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밥 항아리

소요유 : 2015.03.02 00:15


내가 시골 생활을 해보니깐 알겠더라.

사람들이 약속을 어기길 다반사(茶飯事)로 하고,

약속을 지키더라도 시간을 지키지 않음이 여반장(如反掌)이라.


이는 믿음(信)이 없기 때문이라.


헌데 無信이고서도 인간이더냐?


人而無信,不知其可也。大車無輗,小車無軏,其何以行之哉?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 옳음을 알 수 없으며,

큰 수레에 끌채가 없고, 작은 수레에 끌채가 없으면, 어찌 나아가겠는가?


(http://blogs.yahoo.co.jp/niteruhitotoyou1103101/folder/1447880.html)


믿음이 없는 이와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


어느 날,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우연히 곁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한 조직에 몸을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필시 조직의 하부 단위 모임일 터인데,

그 무리의 두목이 말한다.


작은 일은 내가 모두 책임진다.

하지만 내게 충성하라.’


곁에서 듣고 있었는데,

내가 모두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 귀에 들려오자.

문득 무서운 기운이 저녁 이내처럼 암푸르게 내리 깔리고 있음이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책임이란 귀책사유가 있는 이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어늘,

하늘 아래 그 누가 있어 대신 이를 감당해준단 말인가?

세상의 이치가 이러하거늘 책임을 남이 대신 짊어주겠다 한다면,

거긴 무엇인가 아지 못할 뜻이 숨겨져 있지 않은가?

되로 주고 말로 갚는다 하였음이니,

이게 정녕 시혜를 베품이 아니라면,

계략에 걸려들 수도 있지 않겠음인가?

이것이야말로 어찌 무서운 일이 아니란 말인가?


‘여기 누군가 소 한 마리를 잡아먹어도,

내가 모든 책임을 지지만,

그 일을 우리들 밖으로는 새나가지 않게 하라.’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이 모여 구수회의를 하는 양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

게다가 앞에서 작은 일은 책임을 진다하였음이니,

소 하나 잡아먹는 것쯤은 작은 일이란 말이렷다.

그렇다면, 소 몇 마리 잡아야 큰 일이 되며,

그 때에 이르러 그는 책임을 지지 않겠단 말인가?

두목 치고는 제가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의 배포가 좀 작구나 싶다.

장부가 뱃구레에 대포 몇 문이라도 쑤셔 숨겨 두고 살아야지,

작은 일, 큰일을 나누고서야 어찌 부하들을 제대로 구휼(救恤)할 수 있으랴?

원래 아랫사람들이란 늘 헐벗고 굶주려 있으니,

그들의 창자엔 일흔아홉 마리 아귀가 진을 치고 있음이다.

저 이가 대포는커녕 고무줄 새총도 미처 장만치 못하고 있으니, 

저리 헛뻥조차 제대로 못 치고 있고뇨.


도대체가 부하들 책임을 대신 지겠다는 상전을 모시고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지만, 세상엔 공짜는 없는 법.

조직 내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음이 아니더냐?

두목의 말씀,

‘작은 일이라면 云云’할 때의, 

저 은밀히 조처(措處)된 ‘작은’이란 한정사가 너무도 재미있긴 한데,

저 가운데 누구도 이에 주목하지 않는가 싶다.

두목의 말씀이 연거푸 떨어지자,

일동은 ‘네’ 소리를 키 맞춰 내지른다.


尊命

말씀을 뜨겁게 받들겠다는구나.


일순 장내는 비장감이 흐르며,

조직원 저마다의 옆구리에 찬 칼집에 든 칼들이 절로 바르르 떤다.

필시 주인 혼령의 부름에 응감(應感)하고 있는 것이리라.

오늘날 칼의 순정이란,

이리도 허랑하구나.


옛 무사의 칼은,

칼 주인(刀主)의 호신령(護身靈) 노릇을 넘어섰다.

가령, 주인이 의(義)롭지 않으면,

야밤에 스르렁 칼집을 뛰쳐나와 도망을 가버린다.

의롭지 않은 이를 섬길 수는 없는 법.

월나라 구야자(歐冶子)가 만든 담로(湛瀘)는,

오왕이 무도(無道)하자 어느 날 사라진다.


또한 칼이 주인을 지킨다 함은,

그저 휘두르는대로 잘 따른다 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능기(能技)는 아녀자의 버선 깁는 바늘의 덕성에 불과한 것.

영검스런 검은 주인이 잘못 해를 입을 때,

샤르랑 거리며 경계의 소리를 내며 주인을 지켜낸다.


허나, 오늘날 이런 칼들이 모두 땅 속으로 제 몸을 숨기며 사라진 것이 어찌 칼의 탓이랴?

이 모두 사람들이 뼈골이 녹아 흐물흐물해진 때문이 아니겠음인가?

