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무두 못(無頭釘)

소요유 : 2014. 9. 21. 10:54


최근 간판 설치 일로 며칠을 보내고 있다.
애초 간판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세상일에 휩쓸리다 보니,
언젠가는 간판을 만들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서야 한가하니 수년 전부터 미뤄두었던 이 일에 나선 것이다.

간판 제작업체에 의뢰하자니,
상인이 아닌 농부로선 본과 말이 전도될 지경인 바라,
직접 나서서 처리하기로 하였다.
저들이 제시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도대체가 농부가 화려한 간판으로써,
무엇을 도모한다는 것이 한참 실질을 벗어나는 짓거리가 아닌가 하는,
회의가 일자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갖춘 도구도 충분치 않고,
재주도 시원치 않으니 만들고 있는 간판이 영 엉성하다.
허나 공작하는 즐거움도 누리고, 
이리 조촐하니 수분(守分)하리라.

이제 글자 조각을 장만하여 이것을 간판 틀에 부착하려고 하는데,
접착제를 사용하면 간단하나 목재가 상하는 것이 염려가 된다.
해서 이번엔 그냥 가느다란 못으로 박아 처리키로 한다.
어제 철물상에 가니 무두(無頭) 못을 권한다.
무두란 못대가리가 없는 것을 말한다.
헌데 이게 남아 있는 것이 소량이라 조금 밖에 구하지 못하였다.

그래 오늘 다시 나서서 철물점 몇 곳을 다녀보았다.
헌데 저들은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요즘은 일꾼들이 모두 타커(tacker[tǽkər])로 일을 하고 있으니,
이런 무두 못을 쓰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예전엔 못을 박은 곳에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두 못이 제법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헌데 타커를 사용하고나서부터는 이를 찾는 일이 없어졌다.
타커질은 우선은 시간이 절약되고 품이 들지 않는다. 

그 누가 있어 하나 하나 못을 찾아들고 장도리로 박으면서,
긴 작업 시간을 참아낼 위인이 있으리오.

아,
나는 순간 가슴 밑으로 자르르 한 줄금 감상이 지나고 만다.

내가 철물점 주인에게 이른다.

‘슬프지 않은가?
그리 총애를 받던 철물 하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음인데,
어찌 이는 감상이 없을손가?’

그러자 그가 말한다.

‘팔려야 좋지 팔리지도 않는 물건에 무슨 슬픔이 있는가?’

내가 그로부터 가슴을 후벼 파는 한 말씀 듣잡고자 하였음인데,
아, 그는 상인이 아니었든가?
물건이란 그저 이문을 붙여 팔아재끼는 경제적 객체에 불과한 것,
그 차가운 것에 어찌 감상의 싹이 착상(着床)될 수 있으리오.

나무에 타카질을 하면,
무자비하게 침(針)이 쫘르르 박혀 버린다.
이것은 나중에 분해도 수월치 않는다.
그저 폐기 처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못질을 하면,
빠루나 펜치로 살살 다루면,
뽑아낼 수 있어 재활용 할 수도 있다.

전자는 시간을 질러가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목재들이 수많은 침을 맞으며 자지러질 듯 아우성을 쳐도,
목수는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가기 바쁘다.
하루 일당을 빨리 챙기는 것이 수지,
그 다음 일은 알 바가 없다.

바로 이 지점에 서면.
현대인은 다음을 기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현재, 이 순간 내게 이익이 되면,
다른 것은 돌보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현대 문명의 한계를 엿보는 독보(讀譜)의 중심 열쇠이기도 하다.

마치 소들이 똥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항생제 맞추고, 성장 호르몬 투여하며,
증체량(增體量)에 집중할 뿐,
저들의 아픔과 슬픔엔 관심이 없다.

이게 물론 무생물과 생물의 차이가 있으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시간에 복속되어 있으며,
간단없이 돈에 취해 있음엔 하등 다름이 없다.

나는 순간 墨子泣絲(or 墨子悲染)를 떠올린다.

揚子見逵路而哭之,為其可以南,可以北;墨子見練絲而泣之,為其可以黃,可以黑。
(淮南子 說林訓) 

양주(양자)가 길 앞에서 곡을 하며 운다.
길이라는 게 남으로 날 수도 있고,
북으로 날 수도 있다.

묵자가 누인 실을 보고 울었다.
(눕다 : 무명이나 모시, 명주 따위를 잿물에 삶아 희고 부드럽게 하다.)
어떤 것은 누렇게,
어떤 것은 검게 물드누나.

재미있는 것은 캐릭터가 전혀 다른 이 양자가,
비슷한 감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양주가 곡을 한 사연은 실은 이러하다.

