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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즉출(有孔卽出)

소요유 : 2008. 12. 27. 22:31


유공즉출(有孔卽出)

‘구멍만 보면 나아간다.’

이게 제법 야릇한 표현이지만,
나는 소시 때 바둑을 두면서 배웠다.
죽 늘어선 바둑돌 틈에 빈틈이라도 보이면,
초보자는 그게 사지(死地)인지, 생지(生地)인지 분간도 하지 못하고,
소리도 야무지게 ‘딱’ 바둑판을 가르며 무작정 돌을 때려 놓고 본다.
그리고는 쓰윽 미소를 흘리며 내심 만족감에 젖어든다.

“왜 사람은 구멍을 보면 무엇인가 넣기를 욕망하는가?”

요철(凹凸).
한자가 상형(象形)문자임을 아주 잘 드러내는 문자로,
소싯적 처음 이 글자를 익힐 때, 두 자(字)를 거저먹었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 두 글자를 눕혀 마주 보게 하면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향해 스르렁 미끄러지며
저절로 합쳐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유정물은커녕 무정물도 아닌 한낱 글자임에도 이리 심상치 않은데,
항차 유정물, 그것도 욕심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족속임에 이르러서는
어찌 범상치 않은 짓거리가 벌어지지 않으랴?

그런데, 말이다.
먼저 더듬어 살필 것이 있으니, 잠깐 샛길로 한 발 들어가 보자.
‘유공즉출’ 말고 ‘고자좆’이라는 아주 흉한 바둑 용어가 하나 더 있다.
말은 내가 점잖게 이리 하지만,
실로 아주 골계(滑稽)가 빤지르르 한 말이다.

바둑규칙에 ‘착수금지’란 것이 있다.
놓여진 바둑 돌 사이에 틈이 있긴 하지만,
착수(着手)가 금지된 곳이 있다.
바둑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정의하자면 이런 경우이다.
‘착수함으로서 빈곳이 없어지는 곳’
즉 최후에 한 점을 추가하면 더 이상 빈 공간이 남지 않는 경우이니,
이 때, 내가 바로 상대방 돌들을 들어낼 입장이라면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바둑 규칙을 해하는 상황이 초래되는 즉 이를 금지한다.

이를 예전엔 ‘고자좆’이라고 했던 것이다.
고자와 좆은 상호 제 존재를 배반한다.
함께 같이 더불어 쓸 단어들이 아닌 것이다.
그러하니 좆도 아닌 게 좆 행세를 하는 경우를
‘착수금지’에 견주며 비꼰 말이다.
"고자좃도 모르면서 바둑 둔다고 말하느냐?"
서툰 이를 두고 이리 놀려 비웃는 쓰임말도 있다.
아마도 지금은 용어순화 차원에서 쓰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 나는 사뭇 오래 전부터 바둑을 두지 않고 있는 처지다.
(※ 참고 글 : ☞ 2008/02/13 - [소요유/묵은 글] - 전이급(前二級) 바둑)

이게 바둑뿐이 아니고,
실제 우리 생활에도 일어난다.
예컨대 간통(姦通), 성폭행(性暴行) 같은 것이니,
이런 따위야말로 어의(語義)에 걸맞는 정말 ‘고자좆’같은 패륜의 일이라 하겠다.

등산로 길섶 가까이 나무 하나가 서 있다.
거의 눈높이 정도 되는 위치에 구멍이 나있는데, 거기 벌들이 산다.
사람이 쉬어가는 곳이라 마땅치 않은 자리일 터인데도,
벌들이 용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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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벌들은 저리 자리잡고 살았다.)

저들을 나는 지난여름에도 보았다.
말벌처럼 크지도 않고 양봉벌보다도 작아 보이는데 종류는 모르겠다.
고것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나무 구멍 사이로 연신 드나드는 모습이
정겹기도 하고 귀여워서 한참을 지켜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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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근접 촬영했던 벌들)

그런데 한 2주전쯤 거기를 지나다가,
벌들 몇 마리가 구멍 입구에 모여 포르르 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저 녀석들이 날씨가 조금 풀렸다한들 한 겨울에 왜 나왔을까?
잠깐 경계하려고 척후병을 내보냈을까나?
이런 정도 생각하고 그날은 그냥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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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가 쌓여지고 있는 나무란 얼마나 신령스러운가?)

