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착시현상 ⅲ

소요유 : 2016.02.16 00:53


이글은 '착시현상착시현상 - ⅱ'에 따른 글이다.


***


주식투자자는 이동평균선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차트를 보면 일봉과 함께 청하지도 않은 이동평균선이 친절하게도 함께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동평균선을 지워버리면 사람들은 대개 어쩔 줄을 모른다.

마치 엄마 치마 자락을 잡고 따라가다 놓치고는 길을 잃고 우는 아이처럼. (astray)


왜 그런가?


도로엔 차선이 그어져 있다.

만약 차선이 지워져 있다면 사람들은 놀라서 갈팡질팡 할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차선을 따라 얌전하게 운전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얌체 하나가 있어 앞지르기를 하지만,

그도 앞지르기를 하고 나서는 다시 차선 안으로 복귀한다.

차선이란 이리 운전자를 그물처럼 구속한다.

죽 그어진 차선 내에선 그 누구라도 차선을 따라 진행한다.

따라서 차로를 달리는 운전자가 어디로 향할지는 예상이 되고도 남는다.

만약 그 달리던 차선을 바꾸고자 할 때 회전 지시등을 켠다면,

우리는 그 때서야 저자의 행로가 바뀔 것을 예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회전 지시등을 켜지 않고 회전을 하는 운전자도 적지 않다.

또는 회전 지시등을 켰는데, 이와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운전대를 꺾는 불한당도 있다.


이런 것을 사람들은 이상현상(異常現象, anomalies)이라 부른다.

주식투자에서도 월중효과니, 년초효과니 하여,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을 이리 부른다.

그런데 기실 놀랄 만한 초과수익은 흔히 정상현상이 일어나는 구간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역으로 이상현상이 일어날 때 놀랄만한 손실을 입게 된다.

어린아이는 엄마를 잃었을 때,

천하를 잃은 듯 갈 곳을 몰라 대성통곡, 망연자실하고 만다.


천하의 모든 투자자는 이동평균선을 두고 골든크로스니 데드크로스니 하며 주가 행방을 점친다.

일찍이 그랜빌(J.E.Granville)은 

“New strategy of daily stock market for maximum profit”에서,

이동평균선과 주가의 상호 궤적 패턴을 정리하여 8가지 매매법칙이란 것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게 이론적으로는 제법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구체적 실천 현실에선 적용키엔 요령부득(要領不得)이라 큰 쓸모가 없다.


“... 즉 투자자와 이 투자자를 끊임없이 그릇되게 유혹하는 시장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戰略的, 知的 게임인 것입니다. 

시중에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투자서적들은 하나 같이 법칙, 원칙, 규칙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시세는 투자자를 속이기 위해 온갖 전략을 사용하여 법칙을 깨고 원칙을 위반하며 또 규칙에 예외를 만듭니다.”


그 역시 이리 말하고 있다.

시장은 간단없이 투자자를 속인다.


Beat the market.


그러면서 이런 시장을 이기려면,

그가 말하는 OBV(on valance volume)니 이동평균선 매매법칙을 통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故曰:巧匠目意中繩,然必先以規矩為度;上智捷舉中事,必以先王之法為比。故繩直而枉木斲,準夷而高科削,權衡縣而重益輕,斗石設而多益少。故以法治國,舉措而已矣。法不阿貴,繩不撓曲。法之所加,智者弗能辭,勇者弗敢爭。刑過不避大臣,賞善不遺匹夫。故矯上之失,詰下之邪,治亂決繆,絀羨齊非,一民之軌,莫如法。

(韓非子)


“고로 이릅니다.

기교가 무르익은 장인은 눈짐작만으로도 먹줄을 댈 수 있지만,

반드시 먼저 규구(規矩)를 써서 재며,

지혜가 뛰어난 이는 재빠르게 행하여도 일에 그르침이 없지만,

반드시 먼저 선왕(先王)의 법도에 비추어 행합니다.


