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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즉출(有孔卽出)

소요유 : 2008. 12. 27. 22:31


유공즉출(有孔卽出)

‘구멍만 보면 나아간다.’

이게 제법 야릇한 표현이지만,
나는 소시 때 바둑을 두면서 배웠다.
죽 늘어선 바둑돌 틈에 빈틈이라도 보이면,
초보자는 그게 사지(死地)인지, 생지(生地)인지 분간도 하지 못하고,
소리도 야무지게 ‘딱’ 바둑판을 가르며 무작정 돌을 때려 놓고 본다.
그리고는 쓰윽 미소를 흘리며 내심 만족감에 젖어든다.

“왜 사람은 구멍을 보면 무엇인가 넣기를 욕망하는가?”

요철(凹凸).
한자가 상형(象形)문자임을 아주 잘 드러내는 문자로,
소싯적 처음 이 글자를 익힐 때, 두 자(字)를 거저먹었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 두 글자를 눕혀 마주 보게 하면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향해 스르렁 미끄러지며
저절로 합쳐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유정물은커녕 무정물도 아닌 한낱 글자임에도 이리 심상치 않은데,
항차 유정물, 그것도 욕심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족속임에 이르러서는
어찌 범상치 않은 짓거리가 벌어지지 않으랴?

그런데, 말이다.
먼저 더듬어 살필 것이 있으니, 잠깐 샛길로 한 발 들어가 보자.
‘유공즉출’ 말고 ‘고자좆’이라는 아주 흉한 바둑 용어가 하나 더 있다.
말은 내가 점잖게 이리 하지만,
실로 아주 골계(滑稽)가 빤지르르 한 말이다.

바둑규칙에 ‘착수금지’란 것이 있다.
놓여진 바둑 돌 사이에 틈이 있긴 하지만,
착수(着手)가 금지된 곳이 있다.
바둑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정의하자면 이런 경우이다.
‘착수함으로서 빈곳이 없어지는 곳’
즉 최후에 한 점을 추가하면 더 이상 빈 공간이 남지 않는 경우이니,
이 때, 내가 바로 상대방 돌들을 들어낼 입장이라면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바둑 규칙을 해하는 상황이 초래되는 즉 이를 금지한다.

이를 예전엔 ‘고자좆’이라고 했던 것이다.
고자와 좆은 상호 제 존재를 배반한다.
함께 같이 더불어 쓸 단어들이 아닌 것이다.
그러하니 좆도 아닌 게 좆 행세를 하는 경우를
‘착수금지’에 견주며 비꼰 말이다.
"고자좃도 모르면서 바둑 둔다고 말하느냐?"
서툰 이를 두고 이리 놀려 비웃는 쓰임말도 있다.
아마도 지금은 용어순화 차원에서 쓰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 나는 사뭇 오래 전부터 바둑을 두지 않고 있는 처지다.
(※ 참고 글 : ☞ 2008/02/13 - [소요유/묵은 글] - 전이급(前二級) 바둑)

이게 바둑뿐이 아니고,
실제 우리 생활에도 일어난다.
예컨대 간통(姦通), 성폭행(性暴行) 같은 것이니,
이런 따위야말로 어의(語義)에 걸맞는 정말 ‘고자좆’같은 패륜의 일이라 하겠다.

등산로 길섶 가까이 나무 하나가 서 있다.
거의 눈높이 정도 되는 위치에 구멍이 나있는데, 거기 벌들이 산다.
사람이 쉬어가는 곳이라 마땅치 않은 자리일 터인데도,
벌들이 용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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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벌들은 저리 자리잡고 살았다.)

저들을 나는 지난여름에도 보았다.
말벌처럼 크지도 않고 양봉벌보다도 작아 보이는데 종류는 모르겠다.
고것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나무 구멍 사이로 연신 드나드는 모습이
정겹기도 하고 귀여워서 한참을 지켜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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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근접 촬영했던 벌들)

그런데 한 2주전쯤 거기를 지나다가,
벌들 몇 마리가 구멍 입구에 모여 포르르 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저 녀석들이 날씨가 조금 풀렸다한들 한 겨울에 왜 나왔을까?
잠깐 경계하려고 척후병을 내보냈을까나?
이런 정도 생각하고 그날은 그냥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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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가 쌓여지고 있는 나무란 얼마나 신령스러운가?)

