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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간절함 하나

소요유 : 2013.02.07 22:26


시골에서 사귄 한 분이 계시다.
늘 농원 앞을 지나가시는 분, 꽤나 성실하시구나 싶었다.
어느 날 가까이서 마주치자 인사를 드리고 이내 말길이 트였다.

이 분은 ‘여호와의 증인’이신데 농원에 정기적으로 들리신다.
필경은 나를 전도의 대상으로 여길 터이지만,
인품이 단정하셔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도중 잠깐 농원 방문을 삼간 적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시나브로 다시 드나들게 되셨다. 
(※ 참고 글 : ☞ 2012/10/20 - [소요유] - 관음은 누구에게 참불하는가?)

겨울엔 내가 서울로 돌아와 있으니까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내게 전화를 주신다.

“농장에 아무 이상이 없고요. 
하우스 지붕에 눈이 조금 남아 얹혀 있군요.”

늘 농원 앞을 지나시기에 오가며 농장을 살펴 주시는 것이다.
고맙기 짝이 없다.

그런데, 안부 말씀이 끝나면 언제나 예수, 성경 말씀을 하나 꼭 덧붙이신다.
전화상이라 충분히 말씀을 잇기는 어렵지만 나는 성실히 다 듣는다.

이 분 말씀을 듣고 있으면 나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묵은 서책을 털고 잊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듯,
나는 내 가슴 속에 잠자고 있던 여러 상념들을 다시 들춰내,
저 분에게 답례 차 들려준다.
이게 내겐 스스로에게 공부가 된다.
수십 년 묵히고 삭혀 잠재운 말씀들이 내 존재의 항아리에서 꺼내져 오늘을 밝힌다.

불현듯, 저 분이 저리 빠지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무슨 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듣건대, 저분들은 저리 전도하는 것을 봉사라고 부른다 한다.
일정 기간 내에 저런 봉사활동 일정 시간을 할애하면,
나름 무슨 계차(階次)에 해당되는 소임을 맡는가 보다.
그런데 이 요구 만족 시간은 양심으로 계량되지,
특정 외부 기관에 의해 검증을 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요즘은 겨울이라, 하시고 싶어도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가 녹록치 않으리라.
허니 비록 전화상이지만 나에게라도 전도를 하면,
봉사시간을 채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리 볼 때, 나를 수단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하지만,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서운한 감정이 하나도 생기지 않는다.
되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마음이 저리다.

자나 깨나 오매불망 저분들은 왜 저리 하느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있음인가?
간절한 정성이 사무쳐 눈밭을 헤치고는 그 먼 거리를 나다니시고,
멀리 떨어진 나와의 통화 짬에서도 예수의 말씀을 나누셔야 마음이 편하신가 말인가?

도대체가 한 사람의 소망이 왜 이리도 애절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갈 것이기에,
찬바람을 불사하고 마음의 향불을 연신 지피어 올리는 것일까?

헌데, 나라는 물건은 마음이 얼마나 흉하기에 오불관언 저 말씀의 진실에 빠져 들지 못하는가? 
나는 과연 무엇이관대?

날이 풀리면,
저 분께 따끈한 저녁 한 끼를 대접해드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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