이와 같이 먹줄을 곧게 대면, 굽은 나무도 반듯하게 깎을 수 있고,

수준기를 평평하게 놓으면 울퉁불퉁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으며,

저울대에 추를 걸면 무게를 고르게 할 수 있으며,

말로 물건을 대면 많고 적음을 잴 수 있다.

고로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들고 내림과 같이 그 다스림이 간단합니다.


법은 귀하다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것에 굽히지 않습니다.

법을 행하는 데는 지자라 하여도 변설을 늘어놓을 수 없으며,

용자라도 감히 다툴 수 없습니다.


죄에 형을 가하는데 있어,

대신이라 하여 피할 수 없고,

선행에 상을 주는데 있어,

필부라 하여 빠뜨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윗사람의 잘못을 바로 잡고,

아랫사람의 사악함을 꾸짖고,

어지러움을 다스리며,

어그러진 것을 끊고,

남는 것을 물리치고,

바르지 못한 것을 가지런히 하여,

백성이 지킬 규범을 하나로 하는 데는 법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한비자 역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가?


無規矩之法,繩墨之端,雖王爾不能以成方圓。


“규구의 법, 승묵의 바름이 없다면,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네모나 원을 그릴 수 없다.”


규구준승(規矩準繩)

(※ 규구준승(規矩準繩)

목수가 쓰는 그림쇠, 자, 수준기, 먹줄, 이 사물(四物)을 뜻함.) 


규구준승이 없으면 목수는 치목(治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한비자나 그랜빌이나 모두 앞의 이야기처럼 모눈종이의 눈금을 말하고 있다.

그 눈금이란 한비자의 경우엔 법이 되겠고, 그랜빌의 경우엔 이동평균선이나 OBV가 되겠다.

목수라면 규구준승이 되겠고.


無恆產而有恆心者,惟士為能。若民,則無恆產,因無恆心。苟無恆心,放辟,邪侈,無不為已。及陷於罪,然後從而刑之,是罔民也。焉有仁人在位,罔民而可為也?是故明君制民之產,必使仰足以事父母,俯足以畜妻子,樂歲終身飽,凶年免於死亡。(孟子)


“항산이 없으면서도 항심이 있는 자는 오직 선비라야 가능합니다.

백성이라면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하겠습니다.

가령 항심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죄를 저지르게 되고, 그런 연후엔 좇아서 형벌을 내린다면,

이것은 백성을 그물질 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이가 임금의 자리에 앉아 백성을 그물질 하는 게 가한 노릇이겠습니까?”


여기 맹자가 말하고 있는 장면은 이렇다.

재물이 없어 헐벗은 백성이 도리 없어 죄를 짓게 되는데,

이를 탓하며 형벌을 내리는 것은,

위정자가 백성을 상대로 그물질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얼핏 한비자의 법치와 대립하는 주장처럼 보인다.

맹자는 그러니깐 잘 먹고 잘 살게 하면 자연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인데,

법으로 옭죄는 게 능사가 아니란 말씀이다.


만약 이것을 두고 법 일반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사뭇 딱한 노릇이라 하겠다.

이는 내가 생각하기엔 논점을 사뭇 이탈하고 있다 하겠다.

한비자는 무작정 백성을 다그치자고 법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부단히 정법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古者世治之民,奉公法,廢私術,專意一行,具以待任。


“옛적 세상이 잘 다스려지던 시절의 백성은,

법을 받들고, 사적인 술수를 버리고,

마음을 전일하고 행동을 하나로 하여,

준비를 하여 나라의 맡김을 기다렸습니다.”


기실 맹자가 말하는 그물은 어제 오늘 우리는 모두 목격하고 있다.

법을 보호하고 바로 펼 일을 맡고 있는 관리가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저것은 법이라 부르는 물건이 아니다.

그저 그물일 뿐이다.


통일부 장관은 원래 이리 말했었다.