그러다 며칠 전 참으로 흉한 현장을 목격했다.
그 벌구멍에 나뭇가지 서너 개가 푹 찔린 채 있질 않은가 말이다.
어떤 흉악한 놈의 소행인가?
도대체가 도처마다 유공즉출 성한 곳이 없다.
(※ 참고 글 : ☞ 2008/09/30 - [산] - 낮도깨비)

나는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빼내었다.
그러자 서너 마리 벌들이 놀란 듯 뛰쳐나와 비실거리다 다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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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무가지로 쑤셔박은 만행 현장)

오늘은 어쩔까 싶어 다시 찾아갔다.
다시 나뭇가지가 꼽혀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 엄동설한 벌집을 습격하는
저 우악스럽고 모진 인간은 어떤 물건인가?
모질기가 도척(盜跖) 사촌이요, 심술 맞기가 놀부 여편네쯤 되는가?
아니라면 어떤 한(恨)이 서리서리 쌓이고 쌓인 불쌍한 것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쑤셔 박았던 나뭇가지들. 저 긴 것을 좁은 구멍 안에서 휘져었을 터. 참으로 참혹스런 노릇이다.)

‘고자좆’

저것이야말로 고자좆 같은 것 아닌가?
적어도 사람이라면 차마 그 짓을 할 수 없는 그것.
구멍이로되 도저히 즉출(卽出)하여 해코지를 하려야 할 수도 없고,
그럴 마음조차 애당초(當初) 일어날 수도 없는 저 짓거리가,
어이하여 사람이란 이름을 나누어 가진 족속들에 의해 자행될 수 있음인가?

여기 북한산은 거지반 어른들이 다녀간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바쁘다.
가끔 쉬는 날 더러 아이들을 보지만,
그것도 반드시 어른하고 동행하여야 나타난다.
그리고, 저 곳은 주로 어른들 특히 노인들이 쉬어 가는 곳이라,
철 모르는 아이들의 소행일 확률은 적다.
필시 어른들이 저지른 것이리라 짐작된다.

게다가 저리 돌무더기가 쌓이고 있는 현장에서라니,
감히 저 성황당 같이 신령스런 곳에 어찌 불경스런 마음이 일 수 있으랴.
종교유무, 신앙후박(信仰厚薄)을 떠나 마음이 정갈한 이라면,
차마 어찌 범접할 수 있을 터며,
저런 망측스런 행악(行惡)을 부리랴.

나로서는,
저 흉악무도한 마음이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아무리 헤아려도 도시(都是) 알지 못하겠노라.

하기사 멀쩡한 강을 필경은 콘크리트 제방으로 에워싸 버리고 말 일이,
머지않아 위정자 손에 의해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벌어질 판이다.

박 대표는 청와대 회동에서 이 대통령에게 “(4대강 정비사업은)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해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여야 한다”며 “전국 곳곳에 사회기반시설(SOC) 사업, 공공사업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착수해 전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한겨레신문사)

한마디로 ‘고자좆’같은 일이 국가 단위로 일어날 판인데,
여기 북한산이라고 별 달리 별천지라든?

순결을 짓밟는,
정말 ‘고자좆’같은 세상이다.

기경13편(棋經十三篇)에 보면
고자재복(高者在腹)이라 했다.
고수(高手)는 “어복(魚腹)으로 나아간다.”라는 뜻이다.
어복이라 함은 바둑에서는 중앙을 말한다.
하수(下手)는 변에 머무르며, 중수(中手)는 귀를 중시하나,
고수는 호호탕탕 중앙으로 나아가 승부한다는 말이다.
이게 기가(祺家)의 상도(常道) 즉 떳떳한 길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쌈지뜨면 지나니 어복으로 나가라.”

