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낭중지추(囊中之錐)

소요유 : 2008. 7. 24. 15:24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에 있는 송곳은 뾰족하니 절로 뚫고 나오느니,
사람의 재능이라는 것도 자연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신뢰하게 되면,
자연 실력만 닦으면 세상에 드러나 쓰임이 있게 되리란 기대를 가질 수 있다.
하니, “조급하니 안달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 하거라.” 란
가르침이 그럴싸 하니 의젓하게 무게를 갖게 된다.

과연 그런가 ?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은 송곳은 어떠한가 ?
대저,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려면 먼저 주머니에 들어가야 한다.
주머니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 바에랴, 더 이상 무엇을 시험할 수 있으랴 ?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사기가 출처인데 우선 그 고사를 더듬어본다.

때는 전국 시대 말엽이다.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 평원군(平原君:趙勝)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 중에서 20명을 선발하여 동행하고자 했으나 마지막 하나를 정하지 못했다.
이 때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자천(自薦)하고 나섰다.

“무릇 현명한 사람의 처세는 비유컨대 송곳이 주머니 속에 들어 그 끝이 보이는 것과 같다.
이제 선생이 나의 문하에 삼년이 되었으나, 좌우에서 아직 칭송하는 바가 없었으며,
내가 아직 들은 바가 없으니, 이는 선생이 가진 재주가 없음이라.
선생은 능력이 없으니 그냥 여기 머무르십시요.”

모수 왈

“신은, 이제 오늘 주머니에 넣어주시길 청하는 것입니다.
일찍 주머니 속에 넣어 주셨다면, 이내 자루까지 나와 있었을 것이니,
비단 송곳 끝뿐이겠습니까 ?”

平原君曰 夫賢士之處世也,譬若錐之處囊中,其末立見。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左右未有所稱誦,勝未有所聞,是先生無所有也。先生不能,先生留。毛遂曰 臣乃今日請處囊中耳。使遂蚤得處囊中,乃穎脫而出,非特其末見而已。(史記)

이에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고,
초나라에 가서 모수 덕분에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출전을 제대로 읽어 보면,
낭중지추는 흔히 널리 새겨지듯이
“재능이 뛰어나면 자연 외부에 드러나 알려지기 마련이다.”라는 뜻을 사뭇 넘고 있다.

즉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마땅한 기회가 없으면 그를 드러낼 수 없다.
하기에 3년 간 모수는 모시고 있던 주인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기회를 맞아, 모수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추천하고 발신(發身)한다.
원래 추천이란 다른 사람이 어떤 이를 들어 소개하는 것이다.
경계 또는 시기하느라, 모수 주변엔 그를 주인에게 추천할 사람들이 없었던 것일까 ?
아니면, 모수가 때를 기다리느라고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음인가 ?

김수현 원작의 ‘사랑이 뭐길래’라는 예전 드라마에서 가끔 흘러나오던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와
김국환의 ‘타타타’란 노래를 기억하시는가 ?
거기 김혜자가 타타타란 노래를 듣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실인즉 나는 음악은 잘 모르는데,
며칠전 차안에서 ‘립스틱 짙게 바르고’란 노래를 들었다.
곁에서 듣던 집 사람이 이 노래의 내력을 알려주니
그제서야 그 사연이 되짚어진다.

이후 이 두 노래는 빅히트를 한다.
별로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곡들이지만,
김혜자 혹은 김수현이 드라마란 주머니에 집어넣음으로서,
비로소 송곳의 날카로움을 밖으로 드러나게 한 것이다.

그러하니 송곳이란 주머니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뾰족한 것임이 드러난다.
세상의 귀한 것은 모두 이런 역설적인 구조에 갇혀 있음이라.

아니 혹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런 역설적인 구조를 뚫고 나온 것을 세인들은
그제서야 이름하여 귀한 것으로 부르고 마는 것일까 ?

재능은 원인충족적인 것인가 ?
아니면 결과만족적인 것인가 ?

1970년대 버전으로 바꿔 말하면,
사장이기에 회전의자에 앉는가 ?
회전의자에 앉았기에 사장이 되는가 ?
(※ 참고 글 : ☞ 2008/03/12 - [소요유] - 격언의 배리(背理))

모수는 자신을 스스로 주머니에 넣는 수고를 하였지만,
외부에서 나를 주머니에 넣어주는 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우리는 귀인(貴人)이라 부르곤 한다.
(※ 참고 글 : 貴人 ☞ 2008/06/27 - [소요유] - 富와 貴)

재능도 재능이지만,
자천이든 타천이든 주머니에 일단 들어가야 하는 바,
이런 통과의례(通過儀禮)를
기회(機會), chance, 혹은 시험(試驗)이라고 바꿔 음미해볼 사.

하지만, 재능도 없이 우선 주머니 속에 들고 보자고,
그 안으로 무작정 자맥질을 한다면 어찌될까 ?
아마 마술 병에 갇히듯 영원히 어둠 속에 갇혀버리지 않을까 ?
속담에 이르길
"남이 장에 가니 똥장군 매고 따라 나선다"고,
뭉툭한 끝을 가지고 욕심만 사납다면,
설혹 천년 되풀이로 대든들 죄과가 어찌 가볍다 할까 ?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숙(蹇叔)  (0) 2008.07.31
새벽 신음 소리  (10) 2008.07.29
식객 3000과 조루  (0) 2008.07.26
Christian the lion  (0) 2008.07.24
빗소리  (2) 2008.07.20
상(象)과 형(形) - 補  (0) 2008.07.19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소요유 : 2008. 7. 24. 1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