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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토(穢土)

농사 : 2012. 3. 20. 10:09


예토(穢土)

왜 사람들은 현재 당신 자신이 사는 이곳을 예토라 하였을까?

더러운 땅.
예토.
穢土.

더러울
예(穢).

예(穢)를 두고 어떤 이는 이리 묘사 했다.

“田中雜草也。”

“밭 가운데 잡초니라.”

만약 이곳이 정녕 더러운 땅이라면,
깨끗한 저 쪽의 땅도 있을 상 싶다.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하여 이를 정토(淨土)라 이른다.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

내 장례식장에 이르렀다.

부녀자 두엇이 한켠에 서서 부처 명호를 외고 있더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아미타불을 끝 간 데 없이 이어 외고 있음이라,
저 아낙네들의 간절한 신심(信心), 원력(願力)이,
과연 서방 정토에 가닿으려는가?

망자(亡者)는,
저 원망(願望)에 기하여,
정녕 서방극락정토에 가닿을런가?

왜 하필 서쪽 아미타불이 계신 그곳은 “깨끗한 땅” 정토인가?

여기 내가 사는 곳은 예토로 남겨두고,
하필이면 죽어서야 저기 깨끗한 곳으로 갈 수 있단 말임인가?
그것도 선업(善業)을 지어야 한다고 함이니,
그 누가 살면서 악업(惡業)을 짓지 않은 이가 있음이랴?

하자면,
저게 다 뻥이 아닌가?
다 악업 짓기를 수미산처럼 장장(長長), 올올(兀兀), 켜켜(層層)로 눌러 다져 쌓지 않았던가?

그러하다면,
어느 인간이 서쪽 나라로 옮겨 살 수 있단 말인가?
저게 다 공연히 땡중들이 신도들 주머니 훑어내려고 만든 헛수작질이 아니던가?

작년에 젊은 녀석이 우리 농원 근처 밭을 들락거리더니만 별 짓을 다 벌인다.
묵힌 밭을 빌렸는데 앞으로 콩을 심으려 한다고 한다.
그런가?

이 녀석이 하는 짓을 보자하니 실로 가관이다.
파쇄목을 밭에 넣겠다고 하더니만,
수십 차를 부리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
이게 거지반 반은 쓰레기다.
부아가 솟아올라 지주에게 연락을 하고 싶으나 아지 못할세라.
주먹 쥐고, 눈 붉히며 보고만 있을 뿐.

녀석이 농약을 뿌리는데 그라목손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라목손 통을 그냥 밭 입구에 버리고는 사라졌다.
게다가 입구 진창엔 스레트를 부셔 깔고는 태연히 나다닌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일본의 전국시대,
이즈음이라면 그저 내달려 나가 저 녀석을 단 칼에 응징하고 싶다.
동백꽃 한 바람에 떨구듯,
그리 또각 해치우고 싶다.
하지만 일없이 그저 참을 수밖에.

올 봄.
이번엔 통로 입구에 스레트를 쫙 깔아 포도(鋪道)를 내었다.
스레트가 일급 발암물질임을 상기도 모르는 이가 있는가?

늙은 무지렁이 촌로야,
저 진저리 처지는 잔명(殘命)을 썩은 거적 삭이듯 종내 사라진다 할지언정,
새파란 젊은 것이 저리도 형편무인지경, 안하무인으로 삶을 건널 수 있음인가?
정녕 저러하고도 젊은이라 이를 수 있음인가?

요즘 그 잘난 대학교육 받는 게 80%라며?
도대체가 교육은 왜 시키는가?
저런 녀석 키워서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천만금을 허투루 쓰는가?

저기 저 밭에 소출 된 것이,
누군가의 입에 들어갈 것이 아닌가?
저게 명(命)을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급기야는 축내는 역할을 하지 않겠음인가?

저것을 그냥 두고 보아도 되는가?
그리 해도 내 양심은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음인가?
그리 그래서 여기는 예토(穢土)라 부르는가?

그래,
그리 잘난 선배 농부는 한 번 말을 해보라.
이러고도 그대 당신네들은 농부라 이름할 수 있음인가?
도대체 젊은 저것들에게 그대들은 무엇을 가르쳤음인가?
이리 하고도 그대들의 삶은 부지되는가?

동네 밭 하나이다.
버려진 포트가 삭아가고 있다.
저러한 것이 온 밭을 덮고 있다.
작년에도 심고 버린 포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저자는 그것을 그냥 놔두고 밭을 갈아엎었다.
그런데도 금년 역시 매한가지 버려진 채 있다.
포트뿐인가?
폐멀칭비닐 그대로 밭을 갈아엎는다.
그리고 한쪽 구석엔 각종 약병, 비료부대 따위가 켜로 쟁여져 썩어가고 있다.