이런 무골(無骨)들을 섬기느니,

차라리 어두운 광(壙)에 누워 천년 어둠을 벗 삼는 것이 나으리라.

내, 저 두목이 호기로운 듯 질러내는 언약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어느덧, 진나라 대부 혼헌(渾軒)의 차가운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있다. 

섣달 초닷새 하늘에 걸린 초승달처럼 차가운 그 말씀의 비수(匕首) 하나가 허공을 긋는다.


이에 2600여년 전 그 때를 다시 돌려 상기해본다.


진문공(晉文公)이 나라 밖으로 달아나 망명을 하던 때이다.

기정(箕鄭)이 음식 항아리를 들고 수행하다.

(어느 때,) 헤매다 길을 잃고서는 문공을 놓쳤다.

배가 고파서 울었으나 배고픔을 참고 감히 음식을 먹지 않았다.

진문공이 제 나라로 귀국하여 군사를 일으켜 원(原)을 공격하였는데,

이겨서 영채를 뽑아버렸다.

(※ 攻原得衛者 信也。

당시 진은 原을 공격하는 도중 약속을 저버리지 않아 적국으로부터 信을 얻었다.

이에 原은 자진하여 항복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나라 衛도 자진하여 진에 항복하였다.

이 모두 진의 信 때문이다.)

문공이 말한다.


‘무릇, 배고픈 고통도 쉽게 참아내고, 밥 항아리를 온전히 지켰음이니,

그가 장래 원(原)을 맡아도 배반치 않으리라.’


이에 그를 들어 원(原)의 지방관으로 삼았다.

대부 혼헌(渾軒)이 이를 듣고는 그게 잘못되었다며 이리 말하다.


‘밥 항아리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하여,

그로써 원(原)을 맡아 배반을 하지 않는다 믿는 것은,

너무 술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즉, 밝은 군주란 남이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믿질 않고,

내가 배반당하지 않게 할 것임을 믿으며,

남이 나를 속이지 않는다고 믿질 않고,

내가 속임을 당하지 않게 할 것임을 믿는다.’


晉文公出亡,箕鄭挈壺餐而從,迷而失道,與公相失,飢而道泣,寢餓而不敢食。及文公反國,舉兵攻原,克而拔之,文公曰:『夫輕忍飢餒之患而必全壺餐,是將不以原叛』。乃舉以為原令。大夫渾軒聞而非之曰:『以不動壺餐之故,怙其不以原叛也,不亦無術乎!故明主者,不恃其不我叛也,恃吾不可叛也;不恃其不我欺也,恃吾不可欺也。』


역사를 대하다보면,

의를 앞잡이로 세워 군주를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꾀하다,

종국엔 나라까지 탈취하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가령, 서백창(西伯昌)은 의로움을 닦아 펴며 인심의 향배를 자신에게 돌렸다.

은(殷)나라의 충신 비중(費仲)은 이를 간파하여 주(紂)에게 권하길,

서백창을 주살해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주(紂)는 이리 말하며 비중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夫仁義者,上所以勸下也。今昌好仁義,誅之不可。


‘무릇 인의란 위가 아래에 권하는 바임이라.

이제 서백창은 인의를 좋아한다.

그를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비중은 3번을 주청하였으나 쓰임을 받지 못하였다.

고로 은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서백창은 과연 인의지사(仁義之士)인가?

아니면 야욕을 숨기고 인의를 팔았을 뿐인가?


지금으로 치면 대중 인기 영합 주의, populism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런 사례는 역사상 부지기수다.


가령 기히 적었던 왕망(王莽)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 참고 글 : ☞ 2008/12/30 - [소요유] - 왕망(王莽))

또한 다음의 글을 참고 하여도 좋겠다.

☞ 2010/01/24 - [소요유] - 북한산 케이블카 단상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예를 들어본다.


맹헌백(孟獻伯)이 재상이 되었다.

당하엔 잡초가 나고, 문밖에 가시나무가 자랐다.

둘 이상 반찬을 먹지 않았고,

집에 있을 때 말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고,

나갈 때 수레를 타지 않았다.

숙향(叔向)은 이를 두고 검약이 뛰어나다고 칭송하였다.

허나, 분황(賁皇)은 숙향을 이리 나무랐다.

‘재상에게 수레를 나라에서 주는 것은 신분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것이다.

또한 전쟁에 대비하여 평소 차마를 잘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평상시엔 이것으로 조정의 일을 돕는 것이다.

헌데, 이러한 법도를 어지럽혀 준비를 소홀히 하여 검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의 명성을 높이려 꾸미는 짓이다.

아랫것들에게 아부하는 짓인데,

이를 어찌 칭송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돌아가자고 외친 옛 문화의 전범(典範)이란,

바로 서백창이 일군 주(周)나라의 것을 두고 일컫는 것이 아니더냐?

