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50대, 60대 늙은이는 다 죽어야 해

소요유 : 2014. 9. 24. 10:33


50대, 60대 늙은이는 다 죽어야 해.

최근 인터넷에서 읽은 어느 댓글의 내용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저런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당시 그 말을 듣고는,
사람들이 배움이 부족하고,
민도가 낮아서 그러할 뿐,
내가 저 나이에 이르면,
세상은 많이 변하여 있을 것이다.
난 순진하게도 이리 생각하였다.

헌데,
지금 사회는 어떠한가?
대학 진학률이 80%이라는데도,  
저 현상은 하나도 변함없이 여전하다.

늙으면 왜 보수가 되는가?
파릇파릇할 때는 곧잘 정의도 부르짖고 대의를 쫓다가도,
차차 나이를 먹어 가면 어느 순간 사익(私益)에 복무하며,
가을 풀처럼 칙칙하니 갈변(褐變)하고 만다.

하얀전쟁을 쓴 소설가 안정효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말을 기억한다.
몇 년 전 우연히 라디오를 듣는데,
늙으면 갖고 지킬 것이 많아서 보수가 된다는 말을 하더라.

나는 저 말씀은 좀 안일하구나 싶었다.
늙었다고 다 가진 것이 많은 것은 아니다.
혹 자신이 가진 것이 많은 줄은 모르겠으나,
최근 노인 빈곤층이 많다는 통계도 있지 않은가?

창고에서 인심이 난다고,
가진 것이 많으면 여유가 생겨야 하지 않겠는가?

난 나이가 들면서 보수로 돌아들 가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고 본다.

‘욕심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진 것이 많은 이는 더욱 더 많이 갖길 원하고.
적은 자는 그들대로 악착같이 조금이라도 더 긁어모으길 바란다.

세파에 시달리면서 제 몸 돌보기를 제일의적 과제로 삼는 것이 굳어져 버린다.
남에게 베풀어보았자 별반 득이 되지 않았을 뿐,
외려 손해가 나기 일쑤였다.
이런 경험들이 중첩되다 보니,
어느 덧 제 것을 챙기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다.

이런 사회라면,
얼마나 불행한가?
그런 의미에서 늙은이 보수가 많은 우리네 사회는,
그리 행복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젊은이조차,
우리 어렸을 적보다 사뭇 크게 보수화되어 있다.
일베 무리들의 준동을 보면,
우리네 사회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보수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들은 목숨 걸고 단식하는 곳에 가서,
폭식투쟁을 일삼는 짓을 태연히 하고 있다.
부끄러움이 실종된 저 마음보들.

‘無羞惡之心,非人也。’

‘마땅치 못한 짓에 부끄러움을 일으키지 못하면,
인간이 아니다.‘

내가 말을 편히 하기 위해 보수라고 하였지만,
기실 저들은 보수라기보다 ‘수구꼴통’이라 하여야 옳겠지만 말이다.

진짜 보수라면,
왜 아니 그릇된 것을 미워하고,
바른 것을 좇지 않으리오?
보수(保守)란,
말 그대로 바르고 옳은 가치를 지키어내고자 함이 아닌가?

제 것을 지키기 위해,
눈이 흐려지고 욕심이 일어난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 때 시비(是非)를 가릴 수 있어야 한다.

옳은 짓인가?
마땅한 노릇인가?

이런 물음조차 유발되지 않는다면,
그는 살아도 살아있다 할 수 없다.

‘無是非之心,非人也。’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면,
인간이 아니다.’

이것은 맹자의 말씀이지만,
이제 非人이라 하니까,
불가의 말씀은 또 어떠한가?

應笑而不笑,
應歡喜時而不歡喜,
應起慈心而不起慈心,
作惡而不恥,
聞其善語而不著意。
(增一阿含經)

웃어야 할 때, 웃지 않고,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지 않고,
자비심을 일으켜야 할 때 자비심을 일으키지 않고,
악을 짓고도 부끄러움이 없고,
옳은 말을 듣고도 뜻을 품지를 못하다.

부처는 이런 오종(五種)의 인간을 삿된 무리라 하였다.
한마디로 비인(非人)이라 하겠다.

應笑則笑,
應歡喜則歡喜,
應起慈心則起慈心,
可恥則恥,
聞善著意。

그 반대인 사람들은 바른 이들이니,
정사(正邪)가 이리 갈리는 것이다.

헌즉 나이 때문이 아니다.
기실은 바른 견해를 갖고 바른 길을 가고 있느냐, 아니냐가 문제인 것이다.

부처가 저리 설하자,
주의에 있던 비구(比丘)들은 이리 말한다.

‘當奉行之。’

‘마땅히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실로 사람(人)이 되고,
사람이 아니 되고(非人)는,
이에 달렸음이라.

맹자는 사단(四端)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면 비인(非人)이라 하셨음에,
부처는 오종(五種)의 인간 무리들을 비인(非人)이라 하셨음이라,
그 가르침이 그리 큰 차이가 없음이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늙고 젊음을 들어 사람을 가르는 일은,
그저 핑계일 뿐 바른 견해가 아닌 것이다.

하여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쉼 없이 배워야 한다.
흐려지는 눈의 때를 벗기고,
탁해지는 마음을 가셔내어,
밝고, 맑게 닦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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