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소요유 : 2008. 7. 14. 19:06


나는 며칠전(07.11) 일련탁생(☞ 2008/06/25 - [소요유] - 일련탁생(一蓮托生))이란
앞의 글에 등장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스님 한 분이 그 옆을 지나시다 아는 체를 하신다.
그 분과는 길을 오가다 몇 차 그저 목례 정도만 나누던 사이였다.

나는 대분(大憤)을, 그 분은 방하착(放下着)에 대하여 잠깐 말씀을 주고 받았다.
그 스님은 나를 조용한 곳으로 이끌며 말씀을 나누길 청한다.

대화중, 임진왜란 당시의 승병에 대하여 내가 이야기를 꺼내자,
“석가족의 멸망”에 대하여 이야기를 대신 들려 주신다.

잠깐 이에 대하여 내가 조사한 내용을 보태 먼저 소개를 해본다.

코살라국의 파사익왕은 석가족의 처녀를 왕비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석가족은 자부심이 강했던 것인가, 석가족 처녀를 보낼 수 없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 대국인 코살라국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부처님의 사촌이었던 마하남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의 딸을 분장하여 석가족 처녀처럼 꾸며 파사익왕에게 출가 시켰다. 그 하녀의 딸과 파사익왕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 유리태자다. 후에 그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석가족으로부터 조롱을 당한다.

후에 앙심을 품고 유리는 카필라국을 침범한다. 이 소식을 들으신 부처님은 코살라국 병사들이 오는 길목에 잎사귀도 없는 한 고목나무 밑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유리왕이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잎이 무성한 나무 숲을 놓아두고 말라버린 고목나무 밑에 계십니까?"

"일가친척의 그늘이 다른 그늘보다 낫기 때문이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유리왕은 물러갔다. 그러나 외도 범지의 말을 듣고 있던 유리왕은 외도의 충동으로 2차, 3차로 침범해 왔으나 꼭같이 부처님께서 막았으므로 전쟁없이 물러갔다.  그러나 부처님은 속세에 맺어진 원결을 더 이상은 막을 수가 없다고 물러나셨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신통제일의 제자 목련이 자신의 신통력으로 유리왕을 막으려 하였으나 부처님은 오히려 만류하였다.

"설사 하늘을 땅으로 만들고 다시 땅을 뒤집어 하늘을 만들 수 있다해도 구원 겁에 꽁꽁묶인 인연이야 어찌 없어지겠느냐."

군사력이 강한 코살국의 유리왕은 4차로 카필라성을 침입하였고 결국 석가족은 멸망하고 만다.

스님은 1996년 조계사 난동사태 당시의 자신의 무용담을 한참 소개하시더니만,
이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신다.
이 균제(均齊)치 못한 이야기 마당이 낯에 나온 반달처럼 조금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임진왜란 당시의 승병은 목탁 대신 칼을 들고, 왜병과 싸웠다.
부처님은 고목나무 아래에 앉아 위신력으로 적병을 3번 물리쳤지만,
끝내 마지막에는 그마저도 포기하시고 만다.

부처는 물러나면서 구원 겁에 얽힌 업은 어찌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여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구원 겁에 얽힌 인연이 그리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면,
앞선 3차에 걸친 고목나무 밑의 demonstration은 무엇이란 말인가 ?
정녕 마지막 4차의 공격에 의해 카필라국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업이었다면,
3차에 걸친 부처의 위신력이란 것은 고작 ‘멸망의 일시적 유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

또한 카필라국이 코살라국에 대항할 충분한 무력을 확보하고 있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
이 때도 부처님은 구원 겁의 인연을 설하시면 물러나셨을 터인가 ?

이 이야기가 설화이든 사실이든 간에, 부처가 등장하는 서술구조이기에
어떠한 프레미엄이 붙지는 않았을까 ?
혹자에겐 짖궂은 가정이 되겠지만,
등장 인물을 부처가 아니라 일개 필부로 환치해 놓고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길어올려지는
“무저항주의”, “비폭력주의”, “업” 따위의 고상한 가치가 중심이 아니라,
코살라국은 무력이 강했고, 카필라국은 약했다 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현실적 힘의 지형을 전하고 있을 뿐이 아닐까 ?

“카필라국은 코살라국을 이길 힘이 없었다.”
“카필라국은 강국 코살라국에 멸망 당하고 말았다.”
이게 사실(事實) 또는 사실(史實)의 진상이 아닐까 ?
쓰다 달다란 분식없이 그저 무색투명하니 dry한 진실.

게다가 부처는 저항다운 저항도 하시지 않고 물러나시고 말았다.

