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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기(三不欺)

소요유 : 2017. 5. 10. 14:06


내가 어느 날 웹을 만보하다 우연히 한 블로그를 접했다.

거기 보니 귀농한 폭인 한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루에 서넛 이야기 씩이나 올려지는데,

대개 단순하고, 가벼운 일상적인 내용으로 꾸며지고 있더라.

깊은 사색으로 이끄는 것도 아니거니와,

사회 성찰적, 비판적 인식 경계를 넘나드는 주제 글도 없었다.


다만 그저 만화처럼 읽는 재미가 있어,

지난 글들을 며칠에 걸쳐 죽 훑어 읽어 내렸다.

헌데 이후 블로그 주인께서,

이를 알아차리고는 자신의 글을 내리닫이로 읽은 신기록을 세웠다고,

별도의 본문 글로 닦아세웠다.


본디 내 행동은 귀신에게도 들키면 아니 되는 법.

칼잡이가 자신이 휘두른 칼의 행로를 상대에게 알리면,

이게 도대체 검법(劍法)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엊그제 유튜브 합기도 대련 장면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매번 고수격인 이가 상대를 보고 연신 이리 저리하라며, 공격 수를 주문하더라.

이리 미리 예정된 공격에 대하여 대적하는 것이 무엇이 어려우랴?

그럴듯하니 공수가 맞춤 맞게 잘 연출이 되고 있으니,

뭘 모르는 이가 보기에는 대단한 기술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무릇 고수라면 불가측(不可測)의 공격에 맞서,

자유자재 응변(應變)하며 대응하는 것이지,

하수 약속 대련하듯 마련된 길을 따르며 위세를 자랑할 일은 아니다.


그러한데, 방금 tbs의 제공 한 영상에,

풍천노숙(風天露宿)이란 자막이 뜬다.

순간, 이것 영 귀에 익숙지 않고, 불편하다.


화자의 발음도 풍천노숙이니,

단순한 자막 오타를 넘어,

풍찬노숙(風餐露宿)을 겉귀로 들은 이의 망발이라 하겠다.


하여 이를 기화로, 겸사겸사 이글을 쓰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

저 블로그 주인이 최근 평시와 다르게 야릇한 짓을 하고 있다.

한자를 마구 난사하며 글을 쓰는데, 이게 순전 엉터리라,

여간 민망한 노릇이 아니다.


誤                正

선율(禪律) - 선율(旋律)

이용(理容) - 이용(利用)

분리(分利) - 분리(分離)

상태(常態) - 상태(狀態)

시작(時作) - 시작(始作)

시도(示導) - 시도(試圖) 


차라리 예전처럼 한글로 쓰면,

문맥이 자주 끊기고, 비문이 마구 섞인 것이나마,

얼추 좇아가며, 이해를 해줄 수 있다. 

하지만, 틀린 한자까지 동원되어 전판을 뒤덮고 있으니,

내 눈을 너무 흐리고 있어,

이젠 그 블로그에서 느끼던 재미가 사뭇 반감되고 있다.


도대체 저 사람은 무슨 바람이 불어,

블로그에 갑자기 한자를 써넣기 시작한 것인가?

한 동안 버려놓았던 것을 불러내어,

다시 친숙하려 함인가?

적적한 제 삶을 이로써,

윤기를 더하려 함이어든가?


내 그것이 무엇이든, 오지랖 넓게 참견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저것을 넌지시 일러 잡아 세우면,

저이가 더 이상 면피(免避)를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만일 저이가 한자를 쓸 때마다,

팔꿈치를 툭툭 건드려 훼방을 놀면,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으려나?


이에 한 생각 떠올라,

이야기 물줄기를 옛 선인들의 말씀의 호수로 돌려본다.


철주(掣肘)


宓子賤治亶父,恐魯君之聽讒人,而令己不得行其術也。將辭而行,請近吏二人於魯君,與之俱至於亶父。邑吏皆朝,宓子賤令吏二人書。吏方將書,宓子賤從旁時掣搖其肘。吏書之不善,則宓子賤為之怒。吏甚患之,辭而請歸。宓子賤曰:「子之書甚不善,子勉歸矣。」二吏歸報於君,曰:「宓子不可為書。」君曰:「何故?」吏對曰:「宓子使臣書,而時掣搖臣之肘,書惡而有甚怒,吏皆笑宓子,此臣所以辭而去也。」魯君太息而歎曰:「宓子以此諫寡人之不肖也。寡人之亂子,而令宓子不得行其術,必數有之矣。微二人,寡人幾過。」遂發所愛,而令之亶父,告宓子曰:「自今以來,亶父非寡人之有也,子之有也。有便於亶父者,子決為之矣。五歲而言其要。」宓子敬諾,乃得行某術於亶父。三年,巫馬旗短褐衣弊裘,而往觀化於亶父,見夜漁者,得則舍之。巫馬旗問焉,曰:「漁為得也。今子得而舍之,何也?」對曰:「宓子不欲人之取小魚也。所舍者小魚也。」巫馬旗歸,告孔子曰:「宓子之德至矣。使民闇行,若有嚴刑於旁。敢問宓子何以至於此?」孔子曰:「丘嘗與之言曰:『誠乎此者刑乎彼』。宓子必行此術於亶父也。」夫宓子之得行此術也,魯君後得之也。魯君後得之者,宓子先有其備也。先有其備,豈遽必哉?此魯君之賢也。

(呂氏春秋)


“복자천이 단보(지명)를 다스리게 되었다. 

