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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혈(營血)과 위기(衛氣)

농사 : 2017.03.07 09:42


서양철학개론서를 읽어보면,
하나같이 모두(冒頭)에서 다음과 같은 일련의 말씀들을 대면하게 된다.

즉, 만물의 근원을 논한 철학자를 만난다.
탈레스는 ‘물’,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자’, 아낙시메네스는 ‘공기’,
엠페도클레스는 ‘흙, 물, 불, 공기’, 헤라클레이토스의 불, 데모크리토스는 ‘원자’ ....

불교에서도 이에 못지 않은,
아니 내가 보기엔 훨씬 더 정치(精緻)한 논구를 보게 된다.

가령, 4세기 세친(世親)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보면,
다음과 같은 학설을 보게 된다.
이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물질에 대한 치밀한 궁구(窮究)의 연구 결과를 접할 수 있다.

極微為初。指節為後。
應知後後皆七倍增。謂七極微為一微量。
積微至七為一金塵。積七金塵為水塵量。
水塵積至七為一兔毛塵。積七兔毛塵為羊毛塵量。
積羊毛塵七為一牛毛塵。
積七牛毛塵為隙遊塵量。隙塵七為蟣。七蟣為一虱。
七虱為穬麥。七麥為指節。三節為一指。世所極成。
是故於頌中不別分別。二十四指橫布為肘。
豎積四肘為弓。謂尋。
豎積五百弓為一俱盧舍。
一俱盧舍許是從村至阿練若中間道量。說八俱盧舍為一踰繕那。
如是已說踰繕那等。今當辯後年等量別。

물질을 쪼개고 쪼개 나갈 때,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상태에 이르는데,
이를 극미진(極微塵)이라 한다.

이 극미진 7개가 합해진 것을 금진(金塵)이라 칭한다.
이 금진 7개가 합해진 것은 수진(水塵)이라 칭한다.
이 수진 7개가 합해진 것은 토모진(兔毛塵)이라 칭한다.
이 토모진 7개가 합쳐진 것을 양모진(羊毛塵)이라 칭한다.
이 양모진 7개가 합쳐진 것을 우모진(牛毛塵)이라 칭한다.
이 우모진 7개가 합쳐진 것을 극유진(隙遊塵)이라 칭한다.
.....

극미의 세계를 논하고 있는데,
토끼, 양, 소 따위가 등장하고 있으니,
퍽이나 재미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원자 이론이나 쿼크 입자 따위의 소립자론에 비추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분석이 치밀한데, 상호 유사하기까지 하다.

가령, 극미는 과연 변화가 없는 궁극의 실체인가?
이에 대하여 극미 하나 하나는 변애(變碍)가 없으나,
이것들이 모이면 변애가 생긴다고 한다.
마치 전자, 양자가 하나 하나 따로 있을 때는 그 고유의 속성을 갖으나,
이것들이 모이면 그 구성 성분 양에 따라,
어떠한 때는 산소가 되고 어떠한 때는 질소가 되는데,
이는 극미가 모이면 변애가 생기는 것과 논리가 같다.

그런데 더욱 재미 있는 것은,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면 극미도 변애가 있어 궁극에 공(空)으로 나아간다.
이는 후에 중성자, 양성자가 쿼크로 이뤄졌다고 생각이 진전되는 것과 유사하다.

내가 소싯적에 비원 건너편에 있는 중국서점을 찾아간 적이 있다.
거기 주인은 중국인인데 구사론, 유가사지론을 들며,
달나라에 로켓트를 쏘아 올린 이론이 이미 이 책에 다 나온다고,
입에 거품을 뿜으며 열을 내었다.

그 말씀을 듣고 이 책들을 읽으리라 하였는데,
난 한참 게을러 아직도 유가사지론은 공부를 다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오늘 뜬금없이 구사론에 생각이 미친 것은,
물건너 고을 선생님께서 최근 펴시는 의론들이 퍽이나 근원에 미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탈레스의 물이나, 물리학의 원자론 따위는,
모두 사물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우리고 있다.

그런데 구사론의 극미가 원자론과 같이 물질의 구성 요소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들 양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극미가 모여 여러 다른 물질이 되는데,
그 물질들이 어째서 다른 형태를 갖게 되는 것인가?
이는 극미에 사대(四大)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地界堅性。水界濕性。火界煖性。風界動性。

이들 네가지 속성 중에 물질에 따라 어떠한 것이 발현이 되고,
나머지는 잠재태로서 숨겨져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 점이 아주 주목할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즉 탈레스 등은 물질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가에만 빠져 있었지만,
구사론은 이를 넘어 물질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이치에 대하여도,
관심을 기우렸다는 사실이다.

지금 블루베리를 키우면서 대개는 어떠한 물질을 투하하여,
크게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많이 달리게 하는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부는 비료를 넣지 않으면 큰 탈이 나는줄 안다.
식물체와 열매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들을 증량하려면 무엇인가를 보태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마치 물질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가에 묶여,
이를 천착하는 고대 희랍 철학자의 태도와 사뭇 유사하다.