그러함인데,
저자의 홈페이지 속에선,
맑은 공기와 물 ..
무농약유기친환경 운운하며 떠벌리고 있다.

유기농, 자연농.
폼만 그럴 듯이 잡으면 다인가?
화학비료를 산처럼 퍼붓듯 넣고 지어도,
폐비닐 태우고, 스레트 우겨넣고 지랄 떠는 것보다 백 곱은 더 정갈하다.
유기농, 자연농, 탄소농, 예술농 ...
당집에 걸린 울긋불긋 헝겊 쪼가리처럼 과시 요란도 하다.
농토를 저리 홀대하고, 훑고, 짜고, 찢고 쓰레기 밭으로 만들면서,
거죽으로 너울 쓰고, 꼬깔모자 쓰고 나타나,
북 치고 장구 치며 유기농한다고 자랑질 해도 되는가?
이런 썩어 자빠질 놈들 같으니라고.

도척(盜跖)일지언정 낯을 꺼려,
밤이라야 이웃 담을 넘는다.
왜 그러한가?
저들에게도 한 올, 한 터럭 양심이 남아 있음이 아니던가?

부끄러움을 아지 못할진대,
어찌 호미를 들었다고 감히 농부이며,
삽질을 능숙하게 한다한들 차마 농부라 이를 수 있음인가?

“三聚眾生苦生之地。是為穢土。唯正定聚所居之處。名為淨土。”

“삼취중생이 괴롭게 살아가는 곳을 예토라 한다.
오로지 정정취가 거하는 곳을 이름하여 정토라 한다.”

애오라지 팔정도의 마지막 단계인 정정(正定)에 이르른 자만이,
머무를 수 있기에 이를 일러 정토라 했다.

예토는 삼취중생이 섞여 있는 곳을 말한다.
삼취란 정정(正定聚), 부정취(不定聚), 사정취(邪定聚)를 말함이니,
정정(正定)에 이르거나, 이르지 못하거나, 이른 양 착각하는 것 삼자를 말한다.

선한 자, 흉한 자가 함께 뒤섞인 곳을 예토라 이르고 있음이다.
흉한 자, 악한 자가 있는 한 절대 정토가 될 수 없음이다.

그러자 누군가 말한다.

“穢土淨國本來一心。生死涅槃終無二際。”

“예토나 정토나 본래 한 마음,
생사 열반이 종래 둘로 나뉜 것이 아니다.”

내 이 이야기를 듣자 한 마디 쏘아준다.

그래 그럼,
저기 스레트 조각 가져다 네 집 양푼으로도 쓰고, 석쇠로도 쓰거라.
그리 단 삼주야만 견디어도 네 놈이 성불했다 이르며,
조석으로 헌다(獻茶), 헌향(獻香), 헌화(獻花)하며,
세세손손 공양(供養)을 부절토록 드리겠노라.

정정(正定)에 이르지 않으면, 정토는 없다 이르지 않았음인가?
원효가 호리박 옆구리에 차고 술 처먹고 서라벌 저잣거리를 누비더니만,
종내 나라 계집을 꿰차고는 팔천(八賤) 중놈 주제에 옥구슬 설총을 섶자리에 까슳어놓았음이라.
그러함에도 그가 서방 정토에 든 까닭은,
서라벌 내 총총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만이 유일하게 정정(正定)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一心, 無際라 하는 것.
부정취(不定聚), 사정취(邪定聚) 쥐뿔도 아닌 놈이 감히 정토를 넘보고 있음이라.

本來一心。終無二際。

본래 한 마음이며, 종시 무변무제(無邊無際)라 가로 나눌 바 없음이다.
어디 과연 그러한가?

내 본디 참 농부는,
분토일체(糞土一體)로 여긴다는 말은 들어보았으되,
스레트까지 밥솥으로 모시는줄은 네놈으로부터 처음 듣는다.

내, 앞에서,
“田中雜草也。”를 예(穢)라 한다 했다.
분토일체(糞土一體)인데,
항차 전초동체(田草同體)는 왜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니,
정작 나야말로 지금의 전초동체(田草同體)를 넘어,
분토일체(糞土一體)의 세계로 나아가려 하고 있음이다.

전 밭을 풀로 덮길 주말농사 3년, 정식 농사 2년을 넘어 3년 차로 접어들고 있음인데,
앞으로의 남은 과제는 축분이든 인분이든 저것을 과연 흙으로 모셔 섬길 수 있음인가?
그 시험대에 서서,
나는 서방세계가 아니라 여기 이 자리에서 정토(淨土)를 일구고자 함이다.
동방에 살지만 진즉 예를 서방인 양 모셔 살고 있음이라.

밭을 더럽히는 사이비 농부들,
땅귀신은 다 잡아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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