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배반의 장미

소요유/묵은 글 : 2008.02.15 13:53


배반의 장미,
예전 어느 TV드라마 제목쯤 될 것입니다.
배반이란 주제어를 떠올리며, 번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배반의 장미”란 말.
그 연속극 내용도 잘 모르면서 그저 차용했습니다.
배반과 장미는 이질적입니다.
이들은 서로 마주 잡은 악수 속에서 각기 추상하는 이미지를 서로 등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므로서, 외려 배반이란 글 뜻을 도두라지게 잘 드러내고 있음입니다.

살면서 필경은 크건 작건 배반을 당합니다.
背反, 자의상으로 보면 이게 등을 뒤집어 척진 모습이니,
이제까지 정면으로 마주하여 서로 웃음을 나누던 사이가
어느 날 아주 쌀쌀하니, 갈라선 모습을 이어 떠올리게 됩니다.
이배향지(以背向之)
등 돌려 제 길을 향해 뿔뿔이 흩어져 걸어가는 것.
어쩌면 이게 정답일런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딱 그 정도의 무게만큼,
이 역시 정답이 아닐런지요 ?

어차피 사람은 고독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자신의 운명은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아니, 그리 할래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하니, 조금 일찍 제 갈 길로 갈라져서 걸을 일이 생겼다면,
각행기로(各行己路)
각자는 제 행로를 나서야 할 따름이 아니럴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럼 그동안의 신뢰는 어찌하겠느냐 말입니다.
깊은 마음의 우물에서 길어올려,
상대를 그윽한 눈길로 적셔주던 그 신뢰는 이젠 어떻게 됩니까 ?

끼룩끼룩 짝 갈매기 정답게 날듯,
팔짱 끼고, 어깨를 나란히 걸었던 그날 그 해변가의 추억은 어쩌란 말입니까 ?
햇빛 나리는 길 따라 사금파리 같은 금빛 웃음을 부셔내던 그 歷史,
달빛 속에 피어난 박꽃처럼 수줍어하던 우리들의 그 은빛 神話는
이젠 어느 골에 파묻어버려야 한단 말입니까 ?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한유(韓愈)가 그의 文友인 유종원(柳宗元)의 묘비명에 쓴 글을 다시 음미해봅니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 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이치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정분도, 사랑도 마지막 제 자존을 지켜내지는 못합니다.
제 이해(利害)는 사랑보다 더 모질게 우리를 복속시킵니다.

슬프게도, 배반은 존재의 끝에 나타납니다.
사물이든, 인간사이든 있음의 마지막 여로에서 맞닥뜨리는 그것.
이게 문제입니다.
신뢰의 막다른 골목, 마지막 순간에 드러납니다.
맨 앞도 아니고, 중간도 아닌 마지막에 죽음처럼 나타나,
신뢰의 멱줄을 따버립니다.
관계가 끊어진 자리,
그래 저는 배반을 존재의 사망이라고 부릅니다.

처용은 동경 밝은 달 늦도록 돌아다니다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임을 목격합니다.
이 때 처용은 “빼앗은 것을 어찌 하리오”하며 체념합니다.
범인(凡人)은 분심(忿心)을 넘어 체념만도 벅찬데,
관용까지 베풀었다면,
처용은 정녕 사람은 아닐 양 싶습니다.
그렇다면 미상불 그는 용의 아들이었음이 틀림없을 터입니다.

배반이 신뢰의 끝트머리에서 나타난다면,
그럼 신뢰를 나누는 그 긴 시간에 우리들은 어찌 처신해야 한단 말입니까 ?
만약 배반이 예정된 것이라면,
신뢰는 배반을 잉태하던 그 긴 여정에서 과연 온전히 작동될 수 있는가 ?
신뢰를 배 갈라 나누고, 배반의 비바람이 잉태되던 그 언덕 위에서,
한편은 배반을 예비하고, 한편은 무지하다 할 때,
무지가 가졌던 신뢰도 신뢰라 이름할 수 있는가,
또는 상대를 방비하던 신뢰도 신뢰라 이름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봉착하게 됩니다.