그러다 며칠 전 참으로 흉한 현장을 목격했다.
그 벌구멍에 나뭇가지 서너 개가 푹 찔린 채 있질 않은가 말이다.
어떤 흉악한 놈의 소행인가?
도대체가 도처마다 유공즉출 성한 곳이 없다.
(※ 참고 글 : ☞ 2008/09/30 - [산] - 낮도깨비)

나는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빼내었다.
그러자 서너 마리 벌들이 놀란 듯 뛰쳐나와 비실거리다 다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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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무가지로 쑤셔박은 만행 현장)

오늘은 어쩔까 싶어 다시 찾아갔다.
다시 나뭇가지가 꼽혀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 엄동설한 벌집을 습격하는
저 우악스럽고 모진 인간은 어떤 물건인가?
모질기가 도척(盜跖) 사촌이요, 심술 맞기가 놀부 여편네쯤 되는가?
아니라면 어떤 한(恨)이 서리서리 쌓이고 쌓인 불쌍한 것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쑤셔 박았던 나뭇가지들. 저 긴 것을 좁은 구멍 안에서 휘져었을 터. 참으로 참혹스런 노릇이다.)

‘고자좆’

저것이야말로 고자좆 같은 것 아닌가?
적어도 사람이라면 차마 그 짓을 할 수 없는 그것.
구멍이로되 도저히 즉출(卽出)하여 해코지를 하려야 할 수도 없고,
그럴 마음조차 애당초(當初) 일어날 수도 없는 저 짓거리가,
어이하여 사람이란 이름을 나누어 가진 족속들에 의해 자행될 수 있음인가?

여기 북한산은 거지반 어른들이 다녀간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바쁘다.
가끔 쉬는 날 더러 아이들을 보지만,
그것도 반드시 어른하고 동행하여야 나타난다.
그리고, 저 곳은 주로 어른들 특히 노인들이 쉬어 가는 곳이라,
철 모르는 아이들의 소행일 확률은 적다.
필시 어른들이 저지른 것이리라 짐작된다.

게다가 저리 돌무더기가 쌓이고 있는 현장에서라니,
감히 저 성황당 같이 신령스런 곳에 어찌 불경스런 마음이 일 수 있으랴.
종교유무, 신앙후박(信仰厚薄)을 떠나 마음이 정갈한 이라면,
차마 어찌 범접할 수 있을 터며,
저런 망측스런 행악(行惡)을 부리랴.

나로서는,
저 흉악무도한 마음이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아무리 헤아려도 도시(都是) 알지 못하겠노라.

하기사 멀쩡한 강을 필경은 콘크리트 제방으로 에워싸 버리고 말 일이,
머지않아 위정자 손에 의해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벌어질 판이다.

박 대표는 청와대 회동에서 이 대통령에게 “(4대강 정비사업은)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해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여야 한다”며 “전국 곳곳에 사회기반시설(SOC) 사업, 공공사업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착수해 전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한겨레신문사)

한마디로 ‘고자좆’같은 일이 국가 단위로 일어날 판인데,
여기 북한산이라고 별 달리 별천지라든?

순결을 짓밟는,
정말 ‘고자좆’같은 세상이다.

기경13편(棋經十三篇)에 보면
고자재복(高者在腹)이라 했다.
고수(高手)는 “어복(魚腹)으로 나아간다.”라는 뜻이다.
어복이라 함은 바둑에서는 중앙을 말한다.
하수(下手)는 변에 머무르며, 중수(中手)는 귀를 중시하나,
고수는 호호탕탕 중앙으로 나아가 승부한다는 말이다.
이게 기가(祺家)의 상도(常道) 즉 떳떳한 길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쌈지뜨면 지나니 어복으로 나가라.”

