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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

생명 : 2014. 3. 5. 10:50


지난 겨울 농장에서 철수하면서,
하우스 안을 드나들던 들고양이에게 집을 하나 마련해주었다.
이불과 헌 옷가지 등 북데기로 바람을 가리고,
보온이 가능하도록 조치 해주었다.


어미 하나와 그런대로 몸꼴을 갖춘 어린 아이들 셋,
도합 네 마리인데 이제 내가 떠나면 저들 먹이는 어찌할 것인가?
집이라도 지어주고 가야지 하고 만들었던 것이다.
가끔씩 와서 사료를 묏산처럼 부어주고는 갔지만 저들이 이 추위를 견딜 수 있을런지는?
이 또한 저들의 명운(命運)인 것이 어찌 하랴?

다행이 얼마 전 저들 넷이 모두 목격되었다.
그런데 요즘 하우스를 드나드는 녀석은 어미와 새끼 하나뿐이다.
어디 딴 살림을 차린 것일까?

그런데 어제 못 보던 고양이 하나를 보았다.
시렁 위에 올라가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겨우내 여기서 지냈던가 보다.
저 아이들의 아비 고양이인가?

저들은 하루에 한건 이상 말썽을 일으킨다.
묘목 포트를 엎어놓거나,
시렁 위 물건들을 밑으로 떨어뜨리고,
싱크대 위에 올라 발자국을 찍어놓고는 한다.

아침에 일어나 어떤 때는 저것을 청소하는데 30여분을 허비한다.
저들을 쫓아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상상키로 영 ‘쫓아내는 모습이 흉하다.’

필경은 내가 막대기를 들고 쫓아 나설 터인데,
그 모습이 너무 추하다.
쫓겨나가는 고양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서러울까?
저 서러움을,
세상에 나 하나 있어,
함께 마중하고 슬퍼해줄 수 있다면,
그 가운데 우리는 세상을 같이 쳐다보는 한 존재로서 남아 있을 수 있으리라.

그래 나는 청소 따위로 감내하여야 할 고역과,
저 존재의 슬픔을 앎 사이의 양단간을 오고가며,
내 마음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상의 권태를 읽어보면,
거기 이상이 웅덩이의 송사리 떼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장면이 있다.
난 미상불 소나 이상보다 더 권태로운 게 아닐까?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시골에 내려가,
처음에 고양이들을 건사하였는가 보다.
하지만 차츰 이들이 늘어나자 감당할 수 없었다 한다.
그 후일담은 접하지 못하였지만,
아마도 작파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저들이 새끼를 계속 치기로 한다면,
나 역시 이를 감당할 수 있을런가?
난 도대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까?
나는 나를 가만히 두고 관찰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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