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덕담

소요유 : 2009. 1. 26. 11:12


새해에는 인사내지는 덕담을 주고받습니다.
이에 관련된 글을 편편히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해서 그것들을 그냥 여기 자리 빌려 늘여놓습니다.

***
***

@“富와 貴”란 주제 글에 대하여 모처에서 달았던 댓글 중에서
   (※ 참고 글 : ☞ 2008/06/27 - [소요유] - 富와 貴)

“복 많이 받으시라”든가,
“덕담(德談)을 나눈다”라는 말이 이제는 없어져버렸습니다.

이런 얘기들은 우리 어렸을 적만 하여도 많이 듣고, 쓰던 말입니다.
부귀란 말은 직접 건드려 끄집어내지 않았습니다.
삼가는 것이지요.
대신 복덕이란 말은 서로 주고받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덕은 본원적으로 닦음 곧 수행을 선결 요건으로 하는 것이기에,
단순한 물질의 거래가 아니라, 인격이 개재하여야 하며,
그 때라서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發福이라 하지요.

물론 나중에 이게 물질을 구하는 것으로 전화(轉化)되기도 합니다.
중국집 같은 데 보면 福이라든가 재보를 상징하는 集字造語의 글자를
거꾸로 하여 붙여 논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복이 떨어지듯이 제 집에 복이 들어오라는 풍속이지요.

복덕이 중요하지 않은 요즘 세태는 어떻습니까?

“부자 되세요.”란 광고 카피가 널리 퍼져나가고,
“당신 사는 곳이 당신의 품위를 결정한다.” ...

이 따위 말 짓이 애나 늙은이를 가리지 않고 통용됩니다.
부귀를 잡아채려고, 이들이 잠자리채 들고 거리낌 없이 거리를 횡행합니다.
마치 황야의 무법자들처럼.

이는 말씀대로 심성을 닦을 틈이 없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전체가 거대한 판자 구조 위에 놓여 있다면,
이제 그 판자는 그리 기울여져 있기 때문에 모두 그리 미끄러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저 홀로 미끄러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는 맨 꼴찌를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에 이끌어지려면 남보다 먼저 달려 나가야 득책인 운명들.
탓할 일이 아니라, 가여운 명운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서 가끔 느끼곤 하는
정치의식 과잉도 의기롭다든가, 선량함의 징표가 아니라,
혹여 욕망의 외피가 아닌가 이리 회의하곤 합니다.
물론 저도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반성합니다.
작취미성이라 오타가 혹 있을까 싶군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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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지계(履霜之戒) 댓글 중에서
  (※ 참고 글 : ☞ 2008/08/17 - [소요유/묵은 글] - 이상지계(履霜之戒))

한훤수작(寒暄酬酌)
(* 함훤수작(喊喧酬酌) : 큰 소리로 외치며 떠들썩하게 서로 주고받는 수작)

날씨의 춥고 더움에 대하여 서로 주고받는 인사가 예전에는 일상다반사였지요.
하지만, 현대는 냉난방에어콘 시설이 잘되어서 그런지,
한훤을 빌어 하는 인사는 저만치 물러가 있습니다.

그저 하는 인사가

“돈 많이 벌었니?”
“오늘 장사 잘 되었니?”
“오늘 당신 참 섹시하게 보인다.”
“피부 껍데기 어디서 벗겼니 ? 뻥젖, 뺑코 어디서 수술했니?”

하는 인사가 오히려 알뜰히 보살펴 묻는 안부가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부자 되세요.”란

말이 이 시대의 덕담이 되었다는 듯,
전파를 타고 방방곡곡을 넘실되기도 하였지요.
꼬마까지도 이리 인사를 해댑니다.

그래 대선후보의 평가기준도 누가 더 돈 많이 벌게 해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참으로 부박(浮薄)스런 세태입니다.

그런데,
이즈음 예민한 사람들은 장롱고리짝 구석에 처박어두었던 퀴퀴한 법식을 꺼내어
다시 한훤수작질을 합니다.

기상청은 요즘 계속 헛발질을 하더니만,
급기야 '장마'를 대신해서 '우기'의 개념을 채택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가 이젠 누구라도 충분히 느낄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
폭염의 여름,
짧은 봄, 가을
모두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는 뚜렷한 징후들입니다.

예전의 한훤수작질이 그저 춥고 덥고 안부 묻는 형식에 그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주고받는 순간 은연중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임을
자각케 하여, 바르고 恭順한 인정을 기르는 덕스런 것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한훤수작질을 하는 인사라면 그래도
심성이 고운 분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임을
준엄히 되물어 자각하는 형식으로
잊혀졌던 한훤수작을 복원하고 싶은 것입니다.

수작(酬酌)한다고 할 때,
이게 수작질이라고 하여 막된 짓거리로 치부되기도 합니다만,
원래 술잔을 주고받는 것을 이르는 게 아닙니까?
하니 한훤수작하는 게 곧 정분을 나누고,
하늘을 걱정하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걱정한다니 말이 참 우습군요.
이게 실인즉 인간 자신을 걱정할 것인데.

국토 아작내 개발하며 잘 벌어쳐먹겠다고 눈깔 시뻘겋게 달구지 않고,
덜 먹어도 좋으니 그냥 분수껏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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