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오천만 원

소요유 : 2015.04.07 23:56


우리 동네엔 참으로 신기로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원래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면,

기인이사(奇人異士)가 많은 법.

허나 내가 사는 동네는 북한산 자락 밑에 형성된 곳이라,

산도 높다 할 수 없고, 기인이사가 숨어들 골짜기도 별로 없다.

함인데도 참으로 재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저들이 실제로 재미롭고, 기이(奇異)한 인사들인지,

아니면, 내가 미치지 못하여, 안목이 좁고, 소견머리가 밭아,

널리 인사를 구하지 못하고, 사물을 접한 폭이 협착스럽기 때문인가?


최근 이곳에서 만난 이 하나가 있어,

생각의 타래가 이리저리 풀려 나오고 있음이라,

내 이를 이 자리에 깔아 내본다.


言之為物也以多信,不然之物,十人云疑,百人然乎,千人不可解也。吶者言之疑,辯者言之信。姦之食上也,取資乎眾,籍信乎辯,而以類飾其私。


말이라는 것은 많이 하면 (할수록) 믿음을 주게 된다.

그렇지 않은 일(不然之物)에 대해, 

열 사람이 의심의 말을 할지라도,

백 사람이면 그렇게 되고, 

천 사람이면 (이젠 굳어져) 풀 수 없게 된다.


눌변인 사람의 말은 의심을 사고,

능변인 사람의 말은 믿음을 준다.


간악한 자가 위(上)를 씹어 먹을(속여 먹을) 땐,

여러 사람의 지원을 얻고(取),

변설에 믿음을 붙여서,

비슷한 사례를 동원하여, 사사로움을 꾸며 된다.


***


즉심즉불(卽心卽佛)


마음이 곧 부처라 이르지만,

중생에게 마음이란 소(牛)는 찾아도 찾을 바 없으며,

그 머무르고, 간 곳을 아지 못한다.

헌즉 不可知한 그 말이란 삿대에 의지하여,

이 감고(黑) 감은 고해를 짚어가며,

파랑(波浪)에 휩쓸리며 헤매인다.


말이란 것은 본디 허공 중에 핀 꽃 같은 것, - 空花

백내장(白內障) 눈(眼) 속을 날아다니는 모기처럼 그 실(實)을 여윈 허환(虛幻)이어라. - 飛蚊


多虛少實,語不可知。尊空無酒,飛言如雨。


허방은 많고, 실은 적다.

말이란 그 진위, 허실을 아지 못하는 것.

술잔은 비고, 술은 없도다.

(허랑한) 말만 비처럼 날리누노.


猾醜假誠,前後相違。言如鱉咳,語不可知。


교활하고, 거짓으로 성실한 척하니,

전후가 서로 어긋나누노,

말이 자라의 기침 소리 같으니,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구나.


龐恭與太子質於邯鄲,謂魏王曰:『今一人言市有虎,王信之乎?』曰:『不信。』『二人言市有虎,王信之乎?』曰:『不信。』『三人言市有虎,王信之乎?』王曰:『寡人信之。』龐恭曰:『夫市之無虎也明矣,然而三人言而成虎。今邯鄲之去魏也遠於市,議臣者過於三人,願王察之。』龐恭從邯鄲反,竟不得見。


방공이 태자를 모시고 한단에 인질로 가게 되었다.

위왕에게 아뢴다.


‘이제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있다. 이리 말한다면 왕께선 이를 믿겠사오니까?’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이리 말한다면 왕께선 이를 믿겠사옵니까?’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이리 말한다면, 왕께선 이를 믿겠사옵니까?’


‘과인은 그를 믿겠구나.’


방공이 아뢴다.


‘무릇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이 말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이제 한단은 위(魏)로부터 떨어져 있기를 시장보다 더 멉니다.

신을 비방하는 자가 세 사람을 넘으면,

바라옵건대 왕께선 이(사정)를 살펴주십시오.’


(후에) 방공이 한단으로부터 돌아왔다.

결국 왕을 뵐 수 없었다.


이게 소위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이야기다.


이와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들이 역사 속에선 더 전해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 서술 구조는 당시 이미 널리 알려졌음인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난 전자 쪽에 선다.

증자(曾子)와 관련되어 이를 차용한 듯한 이야기가 여기 하나 더 있다.


一簧兩舌,妄言謬語,三姦成虎,曾母投杼。


사람을 현혹케 하는 거짓말,

사리에 맞지 않는 말, 

세 사람의 간악한 자가 호랑이가 나타났다하자,

증삼(曾參)의 어머니는 베틀의 북(shuttle)을 내던지다.


魯人有與曾參同姓名者殺人,人告其母曰『曾參殺人』,其母織自若也。頃之,一人又告之曰『曾參殺人』,其母尚織自若也。頃又一人告之曰『曾參殺人』,其母投杼下機,踰墻而走。夫以曾參之賢與其母信之也,三人疑之,其母懼焉。


노나라에 증삼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자가 살인을 하였는데,

한 사람이 있어 증삼 어머니에게 증삼이 살인을 하였다고 고하였다.

허나, 증삼 어머니는 태연히 베틀에 앉아 있었다.

