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退已

소요유 : 2009. 5. 2. 18:04


나는 어느 지방 중국 음식점 벽에 걸린 그림 하나를 잠깐 소개한 적이 있다.
(※ 참고 글 : ☞ 2009/04/30 - [소요유] - 范曾雅興)

거기 걸린 그림 하나,
화제(畫題)가 유자무우(有子無憂)라.
나는 애초에 자(子)를 여(予)로 오독하였다.
그래 이게 조금 생경스럽지만 “내가 이제 근심할 바 없다.”
이러한 뜻이거니 싶었다.

그러하다,
그 후 어떠한 이유로 그 뜻을 다시 짚어내야 할 사정이 생겼다.

먼젓번 해석과 다르게,
한편으로는 가만히 생각하니 이게 '子' 字라면,

“자식이 있으니 이제 근심할 바 없다.”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한즉,
그러하다면 그리 새길 수도 있겠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자식이 있으니 이젠 노후 걱정이 없다든가,
대를 이을 수 있게 되었으니 시름을 놓게 되었다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이내 떠오르는 의문은,

“多男子則多懼,富則多事,壽則多辱”
“다남자즉다구, 부즉다사, 수즉다욕”

바로 이 문귀에 비추어 저것은 사뭇 야릇한 화제(畫題)라 여겨졌다.
해서 바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니,
저 그림은 범증(范曾)이란 화가의 작품이고,
유자무우(有子無憂)로 적힌 것임을 알게 되었다.

유자무우(有子無憂)이든,
무자무우(無子無憂)이든,
여하 간에,

이참에,
“多男子則多懼,富則多事,壽則多辱”를 다시 새겨 보려 한다.

이 글귀의 출처는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이다.

요(堯)가 화(華)란 지역에 이르자,
그 곳에 봉해진 사람이 말했다.

“성인이시오. 오래 장수하시길 비옵니다.”

그러자 요가 답하여 가로대,

“사양하노라.”

“그러면 성인이시오. 부자가 되시길 비옵니다.”

“사양하노라.”

“그러면 성인이시오. 다남(多男)하시길 비옵니다.”

“사양하노라.”

그러자, 봉인(封人)이 말한다.

“장수하고, 부귀하며, 자손을 많이 두는 것은 사람의 바라는 바인데,
당신은 홀로 원치 않으니 무슨 까닭이온지요?”

요가 답하여 가로대,

“자식이 많으면 걱정이 많고,
부자가 되면 공연히 번거로운 일만 많이 생기며,
장수하면 욕이나 많이 본다네.
   - “多男子則多懼,富則多事,壽則多辱”
이들 세 가지는 덕을 길러주는 까닭이 되지 못하네.”

하며 사양하였다.

그러자 봉인(封人)이 말한다.

“이제껏 나는 당신이 성인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저 군자(君子)에 불과하도다.
하늘이 만백성을 내놓을 때는 필히 그 마땅한 직임을 주노라.
자식이 많으면 제 각기 알맞은 소임을 맡기면 될 노릇이지 어찌 걱정할 일 있으랴.
또한 부자라면 남에게 나눠주면 될 터이지 어찌 번거로운 일이 있으랴.
무릇 성인이란 메추라기(鶉)처럼 거처를 가리지 않으며,
어미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듯이 자연스럽게 사느니,
마치 새가 허공중을 날아가되 자취를 굳이 남기지 않는 것과 같음이라.
천하에 도가 제대로 행해지면 만물과 더불어 번영하고,
천하에 도가 없어지면 홀로 덕을 기르고 물러나 은둔하면 되노니,
그리 오래도록 살다 세상이 싫어지면 흰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 계신 곳에 이르리.
삼환(三患=病老死)이 따르지 않고, 몸에 재앙이 없다면 어찌 욕됨이 있으랴.”

봉인(封人)은 이리 말하고는 가버렸다.

요가 그를 쫓아가며 이르길,

“청하여 묻겠습니다.”

하자,

봉인(封人)은

“내 이미 물러 돌아가노라.”

하며 사라졌다.

