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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 병원

소요유 : 2015. 3. 14. 01:35


정토 병원


내가 오늘 아침 차를 타고 출타를 하였는데,

도중 잠시 신호를 기다리느라 차로에 서 있었다.

고개를 건너편 도로로 돌리자, 게 빌딩에 걸려 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였으되 ‘정토 병원’이라, 

이런 흔치 않은 글귀가 걸려 있다.


얼핏, 이게 좀 어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예토(穢土)요, 죽어서는 저 세상 정토(淨土)로 들어 간다.

예토란 더러운 땅이란 것이니,

이는 온갖 고통과 더러움에 물든 세상이란 뜻이요.

정토란 반대로 복락이 넘치는 정한 곳이란 뜻이 아니랴?

예토는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을 가리키며,

정토란 현생에 만날 수 없고 복덕을 지어 죽어서야 넘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하다면 정토란 곧 죽어서야 겨우 갈 수 있는 곳이니,

의원이 이런 이름을 가졌다 함은,

그곳을 거치면 (죽어서) 그리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작법(作法), 작명(作名)인가?


허나,

어디 정토가 별도로 있는가?

네가 작금 발 딛고 사는 곳외에 별도로 따로 구할 곳이 있기나 있는가?

바르게 닦고, 행하면 곧 이 땅이 정토가 아니겠음인가?

그러하다면 이곳이야 말로 정토가 아니랴?

그러함이니 저곳은 이 예토에 사는 중생들에게,

(살아서) 정토의 세상을 바로 맞게 해주겠다는 뜻인가?


오늘날 의원이란 얼마나 현세적인 기술적 만족 추구 공간인가?

거긴 차가운 테크닉으로 병소(病巢)를 도려내는 작술법(作術法)만 승(勝)할 뿐,

도대체가 고통을 아파하고 연민하는 정서적인 교감은 절제(切除)되어 있다. 

병자들은 그러한 곳에서나마 겨우 의탁하여 병마를 쫓아내려 애쓰지만,

게로 인해 그 꾀하는 욕구가 온전히 충족된다는 보장도 없다.


불교엔 정토종(淨土宗), 염불종(念佛宗)이란 교파가 있다.

저들은 오늘날의 말법5탁(末法五濁) 세상에선 타력신앙을 통해서만 구제될 수 있다는 종지(宗旨)를 편다.  

염불만 하면 서방정토(西方淨土) 즉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아, 이 간절함이란,

팔뚝에 소름이 바르르 돋으며 어깨까지 그 소망의 떨림이 전해온다.

간단히 통으로 말하긴 조심스런 구석이 있지만,

이게 기독교의 휴거와 무엇이 다른가?

여긴 최소한 믿음으로 구원이라든가 왕생을 꾀하고자 하는 기도(企圖)가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이 세상이 말법시대이긴 한가?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에 따른다면,

이미 말법 시기를 한참 더 지나고 있긴 하다.


若我住世諸聲聞眾。戒具足。捨具足。

聞具足。定具足。慧具足。解脫具足。

解脫知見具足。我之正法熾然在世。

乃至一切諸天人等。亦能顯現平等正法。於我滅後五百年中。

諸比丘等。猶於我法解脫堅固。

次五百年我之正法禪定三昧得住堅固。

次五百年讀誦多聞得住堅固。

次五百年於我法中多造塔寺得住堅固。

次五百年於我法中鬥諍言頌白法隱沒損減堅固。了知清淨士。

從是以後於我法中。雖復剃除鬚髮身著袈裟。

毀破禁戒行不如法假名比丘


이를 따져보면 말법 시대는 서기 1000년 ~ 1500년이니,

중국은 명(明)나라 때에 당(當)하며,

우리나라는 조선 임진왜란(1592년)을 지나고 있다.


이 때에는 불법은 名存實亡이라 이름만 남고, 실은 없어지고 만다.

분종분파(分宗分派)가 되어 쟁의를 일으키고, 

법이 은몰(隱沒)되고, 정법은 파괴되고 만다.


從是以後於我法中。雖復剃除鬚髮身著袈裟。

毀破禁戒行不如法假名比丘


이 이후엔 비록 머리 깍고, 가사를 걸쳐도,

계율을 깨고, 행실은 법을 어긴 가짜 중들이 나타난다.