양주의 이웃 사람이 양을 잃었다.
양주에게 청을 하길 그를 추격하려 하니 종을 빌려 달라 했다.

“양 한 마리 추적하는데 어찌 여러 사람이 필요한고? ”

하고 물으니 이웃 사람이 말한다.

“갈래 길이 여럿이라.”

이들이 돌아왔다.

“양은 찾았는가?”

“찾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된 노릇인가?”

“갈림 길에 또 갈림 길이라,
어떤 길이 옳은지 알지 못하겠더이다.
그래 그냥 돌아왔습니다.”

양주는 척연하니 낯색을 바꾸며,
잠시 아무 말도 없더니만,
종일 웃지를 않더라.

양주의 뜻은 무엇인가?

문인(門人) 심도자(心都子)가 이리 풀어내었다.

大道以多岐亡羊,學者以多方喪生。

큰 길엔 갈래 길이 많아 양을 잃는데,
학자는 다방(多方)으로 생을 잃는다.

泣素絲

묵자는 생실 앞에서 울고 만다.
명운에 따라 어떤 것은 누렇게 또 다른 어떤 것은 검게 물이 들고 만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웃을 수도 있으련만,
묵자는 운다.
이는 그의 비관성이 아니라,
넘치는 휴머니즘을 암시한다.

生則見愛,死則見哀。

삶에는 사랑을, 죽음에는 애상함을 보인다.

생실이 색색으로 물드나니,
저들의 생사에 어찌 애애(愛哀)하지 않을쏜가?

간판에 색칠을 하자니,
이게 화학 물질이 아닌가?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일어나 부스스 떨어지기라도 하면 영 흉하다.
나는 소싯적 집집마다 장판에 콩댐을 하던 것을 떠올린다.
삶은 콩을 자루에 넣고 새로 깐 장판에 연신 문질러대면,
노랗게 콩기름이 들었다.
이것을 콩댐이라 한다.

내가 지금은 이 노릇을 할 형편이 아니니,
대신 콩기름을 사서 쓰기로 한다.
마트에 들려 콩기름이 진열된 곳을 기웃거리니,
마침 점장이 내게 아는 척한다.
지난번에 직원 일로 곤욕을 치렀을 터인데,
그는 여전히 싹싹하다.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콩댐을 아느냐 하니깐 그는 모르고 있다.
아, 당대를 함께 사는데도,
우리는 이리도 바삐 달려 서로 갈리고 있구나. 

어제, 간판에 쓸 글자 조각을 콩기름에 침지(浸漬)시키고 있는데,
들고양이 녀석이 고소한 기름 냄새를 맡고는 곁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 챙겨주어도 곁을 주지 않던 녀석이,
가까이 와서 앉더니만 종내는 기다리다 지쳐 졸고 만다.
녀석들은 내리 대를 이어 새끼를 쳐내고 있다.
묵자는 泣素絲하였다만,
나는 泣衆生 살아 있는 모든 생에게 운다.

양주와 묵자,
바로 이들의 이야기 곁에 서면,
우리는 이내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의식에 중첩된다.

프로스트의 시는 교과서에 나오니 모르는 이가 없다.
개중엔 외우기까지 한다.
북한산 등산로에 이 시가 팻말에 적여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양주나 묵자에 얽힌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난 이들의 슬픈 이야기 구조가 아득하니 깊어서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多岐亡羊
多方喪生

전자는 남을 잃는 모양새지만,
후자는 자신을 잃고 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무두 못을 조금 구한 철물점에선,
이젠 그것을 다시 들이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도대체가 찾는 이가 없는데,
상인이 무슨 철인(哲人)이라고 그것을 다시 채비하여 두랴?

양주, 묵자, 프로스트

삼인은 한결같이 갈래 길을 이야기 하고 있다.
허나 감상은 하나같지 않다.

양주는 갈래 길이 많아 잃음이 있음을,
묵자는 환경에 따라 갖가지로 채색되는 운명의 나뉨을,
프로스트는 선택과 비선택에 따른 회한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오늘 끝내 무두 못을 구하지 못하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츰 사라져 가고 말 무두 못(無頭釘).
구하지 못하여 내 소용에 닿지 못하여서가 아니라,
난 그의 명운(命運)에 괜스레 슬픔이 인다.

기회가 되어 그를 만나면,
조금 구하여서는 철물함 깊숙이 숨겨 두고 싶다.

갈래 길을 내쳐 지나치고 나면,
저들과는 영영 만나지 못할 터이니,
공연히 안스럽고 슬프다.

泣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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