여야 하며,
말이란 약속을 잘 지키는데 있음이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보라.
왜, 이리 힘주어 미더워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이는 실인즉, 그런 사람이 적기 때문이 아니겠음인가 말이다.

모든 사람이 미더운 존재라면,
구태여 이런 말을 할 까닭이 어디에 있으랴?

도대체가 인간 세상은 미덥지 않은 일로 가득하다.
담장 위엔 철조망을 두르고,
제 사무실조차 직장인들은 가슴팍에 표찰을 달고 드나든다.
수많은 CCTV는 거리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시민들을 감시한다.
도대체가 미덥지 못한 환경에 둘러 싸여 살아들 가고 있다 하겠다.


吳起治西河,欲諭其信於民,夜日置表於南門之外,令於邑中曰:「明日有人僨南門之外表者,仕長大夫。」明日日晏矣,莫有僨表者。民相謂曰:「此必不信。」有一人曰:「試往僨表,不得賞而已,何傷?」往僨表,來謁吳起。吳起自見而出,仕之長大夫。夜日又復立表,又令於邑中如前。邑人守門爭表,表加植,不得所賞。自是之後,民信吳起之賞罰。賞罰信乎民,何事而不成,豈獨兵乎?
(慎小)

(의역)
"오기가 서하 땅을 다스릴 때,
백성들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벌인 일 하나를 소개한다.
야밤, 남문 밖에 기둥을 세워 놓고, 읍 사람에게 공표를 했다.

‘내일 남문 밖에 세운 기둥을 넘어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장대부(長大夫)로 삼겠다.’

다음 날, 늦도록 기둥을 넘어뜨리는 사람이 없었다.
백성들은 서로 이르길,

‘이것은 믿을 수 없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한다.

‘시험 삼아 가서 넘어뜨려 보지, 상을 못 받으면 그 뿐이지, 손해날 것은 없겠지.’

그래, 가서는 기둥을 넘어뜨렸다.
오기에게 이 사실이 고해지자, 
오기는 이를 확인코는, 그를 장대부로 삼았다.
야밤에 또 기둥을 세워두었다.
그리고는 전과 같이 기둥을 세웠다.
읍민들이 다퉈 기둥을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이번엔 깊이 심어져 있어, 상을 얻을 수 없었다.

이후, 백성들은 오기의 상벌을 믿었다.
상벌의 믿음이 백성에게 있은즉, 어찌 이루지 못할 것이 있으랴?
어찌 군대에 관한 일 뿐이랴?"


사람의 믿음을 얻기 위해 천금을 걸고, 벼슬자리로 꾀고 나서야,
겨우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저리 코가 꿰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기껏해야 고작 한 사람만이 벼슬을 얻었으되,
나머지 천만의 사람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시석(矢石)이 난무하고, 창칼이 어지러운 전장터에서,
상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내달려나가고 만다.

아아,
미더움이란,
마치 향이(香餌) 즉 향기로운 미끼가 되어,
인민들의 목숨을 꾀는 장치이기도 한 것이 아니랴?

그뿐이랴,
매수한 땅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선,
누군가 이를 증명해주어야 한다.
그를 증명해주는 증명법사가 국가가 될 때,
사람들은 등기부란 종이 쪼가리 하나에 의지하여,
겨우 선잠이라도 이룰 수 있다.

땅이란 실체는 별도로 따로 있는데,
등기란 공시公示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확인될 뿐이다.
이 믿음을 사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국가 권력에,
내 믿음의 나아가 생사여탈권 전권을 저들에게 넘긴다.
믿음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선,
더욱 더 많이 저들에게 권력을 손에 쥐어 주어,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단히 슬픈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NFT(non-fungible token)의 등장은,
부동산과 같은 개별성이 강한 물권의 소유권을,
중앙화 권력인 단일 entity에 의지하지 않고도,
보호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현행 우리나라 부동산 등기는 공시력(公示力)은 있어도, 공신력(公信力)은 없다.
따라서 등기 표시만 믿고 거래한 경우,
거짓된 거래로 인한 피해를 복구할 수 없다.