“개성으로 들어간 돈이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쓰였다”


그런데 이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그의 답변은 이리 변하고 있다.


전용→ 우려 있으나 확인 안돼→ 관련자료 있다→ 확증없다, 송구 

(오마이뉴스)


앞의 착시 그림에선 모눈종이의 격자를 왜곡(歪曲)시켜,

보는 이의 눈을 교란시켰다.


마찬가지로 통일부 관리는 사실의 그물을 왜곡시키고 있다.

착시 그림에선 보는 이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골탕을 먹이려 하고 있음인데,

이 관리는 지금 사람들의 무엇을 노려 그물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말이 ‘전용’에서 ‘확증없다’라 바뀌기 전까지,

현실이란 장은 가상의 공간으로 변용(變容)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에 의하면 물질의 분포에 따라 시공간의 곡률이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물질이 있으면 그 시공간은 휘어진다는 말이다.

고전역학처럼 질점(質點) 상호 간의 인력(引力), 이런 힘의 관계로 보지 않고,

상대성이론에서는 복사장(radiation field)처럼 시공간의 성질로 파악한다.

이를 중력장(gravitational field)이라 한다.


이 휘어진 공간 내를 물질은 움직인다.

그리고 그 경로를 측지선(geodesic line)이라 부른다.


물리학적 시공간은 그렇다 하지만,

이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은 부단히 그 생활공간이 자의적으로 휘어진다.

제 사적 신념이나 이해를 위해 특정 세력이 변용시키는데,

요즘에 가끔 듣는 ‘기울어진 테이블’이니 ‘기울어진 축구장’이니 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src : http://www.universetoday.com/127255/gravitational-waves-101/)


저 통일부 관리는 이 청정한 민주 시민의 공간을,

여하한 이유로 간에 중력장의 휘어짐처럼 구부러뜨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민주 시민들 간에 약속한 규율에 반하는 것이라면,

이는 대단히 반민주적인 처사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순간 난 저 측지선(geodesic line)으로 교직된 시공간에 쳐진 그물이,

바로 맹자가 말한 그물로 환치되는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거기 시민들 각자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날개가 그물코에 걸린 채,

파닥거리고 있는 환영을 본다.


착시 퀴즈에서도 문제를 낸 이는 짓궂게도 모눈 눈금을 왜곡하여,

뭇 사람들 눈을 홀리고는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정작은 모눈 눈금, 법, 그물이 문제가 아니다.

모눈 눈금이 바로 그려져 있는가?

법이 정당하게 만들어졌고, 바르게 집행이 되는가?

그물이 세상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그 여부가 문제일 따름이다.


어차피 중생은 부처님 손바닥 안에 갇힌 존재이다.

인드라망을 피할 재주가 없다.

하지만, 그깟 이매망량(魑魅魍魉) 요망스런 귀신, 도깨비가 쳐놓은 그물에 갇힐 것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항차 혼용무도(昏庸無道)한 인간이 펼치는 그물을 모르고, 게야 걸려서야,

어찌 대장부 체면이 서랴?

여기 걸리지 않으면 저들의 그 다음 수는 환히 보인다.


茍日新,日日新,又日新。茍日新,日日新,又日新。

(大學)


“진실로 날로 새로워져라. 날로 날로 새로워져라. 또 날로 새로워져라.”


이 말은 실로 매일 혁명하라는 말과 매한가지다.

매일 매일 마주치는 거짓 그물을 혁명하듯 찢어버려야 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란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로렌스는 네프드 사막을 가로질러 아카바로 들어가 터키를 치려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데 가심이란 한 사람이 낙오한다.

로렌스는 그를 찾으러 돌아가자고 한다.

하지만, 알리 족장은 이리 말하며 그를 포기한다.


“한 시간 후면 해가 뜰 거요

신의 이름을 걸고

돌아갈 수 없소!

