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엿보는 자

소요유 : 2009. 10. 8. 12:55


북한산엔 오리가 산다.
나는 짐작하기를 이 녀석들이 거의 텃새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아주 추운 한 겨울을 빼고는 거의 년중 저들을 본다.
올해는 새끼도 8마리나 낳았다 한다.
나는 겨우 서너 마리만 남겨졌을 때 보았는데,
제대로 본 사람은 말하길 원래는 8마리나 되었다 한다.

계곡 물에 암수 어미 두 마리가 가만히 몸을 담그고는 꼼짝도 않는다.
저들이 이번 추석을 제대로 쉬지 못하여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음인가?
아니면 뒤늦게 제 애비어미에게 차례라도 지내고 있는 참인가?
이리 지켜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거지반 할머니 가까운 아낙 둘이 멈추어 서서는 말한다.

“쟤네들 때문에 물고기들이 다 죽어.”

그러자 막 올라오던 할아버지 한 분이 되받아 말한다.

“들고양들이 오리를 다 잡아 먹었어.
들고양이를 잡아야 해.”

나는 저들에게 한 마디 뱉어낸다.

“저들이 이리 돌아온 것은 인간의 손때가 타지 않아서다.
들고양이가, 오리가 문제가 아니라,
정작은 인간이 문제다.”

인간을 여기 북한산에서 솎아낼 수만 있다면,
아마도 만사가 제 자리로 돌아갈는지도 모른다.

내려오는 내 손엔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다.

배즙, 포도즙을 산에서 먹었음인가?
아, 신선한 공기 마시면서 산에 올라 먹어야지 하고는 가지고 올라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비닐 팩을 바로 약수터에다 버렸다.
웬 약봉지, 캡슐은 또 그리 많이 버려져 있는가?
필경은 태반이 노인들의 소행이다.
그것도 추석 언간에 버린 것이다.

저 정신으로 차례를 지내었단 말인가?
한 해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달을 보고도,
산에 올라와 차마 저 짓을 할 수 있음인가?

저것 먹고 장수하겠단 심산이다.
고약한 노릇이다.
저들이 늘 올라와 신세지는 이곳 산하를 더럽히고,
그리고도 욕심 사납게 제 몸뚱이는 꽤나 오래들 살고 싶단 말인 게다.
사뭇 게걸스럽다,
천박한 짓이다.

이곳에선 정갈한 노인네를 뵙기가 어렵다.
입성이 아니라 마음의 매무새가 개결(介潔)한 이를 뵙고 싶다.
저문녘 아직도 욕망에 찌든 추레한 혼들, 과시 흉타.

이러고도 들고양이를 탓하고, 오리를 탓하고 있음인가?
내 말이 차디 찬 동지섣달 자릿끼 물처럼,
그들 정수리에 확 끼얹어졌기를.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
오리, 고양이라니,
저들 탓이 아니란 말이다.
정작은 바로 인간 탓이다.”

들고양이, 오리를 탓하고 있는 저들 상(相)통이 은근히 밉상으로 보인다.
미욱하다.
청수폭포를 지나면서 헤엄치고 있는 버들치를 보고는 된장 풀어 확 잡아 끓이면 좋겠다며,
킥킥거리고 돌팔매질 하며 자발떠는 것, 역시 저들 인간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거의 년중 행사이다시피 잉어를 계곡에다 몰래 버리곤 도망가는 것도 저들 인간이 아니던가?

제 의론 따라 분분하던 자리가 내 말 한 마디에 아연 조용해진다.
그저 차분하게 내던진 말인데도 나의 기운이 전해진 까닭인가?
저들도 명색이 인간인지라 헤아려 알아들을 귀는 얼추 갖추었단 말인가?

나는 저들을 떨치고 내려오면서,
사탄하(蛇呑蝦),
(※ 참고 글 : ☞ 2008/02/21 - [소요유] - 야묘소묘(野猫素描))
그리고 당랑규선(螳螂窺蟬)의 고사를 동시에 떠올린다.

하나도 잘 난 것이 없는 나.
그 앞에 내가 서있다.
나는 내게 묻는다.
나 역시 장주처럼 3개월 정도 두문불출 하여야 할까?

내 등 뒤에서 나를 엿보는 자는 누구인가?
하늘인가?

까짓 3개월이 대수랴 3년일지라도 안거(安居)를 못할쏜가?
하지만, 그럼 3개월 이후는 나돌아도 다녀도 허물이 되지 않는단 말인가?
이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한다.

***

장주가 어느 날 雕陵의 樊이란 곳에 가서,
이상스레 생긴 까치가 남방에서 오는 것을 보니,
날개 너비가 7척, 눈은 1치로 장자의 이마를 스치고는 밤나무 숲으로 날아간다. 
장주가 말한다.

“이게 새인가?
날개가 커도 제대로 날지 못하고, 눈이 크다한들 잘 보지 못한다.”

옷자락을 걷어붙이고는 뛰어가서는 탄환[각주:1]을 집어 들고는 잠깐 지켜보았다.
그 때 매미 하나가 자기 몸을 잊고는 그늘에서 쉬는 것을 보았다.
당랑(사마귀)이 이를 덮쳐잡으려고 자신의 형체를 잊었다.
까치는 따라 이를 잡으려고 자신 역시 장주에게 잡히려는 그 진짜 처지를 잊었다.
장주가 추연히 말한다.

“아! 모든 물건은 서로 얽혀 두 가지 利와 害를 부르고 있구나.”

하고는 탄환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자 산지기가 따라오며 꾸짖는다.
장주가 집에 돌아와서는 3개월간 뜰에 나오지 않았다.
藺且가 이를 물었다.

“선생님은 어찌하여 근래 뜰에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장주가 말한다.

“나는 생을 지키기 위해 몸을 잊었다.
마치 탁수를 보다가 푸른 못에 미혹된 바와 같다.
또한 나는 선생에게 들었노라. ‘시속에 들어가면 시속을 따르라.’
그런데 나는 雕陵에서 내 몸을 잃었고,
까치가 내 이마를 스치므로 따라가,
밤나무 숲에서 내 천성을 잊었으며,
밤나무 산지기는 나를 보고는 죽일 놈이라고 욕을 해대었다.
나는 그런즉 뜰에 나오지 않았음이라.”

<莊子 山木>
莊周遊乎雕陵之樊,睹一異鵲自南方來者,翼廣七尺,目大運寸,感周之顙而集於栗林。莊周曰:“此何鳥哉?翼殷不逝,目大不睹。”蹇裳躩步,執彈而留之。睹一蟬方得美蔭而忘其身;螳蜋執翳而搏之,見得而忘其形;異鵲從而利之,見利而忘其真。莊周怵然曰:“噫!物固相累,二類相召也。”捐彈而反走,虞人逐而誶之。
   莊周反入,三月不庭。藺且從而問之:“夫子何為頃間甚不庭乎?”莊周曰:“吾守形而忘身,觀於濁水而迷於清淵。且吾聞諸夫子曰:‘入其俗,從其俗。’今吾遊於雕陵而忘吾身,異鵲感吾顙,遊於栗林而忘真,栗林虞人以吾為戮,吾所以不庭也。”

  1. 《李尤·彈銘》昔之造彈,起意弦木。以彈爲矢,合竹爲樸。又彈丸,喻小也。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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