오늘날 한국 불교를 보면 식육을 거리낌없이 하는 중들도 있고,

도박, 성매수를 하여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말법 치고도 농(膿)이 흐르고, 골수가 썩는 형국이라 하겠다.


이에 대하여는 정봉주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생선향기’ 편을 참고하라.

(※ http://www.podbbang.com/ch/7064)

여담이지만 ‘생선향기’란 조어는 좀 그릇되었다.

‘생선냄새’라면 모를까?

아마도 이는 법구경의 한 구절을 취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나의 지난 관련 글로 대신한다.

(※ 참고 글 : ☞ 2011/11/30 - [소요유] - 길 없는 길 - 분불(焚佛))


일찌기 허운(虛雲) 선사는 이리 말하였다.


秀才是孔子的罪人,和尚是佛的罪人。


‘수재는 공자의 죄인이요,

중은 부처의 죄인이다.’


(※ 수재 : 한(漢)나라 이래 과거 시험 과목 중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로되,

차차 우수 인재를 가리키는 말로 전화되었다.

여기서는 서생(書生) 또는 독서인( 讀書人) 정도로 보면 어떨까 싶다.)


과시 정문(頂門)의 일침(一針)이라 하겠다.


이리 세상이 허물어지고 있는데,

어려운 교선(敎禪)을 따를 자가 남아 있겠음인가?

그저 칭명염불(稱名念佛)하며 극락왕생하는 법을 찾는 것이 낫다는 이가 왜 아니 나타나리?


***


내가 겪기론 간판 이름 중에서 ‘수구문 국밥집’처럼 어처구니 없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함인데 오늘 저 간판을 보자 이름이란 함부로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엉터리식당’.

‘음식천당’

‘고인돌농장’,

‘털보식당’


‘수구문’, ‘천당’, ‘고인돌’ ...

이 따위들은 모두 죽음과 상관되어 있다.

장의사일지라도 요즘엔 애써 죽음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 이름을 찾아 작명한다.

喜生厭死

대저 살아 있는 것은 죽음을 꺼리는 법.

하온데, 살아 있는 사람을 상대로 업(業)을 일으키고 있음인데,

어찌 이름인들 소홀히 할 수 있겠음인가?


정토종 계열의 사찰이라면,

정토사라 이른들 이게 어찌 문제가 되리,

외려 극명하니 그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겠다.

세상이 고해인즉 이를 벗어나 정토에 이르자 하는 것이니,

명실(名實)이 한 자리에 임하고 있다 하겠다.


헌데, 먹고 살겠다는 음식을 다루는 식당, 농장을 영위하면서,

그 이름 지음에 죽음을 연상시키는 조어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음인가?


그러하다면,

의원이라면 어찌 하는 것이 바른 도리일런가? 

정토란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지만,

수구문, 고인돌 따위와는 달라,

바로 죽음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죽음 이후의 지극 복락의 세상을 노래하고 있다.

함인즉,

정토 병원이라 할 때는 죽음 자체가 아닌 그 다음을 겨냥하고 있다 하겠다.

허나, 아직 이승에 살고 있는데 장차 갈 정토를 염두에 둘 일이 어디에 있으랴?

이리 두고 생각해보면 저 이름은 납득키 어렵다.


하지만 이런 피상적인 해석을 넘어,

현 세상에서 전격 정토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짐작컨대는 작명자는 후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의원(醫員)은 약왕보살(藥王菩薩)이 현신(現身)이라도 하신 것인가?

고통에 찬 환자를 병고(病苦)에서 벗어나게 하여,

차안(此岸)에서 전격 동방정유리세계(東方淨瑠璃世界)로 인도하심이런가?

아니면 아미타불의 현신으로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로 이끌려 하심인가?  

허나 이들은 모두 죽어서야 갈 수 있는 곳임이라,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을 탐하는 것이,

어리석은 중생이언데, 어찌 이들을 제 원망대로 제도할 수 있으랴?

그러나 도피안(渡彼岸)을 별도로 구할 일이 있으랴?

바로 온 자리가 정토이며,

되돌아갈 자리가 피안이 아니런가?

헌즉 의원(醫員)은 곧 예토를 정토로 만들겠다는 말씀이시라.

이 어찌 장한 말씀이 아니겠음인가?

