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ⅱ
농장 근처 판잣집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대문 밖 좌우로 좁다랗게 만든 손바닥 만한 밭가를 분주하니 오간다.
그러더니만 밭 위에 널브러진 각종 쓰레기와 고춧대, 풀 따위를 분리하더니만,
쓰레기를 한 켠에 놔둔 채, 나머지 것들을 태우기 시작한다.
올해엔 좀 양반이다.
예전에 쓰레기, 풀 등속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다 태워버렸다.
일 년 내내 제 집 쓰레기가 버려지던 곳.
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기에 고추 따위를 심고는 한다.
년년세세 저 짓을 태연히 하고 있는 것을 보자니,
참으로 무지스럽다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강심장이구나 싶다.
비록 작은 밭이지만,
정갈하게 짓고 있었다면,
진작에 한 움큼 밭을 나눠주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저런 의식을 가진 이에게 빌려주었다가는
우리 밭은 한 해도 넘기지 못하고 당장 더럽혀지고 말 것이다.
유기물(有機物)
(※ 참고 글 : ☞ 유기(有機) 考)
밭 식물은 하늘로부터 천기(天氣)를 받고,
땅으로부터는 지기(地氣)를 받아,
제 몸을 만들고, 꽃을 피우며, 열매와 씨앗을 남긴다.
가을 지나 겨울이 오면,
스러진 가지, 줄기, 낙엽 등 밭에 남은 잔사(殘渣)는 땅으로 들어가
여름날 헤어졌던 제 뿌리를 다시 만난다.
天氣為魂,地氣為魄
지기는 몸뚱아리(실체)인 바라,
다시 땅으로 돌아가 다음 생을 이어가는 질료가 되는 법이다.
落葉歸根
그러한즉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는 말은 실로 진실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를 태우면 건량(乾量) 기준으로,
0.43 ~ 1.82%의 재만 남겨지게 된다.
재의 성분은 나무 종류, 연소 온도에 따라 일정치 않다.
재에는 탄산칼슘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데, 25~45% 정도가 된다.
그 외 10% 이하의 칼륨, 1% 이하의 인산염이 들어 있다.
이것을 땅에 뿌리면 산성 토양을 중화시키기 때문에,
당연히 블루베리 재배시엔 극력 피하여야 한다.
반면 나무를 태울 때,
머리 풀고는 하늘가로 구슬피 울며 사라지는 연기 속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다.
물, 이산화탄소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종류의 곰팡이 포자(mold spores) 역시 들어 있으며,
각종 휘발성 유기 화합물, 다핵방향족탄화수소 등속이 들어있다.
Chemical Composition of Wood Smoke
Chemical | g/kg Wood |
carbon monoxide | 80-370 |
methane | 14-25 |
VOCs* (C2-C7) | 7-27 |
aldehydes | 0.6-5.4 |
substituted furans | 0.15-1.7 |
benzene | 0.6-4.0 |
alkyl benzenes | 1-6 |
acetic acid | 1.8-2.4 |
formic acid | 0.06-0.08 |
nitrogen oxides | 0.2-0.9 |
sulfur dioxide | 0.16-0.24 |
methyl chloride | 0.01-0.04 |
napthalene | 0.24-1.6 |
substituted napthalenes | 0.3-2.1 |
oxygenated monoaromatics | 1-7 |
total particle mass | 7-30 |
particulate organic carbon | 2-20 |
oxygenated PAHs | 0.15-1 |
Individual PAHs | 10-5-10-2 |
chlorinated dioxins | 1x10-5-4x10-5 |
normal alkanes (C24-C30) | 1x10-3-6x10-3 |
sodium | 3x10-3-2.8x10-2 |
magnesium | 2x10-4-3x10-3 |
aluminum | 1x10-4-2.4x10-2 |
silicon | 3x10-4-3.1x10-2 |
sulfur | 1x10-3-2.9x10-2 |
chlorine | 7x10-4-2.1x10-2 |
potassium | 3x10-3-8.6x10-2 |
calcium | 9x10-4-1.8x10-2 |
titanium | 4x10-5-3x10-3 |
vanadium | 2x10-5-4x10-3 |
chromium | 2x10-5-3x10-3 |
manganese | 7x10-5-4x10-3 |
iron | 3x10-4-5x10-3 |
nickel | 1x10-6-1x10-3 |
copper | 2x10-4-9x10-4 |
zinc | 7x10-4-8x10-3 |
bromine | 7x10-5-9x10-4 |
lead | 1x10-4-3x10-3 |
(※ Ⓒthoughtco)
이런 것 사람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
식물들이 기를 쓰고 만들어내는 이러한 유기물들을,
인간들이 자의로 허공중으로 흩어내는 짓은 아주 몹쓸 악행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체는 갖은 재주를 다하고, 온갖 용력을 다 써서,
entropy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자기 자신을 창조적으로 구현해나간다.
하지만 나무를 태우면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방향으로,
불가역적으로 entropy를 증가시키고 마는 것이다.
실로 엄청난 죄를 짓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비록 식물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난 저들의 역사를 사랑하고,
경이로운 위업을 찬양해주고 싶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햇빛, 공기, 물, 흙
애오라지 이 사대(四大)만으로,
하늘로 기립한 지체(肢體)와 달고 맛있는 열매(果實)를 만들어내고 있음이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음인가?
저자가 밭에 남은 유기물을 다 태우고 나서는 의기양양,
아 개운해 하면서 가슴을 쭉 펴며 우쭐거리라.
하지만 식물은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이라야 잘 자란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초토화(焦土化)된 토양을 향해,
사람들은 이제야 화학비료를 처넣는다.
N, P, K
이 따위 무기물만으로선,
식물들은,
하늘의 자유와 땅의 평화를 잃은 채,
마치 가축처럼 사육될 뿐이다.