이런 문제는 NFT를 이용하면 말끔하게 해소된다.
소유권은 온 천하에 공시되고, 또한 만인에게 공신된다.

도대체가 제3자를 매개로 신임을 받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다.
trustless system을 통하면,
제3자의 개입 없이 신뢰가 확보된다.
이런 역설이라니 도대체가.

놀라운 일이다.
이런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함이니, 암호화폐, metaverse를,
마냥 비웃으며 외면할 일이 아니다.

아직도 이에 대한 공부가 따르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면,
미래엔 거센 파도에 휩쓸려 나동그라지고 말리라.)

이에 따라 저들의 권력은 더욱 독점적으로 막강해진다.
이를 중앙화 권력이라 한다.
인민들은 권력을 이양하고,강력한 지배 권력, 
그야말로 왕권신수(王權神授) 권력에 복속하고 만다.
과연 이러고도 밤에 잠이 오는가?

그러고 보면,
얼마나 이 믿음이란 것이 취약(脆弱)하고, 위태로운가?
단 하나의 국가 권력이 믿음의 초석이 될 뿐이로되,
만약 그 권력이 무너지면 어찌 되겠음인가?

민주사회에선,
4년, 5년마다 권력의 심사하고, 새로운 인간을 뽑는다 하지만,
선거일 그날만 지나고 나면, 
언제나 저들에게 4년 5년 내내 짙은 배신감을 맞본다.
믿음의 댓가엔 너무 가혹한 희생이 따른다.

믿음을 사고 팔지 않고서도,
미더움을 확보할 수는 없는가?

그 해답이 여기에 있다.

잠깐 역사 전개 과정을 먼저 정리해두자.
유가(儒家)는 우리 미더운 사람이 되자.
이리 강조하며 끊임없이 사람들을 가르쳤다.
법가(法家)는 이 짓을 비웃으며, 어림없는 소리라 갈파하였다.

사람이란 어차피 미더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즉 상벌이란 보상 체계를 구축하고,
이로써 저들을 규율하며, 공동체의 안녕을 구하고, 발전을 구할 수 있을 뿐이라며,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단 일 점의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렇듯, 차갑게 인심의 향방, 그 심리적 gradient를 관찰하며,
물리학자들이 물리의 법칙을 찾아내듯,
인간 통제의 법칙을 세운다.

인간은 본성이 선하니, 밝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든가,
악하니 규율이나 교육으로써 바로 잡아 나갈 수 있다는 믿음.
하지만, 이 역시 항구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게다가 시스템 훼손에 대한 원상 복구,
그리고 인간 부패 문제로 인해 항구적인 신뢰 보전이란,
문제 영역에서 인류는 언제나 도전을 받아 왔다.

그런즉, 인류는 항시 긴장하고,
수시로 좌절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그렇다면, 과연,
믿음을 떠나서,
그리고 인간에 기초하지 않고도,
신뢰 시스템을 구축할 수는 없는가?

역설적이게도,
이는 믿음을 버림으로써 가능하다.

가령 참여자 상호간 신분이나 신뢰 수준 확인이 필요 없고,
제삼자의 개재(intervention)조차 필요 없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안전과 행복은 한층 증진될 것이다.
이를 이름하여 무신뢰 시스템(trustless system)이라 칭한다.

이 시스템에선, 권한을 가진 단일 주체(entity)가 없으며,
참여자가 시스템 그 자체 외에 어떠한 것도 신뢰하거나 알 필요 없이,
합의(consensus)가 이뤄진다.
게다가 혹 일어날 수 있는 체제 훼손의 위험도,
분산을 통해 복구되고, 방어된다.
(※ 분산원장기술(DLT,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비트코인은 블록체인(block chain)에 모든 트랜잭션 데이터를 검증하고,
이를 변경 불가능하게 저장할 수 있다.