가심은 이미 죽었소

비키시오

가심은 죽을 때가 된 거요

운명이지“


그러자 로렌스는 이리 말한다.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소'


그리고는 홀로 사막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는 끝내 가심을 찾아내고 생환한다.

그러자 그를 맞은 족장은 이리 말한다.


“정말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 같소”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제껏 저들은 신이 쳐놓은 운명의 그물 안에 갇혀 지내왔다.

하지만 로렌스는 그 모눈종이란 그물을 찢고 가심을 찾아 귀환한다.


내가 온라인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착시 퀴즈를 내놓으니깐 

의견이 구구하다.


저 모눈종이의 눈금이 사악스러운 바라,

나 같으면 그저 종이를 박박 찢어 버리고 말 것이다.

애초 저 문제를 내놓은 녀석이 안전(眼前)에 있다면,

아마 녀석은 목이 온전하지 못하였을 게다.

圖天上太平

이로써 천하를 태평케 하리라.

다행인줄 알거라.


隱峯推車次。馬祖展足在路上坐。師曰請師收足。祖曰已展不縮。師曰已進不退。乃推過。損祖足。祖歸執斧立法堂曰。適來輾損老僧脚底出來。師便引頸於祖前。祖乃置斧。

(宗鑑法林)


“은봉이 수레를 몰던 차, 스승 마조가 다리를 펴고서는 길 위에 앉아 계시다.

은봉은 스님 다리 좀 오므려 주세요 하고 청하였다.

마조는 이미 뻗고 있음이니 오므릴 수 없다고 이르시다.

그러자 은봉은 수레를 그냥 밀고 지나버렸다.

스승 마조 다리를 다치고 만다.

마조가 돌아가 도끼를 들고는 법당에 올라 이르신다.

아까 수레를 내 다리 위로 굴려 다치게 한 녀석은 썩 나오거라.

은봉은 즉시 스님 앞에 모가지를 죽 늘여 놓는다.

마조는 그만 도끼를 내려놓다.”


감히 내 앞에서,

은봉처럼 모가지를 걸 자신이 없으면,

아예 퀴즈를 내놓을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된다.


저 통일부 관리도 기왕에 문제를 내놓았으면,

끝까지 버티어야지 저리 쉽게 허물어져서야,

장관은커녕 부도난 공장 문지기인들 제대로 감당하겠음인가?


문제를 받은 시민들 역시 매한가지다.

쿵하면 네 집 앞 마당에 떨어지는 호박덩이인줄 알아야지,

물 부른 뚝방에 주르르 앉아 눈만 껌뻑 껌뻑이는 물두꺼비 형상을 하고,

넋이 빠져서야 사람 노릇 제대로 하겠음인가?


그러함이니,

기껏 모눈종이에 쳐놓은 그물눈에 갇혀,

허둥대고 있음이 아니더냐?


은봉추차(隱峯推車)

이를 부처는 天上天下唯我獨尊 이리 말하였고,

공자는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이리 말하였다.


거죽 말씀은 다르나,

기실 매 한가지 말씀이라,

온 세상을 거침없이 거닐 뿐이다.


그런데 이는 또 무슨 곡절일까?


護國元禪師。浴佛上堂。者釋迦老子。初生下來。便作箇笑具。一手指天。一手指地云。天上天下唯我獨尊。後來雲門大師道。我當時若見。一棒打殺。與狗子喫却。貴圖天上太平。

(列祖提綱錄)


“호국원선사가 관불회 법당에 올라 설법하다.

석가가 처음 태어나 문득 웃음을 지으시고는,

한 손으론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론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말씀 하셨다.


후에 운문대사가 이르시다.


내가 당시 만일 보았다면,

몽둥이로 때려 죽여 버렸을 것이다.

개와 함께 그 살을 씹어 먹으며,

천하를 태평케 하였으리라.”


이 문제는 착시 문제보다는 한결 쉽다.

어디 강아지와 함께 운문대사 살을 씹을 자가 누구인지 들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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