혹간 이에 대한 반성으로 유기농을 짓는다는 이가 나타나,
유기질비료란 이름의 자재를 밭에 퍼붓는다.
봄이 되면,
농협에서 공급하는 퇴비를 가득 실은 트럭이 돌아다니면서,
농가에 배달하느라 분주하다.
이것 조성분은 실로 간단하다.
톱밥 등속에 계분, 돈분, 우분 따위를 섞어 발효시킨 것이다.
나는 이것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은 저 가축 분뇨가 그리 정갈하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갖은 성장호르몬, 항생제 따위로 절어 있은즉,
그 배설물인들 건강성이 담보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티끌 하나 없이 연기로 사라진 밭엔,
도대체가 해충, 익충 가리지 않고 변고를 겪고,
땅 속엔 미생물들이 시난고난 가까스로 명을 붙이고 있을 뿐이다.
(※ 참고 글 : ☞ 견벽청야(堅壁淸野))
미생물들 역시 유기물이 풍부하여야 활발히 살아갈 수 있다.
지상의 유기물을 깡그리 태어버리고 고작 화학비료를 처넣고 마니,
저들이 어찌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겠음인가?
유기질비료를 넣는다 하여도,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
저 농협퇴비나 유기농 농부들이 언제나 뽐내곤 하는 자가 발효액비 따위는
이미 발효조에서 충분히 발효과정을 거친 것이라,
정작 밭에 있던 토착 미생물들의 입장에선 먹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유기물은 고분자로 되어 있다.
이것을 사전에 발효시켰으니 발효조에 넣은 미생물에 의해 이미 저분자로 쪼개져 있다.
이런 것을 식물에 직접 제공하니 식물들은 바로 받아먹고 자라긴 한다.
나는 이미 이것을 밥이 아니라 죽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 참고 글 : ☞ 오줌 액비와 죽)
하지만 밭에 있던 미생물은 먹고 살 것이 없는 셈이 된다.
가만히, 곰곰히 생각해보라.
도대체가 미생물의 역할은 실제 밭의 현장에선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이를 두고 발효 운운하고, 미생물 농법이니 하며 우쭐되고들 있으니,
이 어찌 본질을 놔두고 말단을 쫓는다 하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捨本逐末)
미생물은 오직 밭의 외부에서,
인간에 의해 기획된 발효조 안으로 동원되어 제 삶의 의의를 잃고, 부역에 종사할 뿐이다.
아시는가?
본디 부역(賦役)이란 국민에게 보수없이 책임을 지우는 노역(勞役)이다.
이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여야 하는 의무라고 말하지만,
일종의 은폐된 국가의 폭력이기 일쑤다.
따라서 이때는 노역(勞役)이라기보다 차라리 노역(奴役)이라 하여야 한다.
가만히, 차분히,
미생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드넓은 대지에서 쫓겨나,
한정된 곳에 적치(積置)되거나, 발효조 속에 갇혀,
수시로 뒤집히고, 휘젓기며,
그저 인간의 욕망에 굴종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그리고는 일을 다 마치고 허망하게 죽어버린다.
여긴 생명 순환의 고리가 끊어져 있다.
땅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다차원적인 자연 순환은 차단되고, 생태 질서는 교란(攪亂)되고 만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 농법이란 이름하에 지배되는 밭은,
마치 거대한 실험실내지는 공장과 같다.
거긴 실제가 아니라 농화학적, 경제적 타산에 따라 조작된 술수만 남아 있다.
실로 위태롭기 짝이 없는 사태라 하겠다.
그러한즉 땅 속엔 도대체가 토착 미생물들이 기착하여 살아갈 환경이 아니 되는 것이다.
영악하기 짝이 없는 농부들에 의해,
매해 매양 새롭게 RESET되기 때문에,
현대의 밭들은 당년도의 한 해분 이악스런 타산(打算) 일지(日誌)만 써지지,
지속적으로 역사가 축적되며, 미래를 전망해나갈 수 없는 것이다.
거긴 역사도 없고, 도대체가 아름다운 이야기가 일궈지지 않는다.
삿되다.
이 어찌 슬픈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음이더냐?
(※ 참고 글 : ☞ reset 농법)
나는 밭을 건드리지 않는다.
하기에 지상에 자라는 풀들은 년년세세 제 밭에 고스란히 남아,
다시 제가 온 곳으로 돌아간다.
땅 속엔 미생물들이 인간에 의해 삶의 터전이 교란되지 않기에,
마음 놓고 활갯짓 하며 천년 면면히 이어질 이야기를 써간다.
우리 밭에는,
낯엔 햇빛 역사가 써지고, 밤엔 달빛 신화가 흐른다.
이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을쏜가?
여기까지 이제 막 글을 다 써내고 있는데,
밖에 빗줄기가 급히 허공을 긋고 내려오며,
우우 봄을 재촉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
地氣上為雲,天氣下為雨;雨出地氣,雲出天氣。
(黃帝內經)
“지기는 위로 올라 구름이 되고,
천기는 아래로 내려와 비가 된다.
비에서 지기가 나오고,
구름에선 천기가 나온다.”
음양, 운우의 이치가 이러함이니,
감히 불을 내어,
땅의 기운을 더럽히고,
연기를 올려,
하늘의 기운을 어지럽힐 일이 아니다.
'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토리텔링 유감 (0) | 2017.03.31 |
---|---|
농사 자격 고시가 필요하다. (2) | 2017.03.28 |
파고라 (0) | 2017.03.25 |
영혈(營血)과 위기(衛氣) (2) | 2017.03.07 |
을밀 전지법 ⅱ (2) | 2017.03.03 |
블루베리와 방조 (2) | 2017.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