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그치지 않고 있다
내가 중학교 때 한문 시간이 있었다.
다른 선생님에 비해 유독 나이가 많으신 분이셨는데,
아이들은 대부분 한문을 싫어하였고,
마음씨 좋은 선생님을 놀리기까지 하는 등 공부시간은 늘 어수선하였다.
하지만 나는 한문 수업 시간이 아주 재미있었다.
흥미가 따르는 과목이었기에 제법 공부에 힘을 내었던 기억이 있다.
웹을 나다니다 우연히 당시 배웠던, 한 구절을 만났다.
“夫樹欲靜而風不停,子欲養而親不待”
(“樹欲靜而風不止,子欲養而親不待也”)
소위 풍수지탄(風樹之嘆)이란 고사 한 귀절이다.
얼굴이 늘 붉으셨던 한문 선생님이 이 구절을 외치면서,
천방지축 떠드는 아이들을 향해 나무라듯 풀이해주셨던 모습이,
엊그제인 양 선명하다.
그 날의 기억을 더듬듯,
원문을 찾아 역하여 보았다.
공자가 제나라로 갔다.
가는 길에 곡하는 이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심히 슬펐다.
공자가 종자에게 말한다.
“이 곡소리는 슬프디 슬프지만 상을 당한 이의 슬픔이 아니구나.”
수레를 몰아 조금 더 가니 이인(異人)이 하나 있었다.
낫을 안고 소복을 입었으나, 곡하는 이의 애통함이 없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가 대답하여 말한다.
“저는 구오자입니다.”
공자가 다시 묻는다.
“그대는 지금 상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곡하여 슬퍼하는가?”
구오자가 말한다.
“저는 3가지를 잃었습니다.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나 어찌 미치겠습니까?”
공자가 묻는다.
“3가지 잃음에 대하여 들을 수 있는가?
듣기를 원하니 숨기지 말고 말해주게나.”
구오자가 답한다.
“제가 소싯적에 주유천하하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후에 돌아오니 어버이가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잃음입니다.
커서 제나라 임금을 섬겼으나 임금이 교만 사치하여 사(士)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신하로서의 절개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잃음입니다.
저는 평생 벗과 두텁게 사귀었으나, 지금은 모두 헤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잃음입니다.
무릇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으며,
자식이 봉양코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습니다.
가고 오지 않는 것이 시간이며,
다시 뵐 수 없는 분이 어버이입니다.
청하노니 이 말씀을 따르십시오.”
마침내 그는 물에 투신하여 죽고 말았다.
공자가 말한다.
“이 사람들아 잘 새겨 알지니, 이는 충분히 경계가 될 만하도다.”
이로부터 제자들 중에서 돌아가겠다고 사뢰고 어버이를 모신 자가 열 셋이었다.
<孔子家語 卷第二 魏·王肅 注 致思第八>
孔子適齊,中路聞哭者之聲,其音甚哀.孔子謂其仆曰:“此哭哀則哀矣,然非喪者之哀矣.”驅而前,少進,見有異人焉,擁鐮帶素,哭者不哀.孔子下車,追而問曰:“子何人也?”對曰:“吾丘吾子也.”曰:“子今非喪之所,奚哭之悲也?”丘吾子曰:“吾有三失,晚而自覺,悔之何及.”曰:“三失可得聞乎?願子告吾,無隱也.”丘吾子曰:“吾少時好學,周遍天下,後還喪吾親,是一失也;長事齊君,君驕奢失士,臣節不遂,是二失也;吾平生厚交,而今皆離絕,是三失也.夫樹欲靜而風不停,子欲養而親不待,?而不來者年也,不可再見者親也,請從此辭,遂投水而死.”孔子曰:“小子識之,斯足爲戒矣.自是 弟子辭歸養親者十有三.”
***
집으로 돌아간 13인의 아해들.
이상(李箱)의 오감도는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이리 시작하여,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리 끝난다.
오감도의 아해들은
상기도 ‘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로 막다른골목길 어디메 쯤을,
‘질주하고있을까질주하지아니할까?’
공자의 제자들 13인은 집으로 돌아가,
행(幸)이,
바람 그침을 보았을까나?
