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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之交淡如水 小人之交甘若醴

소요유 : 2016. 2. 13. 19:53


君子之交淡如水,小人之交甘若醴。


이는 내가 가끔 블로그에서 소개한 글인데,

오늘은 그 출전과 더불어 온전한 전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글은 북경사범대학교수이며, 중화공자학회부회장(中華孔子學會副會長), 

국제유학원상무부원장(國際儒學院常務副院長) 등으로 활동하고 계신,

주계전(周桂鈿) 교수의 말씀을 참고하고,

여기 나의 감상내지는 의견을 더하여 구성하기로 한다.


먼저 관련 출전을 살펴본다.


孔子問子桑雽曰:「吾再逐於魯,伐樹於宋,削跡於衛,窮於商、周,圍於陳、蔡之間。吾犯此數患,親交益疏,徒友益散,何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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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桑雽曰:「子獨不聞假人之亡與?林回棄千金之璧,負赤子而趨。或曰:『為其布與?赤子之布寡矣。為其累與?赤子之累多矣。棄千金之璧,負赤子而趨,何也?』林回曰:『彼以利合,此以天屬也。』夫以利合者,迫窮禍患害相棄也;以天屬者,迫窮禍患害相收也。夫相收之與相棄亦遠矣。且君子之交淡若水,小人之交甘若醴;君子淡以親,小人甘以絕。彼無故以合者,則無故以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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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曰:「敬聞命矣。」徐行翔佯而歸,絕學捐書,弟子無挹於前,其愛益加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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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日,桑雽又曰:「舜之將死,真泠禹曰:『汝戒之哉!形莫若緣,情莫若率。緣則不離,率則不勞;不離不勞,則不求文以待形;不求文以待形,固不待物。』」

(莊子 山木)


“공자가 자상호에게 물었다.


‘나는 노나라에서 두 번이나 쫓겨났고, 송나라에선 자른 나무에 깔려 죽을 뻔하였으며,

위나라에선 발자취도 삭제되었고, 상나라, 주나라에선 궁지에 몰렸고,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선 포위까지 당했습니다. 

내가 이리 수차례 환난을 겪는 사이,

친하게 지내던 이와는 더욱 소원해졌고,

제자와 벗들도 차차 흩어졌습니다.

왜 이리 되었을까요?’


자상호가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가(假)나라 사람이 도망친 일에 대하여 듣질 못하셨습니까?

임회라는 이가 천금의 구슬을 버리고는, 어린아이만 업고 달아났습니다.


어떤 이가 말하였습니다. 


‘값어치로 따지자면 어린아이가 헐하고, 누가 되는 것으로 따져도 어린아이가 더 합니다.

천금의 구슬을 버리고, 어린아이를 업고 달아났으니 이게 무슨 까닭입니까?’


임회가 말하였다.


‘저 구슬은 이(利)로써 나와 합치하지만,

이 아이는 천륜으로써 나와 맺어진 것입니다.’


대저 이익으로 합친 사이는 궁박에 몰리고, 환난에 처하면 서로 버립니다.

천륜으로 맺어진 사이는 사태가 궁박해지고, 환난에 처하면 서로 거둬줍니다.

무릇, 서로 거둬주는 사이와, 서로 버리는 사이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한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습니다.

군자는 담담함으로써 친해지고,

소인은 달달함으로써 끊어집니다.

까닭 없이 합친 것은 까닭 없이 헤어집니다.’


공자가 말하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가르침(=命)의 말씀을 받잡겠습니다.’


가벼운 걸음으로 천천히 집으로 돌아와서는,

학문을 끊고, 책을 버렸습니다.

제자들도 앞전에서 읍하진 않았지만,

그 사제지간의 정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훗날, 자상호는 또 이리 말하였다.


‘순임금이 장차 죽음에 이르러 우임금에게 유명(遺命)을 남기셨습니다.


‘그대가 경계할 것은 이것이네.

몸은 자연을 따르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정은 천진(天眞)에 맡기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네.

자연을 따르면 떨어지지 않고,

천진에 맡기면 수고로울 것이 없네.

떨어지지 않고, 수고롭지 않으면,

몸에 의지하여 애써 헛된 학문 즉 허문(虛文)을 구할 일이 없고,

이리 몸에 의지하여 애써 헛된 학문을 구할 일이 없게 되면,

외물에 의지 할 일이 없어지네.’’”


이 글을 두고, 

주계전 교수는 다음의 일화를 소개하였다.


북송(北宋)의 사마광(司馬光)이 유원성(劉元城)을 관직에 추천하였다.

사마광이 유원성에게 물었다.


‘내가 그대를 왜 추천하였는지 아는가?’


유원성이 말하다.


‘그것은 선생과 제가 왕래하며 교류한 지 오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원래 유원성이 진사가 된 후에도 바로 벼슬을 살지 못했다.

  한 시절 사마광을 따라 공부를 하였다.)


사마광이 말하였다.


‘아니다. 

내가 벼슬 없이 집에 있을 때,

매 명절마다 너는 문안을 드렸고,

혹인도 와서 나를 보고 갔으며 문후를 그치지 않았다.

내가 재상이 되어 벼슬길에 나아가자,

너는 일봉 서신 하나 보내지 않았다.

이게 내가 그대를 추천한 이유다.’


淡如水


“담담하기가 물 같이.”


군자의 사귐은 이와 같다.

원래 군자의 사귐이란 상호 관용과 이해에 기반한다.

서로에게 가혹하게 구하는 바 없고,

강박하지 않으며, 질투하지 않으며, 진드기처럼 엉겨 붙지 않는다.

이를 일반인이 보기엔 맹물처럼 그저 싱겁게 보인다.


이 도리를 누가 알리?