아니면 의원(醫院)이란 공간만큼은 정토에 다름 아니란 자기 과시의 언명일런가?


꿈보다 해몽이 좋은가?


허나 현실은커녕 꿈 속에서도 이리 깨지고 저리 나자빠지는 것이 중생의 삶인 게라.

그 누가 있어 꽃같이 어여쁘고, 꿀처럼 달콤한 해몽을 믿으랴?

작야몽(昨夜夢)이 다만 흉몽만 아니어도 한 시름 놓을 뿐이거언만,

당금(當今) 뼈가 상하고, 살이 헐어 병에 들어 있음인데,

병고에서 벗어나기도 벅찬 노릇일지니,

언감생심 정토를 꿈꿀 여가가 어디에 있으랴?


굶주린 이에겐 밥 한 공기가 관음보살 친견함보다 더 기쁘며,

아픈 이에겐 파 한 뿌리, 생강 한 쪽도 편작, 화타를 대하듯 요긴한 법.


다만, 여기 정토 병원이란 간판이 요연(曜然)하니 빛을 뿜고 있다. - 曜法電。

문득 벼락(霹靂) 길음(吉音) 소리가 동네 고샅길까지 훑어지나고 있다. - 震法雷。


바라거니와,

의원(醫院)에 가서야만 비로소 정토를 만날 뿐이 아니라,

시장에 가서도, 밭에 가서도, 변솟간에 가서도,

온 누리가 정토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여기 오늘의 인연에 의지하여 삼가 옷깃을 여미고,

정토종의 소의(所依) 경전 중 하나인 무량수경(無量壽經)의 말씀 한 대목을 음미해보고자 한다.


지극한 마음으로 저 나라(정토)에 태어나길 원하는 3 부류가 있으니.

그 맨 윗길 무리는 이러하다.

집을 버리고, 욕심을 놓고, 사문이 되어, 보리심을 일으킨다.

오로지 무량수불을 향한 일념을 품다.

제(諸) 공덕을 닦아 저 나라에 태어나길 원하면,

이런 중생은 임종시,

무량수불과 제(諸) 대중이 바로 앞에 나타나신다.

즉시 무량수불을 따라 가서 그 나라에 태어난다.

문득 칠보로 장식한 꽃 가운데 자연적으로 태어난다.

그리고는 머무르고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지혜, 용맹, 신통 자재가 이러하다.

그런고로 아난아,

그런 중생이 있어, 금세에 무량수불을 보고자 한다면,

위없는 보리심에 응발(應發)하여,

공덕을 쌓아 저 나라에 태어나길 원한다.


부처가 아난에게 이르시다.

중간 정도의 부류 시방세계 제천인민이 있어,

지심으로 저 나라에 태어나길 원하다.


비록 사문의 길로 나아가 큰 공덕 수행을 닦을 수는 없지만,  

위없는 보리심을 내어,

무량수불을 향한 일념을 내다.

다소의 선행을 닦고, 계를 받들어 지키며,

탑과 부처 상을 조성하고,

사문에게 공양 시주를 하고, 

연등을 달고,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다.


이를 회향하여, 저 나라에 태어나길 원한다면,

임종시에 무량수불이 그 몸을 바꾸어(化佛) 나타나신다.

진짜 부처와 같은 광명 상호(相好)를 갖추고 대중과 더불어 앞에 나타나시니,

즉시 그 화불(化佛)을 따라 그 나라에 태어나며,

머물러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는다.

공덕, 지혜는 그 윗길 무리의 다음이니라.


부처가 아난에게 이르신다.

그 아랫 길 부류 시방세계 제천인민이 있어,

지심으로 저 나라에 태어나길 바란다.

가령 제(諸) 공덕을 지을 수 없을지라도,

위 없는 보리심을 십분 내어,

무량수불을 향하여 전념하길 그 나라에 태어나길 원한다.


만약 그 심오한 법의 환희신락(歡喜信樂)을 듣고,

의혹이 생기지 않는다거나,

무량수불을 념념히 생각하며,

지성으로 저 나라에 태어나길 원한다면,

임종시 꿈에 저 부처를 보며 역시 극락 왕생할 수 있으리니.

공덕, 지혜가 중간 무리 다음이리라. 