우리 동네 고샅길엔,
오늘도,
風不停。
바람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
재미있는 것은,
이와 비슷한 상황 구조를 가진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가령 신선 종리권(鍾離權)의 부채 이야기가 있다.
종리권이 채 마르지 않은 무덤에다 부채를 부치며 곡을 하는 여인을 만났다.
그가 이유를 물었더니, 죽은 남편이 무덤의 흙이 마르 전에는 재가를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한다.
한비자에도 부인이 무덤가에서 곡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기서는 한비자에 실려 있는 이야기를 마저 소개 해둔다.
정나라 자산이 아침 일찍 외출하여 동장의 문을 지나고 있었는데 부인의 곡소리가 들렸다.
말 모는 이의 손을 누르고는 그 소리를 들었다.
좀 있다가 관리를 보내어 그 여자를 잡아오게 한 후 심문을 하였다.
그 여자는 지아비를 교살하였던 것이다.
뒷날 마부가 물었다.
“나리께서는 어찌 그를 아셨습니까?”
자산이 말한다.
“그 소리가 두려움에 젖어 있었다.
보통 사람은 가족에게 애정이 있음이다.
병이 나면 걱정을 하고, 죽음이 임박하면 겁을 내고, 죽게 되면 슬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미 죽은 자 앞임에도 불구하고 슬퍼하지는 않고 겁을 내고 있음이라.
이로써 그가 간부(奸婦)임을 알았노라.”
<韓非子 難三>
鄭子產晨出,過東匠之閭,聞婦人之哭,撫其禦之手而聽之。有閒,遣吏執而問之,則手絞其夫者也。異日,其禦問曰:“夫子何以知之?”子產曰:“其聲懼。凡人於其親愛也,始病而憂,臨死而懼,已死而哀。今哭已死不哀而懼,是以知其有姦也。”
***
공자는 곡소리에 이끌려 수레를 멈추고는 그 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는 제자 13인을 잃었다.
자산(子產)은 곡소리에 이끌려 수레를 멈추고는 그 자를 붙잡아 심문했다.
그리고는 그 범죄를 밝혔다.
곡을 하여 슬퍼하되 거기 상을 당한 이의 애통함이 없을진대,
그 자로부터 경계(爲戒)하여 새겨둘 만한 지혜를 얻게 되고,
곡을 하되 두려워하면 이는 죄를 지은 바라.
곡을 하려면 진정으로 슬퍼할지라.
하지만,
용산 참사에 희생된 유가족들은 곡을 하되 이제는 슬픔을 지나,
원한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외롭고 가여운 분노.
자산(子產)이 이 모양을 보면 무엇을 밝히어낼까?
곡을 하되 분노가 충천하면,
이는 곡하는 이가 잘못이 아니라,
다만, 곡을 듣는 이들이 책임이 있으리니,
마땅히 바로 잡아 저들로 하여금,
이제라도 슬픔만으로써 곡을 하게 하라!
“슬픔만으로써 곡을 하게 하라!”
이게 어찌 도리가 아니랴.
항차, 슬픔도 같이 나누어야 할 텐데,
여직, 원한과 분노조차 씻어주지 못하고 있는가?
참으로 부박(浮薄)한 세태다.
옛날엔 곡하는 이도 많았는가 보다.
하기사 요즘엔 수레 대신 자동차를 타고 다니니,
곡을 한다한들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을 터.
하지만,
여기 한국 땅 용산엔,
8개월 내내 분노의 곡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수척한 이의 살을 발라내고, 뼈를 깍아,
살찐 이의 욕망을 채운다.
이게 어찌 가진 자 또는 위정자 만이랴,
실인즉 여기 천하 모든 사람이 줄 서 부역하고 있다.
용산 만 빼고.
하지만,
용산도 용산이란 이름을 얻기 전에는,
저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었을 것임을 나는 능히 안다.
오늘의 용산이란 이름을 득한 용산,
그 곁을 나무 수레 아닌 철 자동차를 타고 달릴지라도,
마음의 귀가 뚫린 자는 능히 호곡(號哭), 호천(呼天) 소리를 천둥소리로 듣는다.
호천(昊天)은 이를 가엽게 여기시리.
風不止。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있음이다.
※ 주)
호곡(號哭) : 소리 내어 슬피 욺.
호천(呼天) :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음.
호천(昊天) : 넓고 큰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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