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이외수 고소건 단상

소요유 : 2009.07.02 11:21


소설가 이외수 고소 건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 본다.

사실 이런 따위의 일에 그리 큰 관심은 없다.
다만 오늘 우연히 송지헌의 사람IN에 이외수가 나오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기에,
(http://kr.news.yahoo.com/live/?idx=song08)
몇 자 떠오른 생각들을 여기에 떨구어 본다.

거기 낙숫물처럼 조르르 달린 댓글들을 보다가,
'조폭의 회칼보다 더 잔인한 모욕과 상처를 남기는 악플들'이라며,
이외수씨가 고소까지 하게 된 사연을 보게 되었다.
(http://www.oisoo.co.kr/oisoobbs/bbsVC.asp?t_class=0&sub_class=oisoo&NoticeIDX=&SeqNo=194581&nPage=1&rowcnt=20&Comment=)

☞ 참조 이미지http://img14.imageshack.us/img14/1097/62744180.jpg
                          http://img40.imageshack.us/img40/2645/93343809.jpg
(imageshack은 계정이 없는 경우 링크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데,
차후 시간이 지나면 배꼽표시로 나타날 수 있음.)

소개된 또 다른 링크를 따라 가니 이외수씨가 그 동안 댓거리로 쏟아낸,
악플이 똑같은 양식으로 정리된 것을 아울러 보게 되었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14&eid=AmBz3iT4zxhrKiGOTfopxdwI1WzUlhBb&qb=7J207Jm47IiY&enc=utf8§ion=kin&rank=4&sort)

☞ 참조 이미지 : http://kinimage.naver.net/storage/upload/2009/07/24/628478819_1246375043.jpg
(naver 측의 외부 인용 방지 처리방식에 따라,
 부득이 주소를 복사한 후 주소창에 직접 처넣어야 보임.)

(※ 이미지는 남의 것이라 여기 블로그로 인용하지 않고 link로만 표시한즉,
     클릭하여 일별하시압.)

보통은 넷 상에선 익명성의 그늘에 숨거나,
또는 직접 당사자를 마주하지 않는다는 심리적 해이(解弛) 때문에,
감정이 격해지면 별 주저 없이 욕을 해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는 차라리 현실 세계에서 욕을 하면 모를까,
아무리 분위기가 험악해져도 이제껏 넷 상에서 욕을 한 적이 없다.

이게 내가 현실과 다르게,
넷 상에 이르면 갑자기 점잖아 질 정도로,
수양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나도 성질이 급하고 지랄 같을 때도 적지 않지만,
넷 상에서 벌어지는 싱갱이질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리 쉽게 꼭지가 돌 정도로 흥분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이유이다.

게다가, 몸을 날리며 싸움박질을 하는 것이 아니고,
기껏 말, 글로 댓거리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할진대,
내가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기에,
오히려 무리하게 억지 쓰는 이들을 상대하면,
그들을 한껏 요리하는 것을 즐기며,
한참 놀아주는 재미가 있을 때도 많다.

하지만, 상대가 도통 사리가 통하지 않는 인사라면,
이때는 그저 수준이하의 인간으로 치부하고 상대하지 않으면 그 뿐이다.

그러하니, 악의의 유언비어를 퍼뜨려 직접적으로 모욕을 하거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이 아닌 한, 까짓 욕설이 난무한들 까짓 것이 무슨 대수랴.
욕설 몇 마디 듣는다고 나의 명예가 실추될 까닭도,
모욕을 당하였다고 고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나의 생각이다.

물론 그러하다고 욕설이 정당하거나, 점잖은 짓거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그들의 비루한 행색모용(行色.貌容)을 도저히 용인할 수도 없지만.
(참고로 나는 현실의 세계에선 질서사범에 대하여는 구청, 국립공원 당국 등에 신고를 곧잘 한다.
내 명예를 지키자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를 그저 두고 볼 수 없기에.)