(佛說無量壽經)

佛告阿難。十方世界諸天人民。

其有至心願生彼國。凡有三輩。其上輩者。

捨家棄欲而作沙門。發菩提心。一向專念無量壽佛。

修諸功德願生彼國。此等眾生臨壽終時。

無量壽佛與諸大眾。現其人前。

即隨彼佛往生其國。便於七寶華中自然化生。

住不退轉。智慧勇猛神通自在。是故阿難。

其有眾生。欲於今世見無量壽佛。

應發無上菩提之心。修行功德。願生彼國。

佛語阿難。其中輩者。十方世界諸天人民。

其有至心願生彼國。

雖不能行作沙門大修功德。當發無上菩提之心。

一向專念無量壽佛。多少修善。奉持齋戒。起立塔像。

飯食沙門。懸繒然燈。散華燒香。

以此迴向願生彼國。其人臨終。無量壽佛。化現其身。

光明相好具如真佛。與諸大眾現其人前。

即隨化佛往生其國。住不退轉。

功德智慧次如上輩者也。

佛語阿難。其下輩者。十方世界諸天人民。

其有至心欲生彼國。假使不能作諸功德。

當發無上菩提之心。一向專意乃至十念。

念無量壽佛願生其國。

若聞深法歡喜信樂不生疑惑。乃至一念念於彼佛。

以至誠心願生其國。此人臨終。

夢見彼佛亦得往生。功德智慧次如中輩者也。


또 하나의 소의 경전인 불설관무량수불경(佛說觀無量壽佛經)에선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마주하게 된다.


稱名一聲起一念 八十億劫罪皆除


일념으로 한 소리로 아미타불 명호를 외면,

80억겁에 걸친 죄업이 모두 소멸된다.


도대체가 아미타불의 법신력이 얼마나 위대하길래,

칭명 한번에 물경 80억겁의 죄업이 모두 없어진단 말인가?

물론 이 경에선 상품, 중품, 하품의 종별에 따라 소멸 죄업의 양이 다르다.

80억겁은 하품하생자(下品下生者)에 당(當)한다.

허나, 문제는 일성(一聲)이 아니라 일념(一念)이다.

찰나 간에도 900 번 생멸이 있다 하였음이며,

일념(一念) 간엔 81,000 번의 생멸이 있다 하였음인데,

과연 애오라지 아미타불을 향한 순일한 일념을 유지할 수 있겠음인가?


稽首瞻禮即西方

서방 극락세계로 머리를 조아리고 우러러 본다.


그럼 여기 극락(極樂)이란 그럼 무엇인가?


(佛說阿彌陀經)

彼土何故名為極樂?其國眾生無有眾苦,但受諸樂,故名極樂。


이 곳 땅은 왜 이름을 극락이라 이르는가?

그 나라 중생은 뭇 고통이 없고,

다만 뭇 즐거움만 누린다.

고로 이름을 극락이라 한다.


여기 저 서방 극락 정토에 가길 원하는 이를 위해,

주문(呪文)을 소개해둔다.


無量壽佛 說往生淨土咒。 南無阿彌多

婆夜 哆他伽哆夜 哆地夜他 阿彌唎

(上聲)都婆毘 阿彌唎哆 悉耽婆毘 阿彌

唎哆 毘迦蘭哆 伽彌膩 伽伽那 [打-丁+只]多

迦隸 莎婆訶

誦此咒者,阿彌陀佛常住其頂,

命終之後任運往生。

龍樹菩薩願生安養,夢感此咒。

(佛說阿彌陀經)


이 주문을 외는 자는 아미타불이 항상 그 머리위에 계셔서,

임종시 극락 왕생을 맡아 이끌어 주신다.

용수보살은 이 곳에 왕생하길 원해,

꿈 속에서도 이 주를 감응(感應)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동서남북 모두 불국토가 있어,

사람들은 죽어 그곳에 태어나길 원한다.


서방엔 아미타불이 이끌고 있는 극락정토,

동방엔 약사여래가 살고 계시는 유리광토가 있다. 


하온데, 어찌 당금 자신이 살고 있는 중앙에선 복토, 정토를 일구지 못하는가?

이에 대하여는 나의 지난 글을 끌어내 대신하고자 한다.  

(※ 참고 글 : ☞ 2013/05/20 - [소요유] - 힐링과 약사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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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5. 3. 14. 0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