귀퉁이에서 복작거리며 옹졸하게 바둑 두고 있는 이를 일깨우는 바둑 격언이다.
이게 하필 기자(棋者)에게만 해당되랴,
군자라면, 꼼수 부리지 말고 정정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博弈之道,貴乎謹嚴。高者在腹,下者在邊,中者占角,此棋家之常然。
法曰 :寧輸數子,勿失一先。
有先而後,有後而先。擊左則視右,攻後則瞻前。
兩生勿斷,皆活勿連。闊不可太疏,密不可太促。
與其戀子以求生,不若棄子而取勢,與其無事而强行,不若因之而自補。
彼衆我寡,先謀其生。我衆彼寡,務張其勢。
善勝者不争,善陣者不戰。善戰者不敗,善敗者不亂。
夫棋始以正合,終以奇勝。必也,四顧其地,牢不可破,方可出人不意,掩人不備。
凡敵無事而自補者,有侵襲之意也。棄小而不就者,有圖大之心也。隨手而下者,無謀之人也。不思而應者,取敗之道也。
詩雲:“惴惴小心,如臨于谷。”

도대체 무엇이 부끄럽기에
전광석화, 질풍노도로 밀어붙여 전국토를 거대한 공사판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말이다.
무엇에 쫓기는 게 아닌 다음에야,
저리 서두르며 채근할 일이 있으랴.

병법에 이르길,
躁而求勝者, 多敗
“조급하게 이길 생각을 하면, 패함이 많다.” 하였다.

그저,
유공즉출,
땅 보면, 파고 싶고,
강 보면, 담그고 싶단 말이냐?

접즉출(接卽出)이니, 접하자마자 싸고,
망즉출(望卽出)이라, 보기만 해도 흘리는 형편인데,

이를 ‘고자좆’에 비긴다한들 어찌 과하다 이르랴.

온 국토는 물론,
여기 북한산 한 귀퉁이,
골짜기까지
‘고자좆’ 일색이니,
과히 온 천하가 ‘고자좆’같은 세상이고뇨.

惴惴小心,如臨于谷。
(췌췌소심 여림우곡)

“두려운 듯 조심함이,
마치 골짜기에 임하듯.”
군자란 이리 삼가는 마음으로 세상을 건너는 것이거늘,

부처 또한 이리 이르지 않았던가?

財色名利如毒蛇
(재색명리여독사)

음문(陰門)에 양물(陽物) 넣기를 마치 독사가 있는듯 하라지 않으셨던가?

온 산하를 어육(魚肉)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저들 고자좆들의 배짱놀음이란,
정녕코 심히 흉코뇨.
 
선유(先儒) 가로대,

天道無心而普萬物

“천도가 무심히 ‘보만물’한다.” 하였음인가?
보(普)란 영어로 하면 universal이라,
크게 차별 없이 두루 미친다라는 뜻과 매한가지다.
설문해자 주(注)는
'日無光則遠近皆同'라 하였으니,
두루 차별 없이, 원근이 모두 하나란 의미가 아닌가?
(※ 참고 글 : ☞ 2008/04/22 - [소요유] - 보례(普禮))

그러하다면,
지금 이 시대 저 말을 과연 믿을 만한가?
설혹,
백번 참아 믿기를,
천도가 무심하니 일무광(日無光)이라한들,
사람은 끝내 아니 그러하다.

人道有心而別萬物

인도야말로 유심이니, 만물을 차별하고 있음이라.

하기에,
내가,
천하가 ‘고자좆’ 일색이라 이르고 있음이 아닌가.

