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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멍

생명 : 2014.10.14 18:47


내가 앞에서 소개한 남귤북지(南橘北枳)의 글에 등장하는 안자(晏子) 이야기인데,
바로 그 장면 상황 환경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 이제 이를 먼저 상기하며 후에 내 말씀을 잇고자 한다.

안자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안자는 키가 작은즉,
초인이 대문 옆에 난 작은 문으로 안자를 이끌었다.
안자가 들어가지 않고 이리 말한다.

‘개나라에 사신으로 왔다면 개구멍으로 들어갈 터이지만,
이제 초나라에 사신으로 온 바라 저 문으로는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접빈(接) 관리가 고쳐 대문으로 이끌더라.
초왕을 뵙는데,
왕이 이리 묻는다.

‘제나라엔 이다지도 사람(인물)이 없는가?’

안자가 이리 아뢴다.

‘임치(제나라 수도)엔 수백, 수천의 집들이 있고,
소맷자락을 펼치면 온 도시가 그늘이 질 정도이며,
사람들이 흩뿌리는 땀이 비를 이룰 형편입니다.
걷자면 어깨가 부딪히고 발꿈치가 잇닿을 지경인데,
어찌 사람이 없다 하시오니까?’

왕이 이른다.

‘그런데 어찌 그대 같은 이가 사신으로 왔는고?’

안자가 이리 아뢴다.
‘제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는 각기 임자가 따로 있습니다.
현명한 자는 현명한 왕에게 사신으로 보내고,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왕에게 사신으로 보냅니다.
저는 최고로 어리석기에 이리 초나라 보내졌습니다.’

晏子使楚,以晏子短,楚人為小門于大門之側而延晏子。晏子不入,曰:「使狗國者,從狗門入;今臣使楚,不當從此門入。」儐者更道從大門入,見楚王。王曰:「齊無人耶?」

晏子對曰:「臨淄三百閭,張袂成陰,揮汗成雨,比肩繼踵而在,何為無人?」
 
王曰:「然則子何為使乎?」

晏子對曰:「齊命使,各有所主,其賢者使使賢王,不肖者使使不肖王。嬰最不肖,故直使楚矣。」
 
이글에선, 대문 옆에 조그맣게 난 문을 구문(狗門) 즉 개문이라 이르고 있다.

원래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개구멍은 한자로는
구두(狗竇) 또는 구동(狗洞)이라 한다.

그런데 기실 개구멍은 사람이 부러 내는 경우보단,
담장 허물어진 곳이라든가,
판자 밑뿌리가 썩어 절로 만들어진 구멍을,
개들이 드나들 게 될 때 절로 명호를 얻게 된다.
 
하니깐,
문도 아닌데 문 구실을 하고,
출입구도 아닌데 어쩌다보니깐 절로 그 구실을 하게 될 뿐,
개구멍이란 본디 그 용처가 따로 있어 부러 만든 것이 아니다.
 
이리 하찮은 것이련만,
내가 최근에 우정 뜻을 세워 이를 만들었다.
비닐하우스 정문에 하나, 후문에 하나 도합 둘을 만들었다.
정문 것은 내가 겨울에 이곳 농장에 없으니,
혹 소포가 배달되었을 시 수납구로 활용코자 함이다.
후문 것은 고양이들이 드나들도록 출입구를 만들어준 것이다.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 셋을 키우고 있다.
들고양이들인데 녀석들이 꽤 오래 안면을 텄지만,
전혀 곁을 주지 않고 경계를 하고 있다.
다만 잠자리를 하우스 안에다 텄고,
매일 먹이를 받아먹고는 있다.

얼마 전 어느 카페에 어떤 이가 제 상품을 선전하였다.
‘고인돌 ooo’
이런 상표명이었는데,
사람이 그것을 이용하여 즐기는 것이었다.
그것을 사용하면서 안락함보다는 죽음을 연상할 수도 있음이니,
이 얼마나 딱한 노릇이랴?
내 이런 이름이 적당치 않음을 넌지시 일러주었더니만,
그는 이내 글을 내려버리고는 사라져 버렸다.

농장 중에도 여기 시골엔 ‘고인돌 농장’이란 이름도 있다.
이곳 시골은 고인돌로 유명하지만 농장 이름으론,
내 주변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도무지 영 마땅치 않아 보인다.

고인돌이란 따지고 보면 무덤이 아니더냐?
그러함인데 사람이 즐기는 물건, 먹을 음식과 관련되어,
빌려 쓰기엔 생각이 한참 모자란 노릇이라 하겠다.

가령 일테면,

“고인돌 사우나”란 곧 “무덤 사우나”를 이르는 것이 아니랴?
또한 “고인돌 농장”과 “묘지 농장”이 어찌 다른가 말이다.

언젠가는 ‘수구문 국밥집’이란 음식점을 보기도 하였다.
난 그 옥호를 보자 처와 함께 기겁을 하고 말았다.
수구문(水口門)이란 본시 서울 신당동 일원에 있던 것으로,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리었다.
이는 문안의 시체가 나가는 문이기에 이런 명호가 붙었던 것이다.
그러함인데 얼마나 무신경하면 이를 음식점 이름으로 쓰는가 말이다.

이럴 양이라면,
차라리 “개구멍 국밥집”내지는 “안자(晏子) 국밥집”이 나으리라.

제나라에서 무려 3대를 내리 재상으로 지낸,
안자가 연상되는 국밥집이라,
내 특히 이를 기억에 새겨두었으리라.

국밥을 먹으면서,
안자의 국량과 경륜을 다시금 새겨볼 수 있다면,
이 어찌 흥감을 일으키지 않을 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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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4.10.21 13:35 PERM. MOD/DEL REPLY

    그런 자상한 배려가 있기에 고양이들이 튼실해보입니다.

    사용자 bongta 2014.10.21 18:10 신고 PERM MOD/DEL

    그러지 않아도 저것들을 상시로 열어둘 수 있도록,
    어제, 오늘 양일간은 몇가지 장치를 하였습니다.
    녀석들이 말썽을 피어서 좀 성가신 구석이 있지만,
    제가 좀 양보를 하고 참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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