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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에 대한 오해

농사 : 2016. 5. 19. 20:32


미생물에 대한 오해


미생물 농법이라 하여야 할까?

밭에 미생물을 투입하여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걸 거의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처음 농사를 짓기로 하였을 때,

미생물 기초 교육을 받고, 따로 혼자서 공부를 해본 적이 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준 자료집 후반부는 사례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토마토, 고추 등 온갖 소채류는 물론 가축에게까지 미생물을 투입하여,

성공한 사례를 실어놓았다.


이것을 보자 순간 지하철에서 나눠주던 건강 책자를 상기하였다.

거기 보면 말기 암환자가 어떤 약을 먹고는 완치가 되어 건강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과 함께 온 지면을 덮고 있다.

객관적 입증 사실은 제시되지 않고, 실증사례라며 이리 믿음을 덤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데, 저 미생물 책자 역시 이리 놀라운 사례가 마구 쏟아지듯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거기 실려 있는 정보를 기초로 미생물학자 한 분을 찾아내었다.

그 분과 유선으로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이 믿음의 덤핑, 강매(强賣)에 대하여 여쭈었더니,

자신이 미생물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식물에 그러한 정도로 효과를 주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느 모임에선 미생물을 밭에다 물 붓듯 처넣는 농법을 주창하고 있다.

또 어느 유기농 단체에선 미생물을 단기간에 만드는 방법을 공개하고,

이를 수시로 밭에다 투입하면 몇 배의 소출을 얻을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미생물은 유기물에 작용하여 생명 활동의 결과 생성되는 물질을 토양에 내놓는다.

가령, 비타민, 호르몬, 효소 따위가 토양에 환원된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현대 농법은 N, P, K를 중심으로 한 화학비료를 밭에 투입하여,

자연에선 기대할 수 없는 다수확 실적을 이뤄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령 다량의 비료 투입에 따른,

성체(成體)의 도장(徒長), 아질산염 축적, 토양의 비독, 해충 창궐 ...

때문에 이에 대한 반성으로 유기농, 자연농 따위가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의 중심 표적(標的)인 소위 유기농에서도,

관행농과 다름없이 위에서 지적한 부작용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과잉 투입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미생물 농법들은 미생물의 과도한 토양 투입을 꾀하며,

예외 없이 유기농이란 고깔모자를 빌려 쓰고는 으쓱거리고 있다.

이들은 관행농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콤플렉스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저들 이상의 성과를 내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자신만이 진짜 농부란 자의식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소출량*판매가)가 나오지 않자,

관행농보다 더 많은 투입을 통해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가령 퇴비를 넣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화학비료는 돈 주면 간단히 원하는 만큼 구입하여 밭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퇴비는 우선 만드는 것부터 그리 녹록하지 않다.

게다가 다량으로 만들려면 그 생산, 관리에 과도한 비용과 노력이 따른다.

경제학적으로 유기농은 관행농과 비교할 수 없는 핸디캡을 갖고 있다.

시장 가격은 노력만큼 보상해주지 않는다.

퇴비 등 유기농 자재는 투하 량이 늘수록 체증적(遞增的)으로 비용 부담이 는다.


위에서 지적한 미생물 농법이란,

퇴비와 같은 유기물 거름을 다루기 힘드니깐,

보다 다루기 간단해보이는 미생물에 집중하고 있다.


가령 미생물을 배지(培地)에 넣어 단기간 고속 증식시키고,

이를 밭에다 다차(多次), 다량(多量) 넣자는 것이다.

그런데 배지를 만들 때 대개는 유기물에 설탕을 넣곤 하는데,

이것 그리 헐한 자재가 아니다.

게다가, 산야초, 골분, 어분, 해조류, ....

이런 따위는 어디 누가 거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준비하고, 작업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이 따른다는 말이다.


그러하자, 이번엔 애오라지 물과 부엽토(原種),

그리고 감자(培地)만 가지고 미생물을 만든다는 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것을 수시로 밭에다 뿌리자는 것이다.


난 이리 하면 배양통 안에,

단기간에 미생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일응 납득하겠다.

그런데 그 다음 과정부터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겠다.


이들은 산에 쌓인 부엽토를 가져다 원종으로 삼는다는 것인데,

이는 즉 산의 생태상을 본으로 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재배하는 작물에 따라, 득실이 다를 것이나,

자연을 닯고자 하는 것인즉 일단 이 자리에선 길게 따지지 말고 접어두자.

문제는 밭과 산의 생태 조건이 과연 같은가 하는 것이다.

저들 농장의 실상을 보건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가능한 한 소출을 많이 올려, 밭 외부로 내가기 바쁘며,

제초 작업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우리고 있듯이,

밭엔 재배 작물 잔사 외엔 유기물이 남아 있지 않다.

반면 산의 경우엔 년년세세 유기물 축적이 거듭 일어난다.

이에 따라 미생물도 번성한다.


하지만, 밭에 제 아무리 미생물을 쏟아 붓는다 하여도,

도대체가 미생물이 먹고 자랄 자량(資糧, 滋養分)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닿으랴?

미생물도 생명인 이상 먹을 것이 있어야,

터를 잡고, 생명 활동을 하고, 생식을 해서 번성을 한다.

명백한 것은 저들 유기농 밭에선 이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매년 쉼 없이, 년중 수 차, 거듭하여 미생물을 쏟아 붓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그 밭은 미생물이 정착할 환경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그리 자주 물 붓듯 넣어준단 말인가?

바꿔 말하면, 쏟아 붓는 미생물들은 그리하는 족족 죽어버리고 있다 하겠다.


이렇다면, 밭에 투입하는 미생물이란, 그 곧 예정된 사체 유기물을 투입하는 것과 매 한가지다.