얼마 후에, 또 한 사람이 증삼이 살인을 하였다고 고하였다.

증삼 어머니는 여전히 태연자약 베틀 일을 하였다.

다시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또 한 사람이 증삼이 살인을 하였다고 일렀다.

증삼 어머니는 베틀 아래로 북을 내던지고는 담장 넘어 달려 나갔다.

증삼과 같이 현명하여, 

그 어머니의 믿음이 있다한들,

세 사람이 그를 의심하면,

그 어미인들 걱정에 싸이고 만다.


증삼의 어머니까지 놀라게 하여 그 믿음을 헐게 하였음이니,

이 왜 아니 간악함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음인가 말이다.


그런데 일인(一人)이 예 있어 삼 세 번 말하는 경우에도,

호랑이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삼인이 호랑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비록 한 사람이지만, 골백번 되풀이 말한다면,

이 또한 하늘이 감(感)하시고, 

땅이 응(應)하시며,

귀신이 보우(保佑)하사, 

인간사 일을 역사(役事)하는 것임이라.

그러하다면, 그것이 헛된 것이러든, 진실된 것이어든,

시장통엔 호랑이가 언제나 득실거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동네에 한 사람이 살고 있다.


처음 만난 날, 이 자가 느닷없이 이상한 이야기를 내게 풀어내놓는다.


자신이 삼성전자 주식을 2조 원어치 갖고 있는데,

조만간 엉킨 문제가 해결되면 이를 찾아, 내게 5천만 원을 거저 주겠다 한다.


거죽으로는 멀쩡한 이라,

정신이 나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지금 일용(日傭) 품을 팔고 있는데,

요즘은 일이 없어 석 달을 쉬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런 말을 내게만 한 것이 아니라,

동네 시장통 만나는 이마다 이런 말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쯤 되면 이는 간단히 허언(虛言)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남에게 따사로운 은혜를 베풀겠다는

복된 말씀이요, 길한 말씀이언즉,

이것이야말로 언필칭(言必稱) 복음(福音)이요, 길음(吉音)이 아니겠음인가 말이다.


저이가 거품 풀어 말씀을 게어 놓자, 

이내, 우리 동네 시장통엔 호랑이가 드글드글 끓고 만다.


***


보이스피싱(voice fishing)의 폐해에 대하여는 요즘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이 거짓 낚시에 걸리는 사람이 간단(間斷)없이 부절(不絶)함은 무엇인가?


네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하였다든가?

네 남편이 옥에 갇혀 있다든가?


하는 교묘한 망언에 시장 바닥엔 곧잘 호랑이가 출현하는 법이다.


妄言謬語,三姦成虎。


말을 한 번 들으면, 

그게 일간(一姦)이 아닌가 의심하고,

말을 두 번 들으면, 

그게 이간(二姦)이 아닌가 의심하며,

말을 세 번 들으면, 

그게 삼간(三姦)이 아닌가 의심하여,

도합 삼세 번 의심하라.

그리하면 결코 시장통에서 호랑이를 만나는 봉변을 당하지 않으리.


삼간이 이리 백주대낮 거리낌 없이 거리를 횡행하는 것은,

그에 값하는 벌이 없기 때문인가 한다.

또는 있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집행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하기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전해지고 있음이다.


功當其事,事當其言則賞;功不當其事,事不當其言則誅。


이룬 공이 그 행한 일과 합당하고, 행한 일이 그 (아뢴) 말과 부합되면 상을 내리고,

이룬 공이 그 행한 일과 어긋나고, 행한 일이 그 (아뢴) 말과 일치하지 않으면 꾸짖어 벌을 내린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군주 되는 이는 신하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나중에 그들이 일을 꾸미고, 공을 세울 때,

먼저 주청한 말과 부합되는가 살피란 말이다.

이 때 이들이 부합되면 상을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주라는 말이다.


오늘날 군주는 대개의 나라에서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은 이젠 헛된 말인가?

어림없는 말이다.

군주는 없어졌어도,

군주 못지않은,

아니 더 무서운 이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라는 이가,

과거 군주인 양 행세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못된 사장은 옛 군주보다 더 흉한 짓을 저지르곤 한다.


어쨌건 저 말씀은 그대 보고 군주가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

다만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헌즉 그 요체를 파지(把持)하는 것이 요긴할 뿐.


다시 돌아가서 말을 잇자.

군주는 앞에 나서지 말라는 말씀이다.


人主之道,靜退以為寶。

군주의 길이란, 고요히 뒷전에 물러나 있는 것이 보배다. 


전면에 나서지 말고,

(신하의) 말이 제대로 실행이 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만 알아내기만 하여도 족하단 말이다.

이게 잘되면 상을 주고, 아니면 벌을 주란 말이다.

그러면 신하들은 말을 함부로 뱉어내지 않고,

상주(上奏) 그에 합당한 일을 하고,

그 일에 걸맞는 공적을 이룰 뿐,

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군주를 속이거나, 기롱하지 않게 된다.


이러함이니,

어찌 나라 시장, 그 어디인들 호랑이가 쉬이 나타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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