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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망(王莽)

소요유 : 2008. 12. 30. 18:48


앞에서 예고한대로 왕망에 대하여 글을 쓰고자 하였으나,
불현듯 계획을 변경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나쁜 것을 세상에 알릴 우려가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깊이 있게 다루지 않기로 한다.

다만 간단히 경과만 남겨두기로 한다.

왕망은 원래 한(漢)나라 사람인데, 한나라 왕위를 찬탈하고는 신(新) 왕조를 세운다.
후에 유수(劉秀-후한의 光武帝)가 다시 한나라를 되찾게 되는데,
이에 따라 그 전의 한은 전한(前漢), 다시 되찾은 한을 후한(後漢)이라고 부르게 된다.

왕씨 일가는 황제의 외척으로서 권세를 잡았으나,
왕망만큼은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어렸을 적에 불우하게 자라게 된다.
하지만, 정치적 야욕이 큰 그는 자신의 인척은 물론,
백성, 관료 등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구할 목적으로
수십 년간 본심을 숨기고 여러 가식적인 행동을 꾸며 위장한다.

급기야 이게 효과를 발휘하여 대사마까지 이르게 되며,
차츰 야욕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는 그 와중에 자신의 아들 둘까지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이게 다 세상 사람들의 인심을 얻기 위한 것인데,
평생을 오로지 자신의 야욕을 위해,
자신의 본심을 속이고,
혈육까지 희생한 그의 집념이 보통 놀라운 것이 아니다.

결국 그는 평제(平帝)를 독살하고, 2살배기 유영(劉嬰)을 내세우고는
자신이 실질적인 황제 역할을 다 수행했다.
하지만, 유영(劉嬰)은 정식으로 황제의 위를 받지는 못했고,
그저 황태자 신분으로 머물게 했다.
이는 다 후에 일을 꾸미기 위한 왕망의 복안 때문이다.
때가 무르익자 왕망은 거짓으로 각종 서조(瑞兆)를 꾸며,
즉 부명(符命)을 만들어, 진천자(眞天子)가 나타날 것이라는 여론조작을 꾀한다.
이미 조정은 그의 손아귀에 들었고,
서민들도 그의 포퓰리즘 정책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왕망의 인기는 한껏 높았다.
왕망은 급기야 시초(始初)로 개원하고 황제의 자리에 앉는다.
이게 신(新)나라다.

선물과 관련되어서는 그가 주위에 재물을 흩으며 인심을 쓸 때,
이게 모두 복심(腹心)이 따로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전혀 표시도 내지 않고,
연출을 하였음이니,
전번 글을 쓰면서 문득 그가 떠올랐던 것이다.
(※ 참고 글 : ☞ 2008/12/28 - [소요유] - 선물(膳物))

해서 그 과정을 세밀하게 조명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는 오히려 세상에 나쁜 영향을 줄 우려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멈추기로 하는 것이다.

왕망은 나라를 빼앗을 욕심이기에,
자신의 평판을 높이려고 갖은 서민 구호 정책을 폈다.
이게 당시로서는 서민에게 득이 되었겠지만,
황제가 되고 나서 편 정책들은,
오히려 서민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켰다.

마치 만주로 조선인을 끌어내어서는
유랑농민에게 농토와 먹을거리를 주었다고 선전하던 친일분자들이
실제로는 일본에 충성하기 위한 속셈이었듯이,
왕망 역시 서민들을 제 야욕을 위해 동원하였을 뿐인 것이다.

선물, 뇌물, 구휼물, 구호품, 팁, 개평, 촌지, 덤, 와이로 ...
그 허실을 잘 헤아려야 한다.

선물로부터 유발된 일련의 이야기 꾸러미는
이어서 별도로 ‘덤’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 본 글은 혹간 나중에 조금 보충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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