만약 배반이 필연이 아닌, 우연이라면,
잊으므로서, 배반을 예비하지 않고 사는 게 현명할런지요 ?
그러다, 마지막 운 없이 맞닥뜨린 그것은 그냥 마른 벼락이라고 치부해야 할런가요 ?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고사가 있습니다.
먼저 인용해봅니다.

“어느 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미생의 이야기를 두고 여러 사람의 의견이 구구하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이를 두고 미생을 우직하다고만 나무랄 수 없다고 평합니다,
하지만, 장자는 명분에 이끌려 목숨을 잃는 미생을 도척의 입을 빌어 어리석다고 비웃습니다.

신뢰가 죽음까지 불사할 절대 가치인가 아닌가 ?
우리는 지금 공자와 장자 사이만큼의 떨어진 거리, 그 가운데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 쯤 서 계신지요 ?
신뢰란 저울대 한가운데, 배반이란 저울추를 달고 무게를 답니다.
인생의 무게란 그래서 저리도록 아프고, 아슴프리 슬픕니다.

저는 지금 여기 공자와 장자 사이에 서서 이 틈을
한비자의 말씀을 끌어 들여 빛 모으듯,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

원래 한비자는 출신이 韓나라란 작은 나라의 公子입니다.
그의 활동시기는 기원전 3세기 때입니다.
그는 말더듬이였지만, 글을 잘 써,
일찍이 진시황은 그의 글을 읽고는 이 자와 교분을 맺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토로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는 법가(法家)의 진정한 완성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노자, 공자보다 그를 더 사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흔히 오해되듯이 냉혹해서가 아니라,
그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그의 슬픔을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비자가 말한 것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상고시대에는 도덕으로 다투었고, 中世에는 지모로 싸웠다.
그러나 지금은 힘으로 서로 견주고 있다.”

그의 이 말은 전국시대 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2200여년이란 역사의 벽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 생생히 가슴팍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 참고로 춘추시대보다 전국시대는 더 망가진 시대입니다.
온 나라가 부국강병을 기치로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고자
혈안이 된 말 그대로 천하 쟁패의 시대입니다. -

당시에 이미 옛날처럼 정의(正義)란 기치를 내 걸고,
그에 따르고 살면 족한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정의는 힘을 잃고, 대신 힘이 정의가 돼버린 시대.
그러므로 그런 시대 상황을 외면하고는 누구라도 제대로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비자는 그런즉 정의를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악의을 선택하였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비자의 악의에는 인간을 향한 진한 애수가 번져 있습니다.
그가 선택한 악의란 형태를 달리한 선의의 다른 이름일런지도 모릅니다.
그가 말하는 악의란, 선의로부터 이탈된 인간의 선의에 대한 역설적인 갈망인 것입니다.
한비자에겐 악의란 이 어지러운 천하를 독해낼 수 있는 유일한 key word이자,
이를 통해 천하를 구원해낼 추동력으로 택하여진 것입니다.

9년 치수 삼과기문불입(三過其門不入)의 주인공,
“禹王도 강을 다른 곳으로 흐르게 하자, 마을 사람들이 기왓장을 우에게 던졌다”라며
한비자는 말합니다.
자연을 정복하는 행위는 분명 악이겠으나,
우가 행한 惡으로 인해 해마다 겪었던 장강의 범람은 다스려지고,
사람들은 농사를 편하게 짓고 잘 살게 됩니다.

인간이 부르던 사랑 노래는 이미 돈 타령으로 으깨져버렸습니다.
그런즉 한비자가 택한 악의란
그 상실된 사랑에 대한 슬픔이자 분노에 다름이 아닐런지요 ?
이미 깨져버린 사랑을, 부르짖지만 그 소리는 공허한 골짜기를
장송곡처럼 메아리쳐 나갈 뿐입니다.
그러하니, 한비자는 사랑을, 신뢰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두들 사랑을 노래하고, 신뢰를, 정의를 부르짖지만,
그 위선에 한비자는 악의를 비수처럼 되들이밉니다.
이 역설적 형식을 통해 한비자는 슬픔과 분노를 토해냅니다.
그러하니, 한비자란 흔히 잘 못 알려진,
저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법가가 아닐 것이라
bongta는 짐작해보는 것입니다.
그는 전국시대, 가장 위대한 휴머니스트라고 저는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노장의 무위자연(無爲自然),
공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
한비자의 형명법술(刑名法術)

거죽으로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사상인 듯싶습니다만,
실인즉 모두 인간을 향한 절절한 호소가 아닐런지요 ?
이를 저처럼 슬픔과 분노로 독해하여도 되겠습니다만,
기쁨과 환희로 독해한들 아니 될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지요 ?

