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척도

decentralization : 2022. 1. 19. 13:33


척도

금융위기가 터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정책 당국은 한 마디로 돈을 풀어재낀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란 그럴싸한 말로 꾸미지만,
실상인즉 돈을 푼다는 말과 한 치도 다름이 없다.

리먼브라더즈 사태라든가 작금의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시스템이 뿌리까지 흔들려버리면,
전가의 보도처럼 바로 이 짓이 자행된다.

얼핏 이로써 식어가는 경제에 숨을 불어넣고,
막힌 금융 혈관에 수혈하여 우선은 살려놓고 보아야 하지 않는가 여겨,
이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치부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리 된 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시중엔 돈이 넘쳐나자 자산 가격이 급등하며,
일차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돈이 빨려 들어간다.
경제당국일지라도 이는 원하는 바가 아니리라.
아니 흑심을 품고 내심으론 이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 정권하에서 부동산 대책이 27차례인가 발하여졌지만,
외려 대책이 나올 때마다 이를 비웃듯 부동산은 앙등하였다.
시중에 돈은 마구 풀어놓고, 자산 가격 상승을 막고 있으니,
이는 마치 풀 안에 연신 물을 퍼 넣으면서,
한 편에선 표주박으로 물을 떠내는 시늉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돈이 풀려 나오는 한, 자산 가격 상승은 필연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경제주체들은 재주껏 차입을 하여서라도 실물자산 투자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신용을 일으키기 좋은 이들은 낮은 금리에 수월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은 즉,
한껏 실물 자산 투자 열풍에 편승할 수 있다.
하지만, 신용이 낮은 이들은, 돈을 빌리기는커녕,
가진 자산을 팔아가며 삶을 지탱하기도 버거운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
자산을 팔며 하루를 버티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자산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버리기 때문에,
다시는 그 자산을 취할 일이 요원해지고 만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질병청 등의 당국은 무슨 짓을 벌렸는가?
방역을 핑계로 자영업자들(소상공인)의 손발을 묶으며 저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이리 손쉬운 짓을 누군들 못하랴?

저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전(全) 공화국 인민들의 안위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여야 하는가?
공익을 위해 사익을 제한 한다한들,
반드시 법령에 근거하여야 하며, 
그 피해에 대하여는 상응하는 보상을 하여야 한다.

내가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토지수용을 한다한들,
국가는 알량하나마 어쨌든 보상을 한다. 
(※ 참고 글 : ☞ 현 토지수용법에 의거한 구현 현실은 엉터리다)

하지만, 지금 자영업자들은 (거의) 보상도 없이,
한데에 버려지다시피 다뤄지고 있다.
이것은 공권력의 폭력이자, 악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악행을 저지르는 자를 나는 악인이라 부른다.

唯仁者能好人,能惡人。
(里仁)

“애오라지 인자라야,
 바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다.”

그대 당신이 정녕 인자라면,
매사 좋은 게 좋다라는 식으로 히히 웃으며 사람 좋은 척 할 일이 아니라,
잘못된 악인을 보고서는 그를 독사 보듯 미워해야 한다.

아아, 노빠, 문빠, 윤빠 ...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말이다.
마구 대하던 가여운 네 집 오라버니나 그리 아끼거라.

OECD 국가 중, 영업제한을 걸어놓고,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은 국가는 아마도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 참고 글 : ☞ 화천대유)

돈을 풀더라도, 취약한 이, 경색된 곳으로 흘러들어가도록 하여야 하지만,
당국은 이런 일엔 별반 관심이 없다.
총량 지표 값만 올라가면 생색내는 일엔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쉬운 일인 부동산 투자로 인한,
지표상의 소득 증가 효과에 안주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보아라, 이 와중에도, 권력자들은 임기 말에도 연신 외유를 즐기며,
나라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입품을 팔며,
자신을 한껏 치장하며 선전하기 바쁘지 않은가 말이다.