옛말에 동물도 죽을 때는 제 혈(穴)자리 찾아 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명색이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살아 있으면서도,
들어가고 아니 들어갈 곳을 분별하지 못하니,
사람 사는 세상이 참으로 괴이쩍다 하지 않을 수 없고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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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 한 그릇 2008.12.28 17:16 PERM. MOD/DEL REPLY

    고자좆 저 인간들도 하늘이내린 생명인데 하아~ 웃어도 울어도 답답합니다. 아픕니다.깜깜합니다...도덕이란 무엇일까요? 생명은 도덕과 어떤 관계일까요? 요즘 멍하니 그런 생각에 잠깁니다. 결국 나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게되고... 모르겠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말라고 예수님이 말했지만 지금 시대는 무엇을 어떻게 대하고 길러 어떻게 먹어야할지 고민함이 도리 인것 같습니다.선생님의 글중에 혹 인도신화,흰두신화 관련 글이 있는지...검색 해보겠습니다 ㅎ

  2. 물 한 그릇 2008.12.28 21:09 PERM. MOD/DEL REPLY

    옛말에 동물도 죽을 때는 제 혈(穴)자리 찾아 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명색이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살아 있으면서도,
    들어가고 아니 들어갈 곳을 분별하지 못하니,
    사람 사는 세상이 참으로 괴이쩍다 하지 않을 수 없고뇨 .............가만히 생각해보니 몹시 이상합니다.

  3. 사용자 bongta 2008.12.28 21:50 신고 PERM. MOD/DEL REPLY

    글 흐름에 이끌려 혹,
    ‘고자좆’이란 말을 빌어 구멍질 일반을 나무라고 있는듯한 인상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겠군요.

    하지만,
    제 구멍도 아닌데 들이미는 것을 나무라고 있는 것입니다.
    凹凸이란 게 본래 서로 껴맞추라고 저리 나누어져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제 짝도 아닌데, 무작정 들어서는 게 서글픈 것이지요.

    유공즉출이 그런 것입니다.
    제 것도 아닌데 무작정 구멍이라면 가리지 않고 환장을 하고 들이밀지요.
    저 벌집도 그게 인간을 위한 구멍입니까?
    아니지요?
    거길 왜 쑤십니까?
    쑤실 곳이 아닌데 쑤시니까, '고자좆'인 것입니다.

    동물은 죽을 때, 제가 편히 쉴 곳을 분별하여 찾아가지요.
    설마하니, 동물이 그 때에 이르러 사람이 사는 집으로 들어오겠습니까?

    하지만, 저 꼬챙이족, 토건족 따위들은 무작정 구멍만 있으면 쑤시고자 달려듭니다.
    사람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
    그게 벌집, 강, 산, 동물 ... 등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하지 않으니까, 광우병, 조류독감, 구제역, ...
    그리고 이전에 보시고 충격을 받으셨다는 그 끔찍한 동물학대사진의 현장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운하를 파자고 대들고 있지 않습니까?
    바둑에서의 ‘고자좆’ 역시 구멍은 구멍이되,
    착수(着手)할 수 없는 곳에 돌을 놓기 때문에 그리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정리하자면,
    이리 됩니다.

    “천하의 凹은 모두 凸를 예비하고 있다.”
    “천하의 凸은 모두 凹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凹든 凸든 모두 제 짝이 있다.”
    “본디 凹와 凸의 결합은 아름다운 것이다.”
    조금 더 본질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본디 凹와 凸의 결합은 미추(美醜)를 넘어선 것이다.”

    만약,

    “凹凸이 제 짝을 찾지 못하고 아무데나 나대면 이는 곧 ‘고자좃’, ‘고자씹’이 되고 만다.”

    이런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문화는 제가 소시적 공부했던 주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마추어니 오죽하련만,
    생각컨대, 제 영혼의 태반은, 그렇지요 근 7할은 거기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세례를 받았음직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저 엉뚱한 곳에서 이리 서성이고 있군요.

    기억나는 것은 ...
    ‘마하카라’로 한번 검색해보세요.
    저도 찾아 보려니 인도에 대해서는 별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군요.
    나중에 인연의 바람이 불면,
    당처에서 말씀 드릴 기회가 있게 되겠지요.

    그런데,
    인도문화에 어떤 인연지음이 계시온지?