저 역시 곧잘 분노하고 슬퍼합니다.
저는 이 극적인 allegory를 통해 상실된 사랑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allegory는 제가 아닌 그 부재를 증명하고 있는 alibi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alibi는 분노와 슬픔이란 제 allegory를 통해 通天弔喪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도리천으로 부터 강하 :
어머니(마야)에게 설법을 하기 위해 도리천에 올라가 머무르며 설법을 한후 지상으로 내려온다.
여기 불족적은 부처를 상징한다. 이를 allegory라 한다.)

한비자는 법술(法術)이라 하여 法뿐이 아니라 術에도 밝습니다.
배반을 미리 읽고, 신뢰를 어찌 관리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 실천술 내지는 사례 몇가지를 한비자를 통해 알아 보면서
위에서 말한 공자와 장자가 양쪽 끝에서 들고선 저울대에 매달린 저울추를 옮겨
신뢰의 무게를 달아봅니다.

韓昭侯握爪, 而佯亡一爪, 求之甚急, 左右因割其爪而效之. 昭侯以此察左右之誠不.

한나라의 소후는 깍은 손톱 하나를 잃은 척하고, 심히 나무라며 찾게 했다.
그러자 근신중 한 사람이 자기 손톱을 잘라 내놓는 자가 있었다.
그래서 소후는 그 자가 성실치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비자는 따뜻한 신뢰 대신 차가운 관리(管理,management)를 택했습니다.
특히 사람을 부리는 입장에 있는 군주는 선의에 의지해서는 아니 된다고 주장합니다.
선의는 순간적으로 연소해버리는 감정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비정한 것이며,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며,
선의는 언제라도 악의로 변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선의는 왜 지속되지 않는가 ?
이 미덥지 않은 것을 대신해서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가를 인간 본성과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함으로서 찾아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게 법술(法術)로 귀착된 것입니다.

昔者彌子瑕有寵於衛君. 衛國之法: 竊駕君車者罪?. 彌子瑕母病, 人聞有夜告彌子, 彌子矯駕君車以出. 君聞而賢之, 曰:?孝哉! 爲母之故, 忘其犯?罪.? 異日, 與君遊於果園, 食桃而甘, 不盡, 以其半?君. 君曰:?愛我哉! 忘其口味, 以啖寡人.? 及彌子色衰愛弛, 得罪於君, 君曰:?是固嘗矯駕吾車, 又嘗?我以餘桃.?

미자하는 위나라 임금에게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 법에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탄 자는 월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 bongta 註 :  월형?刑은 중국 고대 형벌 오형중 하나로 발뒤꿈치를 베는 형벌임.)
그런데, 어느날 밤,
어떤 사람이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사실을 미자하에게 알려 주었다.
미자하는 임금의 명이라 속이고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어질다고 여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위하느라 월형의 죄를 범하는 것도 잊었구나.”
어느 날은 미자하가 임금과 더불어 과수원을 노닐면서 복숭아를 따먹다가
맛이 달다고 다 먹지 않고 남은 반을 임금에게 드렸다.
임금은 기뻐하며 말했다.
“나를 사랑하여 맛있는 것도 제가 다 먹지 않고 나에게 먹게 하는구나.”
그러다가 미자하의 고운 얼굴빛이 시들고 총애가 식어져서 임금에게 벌을 받게 되었다.
임금은 말했다.
“미자하는 본래부터 그랬다. 일찍이 나의 수레를 내 명령이라고 속여 탄 일도 있고,
자기가 먹다 남긴 복숭아를 내게 먹인 일도 있었다.”
(※ 미자하 : 남자임.)