이리 불황이 일어나면 금융정책보다 차라리 재정정책을 활용했어야 한다.
하지만, 당국은 투자와 고용을 유지하는 일보다, 
홍남기처럼 균형예산 지키기에 급급할 뿐이다.
국가 창고를 헐어 인민들의 삶을 보살펴야 할 터이지만,
국가가 빚을 질 수 없다며 버틸 뿐이다.

그러니, 국가는 멀쩡하니 이 난국을 건너는 것이다. 
반면 그 구멍은 인민들의 빚으로 일시 때워지는 것이다.

헌즉, 금융위기 이후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가?
국가는 여전히 부자로 남지만, 
대부분의 인민은 탈탈 털려 거지가 되고 만다.

영악한 이들이나, 자산가들은, 이 와중에,
신용을 일으켜 자산 투자 행렬에 탑승하여,
거만금을 쥐게 된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욱 빈자가 된다.
사회는 더욱 양극화되고, 갈등은 심화되고 마는 것이다.
이는 비뚤어진 금융정책 탓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돈은 경제의 척도다.

하지만, 돈이 늘어나면 예전의 척도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물건의 무게를 잴 때, 전에는 한 푼짜리 저울추 하나면 되었는데,
이제는 두 개가 필요한 사태를 상상해보라.
물건은 동일한 데, 척도가 달라졌은즉, 그 부름이 전과 같지 않게 된다.
저울대의 앞일을 알며, 이를 핸들링 할 수 있는 이에겐,
나라의 위기가 곧 기회가 된다.
하지만, 이 위치에 벗어난 대부분의 인민들은,
거리로 쫓겨나고, 종내는 다리 밑으로 간신히 기어들어가게 된다.

물건의 가치가 변해 가격이 따라 변하는 게 아니라,
척도인 저울대 눈금이 달라져 물건 값이 등락(騰落)을 거듭하고서야, 
어찌 인민들의 안정적인 삶이 보장될 수 있으랴?

그런즉, 돈이 올바른 경제의 척도이자,
안정적인 저울대가 되게 하여야 한다.
만약 이를 훼손하는 자나 정책이 있다면,
천하 만민은 이들에 저항하고, 전복시켜야 한다.

진시황이 천하를 제패하자, 도량형(度量衡)을 통일 시켰다.
전국의 도량형이 다르고서야,
우선은 도대체가 세역을 제대로 집행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량형 통일은 인민의 경제 편의를 위해서도 필요했겠지만,
기실은 통치계급을 위해서 더욱 요긴한 작업이었으리라.

하여간 언제, 어디서나,
한 말이 한 말이 되고,
한 량이 한 량이 되고서야,
인민들의 살림이 안정되고,
국가 경제 질서가 바르게 서고, 의롭게 작동한다.

그래, 돈이 풀려  일시 경제가 돌아간다 하자.
하지만, 그 후과로 자산가는 더욱 부를 거머쥐고,
빈자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명약관화한 일이라면,
이 짓을 바로 들여다보고, 반성적 성찰을 통해,새로운 질서를 도모하여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도,
저 짓은 변함없이 되풀이 된다.

나는 이리 변함없이 뻔한 짓이 자행되는 것은,
이로 인해 득을 보는 이들이,
여전히 실세의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도대체가 바꿀 유인이 없는 것이 아니랴?
어느 놈이 제 손으로 제 목을 겨냥하랴?

일찍이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런 사태 현실에 분노를 일으켰다.
나도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자리를 한다.

연방준비위원회(FRB) 등 글로벌 금융 환경을 거머쥐고 있는 큰손들은,
기실 금융 위기를 일으키는 주범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제가 똥을 싸지르고는, 얼굴에 잿가루 바르고는,
태연한 모습으로 나타나 바로 수습하겠다며 돈을 풀어재낀다.
그리한 후, 한 동안 뒷전에서 연신 돈을 갈퀴로 거둬들인 후,
시침 딱 떼고는, 이젠 수습이 되었다면서,
다시 테이퍼링(tapering)이니 뭐니 야릇한 말로 요살을 떨며, 돈 줄을 바짝 조이며,
또 거푸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다.

