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수세(守歲)

소요유 : 2010.01.04 14:47


고물할아버지 강아지 한 마리가 이상하다.
(※ 참고 글 : ☞ 2009/07/23 - [소요유] - 난득호도(難得糊塗))
작년 12.31, 돌보러 집 마당가에 들어섰더니,
꼬맹이 강아지가 기침을 해대며 켁켁 거린다.
추위를 이기지 못하여 혹시 폐렴이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집으로 들여 현관께에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녀석은 수시로 켁켁 거리며 토할 듯이 목을 길게 늘이며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혹시 목에 뼈다귀라도 걸렸는가 싶어,
입을 벌리고는 손가락을 목구멍 안으로 깊숙이 넣어보았다.
무엇인가 턱하니 걸린다.
하지만 너무 깊어 손가락 끝을 구부려 걸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수가 없다.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해본다.
하지만 연말인지라 접촉이 쉽지 않다.
한군데 선이 닿았으나 지금은 술을 많이 먹어 어렵고 내일 낮 한 시경에 다시 연락 달란다.

녀석이 밤새도록 켁켁 소리를 내지른다.
얼추 눈을 부치다 잠이 깬 3시 이후에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덕분에 제야(除夜)의 수세(守歲)를 절로 지킨 셈이다.

이튿날 01.01 동물병원에 강아지를 데리고 갔다.
의사가 진찰하더니 다행히 목에 무엇이 걸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목에 걸린 것이 있다면 침을 질질 흘린다고 한다.
녀석은 침을 흘리지는 않는다.
내가 목구멍 안에서 손가락으로 느낀 것은 아마도 후두 뚜껑일 수도 있다.

허나, 게 넘어,
심장사상충에 걸린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처는 이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내가 치료비를 물어보니 이리저리 주어 섬긴다.
얼추 70~80은 된다.
세상이 좋아져서 몇 년 전에 비해서는 훨씬 싸졌긴 하나 제법 거금이다.

집에 돌아와 이 녀석을 깨끗이 목욕 시키고 현관에서 거실 안으로 들였다.
다행이 토하듯 기침하는 증세는 없어졌다.
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거칠다.
게다가 도통 밥을 먹지 않는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이리 타이르고 있는데, 알아 듣기나 할는지?

도리 없이 숟갈로 몇 술 떠먹이고 있는데, 이러다 버릇이 되겠다.
게다가 이 녀석 오줌 누이려 하루에도 수차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하는 등,
녀석 수발을 드느라 하루가 빨리도 지나간다.

벌써 며칠 째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녀석의 움직임은 의외로 제법 활기차다.
심장사사충에 걸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여간 날씨가 풀릴 때까지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한다.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련다.’
기르던 강아지를 여의고는 이리 다짐을 하였었다.

하지만, 이런 결심을 차라리 깰 수는 있으련만,
문제는 이 녀석을 돌볼 정도로 내가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어찌 될 노릇인지 시간의 길을 가만히 흘러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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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0.01.28 01:05 PERM. MOD/DEL REPLY

    저도 4년전에 온몸이 부스럼딱지인 똥개 새끼를 맡겨져 키운 적이 있습니다.
    3개월여만에 깨끗하게 완치 시켰는데
    그때까지 함께 잔다며 이불마다 피고름에 절은 적이 있었지요.
    그 누린내가 그렇게 고소하게 느껴지더라니...
    이 정도면 저도 변태라 할 수 있겠지요?

    bongta 2010.01.28 12:09 신고 PERM MOD/DEL

    말씀 들으니 경허선사가 떠오릅니다.
    경허가 오갈 곳 없는 문둥이 여자를 거둬,
    한 달간 한 방에서 함께 하지요.
    피고름 흐르는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 하던,
    경허는 지금 짚신 하나 남겨 두고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은 남겨져 있지요.
    140여 년 전 잠깐 경허(鏡虛)란 이름 빌려,
    문둥이 여인과 잠자고, 술 먹고, 개고기 먹던 그 가사장삼 걸친 사대육신이 아니라,
    피고름 흐르는 여인과 함께 잠자리하는 이를 부르는 범칭(汎稱)으로서의 ‘경허’.

    오늘 ‘경허’ 한 분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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