유명한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미자하가 한 행동은 하나지만,
임금의 사랑에 따라 선악이 뒤집혀집니다.
그러하니 설득의 어려움은 정작은 설득의 내용이 아니라,
설득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이 쪽의 마음을 거기 꼭 들어맞게 하는데 있다고
한비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 이후, 저는 복숭아를 깨물어 먹을 때,
가끔 미자하를 생각합니다.

위나라의 어떤 부부가 신에게 빌었다.
부인이 소망을 말했다.
“저에게 재난이 닥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백묶음의 돈이 내리게 하소서”
“어쩌자고 그리 째째한 소원을 비는거야”
남편이 이리 힐난하자 부인이 대답했다.
“어째서라니요. 이 보다 더 많으면 당신이 첩을 거느릴 것 아니오.”

부부간에서도 이해관계는 이리 입장에 따라 다릅니다.
한비자에게 신뢰를 묻는다면 그는 인간사에 이미 배반은 당연한 것인즉,
사전에 법술로 통제, 관리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을 저본(底本)으로,
양극단에 선 공자와 장자의 태도를 가로질러 저울대로 삼고
한비자의 실천적 법술을 저울추로 “신뢰”를 간단히 칭량(稱量)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가지신 신뢰란 저울의 저울추는 지금 어느 눈금에 멈추어 있는지요 ?

그런데, 여기서 멈추고자 하니, 노파심이 문득 이는군요.
무엇인가 하니, 글 흐름이 한비자에서 맺어 그치니,
혹 한비자의 사상이 최상의 바람직한 것으로 오독될 우려가 있겠거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가지 고사를 더 인용하는 것으로 하여, 그 우려를 불식하고자 합니다.

춘추오패의 하나로서, 일세의 영웅 초장왕(楚莊王)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투월초의 반란을 집압하고 크게 잔치를 벌입니다.

######

'과인이 풍류를 즐기지 않은 지 6년이다.
이제는 역신도 제거되어 나라가 안정을 찾았으니
문무관원들은 실컷 마시고 마음껏 즐기도록 하라.'

임금과 신하들은 푸짐한 음식과 흥겨운 풍류로 하루를 즐겼다.
저녁이 되어도 흥이 다하지 않자,
장왕은 불을 밝히고 사랑하는 허희를 시켜 여러 대부에게 술을 돌리게 했다.
술잔을 받은 신하들은 자리에서일어나 받아서 마셨다.
그런데 난데없는 광풍이 연회석을 휩쓸자 모든 촛불이 일시에 꺼져버렸다.
미처 불을 켜지 못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허희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허희는 깜짝 놀라 왼손으로 소매를 잡아 뽑고 오른손으로 그 사람의 관끈을 잡아당겨 끊었다.
관끈이 끊어지자 그 사람은 크게 당황하여 허희의 손을 놓았다.
허희는 관끈을 들고 서둘러 장왕 앞으로 달려가 조용히 고했다.

'첩이 대왕의 명을 받들어 백관에게 술을 돌리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무엄하게도 촛불이 꺼짐을 틈타 첩의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첩이 그 자의 관끈을 잡아당겨 끊어왔으니
빨리 불을 밝혀 그 무례한 자를 찾아내도록 하소서.'

그러자 장왕은 다음과 같이 명했다.
'오늘 이 연회에서 경들과 마음껏 즐기기로 약속했다.
경들은 모두 관끈을 끊고 실컷 마시자.
관끈이 끊어지지 않은 자는 마음껏 즐기지 않은 자이다.'

백관들이 모두 관끈을 끊은 후에 장황은 촛불을 밝히라고 명했다.
결국 허희의 손을 잡은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연회가 끝나 궁으로 돌아온 허희는 장왕에게 고했다.

'신첩은 남녀 간에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더구나 군신 간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왕께서 여러 신하에게 술을 돌리라 시키신 것은 신하들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무엄하게도 신첩의 손을 끌어당긴 자가 있었나이다.
그럼에도 대왕께서는 그 자를 색출하지 않으셨으니,
어떻게 상하 관계가 유지되며 남녀의 예의가 바로잡히겠습니까?'