그렇다면, 왜란 당시의 승병은 “무저항주의”, “비폭력주의”, “업”을 몰랐던 것인가 ?
왜놈들이 국토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괴롭힐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난 저들 승병은 부처와 무엇이 다른가 ?
승병의 의분이 승패의 결과 여하로 달리 평가될 이유가 있는가 ?
지든 이기든 의분을 일으킨 저들 승병의 분노 - 나는 이를 분노라 부른다.
아니 그저 분노가 아니라 이는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대분(大憤)과 무엇이 다른가 ?

일주문 지나 천왕문을 만나면 거기 사천왕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은 설이 분분하지만, 원래 호세천(護世天)이라 하여 점잖은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되면서 무인상으로 변모했다.
이는 잡귀, 악신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귀인상(貴人相)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므로,
분노상(憤怒相)으로 변용하였다 한다.
나는 이미,
☞ 2008/02/29 - [소요유/묵은 글] - 사천왕
☞ 2008/03/10 - [소요유] - 사천왕(四天王)과 복전함(福田函)
등등의 글에서 사천왕에 대하여 소론을 편 적이 있다.

노무현의 값 싼 말처럼 김구가 실패하였기에 존경의 대상이 아니되고 말 터인가 ?
승병의 행위가 저 부처가 등장하는 ‘석가족 멸망’의 이야기처럼 얼핏 고상하니,
향기롭지는 않을는지 몰라도, 차라리 선연한 핏빛 단심(丹心)이기에 외려 아름답지는 않은가 ?

입을 열어 우아하니 방하착을 나리면, 마치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지듯 향기가 은은히 퍼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빌미로 공업(共業)은 방기되고 만다.
예하건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국토를 유린하였을 때,
제대로 된 스님이라면, 가슴에 의분이 솟구치리라.
이를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운운하며 방하착 하라고 가르침을 펴는 이가 있다 하자.
이 가르침에 따라, 무저항, 무폭력을 설파하며 국토가 유린 당하는 것이 명운이니,
카필라국의 경우처럼 그저 저항 한번 하지 않고 물러섰다면 어찌 될까 ?
혹여 개개인의 별업(別業)은 삼독을 다스렸으니 제대로 닦았다한들,
공업은 무참히 저버린 결과가 되지 않을까 ?
거칠은 예지만, 나는 지금 개별업과 공업의 충돌을 말하고 있음이다.
그럴듯한 가르침이 실은 개별업을 혹여 다스릴런지 몰라도,
공업을 외면한 결과를 낳는다면, 실로 그럴 듯이 내뱉는 방하착이란 말은
제 안일을 위해 숨어 들기 위한 핑계의 우산(雨傘)에 불과하다.
이야말로 거짓 구업(口業)을 짓는 첩경이 아니겠는가 ?
또한, 공업을 방기한 별업 홀로 마땅함을 구할 수 있을까 ?

내 안의 관념에 머무른들 자기위안, 자기만족외 구할 것이 없다.
내 밖의 실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진실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관념의 내재화, 실천의 외재화는 동시에 집행되어야 한다.

변영노는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 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말한다.
분노야 말로 공업에 책임을 다하는 선종자(善種子)다.
그러므로 나는 이를 대분(大憤)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향기로운 말이 아니라, 대분(大憤)이야말로 진리의 추동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분(大憤)이야말로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
또한, 그런즉 이내 대분(大憤)은 대자대비(大慈大悲)와 한 점 다를 바 없음이다.

(※
별업 : 개인이 짓는 업.
공업 : 여럿이 짓는 업.
)

***

적당한 비유는 아니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으니 이런 예를 한번 들어본다.
버려진 강아지를 무관심 속에 지나치는 보통의 사람들이 있다.
한편, 아픈 마음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라고 이르시는 고상한 가르침이 설파되고,
때로는 연꽃처럼 잔잔한 미소를 흘리며 평화와 사랑이 노래된다.
하지만, 노래를 그치고 저믄 들녘 갈대가 흔들리는 아름다운 길 따라 집에 돌아갈 때,
버려진 강아지 사이를 그저 사쁜히 지나치고마는 우아한(?) 사람들이 있다 하자.
과연 이 양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
이들 모두 현실 속에서 강아지의 아픔을 단 한톨인들 위로하거나 구제한 바 있는가 ?
하지만, 나는 안다.
때로는 슬픔에, 때로는 분노에 - 그래 저들이 탐진치 삼독이라고 말하는 그 분노 말이다.
젖어, 저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구체적인 실천행을 하시는 분,
나는 그들을 적지 아니 알고 있다.
(※ 참고 예 : ☞ 2008/02/14 - [산] - 여성동지(女性同志))

시인 변영노의 노래,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
그래, 이쯤 되면 종교는 책상 머리에 앉아 탐진치를 운운 하며 공염불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분노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
(※ 참고 글 : ☞ 2008/02/26 - [소요유/묵은 글] - 강낭콩)

나는 그들을 비난한다든가,
또는 나서서 저들을 구제하라든가, 하는 게 옳다는 당위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럴 권리도, 자격도 없지만,
이런 예를 들어 현실에서의 구체적 행, 실천력이 없는 관념의 허구를 되새겨 두고 싶을 뿐이다.

