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

소요유 : 2017. 4. 4. 10:10


난 분노한다.


나의 현실 역사 문제의식 가운데 하나를 먼저 꺼내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비정규직이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이 나라의 경우 노동자의 50%를 상회하고도 남는다.


동일 노동에 동일 댓가를 치루지 않아도 문제일 터인데,

실인즉 더 열악하고, 노동 강도가 센데도,

비정규직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으면, 아니 달아놓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으로 대한다.


난, 악의 기원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IMF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부터 우리 사회엔,

비정규직이 검은 옷을 입고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소위 문민정부라 이르는 김대중 정권 때이다.

물론 앞선 김영삼 정권이 저지른 후과(後果)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당시의 참담한 위기를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때의 부동산 폭등 방치와 더불어,

비정규직 도입은 문민정부들의 최대 과오로 꼽을 수 있다.


여기 시골 동네에서 만나는 택배기사들은 모두들 선하고, 어여쁘다.

저들이 나타나면 나는 종달음을 치며 달려가 맞는다.

바쁜 저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주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씩 텃밭에서 나는 소채를 나눠주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 도와주고 싶다.


밤 아홉 시에도 물건을 배달한다.

저리들 노동 강도가 강한데도,

저들은 비정규직이란 이름 하나로,

경제적 착취를 합법적으로 당하고 있다.


이것은 합법을 가장한 악이다.

참으로 진저리처지는, 끔찍한 일이다.


이제 이야기를 여기서 잠시 끊고,

다음 말씀을 잇는다.


이재명이 민주당 후보에서 탈락하자,

어느 매체 기사에 달린 댓글을 꺼내든다.


‘아깝다. 차기엔 당선되길 바란다.’


‘당신도 괜찮은 사람이지만,

이번엔 문재인을 밀었다.

하지만 다음번에 이재명 그대를 지지하겠다.’


난 생각한다.

다음은 없다.


이리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은,

다음이 되었을 때, 또 다른 핑계를 대며,

그를 차차기로 밀어낼 것이다.


'세가 큰 놈.

될 만한 사람을 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권을 빼앗기 어렵다.'


이것은 핑계다.

세가 크든, 작든,

지금, 여기

마땅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개개인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뭉칠 때,

Here and Now

오늘의 바른 역사를 써나갈 수 있다.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현재는 실종된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이연시킬 뿐이라는,

비겁한 변명 속에 자기 양심을 숨기며,

현재를 강자에게 팔아먹는 짓이 된다. 


이런 생각에 매몰되면,

강자는 언제나 승리하고,

약자는 끊임없이 유린당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바르고 착한 사람인 양, 스스로를 치부한다.

왜냐하면 ,

미래엔 착한 일을 할 터이니까.

하지만, 그가 버린 오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은,

미래의 미덥지 않은 보상이 아니라,

오늘을 버림받는 것이다.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현실이니까,

참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온다.

이리 뒤로 미루는 한,

현재는 미래로 이연되고,

미래는 현재의 재현이 되고 만다.


현재를 미래를 위해 전당포에 맡길 일이 아니다.

오늘 당신의 손에 든 기표 막대기는,

당신의 양심을 시험한다.


강한 것에 굴복하지 말고,

약자를 도울 일이다.


이 비루한 현실에,

나는 적개심(敵愾心)을 갖는다.

이 엉터리 같은 세상에 고통을 느낀다.

때문에 일그러진 현실에 분노하지만,

핑계를 대며, 제 양심을 미래로 이연시키는, 비겁한 사람들에게도 분노를 감출 수 없다.

내 분노나 적개심은 내 양심으로부터 자란다.
내 맑고 향기로운 양심을 위해 나는 분노하길 멈추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 여기 있다.


‘내가 당선되면,

원 샷에 공기관에 근무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


심상정의 이 말을 듣자,

그이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있으면,

두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그의 아름다운 영혼 앞에 장미꽃을 바친다.


야권에선 정권 교체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 교체가 능사가 아니다.

시민들 생활이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정권교체가 되어도,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소위 대세론의 중심인물이 하나 있다.

언제나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그를 보면,

도시 미덥지 않다.


위안부 소녀, 사드, 재벌 증세, 박근혜 사면 ...

등 각종 현안에 대하여 그는 명확한 의사 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개혁을 이야기 하고, 적폐 청산을 주장한다.

그를 믿을 수 없다.


난 분노한다.


'전략성 모호성'이란 정략적 화법 뒤에 숨은,

저들 비겁함에 적개심을 감출 수 없다.


내 양심의 이름으로,

난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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