이 일은 여자가 알 바 아니다.
옛날 군신이 술자리를 같이 할 때는 술은 석 잔에 불과했으며,
낮에만 열고 밤에는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인이 모든 신하들에게 마음껏 즐기도록 명했고,
낮에 이어 밤까지 불을 밝혀 즐기도록 했다.
술 취한 뒤의 광태는 인간의 본성이다.
만약 그 자를 찾아내어 벌을 가하면 그대에게도 아름다울 것이 없고
국사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신하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할 것이며
과인이 명한 뜻에도 어긋나지 않겠는가?'

허희는 장왕의 넓은 도량에 탄복했다.

######

이게 그 유명한 절영회(絶纓會)란 고사입니다.
(* 纓은 갓끈 영이니, 절영회란 곧 갓 끈 끊어진 잔치란 뜻입니다.)
그 때의 갓 끈 끊어진 당사자가 당교(唐狡)란 이인데,
후에 전쟁터에서 늘 선봉에 서서 용감히 싸웠고,
초장왕을 위기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구하곤 하였습니다.

후에 염옹은 이를 시로 읊었는데,
말귀에
축어수기십분청(畜魚水忌十分淸)이라며 영탄(詠嘆) 합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畜이 가축 축이지만, 여기서는 기를 축으로 새겨야 하니, 곧 기를 양(養)의 뜻입니다.
그러하니, 고기를 기르는 물은 십분(요즘 말로하면 100%) 맑은 것을 꺼린다.
이 정도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시체말로는 “물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가 되겠습니다.

이리 소개하는 것으로 혹 오독하여,
한비자가 뿜어내는 毒으로 스스로를 훈증(熏蒸)하는 이가 있었다면,
이리 中和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감하려니, 또 한가지가 눈에 띄네요.
“물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
이 말 말입니다.
이게 상당히 오용되고 있기에 차체에 한마디 더 보탭니다.

이 말을 보통은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가 인용하곤 합니다.
“다 그렇고 그런 세상, 너도 더럽고, 나도 더러우니,
너무 그리 성깔 더럽게 깨끗한 양 놀지 말고 적당히 어울려,
덮고 지나가자...”
이런 기분으로 내지르곤 합니다.
그런데, 위 예에서 보듯이 이 속담의 진의는 그러자는 게 아닙니다.
관용(寬容)의 덕을 말하고 있는 게지요.
하니, 이 속담은 비리 당사자가 절대로 인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를 너그럽게 용서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행동으로서
용서를 베풀 때라서야, 사후에 그로부터 인용되어질 수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만약 그의 용서가 없다면,
그 물의 더러움은 일푼(一分)인들 가셔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정작은 일푼일지언정 그 죄를 무겁게 자각하며, 조신하니 엎드려
살아감으로서 십분청(十分淸) 축어수(畜魚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
일분탁(一分濁) 열명이면 십분탁(十分濁)이니,
축어수(畜魚水)가 아니라 살어수(殺魚水)임이어니,
감히 어찌 죄인이 참람스러이 나서서
언감생심(焉敢生心)
축어수기십분청(畜魚水忌十分淸)를 동원할 수 있음이겠습니까 ?

제가 늘 말씀드리듯이,
인용과 동원이 이리 천양지차로 다른 소이가 또한 이러합니다.

'소요유 > 묵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무(文.武)의 진실과 그 화해를 위하여  (0) 2008.02.15
기우(杞憂)  (2) 2008.02.15
어둠의 계조(階調)  (0) 2008.02.15
배반의 장미  (6) 2008.02.15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  (0) 2008.02.14
information source & sink & connector & breaker  (0) 2008.02.14
피로(披露)와 피력(披瀝)  (0) 2008.02.14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1. 은유시인 2010.04.10 15:24 PERM. MOD/DEL REPLY