승병의 실천행,
그리고 부처의 업력
이 양자의 관계를 조명하고 싶었다.

두 번 정도 읽은 “불교근세백년”란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유신회원이며 통도사 출신인 강신창(姜信昌) 스님은 강대련(姜大蓮)을 가르켜 이리 사자후를 토했다.

“강대련으로 말하면 조선 불교계의 큰 악마올시다.
그의 행동으로 말하면 한편으로는 관청을 속이고 한편으로는 도제를 속여 가며,
자기의 사익만 도모하는 악마올시다.
얼마전부터 우리 유신회에서는 강대련 죄과성토 연설을 하려고 하는 것이외다.
그런데 일부 청년 사이에서 돌연히 이러한 일을 일으키니 조선불교계에 대하여 큰 수치올시다.”

이는 혈기 방장한 젊은 스님들이 강대련을 명고축출한 사건을 두고 일컫고 있는 것이다.
명고축출(鳴鼓逐出)은 북을 두들기면서 절에서 내쫓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강대련은 친일반민족해위진상규명위윈회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자다.)

실로 일제하 유신회는 꺼져가는 불교를 바로 지키고자 일어섰으니,
한용운 스님의 말씀처럼 실로 찬연했다.
유신회가 만약 업은 어쩔 수 없다며 현실에 순응했으면 이 땅의 불교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
힘을 모으고, 투지를 불태운 행위, 그 자체야말로 성패를 떠나 고귀한 것이 아닐까 ?
카필라국이야, 코살라국에 비하면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소국이니,
현실적으로 부처라 한들 망하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리라.
부처의 3차에 걸친 demonstration을 그 누가 가치가 없다고 할 것이랴,
하지만, 그렇다한들 그의 4번째 포기를 업력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식의 현실순응적 해석공간에
곱게 모셔 놓고, 자족하여 안주하는 것은 내겐 영 석연치 않은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

이명박 정권의 몰락.

스님은 말씀하신다.
촛불집회를 이제는 그만 두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고.
그러더니만 엊그제 청와대가 노무현의 자료 유출을 두고 딴지 거는 것을 보고는
이 정권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고 하신다.

그 사건을 평가하려면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다.
지금까지 들어난 바로는 양측의 자기 변호에 급급한 소식외에 무엇이 진실인지 확실한 단서는 없다.
만약 위법한 일이라면 당연 조치가 따라야 하겠지만,
아니라면 너무 치사한 짓거리가 되겠다.
하회는 더 두고 봐야 할 노릇이리라.
그 때까지 난 판단중지다.
(※ 참고 글 : ☞ 2008/02/23 - [소요유] - 황희-일리-삼리)
사실은 이 사건 자체가 나는 그리 큰 비중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더우기 촛불집회와 견줄 무게감을 전혀 못 느끼겠다.

그런데, 스님은 이젠 촛불집회를 그만 두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드시던 분이었는데,
노무현의 자료 유출 기사를 접하고는 돌려 이 정권의 몰락을 엿보신단다.
나는 발설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분 혹 노빠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지 않은가 ? 그래 보았자 기껏 노무현 한 사람의 문제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이다.
촛불은 국민의 80%가 들지 않았는가 ?
그런 촛불은 꺼지기를 바랬던 분이 아연 노무현 자료 유출 건을 접하고는
이내 이 정권의 몰락을 점치고 계시다니,
억측이 될지 모르지만, 노빠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혹 스님이 이 글을 보시고 계시다면,
아울러,
☞ 2008/07/03 - [소요유] - 형 만한 아우는 없는가 ? 
☞ 2008/07/08 - [소요유] - 역겨움
이 글들도 함께 보아주셨으면 싶다.
사실 이 글들은 노빠들을 향한 질책에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지금 사태가 이 지경이 된 책임 태반을 짊어져도 모자를 위인들이
일점 반성도 없이, 그저 남 탓만 하고 가증스럽게도 짐짓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나는 한껏 토악질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