더욱이 넷 상의 토론, 대화라는 것은,
암묵적인 동의가 피차간 성립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게 곧 무엇인가?
바로, 주먹, 발길질이 아닌,
오로지 글로서만 대화하거나 승부를 결할 뿐이라는 것을 상호 묵언으로써 합의한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하니,
주고받는 욕설이라는 것을 들어 상대를 고소한다는 것을,
나는 적이 비신사적인 노릇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당하여 분심(忿心)이 생긴다면,
이치를 잘 살피고 논리를 벼려 세워,
글로 상대를 눌러버리는 것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권(拳), 퇴(腿), 검(劍)이 아니고,
글로 승부하자고 피차간 묵시적으로 합의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 공간 안에서 넷질이건 디씨질이건 하자는 게다.

저 위에 2번째 이미지를 보면,
이외수씨도 한 때는 한바탕 실컷 배설하고 놀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한 것을 자신이 나이가 많다든가, 모욕감을 느낀다고,
뒤돌아 맘껏 파탈하여 놀자는 게임의 규칙을 헐을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넷이란 철저히 절대평등한 공간이다.
그 자리에서 내 나이가 얼마인데,
내가 사회에서 얼마나 저명인사인데, ...
따위로 신분을 드러내고, 지위를 과시한다면,
넷 세상을 아직 충분히 모르는 것이다.
(※ 참고 글 : ☞ 2008/12/12 - [소요유/묵은 글] - 아름품과 꽃바다(華嚴))

입 달린 자,
목구멍 찢어 마음껏 제 이야기를 토해내고,
손 달린 자,
부르트도록 키를 두둘기며 세상을 향해 제 사상을, 울분을, 기꺼움을 발하자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누천세 꿈꾸던 세상이 아닌가 말이다.
이외수씨 역시 한 때 꿈꾸지 않았던가?
'꿈꾸는 식물' 이라!
역시나 꿈은 죽어야 하나?
그러하다면 그를 죽이는 자는 누구인가?
나는 멈추어선다.
그게 지금 혹 여기 이외수씨 자신이 당자로서 서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오늘의 우리 땅에서는,
사이버 모욕죄를 만들자고 외치는 사악한 무리들이 있다.
이외수씨라면 이들을 향해 일갈을 해줄, 우리들 마지막 형님으로 남아 계셔야 되는 것 아닌가?
아우들이 최소한 그런 긍지도 가질 수 없다면,
도대체 그의 책을 한 때 탐했던 그 젊은이들의 순결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말이다.
디씨인사이드는 허리띠 풀고, 웃 단추 풀고
너나들이로 맞짱 붙어 놀자는 곳 아닌가?
그러한 곳이 싫다면 애저녁에 들르지 말았어야 옳다.

나는 취향상 디씨인사이드 같은 곳은 거칠고 천박하여 거의 들르지 않는다.
그렇다한들, 거기 노나드는 이들을 나와 다르다고 탓하거나 비난할 이치도 없다.
각자는 자기 나름, 자기 식대로 사는 것.

이외수씨가 물론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이야말로 인품이 사뭇 곧고 바르며, 영성이 남다르니 얼마나 훌륭한 양반인가 말이다.
혹여, 어찌 어찌 엮이다보니, 일말의 자존심이 다치셨을 터이고,
애초 상대를 나무랐을지언정 그리 일방적으로 몰아갈 터수도 아니었을 것이라,
다만 상대가 곱다시 물러서지 않고, 2차로 되 엉겨 붙으니,
이를 다스리다보니 그리 극한으로 떠밀려간 소이연이 있다는 것을 일응 인정할 구석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외수씨가 고소 건으로 설사 이겼다한들,
건져 남긴 것은 별반 없게 되리란 것을 확신한다.
수지맞지 않는 장사를 하게 된 이유는,
그리 거친 곳으로 놀러갔으면,
그 동네 풍속대로 놀아주었어야 하는데,
너무 체면을 차리다 보니 일이 사뭇 꼬인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라면 차라리 애저녁에 넷질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데, 저 위에 두번째 이미지를 보면,
그의 넷질은 젊은 아이들도 한 수 아래로 접어줄 정도로 경지가 드높다.
나로서는 감히 넘겨다 보지도 못하고, 그저 우러러 볼 뿐.