  4. 물 한 그릇 2008.12.29 07:08 PERM. MOD/DEL REPLY

    보다 근본적인 바탕위에서 항상 말씀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몹시 이상타함은 그 고자좆의 의도된듯한 느낌 - 이것은 당신의 물건이 아닌데 왜 사려고 하느냐? 신시배달화백을 역사속에서 추리 연구하시는 좌계선생님의 설명으로 내가 생산에 투자하지않은 상품은 취할수없는 구조를 얘기합니다.더 복잡한 장치들이 있지만 어렴풋이 이해하는 정도라서...저의 생각에 마지막단군이 그 시스템의장막으로 오랜세월을 유지해온 제국을 스스로 버리고 후일을 약속하며 동굴속으로 들어간것은 호혜와분배의 구조에 반하는 독점과탐욕의 고자좆들을 감당치못하고 후일 더 큰장막을 예언처럼 기약함이 아닐까? ㅎ 왜? 마하트마 간디는 하층빈민들에게 따스한시선을 주면서도 카스트제도의 해체를 반대 헸을까? 혹 서양의 고자좆들이 그것을 빌미로 민족이 스스로 브라만을 찾을 원형을 잃어버릴 걱정? 도무지 고자좆은 권한 받은것처럼 휘젓는데 이것 역시 다른 한짝일까요? 몹시 이상한 한짝... 브라흐마와 브라만이 다르다는데 특별히 설명한 곳이 보이질않아서요.요즘은 제가 아는게 없음으로 오히려 보는것마다 신기합니다. 무턱대고 돌아다니는 덜렁무식이 ㅎ또 한자가 꽤 재미있습니다.아는 한자가 스믈두어자라서 ㅎ도덕을 한자로 써놓고 상념하다가 어느 사이트에 토템에대한 칼럼에 토템을 도덕이 아닐까?라고 댓글을 달고 도망칩니다.ㅎ

  5. 사용자 bongta 2008.12.29 13:39 신고 PERM. MOD/DEL REPLY

    중국무술영화를 저는 지금도 봅니다만,
    거기 가끔 담장 위로 고개를 빠금히 내밀고 훔쳐서 무술을 배우는 장면이 나오곤 합니다.
    또는 선생도 없이 우연히 동굴 속에 감추어진 비기(秘記)를 얻고서는
    홀로 무학(武學) 절기(絶技)를 닦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상으로는 혹 성취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론 이런 식으로는 절대 무술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도장에 가서 무술을 배운다고 할 때,
    문파도 가지각색, 사범도 가지각색입니다.
    하지만, 거기나 저기나 거죽 외양으로는 비슷한 동작인 것 같습니다만,
    미세한 차이는 누구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기마세(騎馬勢)라 할 때,
    “발을 좌우로 벌리고, 무릎을 굽혀 앉는 자세를 취한다.
    이 때 허리는 곧추세우고 양발 발끝은 안으로 구부려 8자 또는 일자로 한다.” 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8자의 각도라든가 발바닥에 안배되는 힘의 무게 중심의 위치 등
    그 상세한 곳에 이르면 그 어떤 사범도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이는 모두 거죽으로만 배우고, 가르친 결과일 것입니다.
    그 안짝에 숨겨진 중요한 것들은 진짜배기 무술 선생님한테가 아니면,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나 혼자 그것을 터득 못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그것을 알아내는데 아마도 천년 이상이 걸릴 걸요.
    그러하니 선생이 필요한 것이지요.
    누천년 갈고 닦인 것의 정수를 대대로 내려 수지(受持)하고 계신 선생이란,
    그래서 귀하고 중하신 것이지요.

    그런즉, 독학으로 배운다든가, 영화에서처럼 책으로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거니와, 실로 난센스라 할 것입니다.

    웹의 세계라는 것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콩사발 엎어지듯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보가 널려 있습니다.
    저것들을 내가 독보(獨步)로 거닐며 취하여 어떤 성취를 이룬다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정작 중요한 것은 밖에 노출되어 있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온 것은 이미 귀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방금 전까지 설사 제 아무리 귀한 것이었었다고 한들,
    햇빛을 받으면 이내 바래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남의 글, 말은 결국 그가 싸놓고 버린 똥찌거기에 불과합니다.
    웹에 국한하여 말한다면,
    여기 돌아다니는 글들은 제 글까지 포함하여
    모두 낭자한 죽은 시체들입니다.
    싸놓더래도 내 똥을 싸질러 놓아야 합니다.
    이치가 이러하기에 언젠가 말했듯이,
    저는 집단지성을 믿지도 않지만,
    여기 기대는 족속들을 전부 비굴한 인간이라고 치부합니다.