내가 주말마다 가는 전곡엔 농협이 아주 큰 터에 자리를 잡고 있다.
농협이 무엇인가 ? 농민들이 출자해서 농민을 위해 만든 조합이 아닌가 ?
그런데 희한한 것은 하나로마트가 전면에 제일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엇인가 이마트 따위의 상업적 장사조직이 아닌가 ?
또 그 곁에는 농협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정작 농민에게 소용되는 농자재 파는 곳은 뒷켠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그곳에선 기껏 비료, 퇴비 정도만 팔고 있다.
소소한 것 빼고는 농기구 등 농자재 일반은 아예 없다.
이런 것을 사려면 전곡 시내 농기구상에 가야 한다.
그들이 이리 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사연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농민을 위해 탄생한 기구가 정작 영농에 관련된 사업 또는 서비스 제공은 등한시 하고,
관련 없는 다른 사업에서 수지를 맞추고 있는 현실이 내겐 늘 석연치 않은 의구심을 일으킨다.

교회 빌딩을 보면, 예배당 말고 외부에 임대를 주어 장사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종교단체 역시 먹고 살아야 하겠지.

내가 만난 스님은 헤어질 때,
사는 게 한바탕 꿈이라고 읊조리신다.
얼마나 향기롭고 고상한 말씀이란 말인가 ?
저 높디 높은 전각도 한참 위로 넘어 날아 구름 위에서 햇살처럼 들려오던 무량법문.
그런데, 왠지 그게 조롱처럼 들린다.
누구를 조롱하는 것일까 ?
나를, 아니면 스님 자신을.
누군가 솔직한 사람이라면
남으로부터가 아니라, 정작 자신으로부터 들을 날이 있으리.
그러하기에 부처는 이리 말하지 않았는가 ?

“나는 단 한마디도 설한 바 없다.”
“자등명, 법등명”

세상이 한바탕 꿈이라면,
그 꿈을 꿔야하지 않겠는가 ?
제 꿈을 제대로 짓지도 못하는 형편에,
청산에 깃들어 배짱이처럼 꿈노래만 토해내고,
흡사 몽유병 환자처럼 온 산을 떠도는 것으로 소일하며,
돌아와, 아귀처럼 절밥만 축낸다면, 이야말로 억겁 죄를 쌓는 일이리라.

그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얼마전에 그 스님이 계시다는 선원을 지나치다,
책상을 상당히 많이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왠 걸 저리 많이 만드는가 의아했었다.
선원인즉 참선 지도를 본격적으로 하실런가 싶기도 했다.
그곳은 사찰이지만 여늬 빌딩처럼 지어져 있으며, 규모도 엄청 크다.
그런데, 오늘에야 스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고시원을 하신단다.

하기사, 사는 게 한바탕 꿈이긴 꿈이다.

내가 사는 곳, 아파트 상가엔 얼마전까지 고시원이 있었다.
몇 차 수리를 하더니만, 끝내 문을 닫았는지 일부인지, 전부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업체가 대신 들어왔다.
저 산 밑 아랫동네에서는 저리도 전전반측 수시로 자반뒤집기를 하듯 장사하기가 녹록치 않다.
다른 것 다 접어두고 세금도 내지 않는 상대와 마냥 바로 옆에서 겨루기라도 한다면, 승패는 불문가지다.
종교단체가 척하니 입만 열면 아름답고 고상한 법문을 뜨락에 꽃처럼 가득 떨구며 향기를 피운다.
아, 아름다와라.
하기사 진속(眞俗)의 경계가 있겠는가 ?
그게 진리가 되었든 利가 되었든, 먹어야 사니까 진속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리라.
그야말로 염정(染淨)이 상자(相資)하고, 호훈(互熏)함이 이러해야 함인가 ?

저들의 위선 역시 봄날의 한바탕 꿈으로 치부하고 말아야 할까 ?

지나다 보면 그 선원 안을 거쳐 외부로 통하게 된 길변엔 - 거긴 엄연히 경내다.
참선객들이 나와 담배를 피우곤 한다.
피우는 것도 모자라 꽁초를 그냥 버린다.
지난 사월초파일에도 신도들은 쓰레기를 주변에 함부로 버렸다.
도대체 저들은 허위단심 이 높은 곳까지 왜 올라와 가부좌 틀고 앉아야 하는가 ?
도대체 저들은 부처님전에 향 사르고 무엇을 기도 드리려 함인가 ?

나는 불교신도도, 기독교 신도도 아니지만, 그곳을 지날 때,
겨울 눈길 등행시 지참한 지팡이도 끌리지 않게 살짝 들고 조용히 지난다.
경내 뜨락에 나뒹구는 법문 하나 받들지 못하는 처지의 객이지만,
나는 나의 꿈을 이리 짓는다.

그래, 종내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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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8. 7. 14. 1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