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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경우독(晴耕雨讀)

농사 : 2012. 8. 1. 07:31



주경야독(晝耕夜讀)
낮에 밭 갈고 밤엔 책을 읽다.

이 말은 사뭇 진부해 보이지 않는가?
아마도 이런 제하로 시작하는 글을 대하면 대개는 읽지도 않고 지나치고 말 것이다.
요즘처럼 가볍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매는 세태엔
저리 둔중한 말씨들은 내용 여하 간에 지레짐작으로 사람들을 잡아두지 못한다.

하지만 난 이를 꿈꾼다.
아니 꿈꾸었다.

내가 지난 2007년 이래 3년간의 주말농사를 거쳐,
2010년 정식으로 농장을 개설하면서 그리던 삶은 주경야독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이었다.
허나 밭일은 육체적으로 고단하기 짝이 없기에,
막상 저녁에 책이라도 읽으려 하면 절로 졸음이 쏟아져 두어 쪽도 읽지 못하고 자리에 들게 된다.

그래 난 저 말을 사뭇 의심하곤 했다.
물론 자신이 철저하지 못한 점이 먼저이겠지만,
저게 뜻은 고상하나 사람을 견인하여 가르치려는 교훈적 가르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리 짐작하는 것이 바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사실 저 말에 부합되는 사람들이라면 노비를 한껏 거느린 양반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나이 들어 면직하거나, 정치적 연이 끊어져 중앙에서 밀려나 낙향하게 되면,
저들로서는 실로 하루하루가 무료하기 짝이 없을 터이다.

텃밭을 간간 일군다든가,
혹은 마름을 거느리고 만경 들을 휑하니 둘러보고는,
‘낮에 농사짓느라 바빴다.’ 이리 이를 수는 있겠다 싶다.
허나 정작 농사일은 아랫것들이 다 짓는 것.
힘 쏟고, 땀 흘리며, 뼈골을 녹이는 것은 다 농투성이들 차지인 것임을.

애첩 하나가 곁에 있다.
다듬어 깍은 옥 같이 하얀 손으로 다식을 집어 대감 입까지 대령한다.
땅거미가 깔리기 무섭게 득달같이 계집종년은 등잔 심지를 올려 불을 밝혀두었다.
무엇이 어렵겠는가?
묵은 서책을 꺼내 흥얼거리며 새삼 성인의 말씀에 감복한다.

주경야독이라.
과시 말이 아름답고뇨.
조촐하니 밭을 일구고, 성인의 말씀을 헤아림이니,
이 얼마나 덕스럽고 어진 삶이어든가?

이런 생각을 나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경우독(晴耕雨讀)은 주경야독과는 사뭇 경지가 다르다.
물론 세인들처럼 이 양자를 같은 뜻으로 새긴들 탓할 노릇은 아니다.
허너 나는 이 자리에선 글자 뜻에 묶여 출발하되 그 의미 공간을 외려 널리 펼쳐 보았다.

‘날 개이면 밭 갈고, 비 오면 책을 읽다.’

여기 시골에 들어와 세칭 이르는 노가다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다.
이들은 비 오면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시간을 죽인다.
맑은 날일지라도 일감 없는 겨울이라든가, 염천지절엔 거의 놀다시피 한다.
보아하건대 대충 일 년에 반 이상 허송세월하는 양 싶다.
이쯤이면 우독(雨讀)에 재미를 붙일 수도 있으련만,
면면을 볼작시면 그런 경우를 거의 볼 수가 없다.
심히 유감스런 노릇이다.
그렇다고,
우독(雨讀)은 아닐지라도 청경(晴耕)을 하려하여도 하수상 고약한 세월은 이를 허(許)하지 않는다.

귀농한지 이제 3년 째.
여름 내내 청경(晴耕)에 땀을 쏟고,
어쩌다 날이 궂으면 비로소 우독(雨讀)에 든다.

주경야독처럼 낮밤으로 하루를 쪼개 돌아갈 수 있는 삶은 제법 그럴 듯한 것이다.
하지만 청경우독의 삶은 내가 의지로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늘의 날씨가 나를 좌지우지한다.
하늘은 때론 나를 부리시고, 혹은 측은하게 여기셨음인가?
가끔 비를 뿌리시며 나의 고단함을 위무(慰撫)하신다.

아, 나는 언제쯤이면,
애초 내가 그리던 주경야독의 세상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나?

허나 정작은 밭이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 밭 심전(心田)은 어떠하더냐?
삼백예순 날, 거칠어진 마음 밭을 가지런히 다듬고,
우덕(雨德)을 길러야 할 사.

비 그친 어느 저녁.
산자락 끝에 매달린 자드락 길.
청사(靑蛇) 하나.
나를 보자,
사르르 숲길로 몸을 감춘다.
향불인 양,
우리들의 원망(願望)은 연기 되어 하늘로 피어오른다.

오늘은
비가 내리신다.
책상머리에 앉아 청경우독을 이리 새김 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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