    절절이 공감하고 그러기에 너무 공분이 가는 말씀입니다.
    요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선 지구온난화로 빙산이 녹고 있는 것에 대해
    숱한 경고를 날리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들으라고 날리는 경고인지 헷갈립니다.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쓰레기 덜 버리고 기름 덜 쓰고 나무 덜 쓰라는 것 같습니다만,
    그런다 하여 빙산이 덜 녹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현재도 원시림이 계속 파헤쳐지고 석유재벌들은 석유를 계속 퍼올리고 있잖습니까?
    그네들도 그렇지만 소시민들조차 지구가 부셔지든 망가지든 별 관심도 없어보입니다.
    100년 내로 지구가 초토화되지 않는 이상 제 목숨 붙어있을 때 지구가 멸망하지만 않으면
    후손 따위가 어찌되든 관심이 없는게 인간인 듯합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리 생각하는데
    그래서 저 또한 제가 죽은 뒤의 지구가 어찌되든 상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지구가 빨리 망해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지요.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일부러 창조해냈으리라 봅니다.
    수명이 다한 지구를 인간더러 처리하라고 창조했다는 생각이지요.

    사용자 bongta 2010.04.12 21:46 신고 PERM MOD/DEL

    쓰레기.
    제가 북한산 등행시 쓰레기를 줍고, 당국에 신고하며 부산스럽게 나대었지만,
    그야말로 격화소양(隔靴搔癢)격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시골은 더합니다.
    밭에다 폐비닐 태우고 생활쓰레기도 태웁니다.
    제가 이곳에서 쓰레기봉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두들 쓰레기를 태워버린다는 이야기에 다름없지요.

    아주 천박한 시민들입니다.
    이를 방치하고 있는 국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 은유시인 2010.04.15 23:55 PERM. MOD/DEL REPLY

    저도 한 때는 산에 놀러가면 남이 버린 쓰레기도 수거해오곤 했습니다.
    그런 짓이 별 의미가 없더군요.
    어딜가든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를 안 버리는 사람 보기가 힘들 지경이지요.
    그러니....
    환경운동가나 내셔날지오그래픽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지 실상 별 효과가 없어보입니다.
    저 살아있는 동안은 지구가 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저 죽은 뒤에 지구가 망하든 말든 상관 않기로 했습니다.
    인간이 멸종하면....
    아마 원숭이들이 만물의 영장이 되어 지구를 잘 보존할른지 모릅니다.

  3. 사용자 bongta 2010.04.17 08:17 신고 PERM. MOD/DEL REPLY

    제가 북한산에 올라 조그마한 비닐조각까지 다 주워왔는데,
    이젠 우리밭에 있는 비닐조각을 외면할 수 없지요.

    남에게 일부 빌려준 것도 회수하였지만,
    며칠 전에는 도로변에 면한 도랑을 청소하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이제 밭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외부를 향한 선언 입니다.
    또는 시위라 해도 좋습니다.

    땅을 기다시피하면 비닐 조각까지 일일이 줍고자 합니다.
    먹거리 생산하는 땅을 정갈히 하지 않고 농사를 짓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지나가던 할머니 한분이 말씀하시길,
    몰라보게 달라져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아마도 대다수는 유난 떤다고 뒤에서 조롱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군요.

    시골은 제가 사는 북한산 자락에 비해서 외려 더 공기가 좋지 않습니다.
    요즘 어디선가 종일 폐비닐 태우는 냄새가 등천합니다.
    폐비닐은 모아두면 당국에서 자동으로 쳐가는데,
    왜 밭에서 태우는지 참으로 딱도 합니다.

    문득 시골이 싫어지기까지 합니다.
    요즘철엔 여기 서울 북한산보다 더 공기가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하는 사람들은 소인혁면(小人革面)을 바로 상기하게 합니다.
    자신에게 득되면 바로 얼굴이 화해지고,
    조금이라도 손이 나면 이내 얼굴이 굳어집니다.
    의지하는 바가 오직 利에 머무르고 있음입니다.
    '옳고 그름'에 居하지 않습니다.
    즉 '경우'가 없는 소치입니다.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이라고,
    역시나 사람의 길은 義를 따를 일이지,
    利를 밝히는 것이 옳지 않음을 새삼 되배우고 있습니다.