    남이 싸질러놓은 똥무더기를 부젓가락으로 아무리 헤집는다 한들,
    부스러기 사금(砂金) 한 톨인들 나오겠습니까?
    허공 중에 나는 새가 어디 남이 만들어논 길 따라 난다듭니까?

    저는 제가 싸놓은 똥글도 어떤 때는 냄새가 흉하여 맡기 힘들 지경일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저게 이미 내것이 아니구나, 허물을 또 하나 지었구나 이리 생각할 수밖에.

    선생이란 아무 곳에나 계시는 것이 아니며,
    있다한들 아무 때나 나와 인연을 맺을 수도 없습니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 그릇이 아니면 선생은 아예 전하지도 않습니다.
    제자가 그 인연을 청할 때는 그래서 목숨을 걸지도 않습니까?
    그러하니 대개는 만부득 담장 넘어 훔쳐 배우거나,
    운 좋게 동굴에 떨어져 책을 얻거나 해서 배움의 기회를 얻습니다.

    제도권 학교에 들어가 배우는 것이 아닌 것인 한,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는 우선 책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대단히 불행한 우리들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스승이 없는 세상,
    그래서 광야에 버려진 미아들.
    가여운 노릇이지요.

    아뭏듯 그래도 권합니다만 모범이 될 만한 좋은 양서를 중심으로
    벼리(綱)를 세우시는 것이 어떠할까 싶군요.
    그것이 어떠한 관심 분야가 되었든,
    최소한의 체계적인 뼈대를 세우고, 얼추 안목을 틔우고서야,
    널려진 지식의 파편들을 내가 휩쓸리지 않고 짝패를 맞춰갈 수라도 있습니다.

    이런 중심 줄거리가 없는 상태에서,
    웹에 떠도는 단편적인 지식의 파편만으로는 조각 맞추기 puzzle
    게임에 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법 흥겹고, 재미있는 것같지만,
    튼튼한 성취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컨대, 그 현장에서 소개되는 책 같은 게 있다면,
    그런 것을 먼저 취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군요.
    혹 이미 그리 하시고 계신지 몰라도.
    신시화백 등등 말씀이 계셔서,
    혹 이런 분야에 관심을 집중하시고 있는가 하는 짐작을 기초로 말씀드려봅니다.

    그러하다가 인연이 닿으면 도반(道伴)도 만나고 신우(信友)도 스치고,
    좋은 가르침의 선생도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뭣 그냥 선재동자처럼 만행(萬行)한다는 기분으로 웹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수고만 많고 그저 흉내만 낼 뿐이지요.
    그저 즐기기만 하여도 덕이겠거니,
    이런 뜻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자신이 취할 노릇이겠지만.

    얼핏 스치는 인상을 기초로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잠깐 글로서만 대한 입장이라,
    혹 잘못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그러하다면 다시 일러주세요.

    그리고,
    ‘고자좆’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냥 좆같은 얘기구나 하시면 됩니다.

    내 좆이 고자좆이 아니라면, 수미산인들 부러울 게 있겠습니까?
    제 아무리 태평양 고래 보지라도 쑤시려면 쑤셔야지요.
    망설일 까닭이 없지요.
    다만, 벌집 하나라도 그게 내 좆의 거량 대상이 아니라면,
    관여하지 말아야지요.
    마땅히.

    좆은 그냥 상징인데,
    여기에 함몰되면 뜻이 새(泄)버리고 맙니다.

  6. 물 한 그릇 2008.12.29 14:57 PERM. MOD/DEL REPLY

    늘 팽팽하심에 명심하게됩니다. 요즘 모든것이 물로 보입니다. 빛도 돌도 흙도 ㅎ 누군가의 글을 보고 취한다기보다는 이렇게 든 생각들을 추적하는 편집같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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