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말법(末法)

소요유 : 2015.03.19 00:30


내가 앞의 글에서 말법 운운 하였음인데,

마침 그러한 정황 장면을 오늘 아침에 접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골목에 사복형사들이 쫙 깔렸다.

무슨 일인가?


내 처는 살인 사건이라도 생겼는가? 

이리 의심한다.

나는 반 농담으로 말하길,

무슨 소리, 살인 사건인데 저리 한가할 수 있는가?

필경은 중이 길가는 부녀자를 겁탈이라도 하였는가 보다며 농을 쳤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글에 적었듯이,

저들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은 바,

자연 저들을 의심하게 되었다.


여긴 주택가이지만,

가을녁 귀뚜라미가 돌틈마다 끼어 있듯,

몇 걸음 걷다 보면 구석에 절집이 끼어 박혀 있곤 한다.


골목길 형편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정보통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시다.

내가 그 분을 길에서 만나 아침에 일어난 사건의 자초지종을 여쭙다.


왜 아니 그럴까?

절집에 난(亂)이 일어났다고 한다.

종권(宗權) 다툼이 벌어져 흉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게 우리 사회에서 그 흔하디 흔히 일어나는 소위 ‘절뺏기’라고 이르는 것인데,

이와 관련되어, 나는 지금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바, 

왜 이것이 불교사전에 등재(登載)가 아니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의 불교 현실에선 비일비재 일상적인 실천 현실이 아니더냐?


물론 다른 종교, 예컨대 기독교에서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니,

기실 이는 불교만의 한정 현실이 아니라,

종교 일반의 보편 현상이요, 

저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실천 요강이 아닌가?

난 이리 의심한다.

이는 곧, 인간 의식의 안일함, 나약함, 그리고 탐욕을 증거하고 있다.


어리석은 중생이니, 원죄를 상속 받은 낙인찍힌 인간들이란 말씀.

나는, 이런 종교 성립내지는 유지를 위한 교묘한 설계, 

그리고 그 정교한 구속적 실천 현실 장치, 제도 따위에,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정보통 아주머니께선,

이게 작년에도 일어났는데 무슨 짓인지 모르겠단다.

모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세금 하나 내지도 않고,

염불이나 적당히 외고 앉아 있으면,

신도들 시줏돈이 적지 아니 들어올 터인데,

이게 얼마나 수지맞는 노릇인가?

게다가 요즘엔 염불 알바승도 있으니, 직접 나설 일도 없다.

불사(佛事) 때마다 청하여 모시면 다 해결된다.


염불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맞춤 알맞게 청아하거나, 구성지고, 때로 애달프게 외는 일,

이 또한 비상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

허니, 저마다 기예(技藝)를 가진 이가 담당하는 것이 무슨 허물이 되리.

허나, 그러하다한들,

어색한대로 직접 간절히 임하는 정성, 간구(懇求)만 하리? 


그것은 어쨌건,

게다가 신도들은 앞에 서면 꼬박 죽어들며,

스님, 스님 하며 받들어 모시질 않는가?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리 좋은 복토(福土)가 그예 더 어디에 있으랴?

여기 그 터 주인이 되고, 아니 되고 하는 일인데,

한편에선 목숨 걸고 사수하여야 할 터이며,

다른 한 편에서 기필코 빼앗아 차지하여야 하리라.


결국, 송사(訟事)가 일어나고,

이도 만족 못하면,

급기야 주먹이 날고,

그 보다 더한 짓도 불사(不辭)하리라.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

여기 불설(佛說) 한 토막은 얼마나 적실(的實)하니,

오늘날의 사태를 예언하고 계심이더냐?


從是以後於我法中。雖復剃除鬚髮身著袈裟。

毀破禁戒行不如法假名比丘。


이 이후엔 비록 머리 깎고, 가사를 걸쳐도,

계율을 깨고, 법을 어긴 가짜 중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 不如法하다고 이르고 있지만,

가짜 중들이 나타난다는 말씀 역시 부처의 말씀이 아니더냐?

그러하다면 이들의 출현이야말로 如法하니 법다운 일이 아니겠음인가?

부처의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면,

저들 엉터리 중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不如法한 일이 아니랴?


(教法垂世,人雖有稟教,而不能修行證果,稱為末法。)


謂如來滅度正像之後。

一萬年間。教法垂世。人雖稟教。而不能修行證果。

或云末法有三萬年。

(溈山警策句釋科文)


여래께서 돌아가신 후, 정법, 상법 시대를 지나, 1만 년간, 

교법이 세상에 보여지고,

사람들이 비록 가르침을 품수한다하여도,

수행 증과(證果)를 얻을 수 없다.

혹자는 말법 기간을 3만년이라 한다.


그러니까 말법시대에선 비록 수행을 하여도 증득할 수 없다는 말이다.

불법이 수천 년 전해지는 동안 이제껏 동일한 교법과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함인데 어째서 말법 시대엔 같은 교법, 수행이 있다한들,

깨우침에 이를 수 없다는 말씀인가?


이는 불법이 문제가 아니라, 정작은 사람이 문제이리라.

불법이 펴진지 2500년 동안 증오(證悟)한 자가 점점 줄어 들어,

말법 시기엔 아예 없어지고 만다.

근기(根基)가 노둔(駑鈍)하여 신심(信心)을 굳건히 지키기 어렵고,

이에 따라 득도자(得度者)가 씨가 말라가는 것이다.


삼국유사 따위를 보면 절집이 그냥 민간 여염집 모옥(茅屋)이기도 하다.

그러한데 지금은 절집을 지었다 하면 동양 최대 운운하며 과시하길 좋아하고,

불상도 당대 최대가 아니면 아예 불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 통에 신도들 등허리가 휘고, 불전함은 배가 불러 터져난다.

그게 아니라면 어이하여 중들이 도박하고, 성매수하느라 여념이 없는가?

게다가 심심하면 ‘절뺏기’ 놀이에 열중하지 않았더뇨?


함석헌의 무교회주의처럼, 불교도 무사찰운동을 벌였으면 어떨까 싶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라 하지만,

오늘날 중들의 모습을 보면,

삼보에 들기는커녕, 

석가모니불의 정법(正法)을 해하는 대흉(大兇)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혹 내 글을 보는 승려가 하나 있어,

일부 승려의 문제지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내 이리 되여쭙고자 한다.

당연 모든 승려가 저리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러한 일을 저지르는 중들을 왜 치탈도첩(褫奪度牒)하여,

산문 밖으로 쫓아내지 못하고들 있는가?

이는 나머지 승려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계심이 아닌가?


마왕파순(魔王波旬)이 머리 깎고, 가사 걸치고 중 행세를 하니,

정법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만다.


毀破禁戒,行不如法,假名比丘。


계율을 지키지 않고,

행실은 법답지 않은, 

가짜 이름의 비구가 횡행한다.


譬如獅子蟲,還食獅子肉


비유컨대 사자벌레가 사자 몸에 들어가 되레 사자 몸을 먹는 것과 같다.

즉 사자충이 사자 몸에 들어가 가사 입고, 머리 깎고 중 노릇하고 있으니,

이 상황이란 곧, 

일찍이 허운(虛雲) 선사가 말씀 하신,


秀才是孔子的罪人,和尚是佛的罪人。


수재는 공자의 죄인이요, 중은 부처의 죄인이다.


바로 여기에 맥이 닿아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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