한 때,
나는 벽오금학도, 칼 등을 읽고 나른한 공상의 세계를 밤새도록 날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차오르자 그의 책을 밀어둔지 자못 오래 전이다.
사뭇 그의 책, 그의 세계가 싱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덧, 내 삶보다 그의 책이 한결 밍밍해져 재미가 없어진 게라.

하지만,
내 젊은 시절 그의 책만큼,
화려하니 슬픈 안개비 우수에 젖어 들고,
피 끓는 용기가 솟도록 부추긴 것이 그에 어디에 또 있으랴.
또한, 갈피마다 숨겨진 비의(秘儀)는 밤하늘의 별처럼 얼마나 신비로왔던가?
게다가 재미도 만땅이라,
이외수 선생을 나는 사뭇 좋아하였던 바라.

그것은 그렇다한들,
말이다.

그가 시전(施轉)하여 도(道)의 세계를 책 한 구텡이에다 늘 깔아둔 형편이라면,
남들이 그를 도인이라고 부른다한들 그게 어디 덧날 일인가?

그러하다면,
어찌 하여 구름 위에 지어진 넷이란 채색(彩色) 누각(樓閣)을 벗어나,
지금 황혼녘에 누항(陋巷)을 거닐며,
어린 아이를 상대로 속인(俗人)들처럼,  
저리 누추한 삿대질, 송사질을 할 까닭이 있으랴.
도인인 형편에 말이다.

그저 두어라!

그가 잠깐,
삶이 무료하다면,
남들과 함게 어울려,
넷 상에서 얼마든지 배설(排泄),
그리고 그를 수수거래(收受去來)할 수 있음이라.
그게 욕설이 되었든, 모욕이 되었든,
그것은 또한 그것대로 도인의 길, 신선의 도락이 아니어든가 싶은 것이다.

허공중에 칼질을 비록 수천번 하였다고한들,
벽공(碧空)이 누렇게 뜨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외수의 신검(神劍)도 이젠 늙은 그의 몸둥이처럼 쇠락하고 있음인가?

다 놔두어라!
무엇을 더 지킬 것이 있단 말인가?
젊은 날 다 버리고 떠난 그의 기행(奇行)에 비해,
오늘 늙은 날, 그의 움켜쥔 모습은 왠지 초라해보인다.

그가 말한 가난이 문학과 삶의 동력이었다면,
그러하다면, 그의 젊은 날의 기행은 그럼 가난이 부른 그저 억지 유인,
그 이유에 불과하단 말인가?
행여인들 아니길 바라지만, 만약 그러하다면 이 얼마나 우울한 노릇인가?

나는 그가 아직도 젊고 푸른 '칼'을 지니고 있길 소망한다.
그도 그지만,
나의 젊은 날의 청초(淸楚)한 추억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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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필부필부 2009.08.13 08:29 PERM. MOD/DEL REPLY

    네.... 어찌 이리도 명쾌하게 마음을 서스름없이 글로 표현하시는지
    저 역시도 그러한 면에서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제 그분도 '작가' 라기보다는 '연예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그분이 인기 작가가 되는 순간부터...

    그냥 세상이 다 그런듯 합니다.

    누구나에게 있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자들이

    도덕과 정의의 탈을 쓰고 멋지게 보이려는 아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그래서, 외양이고, 내면이고, 정신이고, 모든 면에서 남과 달리 튀려는 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유치함으로 마음이 어린자들을 쉽게 유혹하니까요.

    사용자 bongta 2009.08.13 13:02 신고 PERM MOD/DEL

    이번 사건을 접하기 전에는,
    이외수는 책갈피 삼아 어느 서책 한가운데 꽂혀,
    잠자고 있던 곱게 바랜 단풍잎 같은 존재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펼쳐보니 시나브로 누렇게 변해 있더군요.

    아,
    그 누가 그랬던가요?
    옛 추억을 정녕 사랑한다면,
    그를 불러내 오늘 현실에서 다시 만나려 하지 마라.

    늘 그러하듯,
    사랑은 새벽 물안개 같은 것.
    동녘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 역시 서서히 사라지고 마는 것.

    침몰하는 것은,
    사랑 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육신도 시간이란 강물 속으로 서서히 잠겨 가고 있습니다.
    슬픈 노릇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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