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이명박, 소(牛), 학(鶴)

소요유 : 2008. 2. 13. 20:52


이번 숭례문 화재에 즈음하여,
이미 여러 분들이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은 모두 주셨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국민성금’으로 다시 지을 것을 제안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자,
바로 이 지점 앞에 나는 다시 멈춰 서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떠오르는 고사 두가지를 소개한다.

주나라 장왕(莊王)에게 사랑하는 애첩이 있었다.
그 애첩과 사이에 소생이 있었으니, 자퇴(子穨)라는 자가 그다.
이 자는 소를 좋아했다.
친히 수백 마리를 기르는데,
소에게 오곡을 먹이고 무늬있는 옷을 입혔기 때문에
세상에선 그 소를 문수(紋獸)라고 불렀다.
그가 출입할 때는 시종들은 소를 타고 뒤따랐으며,
뭣이고 닥치는 대로 밟고 지나가서 피해가 많았다.

이 자퇴가 후에, 반란을 일으키는 등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다.
하지만,
왕 노릇도 잠깐 정나라의 공격을 받고 도망을 가는데,
그 모습을 볼 것 같으면 이러하다.

... 요행이 자퇴는 서문으로 빠져나가 달아나는 중이었다.
보라 ! 그의 앞뒤로 무늬 있는 옷을 입은 소들이 떼를 지어 따라가지 않는가.
자퇴는 달아나면서도 석속에게,
‘속히 소를 몰라 !’ 고 호령했다.
그러나 살 찐 소들은 잘 걷질 못했다.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추격병이 나타났을 때에야 자퇴는 혼자 달아났다.
마침내 자퇴는 추병(追兵)에게 사로 잡혔다.
그날로 자퇴는 참형을 당했다.

이어, 얘기 하나를 마저 풀어놓는다

위나라 의공(懿公)은 학을 좋아했다.
그는 학을 많이 길렀는데,
우스운 것은 기르는 학은 다 직품과 직위가 있어서 녹을 받았다.
가장 좋은 학은 대부로 봉해졌고, 그만 못한 것은 선비의 녹을 받았다.
위의공이 밖으로 행차할 때는 학들도 또한 반(班)을 나누어 따랐다.
수레 앞에 태우는 학을 학장군(鶴將軍)이라고 불렀다.
궁에서 학을 사육하는 자들도 많은 봉급을 받았다.
백성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거둬들여 학을 먹여야만 했다.
자연 백성들간엔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자가 늘었다.
하지만 위의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때 북적(北狄)이 위나라를 침략했다.
“군사를 소집하라!”
위의공은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군사들을 소집했다.
그러나 위나라 백성들은 적나라의 침략을 피해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위의공은 군사들이 모이지 않자 달아나는 백성들을 잡아들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잡혀온 백성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째서 병역을 기피하고 달아났는가 ?”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주공께서는 한가지 것만 쓰시면 족히 북쪽 오랑캐를 막아 낼 수 있는데,
뭣 때문에 저희들까지 동원하려 하십니까 ?”
위의공이 묻는다
“한가지라니 ? 그게 뭐냐 ?”
“그건 학입니다.”
“학이 어떻게 북쪽 오랑캐를 막는단 말이냐 ?”
“학이 능히 싸울 줄을 모른다면 그건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것이 아니오니까 ?
왕께서는 유용한 백성은 돌보지 않고,
무용한 학만 기르시기 때문에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위의공은 그제야 크게 깨달았다.
“과인이 잘못했노라.
과인은 이제 학을 모두 날려 보낼 것이다.”
위의공은 대궐에 가득한 학을 날려보냈으나,
그래도 장정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이지 않았다.
마침내 위의공은 적군에게 살해 당하고 만다.

***

역시, 이명박은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근원적인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
나는 이리 그를 의심한다.

숭례문은 그저 돌과 나무로 엮어진 사물이 아니다.
마지막 황손 이석은
“숭례문이 불타는 장면을 보며 대성통곡했다”며
“참담한 마음에 밤 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뿐이 아니라,
국민들 역시 소복을 입고 숭례문을 조상하기도 하였고,
눈시울을 붉히며, 아린 가슴을 어찌할 줄 몰라했다.

거기 살아 숨쉬는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가 ?
그대 곁에 묵묵히 서서 겨례의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이 뵈이지 않았던가 ?
호곡(號哭)도, 문상(問喪)도 없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님 앞에서,
무엇이 그리 이명박 마음자락을 잡아 끌며 부추기고 있단 말인가 ?
그저 콩크리트 쳐발라 다른 구축물로
대체하는 게 그리도 바쁜 일이란 말인가 ?

당장 화마로 쓰러지신 저 역사의 영전(靈前)에서
이명박은 국민들 보고 성금을 모아 다시 짓자고 제안하고 있다.

아, 참람스럽다.
저 메마른 마음보 차마 대하기 밉다.

그래,
그의 본 뜻이 여러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다시 짓는 것이
의의가 있으리라고 여겼다고 하자.
그의 뜻을 백번 양보하여 이리 헤아려준다 하자.

그렇다한들,
지금 다시 짓는 것을 논의하는 것이 그리 급하디 급히 중요한 일인가 ?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제 잘못으로 오늘 죽었다 하자.
이 때, 집 식구들한테 ‘각자 돈 걷어 새로 강아지 사서 들이자’ 라고 말하리.
어디 무엇인가 넋이 부실하지 않은 다음에랴 !

새로 사온 강아지가 지난번 강아지를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로서 그 아픈 마음들이 가실런가 ?
그것도 자신의 관리 부실로 잃은 것은 태연히 모른 척하고,
국민 또는 가족을 ‘동원’하여 그 심연보다 더 깊은 슬픔과 분노를
지금 당장 덮자고 권할 수 있겠는가 ?

무엇이 그로 하여금 저런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하게 만들었을까 ?

숭례문 전체를 천막으로 가려 우선 흉한 것 덮고 보자는 맘보,
이명박도 역시 그리 바삐 면피하고픈 심정이 아니었을까 ?
문제의 초점을 은근슬쩍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는 술책 같은 것 말이다.
그가 서울시장 재직시 ‘숭례문 개방’ 책을 마련하였은즉,
시비불문 우선은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 않았을까 ?

게다가,
자퇴(子穨), 위의공(衛懿公)처럼,
국민들을 그저 착취와 동원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삼성중공업 기름 유출사건에 임하여,
연인원 수백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음과 뜻을 보탰다.
하지만, 정작 책임 당사자는 아직 건재하다.

IMF 때도 금반지까지 빼어 보탠 게 국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어찌 뻔뻔히 또 손 내밀어 국민의 호주머니를 겨냥하고 있는가 말이다.

이명박의 저 마음보가 얼추 짐작이 되지 않는가 말이다.

국민도 동원의 대상,
국토도 동원의 객체.

그는 여전히 건설族,
그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로 멀쩡한 국토가 배 갈라, 오장육부가 거죽으로 들어날 형편이듯이,
국민 또한, 그는 온갖 궂은 일 뒤치다꺼리 맡길 봉으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 역시,
소를 기르고, 학을 치며,
저만의 무엇인가를 겨냥하고 있음이 아닌가 ?
그 틈에 국민은 동원만 당하는 게 아닐까 ?
그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엄중히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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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8. 2. 13. 20: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