    심훈의 상록수 주인공 채영신을 생각합니다.
    도대체 이 시골사람들을 어찌 계몽하였는지,
    그의 천신만고 고심참담함을 헤아려 봅니다.

  4. 은유시인 2010.04.19 02:15 PERM. MOD/DEL REPLY

    시골인심이 후하다는 것도 옛날얘긴지, 아님 지어낸 얘긴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우리네 인심이 그리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요?
    그저 적당한 간격을 두면서 사람을 사귀어야지
    간 쓸개 다 퍼줄 것처럼 사귀다보면 꼭 뒤통수를 치게 마련이지요.

    2년여전 소설의 무대가 함양산청과 거창인지라
    현지 답사를 하려 12월 20일경에 찾은 적이 있습니다.
    저녁 6시경에 현지에 도착했는데 이미 날은 저물어 바로 코 앞도 분간 못할 지경이었는데
    노인들만 사는 시골인지라 누구하나 잠잘 공간 하나 내주질 않더군요.
    물론 이해는 합니다.
    흉악한 강도들이 깡촌까지 뒤져가며 행패부렸겠기에 사람 겁 날만도 하지요.
    마을회관이 있음에도 하룻밤 신세를 거부당했고
    어두운 신작로를 4~5킬로 덜덜 떨며 걷다가 겨우 지나가는 택시를 탔는데
    바가지 요금을 요구하더군요.
    3~4천원 거리를 무조건 1만원 내라는 겁니다.
    이런일들이 비일비재하여
    어느놈이 선한 놈인지 어느놈이 악한 놈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남의 어려움을 이용해 불로소득을 올리려는 놈들이 거의 대부분이니까요.

    사용자 bongta 2010.04.19 22:10 신고 PERM MOD/DEL

    저 역시 시골인심이 좋다는 것은 제 경험으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여럿 접해보았지만 서너분 말고는 막감당 이더군요.
    가장 거래하기 어려운 것은 경우가 없는 사람들을 만날 때입니다.
    무작정 제 욕심 차리느라 바빠 염치 저버리고 덤벼드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요새 밭에서 비닐을 줍습니다.
    하루 두 이랑 처리하기도 벅찹니다.
    모두 다 거둬내려면 얼추 일주일 이상 예상됩니다.
    이게 주말농사 1년차 시절 남에게 땅을 빌려준 업보입니다.
    그자는 가을에 비닐을 거둬달라고 하였더니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임대료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밭을 갈아 우리는 조금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그자가 사용하라는 조건이었지요.

    여기 얽힌 이야기를 하자면 소설을 써야할 지경입니다.
    저는 밭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비닐을 다 주어낼 것입니다.
    도대체가 먹을거리 소출하는 땅을 저리 홀대할 수 있음입니까?
    제 집 주방은 모두 깨끗하지 않습니까?
    제 집 것은 저리 챙겨 관리하면서,
    땅은 왜 저리 혹사하며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일까요?

    도시인들은 농민들이 사회적 약자라,
    그저 도와주어야 한다는 따위의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땅을 저리 막 대하는 농민들의 실상을 알고 나서는,
    저들을 마냥 귀히 여길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 밭은 황토입니다.
    비닐을 거둬낸 흙은 눈이 부실 정도로 윤이 나며 아름답습니다.
    저는 마치 처녀의 속살을 보듯이 떨리듯 전율합니다.
    저 붉은 순결을 그 누가 비닐 조각조각으로 능욕할 수 있음인가 말입니다.
    비닐 조각들이 마치 콩자반 쏟아놓듯 점점이 부려진 곳도 있습니다.
    사뭇 천박한 노릇입니다.

    저의 농사는 비닐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이게 20여 년 동안 땅을 내버려둔 저희의 과오이기도 합니다.
    이 땅은 나중에 그 누군가 사용하게 되든 제가 머무르고 있는 동안,
    깨끗이 만들어 넘겨주고자 합니다.
    그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땅을 대하는 저의 태도일 뿐입니다.

    비닐 쓰레기를 태워 하늘을 능멸하는 자,
    비닐을 버려 땅을 능욕하는 자,
    저는 이 자들이 마냥 밉습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