인민들은 저들 손아귀에 놓여 한껏 조리돌림을 당하며,
놀이판의 공깃돌이 되고 만다.
아이들이 공기돌 놀음이 파하면 어찌 하는가?
마당가에 공깃돌을 내팽개치고 제 집으로 밥 먹으로 돌아가지 않던?
이리 굴러가는 세상에선, 인민들은 영원히 공깃돌인 것이다.

사토시는 중앙화 권력에 의해,
통화가 순자 고무줄 팬츠 고무줄처럼 자의로 늘고 주는 일이 없도록,
사용자들이 직접 관리 통제하는 통화시스템을 만들고자 하였다.
아니 사용자 자신도 저울의 추를 마음대로 변개시킬 수 없는,
통화 그 자체가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구현에,
원력(願力)을 일으켜 세웠다.

이게 이름하여,
탈중앙화(decnetralization)의 철학의 세례를 받은 이들의 각오이자, 행보인 것이다.
그 구현체로서 탄생한 것이 비트코인이다.

2009년 비트코인이 만들어지나,
그 발행량은 21,000,000으로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
이 고정된 잣대는 누구도 변개시킬 수 없다.
이야말로 금척(金尺)이자,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인 것이다.

신라의 금척(金尺)은 기실 눈금이 없다.
그런즉 온 세상을 포용한다.
이는 진제(眞諦)인지라,
속세엔 비트코인과 같은 속제(俗諦)와 합한다.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아아,
그 누가 있어 이 바른 도리를 알랴?
 

(※ 출처 : fred)

미국 통화량 (M2)차트를 보라.
이것은 척도가 아니라,
그냥 늘어나 버린 영자의 팬츠 고무줄이라 할 밖에.
이러고서야 어찌 정상적인 경제 행위가 일어날 수 있겠음인가?
저 적당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통화량을 늘였다 줄였다 주물럭 거리며,
경제를 교란시키고 있는 게 여실하게 보이지 않는가?

척도가 변하면,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농단을 차지한 천장부만 돈을 긁어내게 된다.
나머지는 종내 노숙자가 된다. 
(※ 참고 글 : ☞ 농단과 시장)

구제금융을 받고 되살아나는 것은 거의 대개 큰손들이다.
기실 이들이 일을 그르치고, 천하를 혼란에 빠뜨린 주범이다.
가여운 인민들은 금반지를 빼내어 나라 구하기에 나서지만,
정작 수혜는 저들이 다 받고,
잠시 인민의 눈이 풀리면,
받은 구제 금융으로 부실을 가리고,
그리고도 넘쳐나는 돈으로 연봉 올리고, 보너스 풀며,
저들만의 잔치를 벌이지 않던가?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있어.
자영업자들은 도대체 부처님 반 토막들인가?
2년이 넘도록 그리 손발이 묶였는데도,
어찌 하여 저리들 절간에 끌려간 새색시 모용을 하고,
굽도 접도 못하고 주둥이만 잔뜩 부어만 있는가 말이다.
지금이라도 주방에 있는 식도를 병장기로 삼고,
주기(酒旗)를 뜯어내, 상여(喪輿) 앞 명정(銘旌)으로 내세우고,
거리로 나아가 폭동을 일으켜도 시원치 않을 판이 아니더냐?

그리 되는 날,
그대 당신들 곁으로 달려가,
손잡고 목이 터져라, 뜨거운 가슴으로 응원하리라.

蔽惡而稱美

흉함을 가리고,
스스로 아름답다 칭하는,
저들 악의 무리들에 저항할 일이다.

혹여,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이일지라도,
어찌 저 사토시의 숭고한 정신마저 외면할 수 있으랴?

'decentraliz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트로보스코프  (0) 2023.09.20
Bear Trap  (0) 2022.10.14
trustless system  (0) 2021.08.23
암호화폐와 적기조례 그리고 멸절사태  (0) 2021.06.03
서리한과 암호화폐  (1) 2021.04.23
자신을 암호화한 사나이  (0) 2021.03.02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decentralization : 2022. 1. 19. 1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