하지만, 작은 식물이 크게 자라고, 열매가 달리는 것을,
구성체의 조성량으로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변화의 현상, 그 동인에 생각이 미치면,
전혀 다른 접근을 할 수 있다.

엔진에 제 아무리 연료가 많이 투입된들,
그게 점화되고 연소가 되지 않으면,
피스톤이 왕복운동을 할 수가 없다.
실로 엔진이 움직이는 것은,
그렇다 그 변화의 추동체는 점화 플러그에 가해지는 전기 스파크인 것이다.

(Creation of Adam
http://www.crazywisdomjournal.com/blog/2014/2/27/last-lunch-with-karl-and-the-evangelical-relationship-with-god)

생기(生氣)
기운을 생기게 하다.

생물은 혈(血)을 기명(器皿)으로 하고,
기(氣)를 돌려 생명을 영위(營衛)한다.

여기 영위(營衛)는 영위(營爲)와는 다른데,
후자는 일을 꾸려 나감을 뜻하나,
전자는 영혈(營血)과 위기(衛氣)를 함께 아우르는 말이다.

혈을 영양, 즉 꾸려 기르고,
기를 돌려 외부의 사기(邪氣)를 막고 생명활동을 지속한다.

「氣」有著像氣體一般的流動特性,並可以理解為體內構成生命的「能量」或「動力」,這能量會流遍全身,以維持人體的生命活動。        

한의학에서는 기를 기체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보며,
체내, 생명의 동력으로써 이해한다.
이 기가 전신을 흘러 생명체의 생명활동을 유지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블루베리 재배자의 대다수는,
혈(血)이란 기질체를 기르는데 온갖 정신이 팔려 있다 하겠다.
(이는 한의학적으로 보면 소위 수곡지정기(水穀之精氣)라 부르는 것인데,
후천적으로 외부로부터 취하는 음식물 같은 것을 이른다.)
그러하기에 무엇인가 자꾸 투입하여 기질 양을 늘리려 의욕한다.
하지만 정작 생명활동을 영위하는 것은 기(氣)이니,
이는 많이 먹고, 영양을 쌓는다고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외려 지나치면 막히고 체하여 문제를 일으킨다.
알맞게 전신을 유편(流遍), 즉 두루 흘러야 생기있는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는 맑은 산소를 받아들이고,
호흡활동을 통해 혈(血)을 적절히 이용하여,
빛나는 생명 활동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기화작용(氣化作用)이라 이르는데,
수곡지정을 받아 들여, 소화 흡수한 후,
이로부터 에너지를 만들고 각종 생명유지물질을 전화(轉化) 생성하고,
혈과 기를 만드는 것에 상사할 수 있다.      

(http://www.shen-nong.com/chi/principles/qi.html) 


마찬가지로 생물체가 생명을 영위하고, 성장, 생식행위를 하는 일련의 변화 과정을,
에너지내지는 기의 흐름 속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호흡을 통해 가용 자원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얻게 될 터인데,
이 자원을 산화시키는데 산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실로 산소는 생명의 점화자(點火子, igniter)라 할 수 있다.

만물은 산화됨으로써, 에너지를 얻고,
이 때라서야 비로소 자신의 변화상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그러함이니 특히나 생명은 그 구성 원소로써가 아니라,
불로 태워질 때라야 진정한 자신의 참 모습을 나툴 수 있게 된다.

구사론이 단순히 궁극의 구성 물질로서의 극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대(四大)란 속성을 빌어 사물의 상변화(相變化)를 설명하고 있음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라 하겠다.

블루베리 재배에 있어서도,
구성 물질에 협착되어 비료나 영양제 투입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산소란 점화자의 역할에 착목하면 새로운 경지가 열릴 것이다.

더욱이 블루베리는 여느 작물과 달리,
태생이 척박한 곳에서 자라던 것이라,
비료 요구량이 적은 바 더욱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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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심코 2017.03.08 09:04 PERM. MOD/DEL REPLY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

    그러나 현대인들은 콩 심은 데서 팥을 원하고
    팥 심은 곳에서 콩을 요구하니.....
    점점 야차들 모습으로 변해 가는 군요

    그럴때는 그냥 그대로 두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적극,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하는 걸까요?

    절이 싫어지면 중이 떠날 수 밖엔.....

    _()_

    사용자 bongta 2017.03.08 17:34 신고 PERM MOD/DEL

    현대의 화학비료란 환원주의의 극단적 실제입니다.
    N, P, K
    이 삼요소가 주제인데, 이것 말고도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 중에 하나를 저는 앞에서 천기라고 하였는데,
    천기의 내용을 모두 분석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하여 저는 자연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산에 있는 식물은 비료가 투입되지 않아도 건강하게 잘 자라지요.
    저는 이를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애초 농사는커녕 화분에 물주는 일도 해보지 않았지만,
    옛 선인들의 가르침(철학 or 인문학)에 따라,
    밭에 나가 식물을 기르고자 하였습니다.
    시행착오를 좀 한 편이지만,
    지금은 한결 나아졌습니다.
    물론 아직도 한참 부족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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