여기서 신뢰가 없다는 뜻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중앙화 권력이 아닌,
추상적인 개념을 신뢰함으로써,
이제까지의 경제적 상호작용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무신뢰 시스템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행위를 장려함으로써, 신뢰를 재분배한다.
이럴 경우 신뢰는 최소화 되지만,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신뢰에 의지하지 않지만,
참여자들의 경제적 유인 동기가,
이리 신뢰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는 방향으로 유도된다는 의미다.
이럼으로서, 동적인 신뢰가 파괴할 수 없는 강력한 수준으로 확보된다.
(※ 법가 역시 개인의 이윤 동기를 시스템 동력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중앙화 시스템은 참여자가 중앙 권위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여기에 자진하여 복속한다.
만약 중앙화 권위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
기대한 대로 시스템은 작동될 수 있다.

하지만, 권위는 곧잘 스스로 신뢰를 배반하거나,
체제 모순으로 문제가 생기기도 하며,
외부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시스템이 심각한 위해에 노출기도 한다.

가령, 국가 권력기관은 발권력을 통해,
임의로 통화를 발행한다.
이에 따라 통화의 가치가 변동되고,
개인의 재산권은 침해를 받게 된다.
여기 속한 이들은, 무력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한편, 그 권위가 쌓은 시스템에 장애가 일어나거나,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당할 수 있다.
게다가 권위 주체의 변절로 인해 신뢰가 급격히 허물어질 경우,
이를 차단하거나, 회복할 수 없게 되면,
시스템은 와해되고 파국을 맞게 된다.

경제적 문제에 관하여 사람들은,
중앙화 권력 조직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으로 꾸려진 조직은 부패하고, 타락할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반면, 무신뢰 시스템은 사람이 배제되고,
오로지 컴퓨터 코드(computer code)만으로 통제된다.

게다가 탈중앙화된(decentralized) 블록체인으로 구축된 시스템은,
경제적 유인으로 참여한 다수의 참여자로 신뢰가 분배되며,
불순 세력의 공격으로 초래될 훼손은,
분산원장기술로 회복되고, 적극 방어된다.

이렇듯, 사람으로 인한 부패로 초래될 가능성이,
다수의 참여자로 인한 신뢰의 분배,
즉, 정직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경제적 인센티브로 인해,
자연스럽게 무신뢰(시스템)가 달성된다.

이는 고대 법가가,
사람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애오라지 법적 장치에 의지하여,
국가 경영 목표 달성을 추구하였던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블록체인과 함께 법가 역시,
사람에 대한 신뢰 부음(anointment, 塗油)을 철회함으로써,
계(界) 전체의 신뢰와 안정을 외려 확보하고자 한다.

다만, 법가는 시대 역사적 한계로 인해,
중앙화 권력에 복속하여 봉사하였다.
이제 블록체인이 등장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탈중앙화 trustless system이 완성되었다.

블럭체인을 이용한 비트코인의 등장은
사토시 나카모토(中本哲史, なかもとさとし, Satoshi Nakamoto)의,
거대한 인류사의 위업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 남상(濫觴)은 실로 고대의 법가로부터 연원한다.
오늘날 컴퓨터의 발전과 그 엄청난 computing power의 확보에 따라,
인간 불신 문제를, 무신뢰 시스템을 통해 기술적으로 풀어내었다.
이는 인간에게 내재한 불신을 제거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우회하여, 이와 상관없는, 즉 (인간)신뢰와 무관한,
거래(transaction), 작업(work) 증명 시스템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 오늘날엔 pos(Proof of Stake) 등으로 진화하는 중임.)
(※ 所依
법가 – 인간 불신.
블록체인 – beyond distrust)

컴퓨터는 인간의 신뢰 수준에 따라 좌지우지 할 수 없다.
다만 코드에 따라, 엄정하게, 제 일을 수행할 뿐이다.
블록체인이란 개념을 컴퓨터에서 구현하는 즉,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 무신뢰 시스템을 통하여,
신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민주화는 실로,
국가 권력에 저당 잡힌 자주권을 회복함으로써 완전해질 수 있다.

(출처 : 網上圖片)

이는 실로 경이로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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