과연 이러하였던가?


선물을 보내지 않고,

간청을 하지 않고,

무리를 짓지 않고,

아첨을 하지 않았는가?


친구를 두고, 일을 꾸며 공작하는데 몰두하고,

기꺼이 밑에 들어가 복속하려 하지 않았든가?


내가 시골에서 어느 사람 하나를 우연히 사귄 적이 있다.

이이가 처음 농장에 들어와서는 불쑥 내 나이를 묻는다.

사람 사귐에 나이가 무슨 큰 문제인가?

내 나이를 알려주니 자기가 나보다 나이가 이태 정도 앞선다 한다.

그러면서 대뜸 자기를 형으로 부르면 되겠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살을 꾸어 보탠 것이 밝혀졌다.

아무래도 한 살 가지고는 미덥지 않았는가 보다.


이러함이니 그 사귐에 백수(白水)처럼 맑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으랴?

때에 따라 나이를 가지고 형, 아우를 따지는 일은 있을 순 있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이에 형과 아우부터 가르고 있음이니,

그와 앞일을 기약하긴 어려우리라.

(※ 참고 글 : ☞ 2013/03/27 - [소요유] - 토호(土户) 하나)


군자의 사귐이란,

사상적으로 깊이 토론하고,

감정적으로 서로 흉금을 터 융통하고,

서로 각고면려 격려하고,

절차탁마 닦으며,

취장보단(取長補短)이라,

장점을 취하고 결점을 보완하며 나아간다.


혹 의견이 다르다한들,

상호 변론으로 논박하고, 비평하며, 진실을 규명하고 진리를 추구한다.


허나 소인의 사귐이란 이와는 상반된다.


처음엔 열정이 사뭇 넘쳐나고, 

예의를 한껏 차리며,

거창한 주연을 차려 맞이하고, 

서로 좋아하는 바를 환담하며,

그 아름다운 일을 좋아하고,

나쁜 일을 싫어하며 어울린다.


이 모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와는 먼 일이다.

이리 교제가 그 달기가 마치 꿀을 바른 듯하다.


하지만, 위급한 때가 되면,

각자는 자기를 돌보기에 바빠,

상대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이런 사이를 예로부터 이리 부른다.


酒肉朋友


한마디로 술친구다,


술이 있고, 고기가 따르면 친구가 된다.

하지만 일단 술이 마르고, 고기가 없어지면,

이젠 친구가 아니다.

이를 일러 狐朋狗友라 한다.

즉 여우와 개 같은 친구라 하는 것이다.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담담하다.


하기에 한 번도 직접 말을 나눈 적이 없지만 친구가 된다.

하여 옛 사람들은 달과도 벗을 삼고, 솔과도 우정을 나눈다.


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인 바라,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는 것.


아니, 마지막까지 사람의 마음은 결코 쉬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자의 마음은 담담하기에 상대에게 구함이 없다.

소인이 꿀같이 달콤하게 대함은 상대에게 구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함이 이뤄지지 않으면 쓰기가 소태처럼 바로 뒤바뀐다.

하지만 군자는 상대에게 애써 구함이 없기에,

얻고 잃음에 마음이 동하거나 상하지 않는다.


유가는 信與義라,

믿음과 의로움으로 자기의 마음을 기르고 닦는다.


孔子曰:「益者三友,損者三友。友直,友諒,友多聞,益矣。友便辟,友善柔,友便佞,損矣。」

(論語 季氏)


“공자 말씀 하시다.

 ‘유익한 친구에 세 종류, 해로운 친구에 세 종류가 있다.

  정직한 친구, 성실한 친구, 견문이 많은 친구.

  이들과 사귀면 유익함이 있으리.

  편벽된 친구, 유약한 친구, 아첨꾼 친구.

  이들과 사귀면 손해가 되리.’”


그런데, 나는 여기 이 말씀엔 그리 유의하지 않는다.

이리 사람을 나눠 가르며 사귀자면,

유익함을 더하고, 해로움을 꺼리는 기도(企圖)가 앞서야 한다.

사귐에 앞서 매양 이리 이해를 셈하며 가리면,

그 마음에 어찌 신의(信義)가 고여 담길 수 있으랴?

군자라면 먼저 앞서 좋다 끌어당기고, 나쁘다 내칠 일이 아니라,

맑은 물처럼 그저 흘러갈 뿐이다.


내가 앞에서 이야기 한 형, 아우를 따지던 그 이.

내 그냥 무념히 대하였을 뿐,

손익(損益)을 다투지 않고,

이(利)를 셈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제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소인은 언제나 셈을 하기 바쁘다.


벗을 익손(益損)으로 나눠 셈하기 시작하면,

자칫 영영 선우(善友)를 만나기 어렵게 된다.


人與人交往為謀私利,不謀私利的朋友今日難得,謀私利的人不純潔,讓他像犀牛角一樣獨自遊蕩。

(巴利語佛典 經集)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정 번역)


여기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란 말은 한문 원전엔 없다.

그러함인데 법정 스님은 보탠 말씀을 해주셨다.

이게 무슨 뜻인가?

자신의 이익을 숨기고,

친구가 되기 위해,

갖은 아첨을 다하며 환심을 산다는 뜻이다.


친구가 된 후엔,

그 품들인 일의 결과를 구하게 된다.

이 구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면,

친구를 배반하고, 욕을 하며, 급기야 원수가 된다.


이런 실례는 현실의 세계에선 비일비재하다.

여기 읽을거리를 하나 제시한다.


☞ 럭셔리 블로거(Luxury Blogger)의 세계


또한 나의 다음 글도 하나 여기 보태둔다.


☞ 2008/02/15 - [소요유/묵은 글] - 배반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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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6. 2. 13. 19: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