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al
signal
어느 날, 어떤 때.
교통 신호가 푸른 신호로 바뀌자,
내가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고,
정지선에 서 있다가 슬슬 앞으로 나아가던 참이다.
마주오던 이가 직진을 할 것인가?
아니면 우회전을 할 것인가?
상대편의 진행 예정 정보는 내게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된다.
만약 그가 직진을 하려 한다면 나는 그를 보내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한다.
하지만 그가 우회전을 하려 하였다면,
나는 좌회전을 하며 그와 도로를 좌우로 갈라 쓰며 달려갈 수 있다.
만약 상대가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다면,
그가 직진을 하려고 한다고 판단하여야 한다.
헌데 한참을 기다렸으나 그는 유유히 우회전을 하고 만다.
나는 마냥 기다리다가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만다.
뒤미처 직진 차량이 오고 있음이니,
박자를 잃고 다음을 기약하여야 한다.
그가 우측 방향 지시등을 켜고 회전을 하였다면,
나머지 반쪽 도로는 내게 할애가 되었을 터이고,
나는 만족을 얻고, 전체 교통 시설 자원은 효율적으로 배분이 된다.
그는 우측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는 수고를 덜었을 터이지만,
공용의 도로를 나눠 쓰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의 정당한 기회를 앗아갔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합의한 교통신호 체계에 대한 상호 신뢰를 허물었다.
이리 신뢰를 배반하는 자가 차차 많아지면,
그 사회의 교통질서는 무단히 어지럽혀지며,
공동체 성원들은 공연히 가외의 수고와 긴장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
불편하고 너절한 세상이 되고 만다.
저런 녀석들은 따끔하게 주벌(誅罰)하여,
대가를 치르게 하여야 한다.
대저 신호 체계가 발달되고,
그 체계에 대한 믿음이 공고한 집단일수록 고등 사회라 할 수 있다.
신호는 생성시켜 발출(發出)하는 주체가 있고,
이를 받아 소비하는 객체가 있다.
이 주체를 transmitter(source)라 하고,
객체를 receiver(sink)라 한다.
신호는 이들 주, 객체의 능력 또는 조건,
그리고 신호가 전해지는 매체내지는 매질의 특성에 따라,
신호(信號, signal)외에 원치 않은 잡음(雜音, noise)이 따라 들어오곤 한다.
따라서 정보를 원활히 교환하기 위해서는,
잡음을 적절한 수준으로 억제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령 우리가 카페에 본 글을 올렸다 할 때,
흔히 빠와 까로 나뉘어 열띤 공방을 벌이곤 한다.
전자는 무작정 험구(險口)나 악구(惡口)를 늘어놓기 일쑤이며,
후자는 기려(綺語), 찬사(讚辭) 일변으로 닦아세우기 분주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게 되는 법.
펼쳐진 본자리는 한켠으로 밀려나고,
객들이 권커니 잣커니 하며 난장을 벌이고 만다.
본시 전하고자 하는 본의(本義)는 실종되고,
객담(客談)만 난분분하며 객기(客氣)가 천지분간 못하고 흩뿌려지게 된다.
신호정보 입장에선 이게 다 잡음(雜音)에 불과한 것임이다.
신호 잡음비 : S/N (signal/noise)
이것으로써 정보의 품질을 온전히 다 계량할 수는 없다.
다만 잠정적으로 일시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가령 음악 정보의 경우 아날로그 방식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잡음일지라도 존재하는 한,
청취자의 감수성을 불편하게 자극하게 된다.
반면 디지털 정보라면 잡음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엔 디지털화(化) 정도(精度)라든가 분해능(resolution)에 따라,
원정보의 재현력에 본원적인 한계(限界)를 갖게 된다.
signal & carrier
신호 정보는 그 자체만으로는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개는 이를 무엇인가에 담아 전하게 된다.
이를 담부(擔負)하는 것을 carrier라 한다.
carrier 능력이 클수록 분해능이 높기 때문에,
양질의 대량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carrier가 클수록 자원 유지와 처리 비용은 상승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소승(小乘)불교와 대승(大乘)불교는,
바로 이 carrier의 대소를 두고 나눠 칭명(稱名)하는 것인데,
개인의 주체적 깨달음이 문제상황일진대,
본체론적으로는 carrier를 두고 다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cariier란 행동 제약조건으로 signal의 행동이 구속되기도 한다.
때문에 signal을 바로 파악하기 위해선 cariier에 대한 이해를 외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런 태도는 혜능과 신수의 대립을 상기하게 된다.
(※ 참고 글 : ☞ 2009/02/01 - [소요유] - 무선무불선(無善無不善))
어쨌건 정당한 signal이 자의적으로 발해지지 않고,
이로 인해 대중이 불편을 겪는다면,
마땅히 사회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두 자신만 생각하고 남을 돌보지 않는,
안일한 의식, 비열한 태도에 기인하는 바,
상응하는 대가를 짊어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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