투입 자원은 감자 한 개 만한 등가량에 불과하다.

위에서 지적한 생멸 활동의 결과물이 보태지고, 생명 유지에 따른 에너지 감모를 감안한다면,

밭에 엄청난 요술 같은 일이 벌어질런지 의문이다.

궁극적으로 미생물 사체는 C와 N으로 환원될 뿐이다.


산에 그 누가 있어 미생물을 넣어주던가?

유기농을 한다는 이들이 이리 와서 원종 채종(採種) 운운하며 빼앗아간다는 것은 즉,

여기 미생물이 풍부하다는 것을 또한 입증하고 있다.

아무도 산에다 미생물을 접종하지 않건만,

산은 스스로 미생물을 키워내고,

미생물은 거기에 의지하여 번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미생물을 밭에다 쏟아부은들,

그들은 곧바로 죽어버리고 만다면,

이 얼마나 도로(徒勞)의 일이며, 허망한 노릇인가 말이다.


설혹, 미생물을 넣어 일정분 효과를 본다한들,

이는 항구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하기에 끊임없이 투입하는 일을 지속한다.


감자, 물 → 미생물


이 과정 상 약간의 미생물에 의한 대사 산물이 산출되겠지만,

미생물이 대략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한,

자원 총량은 원 자료 등가 총량을 뛰어넘지 못한다.

(단 일부 미생물 중엔 광합성을 하는 것이 있다.)


반면 산과 같은 자연환경 아래에선,

각종 풀과 나무가 자라고, 죽으며,

이를 자량으로 미생물과 미소 동물, 중/대 동물 등의 총체적인 생명 활동이 일어나,

실로 계측이 불가능한 다양한 물질대사가 일어난다.

게다가 이들의 자원 총량은 해마다 증가한다.

광합성에 의한 식물체의 총 축적량이 늘어나고,

이를 자량으로 한 동물체의 총 축적량 역시 늘어나면 늘지 줄지 않는다.

이리 볼 때 산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는 외부의 조력을 받지 않고서도,

총상(叢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킨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자원의 조화로운 분배가 절로 일어나기 때문에,

오늘날 재배 밭작물처럼 유독 물질의 과잉, 잔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과비에 따른 토양 황폐화와 작물의 잔류 질소분은 발암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을 상기하라.


산의 공덕(功德)이 이러하다.


따라서 미생물을 밭에 쏟아 붓는 일은 실로 근본을 다스리는 일이 못된다.

그저 자기 위안, 자기 만족 나아가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근저엔 벌건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

저들을 나는 감히 이리 타이르고자 한다.


그보다 더 요긴한 일은 당신의 밭을 미생물이 잘 자라는 환경으로 만드는 일이다.

아니 만들 일이 아니라,

그런 밭이 되도록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

산을 본으로 삼는다면,

그대의 밭을 마치 산처럼 대할 일이다.


故陰陽四時,非生萬物也;雨露時降,非養草木也。神明接,陰陽和,而萬物生矣。故高山深林,非為虎豹也;大木茂枝,非為飛鳥也;流源千里,淵深百仞,非為蛟龍也。致其高崇,成其廣大,山居木棲,巢枝穴藏,水潛陸行,各得其所寧焉。

(淮南子 泰族訓)


“고로, 음양 사시는 만물을 생육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비와 이슬이 시절 따라 내리는 것은, 초목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신명이 교접하고, 음양이 화하면,

만물은 자라는 것이다.


고로 산이 높고 수풀이 깊은 것은, 호랑이나 표범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며,

큰 나무와 우거진 가지는 나르는 새를 위한 것이 아니며,

천리를 흐르는 강이나, 백인(百仞)의 깊은 못은 교룡(蛟龍)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높이 솟아 있고, 광대함을 이루는 것일 뿐인데,

산에 살고, 나무에 깃들며,

가지에 둥지를 틀고, 구멍을 파고 숨으며,

물에 잠기고, 땅을 달리는 것은, 

모두 제 각각 편안한 도리를 찾아 그 자리를 얻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산을 높이고, 물을 깊이 파서,

무엇인가 도모하길 바란다.

하지만 사대강 사업처럼 물을 깊이 파서,

물고기가 많아지고, 유람선을 띄우고, 물을 많이 가두는 일을 꾀하자고 선전해대었으나,

결과는 그러기는커녕 물길은 패이고, 물은 탁해지고, 물고기는 죽어나가고 있다.


神明接,陰陽和


음양, 사시, 강우, 이슬 그 존재가 아니라,

신명이 교접하고, 음양이 조화를 이를 때,

비로소 생명이 깃들고 자란다.


저 미생물농법이라는 것도,

무엇이든 물량을 늘리고, 퍼붓는 것으로써 마루(宗)를 삼는다.

허나, 신명이 따로 놀고, 음양이 어긋나고 있을진대,

어찌 호랑이가 포효하고, 교룡이 깃들 수 있으랴?


***


참고로, 위 논의는 일반 작물을 두고 한 것이다.
블루베리의 경우엔 좀 특별하다.

블루베리의 경우 내생균 ericoid mycorrhiza에 의해 간접적인 뿌리 흡수가 일어난다.

따라서 일반 미생물 번성과 ericoid mycorrhiza 간의 간섭과 배제가 규명되지 않고선,

함부로 장단을 논하기 어렵다.

또한 ericoid mycorrhiza는 비분(肥分)이 많으면 외려 활력도가 떨어진다.

때문에 블루베리의 경우엔 더욱 더 미생물 농법으로는 득효(得效)키 어렵다고 생각된다.

(※ The ericoid mycorrhiza is a mutualistic symbiosis formed between members of the plant family Ericaceae and several lineages of fu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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