귀퉁이에서 복작거리며 옹졸하게 바둑 두고 있는 이를 일깨우는 바둑 격언이다.
이게 하필 기자(棋者)에게만 해당되랴,
군자라면, 꼼수 부리지 말고 정정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博弈之道,貴乎謹嚴。高者在腹,下者在邊,中者占角,此棋家之常然。
法曰 :寧輸數子,勿失一先。
有先而後,有後而先。擊左則視右,攻後則瞻前。
兩生勿斷,皆活勿連。闊不可太疏,密不可太促。
與其戀子以求生,不若棄子而取勢,與其無事而强行,不若因之而自補。
彼衆我寡,先謀其生。我衆彼寡,務張其勢。
善勝者不争,善陣者不戰。善戰者不敗,善敗者不亂。
夫棋始以正合,終以奇勝。必也,四顧其地,牢不可破,方可出人不意,掩人不備。
凡敵無事而自補者,有侵襲之意也。棄小而不就者,有圖大之心也。隨手而下者,無謀之人也。不思而應者,取敗之道也。
詩雲:“惴惴小心,如臨于谷。”

도대체 무엇이 부끄럽기에
전광석화, 질풍노도로 밀어붙여 전국토를 거대한 공사판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말이다.
무엇에 쫓기는 게 아닌 다음에야,
저리 서두르며 채근할 일이 있으랴.

병법에 이르길,
躁而求勝者, 多敗
“조급하게 이길 생각을 하면, 패함이 많다.” 하였다.

그저,
유공즉출,
땅 보면, 파고 싶고,
강 보면, 담그고 싶단 말이냐?

접즉출(接卽出)이니, 접하자마자 싸고,
망즉출(望卽出)이라, 보기만 해도 흘리는 형편인데,

이를 ‘고자좆’에 비긴다한들 어찌 과하다 이르랴.

온 국토는 물론,
여기 북한산 한 귀퉁이,
골짜기까지
‘고자좆’ 일색이니,
과히 온 천하가 ‘고자좆’같은 세상이고뇨.

惴惴小心,如臨于谷。
(췌췌소심 여림우곡)

“두려운 듯 조심함이,
마치 골짜기에 임하듯.”
군자란 이리 삼가는 마음으로 세상을 건너는 것이거늘,

부처 또한 이리 이르지 않았던가?

財色名利如毒蛇
(재색명리여독사)

음문(陰門)에 양물(陽物) 넣기를 마치 독사가 있는듯 하라지 않으셨던가?

온 산하를 어육(魚肉)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저들 고자좆들의 배짱놀음이란,
정녕코 심히 흉코뇨.
 
선유(先儒) 가로대,

天道無心而普萬物

“천도가 무심히 ‘보만물’한다.” 하였음인가?
보(普)란 영어로 하면 universal이라,
크게 차별 없이 두루 미친다라는 뜻과 매한가지다.
설문해자 주(注)는
'日無光則遠近皆同'라 하였으니,
두루 차별 없이, 원근이 모두 하나란 의미가 아닌가?
(※ 참고 글 : ☞ 2008/04/22 - [소요유] - 보례(普禮))

그러하다면,
지금 이 시대 저 말을 과연 믿을 만한가?
설혹,
백번 참아 믿기를,
천도가 무심하니 일무광(日無光)이라한들,
사람은 끝내 아니 그러하다.

人道有心而別萬物

인도야말로 유심이니, 만물을 차별하고 있음이라.

하기에,
내가,
천하가 ‘고자좆’ 일색이라 이르고 있음이 아닌가.

옛말에 동물도 죽을 때는 제 혈(穴)자리 찾아 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명색이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살아 있으면서도,
들어가고 아니 들어갈 곳을 분별하지 못하니,
사람 사는 세상이 참으로 괴이쩍다 하지 않을 수 없고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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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8. 12. 27. 2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