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

소요유/묵은 글 : 2008. 2. 14. 23:01


저는 산을 자주 가는 편입니다.
낮이고 밤이고 틈만 나면 산에 오릅니다.

밤 늦게 집을 나섭니다.
산뿌리에 이르러 막 하산하는 낯선 이를 마주칩니다.
그 객이 이제 오르면 무섭지 않으냐고 묻습니다.
저는 씩 웃으며 목례를 하며 비껴 오릅니다.

한참 오르다, 서둘러 내려오는 덩치가 곰마냥 큰 등산객을 만납니다.
그 역시 의아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어둠이 무섭지 않으냐고 또 묻습니다.
이럴 땐 숨도 돌릴 겸 서로 마주 서서 짧으나마 얘기가 오갑니다.
전 이리 대답합니다.
무서운 것은 호랑이도 귀신도 아니다.
정작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 역시 그렇다고 하면서도 사람이 있는 아래로 바삐 내려갑니다.

밤 12시에도 2시에도 전 홀로 산에 듭니다.
(야간에 오를 땐, 산주인인 야생동물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양해를 구합니다.)
집에선 귀신 만난다고 걱정을 합니다.
전 차라리 귀신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큰 소리 치며 집을 나섭니다.
아닌게 아니라 귀신이 사람을 겁내면 겁냈지,
사람이 귀신을 겁낼 일이 뭣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귀신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다음을 기약해 봅니다.

아래 oo님이 소개해 주신 "동물 유기실태" 기사를 보셨습니까 ?
사람들이 이리 표독스러운데, 넋 나간 게 귀신이라지만,
아무리 귀신인들 감히 인간을 범할 염량이 있겠는지요 ?

그믐밤엔 산마루 턱에 있는 사찰에 재(齋)를 지내려 오르는 아낙네들을 가끔 만납니다.
산기슭에서 만났을 때는 모두 호랑이 나온다고 벌벌 떠는
그들도 달도 지쳐 숨은 그믐 산길을 무슨 사연이 그리 깊은지
원력을 돋아 어둠을 가르고 오릅니다.

오르는 그들 뒷꼭지를 지켜보며 가만히 밤마중을 합니다.
저들의 지극한 정성에 문득 무엇인가 짠한 기운이 뭉클하니
가슴켠을 싸아 하니 돌아 밤공기 속으로 가만히 사라집니다.
그리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저 아랫녘에선 그리 표독한 인간들도 이리 산에선
모두 가없는 원력를 비옵는 선남선녀로 나툽니다.
무지막스런 저 역시 그들을 흉내내어 원력을 가져봅니다.
내 원망(願望)을 축내도 좋으니
대신 가여운 동물들을 구할 용기와 능력을 주십사 하고 말입니다.

산 중턱 너럭 바위에 허리를 곧추 세워 궤좌를 틀고 밤공기를 셈니다.
동물들에겐 인간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도 지옥주인 염라대왕인들 이리 이유없이 잔혹하진 않을 테지요.
인간에게 정말 깊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들을 어찌 구할 수 있을런지요 ?

oo님 글을 보고 인간에 의해 가엾이 스러진 그들이 생각나 불현듯 주절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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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모음

bongta :

선남선녀(善男善女)는 불교용어이지요.
기왕에 나온 얘기이니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 잠깐 소개하지요.

선남은 우바새(優婆塞), 선녀는 우바이(優婆夷)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착한 일을 하고 三歸依戒를 받고 五戒를 지니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오계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대충 배웁니다만,
그 중 제2계는 不偸盜戒, 不取不與也로 되어 있습니다.
풀이 하자면 "훔치지 마라, 즉 베풀어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황선생님과 전선생님이 지적하신 문제의 지점에선
이미 그들은 선남선녀의 경계를 아득히 벗어났으니
더 이상 선남선녀라 부를 건덕지도 없는 게지요.
이들은 범부사도(凡夫四倒)중 아전도(我顚倒)에 처한 것으로,
쉽게 얘기하면 아집에 빠져 자신만 아는 도착증 환자라 하여야겠지요.

사실 제가 그 부분 글을 쓸 때, 일순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기도 하였지요.
그렇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믐밤 산을 오르는 아낙을 보며,
저 간절한 정성의 일부만이라도 할애하여 남에게 베풀 수 있다면 더욱 좋을텐데,
개중엔 기복적(祈福的)인 망집에 빠진 자도 있으리라 하는 상념을 가끔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전 어둠을 지쳐 등행하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아련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설혹 욕심일지라도 순일하게 간구하는 저 원망(願望)의 실루엣이
나무 그림자를 비껴 향 사르듯 산사쪽으로 사라져 갈 때,
환각처럼 수유의 영원을 접하곤 합니다.

산을 자주 오르지만, 사실 산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비닐봉지, 젓가락, 담배갑, 신문지, 심지어는 ...
주워도 주워도 며칠 가지 않아 또 더렵혀져 있지요.
그 때마다 원망을 하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입니다.
아낙들의 그믐 밤 등행을 보고는 불순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나야말로 불순하다
전 이리 자책하기로 하였습니다.
그저 엄마의 사랑을 기억해 내는 것만 하여도 고마운 일이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그 간절한 소원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
동물들에게도 회향되는 기적을 꿈꾸어 볼 수는 없을까요 ?
저 심원한 모성에너지 샤크티(Shakti)의 숨결이 누리에 가득 넘치는 세상을
기대하는 쪽으로 맘을 걸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이게 전혀 무망한 부질없는 짓일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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