허나 주(紂)에겐 서백창은 그저 주살해버려야 했을 역적이었을 뿐이라,

비중이 충신이라면서 동시에 서백창을 어찌 숭앙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랴?

혼헌은 온 천하의 주인에게 이리 외치고 있음이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믿어야 한다.’


남의 인의란 게 마침 나에게 득이 된다면 다행이겠으나,

믿음의 화(禍)가 된다면 어찌 먼저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대가 만일 누군가를 모시고 있다면,

오늘 당장 소 한 마리를 잡아먹으라.

내일 이게 통하고 있다면 이젠 두 마리를 잡아 먹거라.

어느 날 섬기던 이가 그대의 허물을 가려주지 못한다면,

그 날 그대는 그를 위해 소 대신 제상에 올려질 제물(祭物)이 되는 날임을 알게 되리라.


옛날 제물로 쓰이는 소는 하얀 털이 섞여도 아니 되고, 치질이 걸려도 아니 된다 하였다.

(※ 참고 글 : ☞ 2014/02/08 - [소요유] - 희생양(犧牲羊))

그대 모시고 있는 상사가 ‘소 잡아먹어도 내가 책임지리라’라 한 말을 믿으려면,

하얀 털 뽑고, 밑 깨끗이 닦고서는 앞날을 예비하라.

그 날, 소 대신 제물이 되는 날에 이르기까지.


저 혼훤은 주군을 두고 말하고 있지만,

신하라 한들 마냥 주군을 믿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IMF 사태 이전 유명 대그룹 하나는 우리 모두는 ‘oo가족’이라며,

직원들을 향해 달콤하니 꿀 바른 소리를 하였다.

그러함인데 저 그룹은 해체되어 버렸고,

오늘날 이 땅엔 비정규직이란 해괴한 이름의 혼을 앗긴 이들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혼헌의 말씀은 군주, 사장에게만 당하는 게 아니다.

신하, 직원 아니 천하인 모두에게 당하는 게 아니랴?


허나, 오늘날 비정규직이란 이름의 사람들은,

도대체가 무작정 믿어주려 하여도 믿을 주군조차 없구나.

저들은 소 잡아먹고 게트림은커녕,

허공 보고 한숨 쉴 틈조차 없다.

국화 한송이 꺾어,

삼가 저들 슬픔의 제단에 길게 읍례(揖禮)를 차린다.


(오늘은 피곤하여 글이 고르지 않다.

밤이 늦어 그만 쉬고 싶다.

피어 오르는 말씀을 미처 다 적지 못하고 말았다.

차후 틈을 내어 좀더 보태 다듬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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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자절야 2015.03.02 17:53 PERM. MOD/DEL REPLY

    외할머니가 살아계실의 때의 시골을 기억합니다. 지나가던 사람도 불러서 같이 밥을 먹었지요. 허나 요즈음의 시골 모습은 다른듯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지와 고집스러움에 의로움을 상실하였고 게다가 탐욕으로 무장하고 있음을 느낌니다. 허나 모두는 아니겠지요. 그렇지 않은 참된 이웃 하나를 발견하는 것이 삶이 주는 하나의 즐거움이리라 여겨봅니다.

    bongta 2015.03.03 00:32 신고 PERM MOD/DEL

    주신 말씀 앞에 서자니 한 분이 생각납니다.
    제가 한 때 북한산을 가까이 마중하던 시절, 홀로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낮이든 야밤이든 가리지 않았지요.

    어느 날 한 분이 계서,
    제게 말씀을 먼저 내려주셨습니다.
    그 내밀한 최초 인연의 시간.
    저는 이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분을 지나는 길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만,
    스쳐 지났을 뿐 각행기로(各行己路)라 자기 길은 자기가 갈 뿐,
    內外間 거래를 튼 적이 없었지요.

    그 날 이후 이 분을 모시고 배움과 사랑을 도타이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참 못나길, 그 성정 자체가 번거로움을 염오(厭惡)하여 홀로 등산을 다녔음인데,
    등산 이력 수십 년래 처음으로 지객(知客)을 만나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멀리서 저를 지켜보셨던 것인 것일까요?
    손을 먼저 내밀어 이끌어 주심으로 부족한 사람이 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로선 분에 넘치는 일입니다.
    이 분께선 지금 세상에 아니 계십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먼저 모시지 못한 것을 자책합니다.
    큰 은혜를 제게 내리시고 떠나신 그 선생님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저는 그 선생님의 은혜를 갚는 도리는,
    제게 가르침을 주신 그 뜻과 같이,
    참된 사람을 만나 인연을 지었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이 있습니다.

    ‘참된 이웃’이란 말씀 앞에 서자,
    저는 곧 그 분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존경, 아니 사랑하는 그 분을 다시금 생각키우는,
    주신 말씀의 인도(引導)가 은혜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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