堯觀乎華。華封人曰:“嘻!聖人!請祝聖人:使聖人壽。”堯曰:“辭。”“使聖人富”。堯曰:“辭。”“使聖人多男子”。堯曰:“辭。”封人曰:“壽、富、多男子,人之所欲也。女獨不欲,何邪?”堯曰:“多男子則多懼,富則多事,壽則多辱。是三者,非所以養德也,故辭。”封人曰:“始也我以女為聖人邪,今然君子也。天生萬民,必授之職,多男子而授之職,則何懼之有!富而使人分之,則何事之有!夫聖人鶉居而鷇食,鳥行而無彰;天下有道則與物皆昌,天下無道則修德就閒;千歲厭世,去而上僊,乘彼白雲,至於帝鄉。三患莫至,身常無殃,則何辱之有!”封人去之,堯隨之,曰:“請問。”封人曰:“退已!”

평(評)

봉인(封人)은 원래 제후들의 봉강(封疆)을 지키는 관리(官吏)를 말하는데,
여기 등장한 이는 단순한 일개 관리라기보다는 황로지술(黃老之術)을 익힌 선객(仙客)인 양 싶다.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혹 놓칠까 싶어,
한 가지 미리 짚어 두고 갈 곳을 먼저 잠시 언급하고 넘어간다.
즉,
“千歲厭世,去而上僊,乘彼白雲,至於帝鄉”
이 부분은 내가 앞의 글에서 이야기 한 바로 그 경지와 같다.
(※ 참고 글 : ☞ 2008/02/20 - [소요유/묵은 글] - 바이어스(bias))

다시 말을 이어 간다.
요(堯)가 후대에 성군(聖君)으로 추앙 받지만,

“多男子則多懼,富則多事,壽則多辱”라 이르고 있는 순간,
세속을 초월하였다기 보다는 오히려,
“多懼,多事,多辱”을 염려하는 한,
수자부귀(壽子富貴)를 염원하는 세속인과
그다지 멀리 떨어진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요(堯)는 아직도 이를 경계함으로서,
세상에 바른 정치를 펴고자 노심초사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면모가 읽혀지지 않는가?
외려, 그야말로 그 세속적인 가치를 누구보다 더 절실히 알고 있음이라.

반면 봉인(封人)은,
요(堯)의 말을 일일이 되밟아 가며 매임 없는 경계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에 요(堯)가 가르침을 더 청해 듣고자 쫓자,

“退已!”

이 한마디를 뱉어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여기서의 핵심은 당연 “退已!” 여기에 있다.
봉인(封人)이 요(堯)의 말을 되받아치는 말들은 그저 부스러기 공연한 말에 불과하다.
그는 요(堯)에게 훈수하려고 몇 마디 던져 내놓았지만,
이내 여기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그 자리 현장을 떠나고 만다.
필경 그는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였구나 하고 후회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退已!”

이 말을,
씹던 껌을 땅바닥에 뱉어내듯이,
던져 내놓고 미련없이 사라진다.

그러함이니,
이 글의 요체는,
요(堯)의 “多男子則多懼,富則多事,壽則多辱” 이 말이어든,
또는 봉인(封人)의 “則何懼之有 則何事之有 則何辱之有”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직,

“退已!”

이 한마디에 있음이라.

ps)

나 역시 마지막에 “退已!”라고 뱉어내야 마땅할 일이 되겠거니와,
독자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이를 무릅쓰고, 덧붙여 췌언(贅言)을 부려 내놓는다.

봉인(封人)이 말한,

“退已!”

이 말은 몸이 물러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실인즉 이제까지 뱉어낸 말을 무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나아가 그조차도 다 부질없음이니,
그 전에 주고받음 문답을 무화(無化)함이요,
이전 봉인(封人)이 자적(自適)하던 세계로의 귀환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은,
세이어영수지빈(洗耳於潁水之濱)의 고사를 빗겨 들면 한결 이해가 쉽다.
이 고사의 내용은 이러하다.
요(堯)가 천자의 위(位)를 은자(隱者)인 허유(許由)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자,
허유는 귀를 더럽혔다고 영수(潁水)가에서 귀를 씻었다.
이 때 소부(巢父)가 소를 앞세우고 지나고 있었는데,
그는 허유가 귀를 씻은 더러운 물로 소에게 물을 먹일 수 없다며,
강물 상류로 소를 끌고 올라가 물을 먹였다.
(※ 巢父 : 사람 이름의 경우 父는 대개 '보'로 읽곤 한다.) 

혹여,
미혹인(迷惑人)이 있다면,
내가 우정 이리 개칠(改漆)을 해두면,
봉인(封人)이 내뱉은,

“退已!”

이 말의 뜻이 얼핏 지펴질런가?

아니라면,
그저 흐르는 물에 귀나 씻고 말지니. - 洗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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