노나라 임금이 참소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는,

자신이 행하고자하는 하는 것을 못하게 할 것이 염려가 되었다.

임지로 떠나려 할 때, 노나라 임금께 측근 두 사람을 청하여,

이들과 함께 단보로 갔다. 


고을 관리들이 모두 모여 회의(조회)를 할 때,

복자천은 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글(회의 기록)을 쓰도록 하였다.

그들이 글을 쓰려 할 때,

복자천은 곁에서 팔꿈치를 당겨 흔들었다.

그들 글이 가지런하지 않게 되자,

복자천은 화를 내었다.


그들은 이를 근심하여, 자리를 그만두고 돌아갈 것을 청하였다.

복자천이 말했다.


‘그대들의 글씨는 심히 엉망이다.

어서 돌아가길 권하노라.’


두 관리가 돌아가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복자천 때문에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이 물었다.


‘무슨 이유인가?’


관리가 대답하였다.


‘복자천은 신에게 글을 쓰도록 하고서는,

신의 팔꿈치를 당기며 흔들었습니다.

글씨가 조악하다고 심히 화를 내었습니다.

관리들 모두는 복자천을 비웃었습니다.

이게 신이 자리를 사양하고 떠난 까닭입니다.’


노나라 임금은 크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며 말하였다.


‘복자천은 이로써 과인의 모자람을 간하는 것이라.

과인이 화를 일으켜, 복자천이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된 적이,

반드시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너희 둘이 없었더라면, 과인이 이를 지나칠 뻔하였구나’


이내 아끼는 이를 보내 단보에 영을 내려, 복자천에게 일렀다.


‘이제부터, 단보는 과인의 것이 아니라, 그대의 것임이라.

단보에 유리하면 그대가 처결하고,

5년 후에 그 개요만 보고하라.’


복자천은 삼가 받아,

마침내 단보에 그의 정책을 마음껏 행할 수 있었다.


3년 후, 

무마기가 짧은 베옷과 찢어진 갖옷을 입고는,

단보의 교화를 살피러 갔다.

밤에 어부를 보았는데, 

잡은 물고기를 버리고 있더라.

무마기가 물었다.


‘고기를 잡아 얻은 것인데, 이제 보니 이를 다시 버리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고?’


대답하기를 이리하다.


‘복자천께서 작은 고기를 취하지 말라 하셨기에, 작은 고기를 버리는 바입니다. ’


무마기가 돌아와 공자께 고하였다.


‘복자천의 덕이 이에 이르렀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밤에 길을 가도, 마치 엄한 형벌이 곁에 있는 것 같이 여깁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복자천은 어찌 이에 이르게 된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다.


‘내가 일찍이 그와 더불어 말하길,

′여기에 성실한 자는 저기에서도 드러난다′하였는데, 

복자천은 단보에서도 이 술법을 행하였구나.


저 복자천은 이 술법을 행하였는데,

노나라 임금은 후에 이를 알았음이다.

노나라 임금은 후에 알았으나, 

복자천은 먼저 이를 갖추었구나.

먼저 갖춘다는 것이 어찌 반드시 필요한 것이겠는가?

이리 볼 때, 노나라 임금 (역시) 현명하다 하겠다.’”


이 고사는 공자가어에도 나오는데,

약간 다른 내용이 전개되기도 한다.

가령, 이 부분이 그러하다.


巫馬期問焉,曰:「凡漁者為得,何以得魚即舍之?」漁者曰:「魚之大者名為䲖,吾大夫愛之;其小者名鱦,吾大夫欲長之。是以得二者輒舍之。」

(孔子家語)


“무마기가 물었다.


‘무릇 고기 잡는 이가 고기를 잡기 위함인데, 어찌 잡은 것을 다시 놔주는가?’


어부가 답하다.


‘큰 고기는 주(䲖)라 합니다.

우리 대부께선 이를 아끼십니다.

작은 고기는 승(鱦)이라 합니다.

우리 대부께선 이를 더 크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그런즉 이 둘을 잡는 번번이 놔주는 것입니다.’”


이럴 양이면 수고로이 고기 잡을 일이 없으리라.

어부가 고기를 잡는 대로 도로 놔줄 양이면,

종국엔 굶어 죽고 말 것이다.


다만 이 장면은 대부의 뜻이,

백성들 일반에 널리 스며들어,

그 교화가 깊이 미치고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고 여기면 족하리라.


복자천과 무마기 이 양자의 인물 됨됨이는 예로부터 곧잘 비교되었다.


宓子賤治單父,彈鳴琴,身不下堂而單父治。巫馬期亦治單父,以星出,以星入,日夜不出,以身親之,而單父亦治。巫馬期問其故於宓子賤,宓子賤曰:「我之謂任人,子之謂任力;任力者固勞,任人者固佚。」人曰宓子賤,則君子矣,佚四肢,全耳目,平心氣而百官治,任其數而已矣。巫馬期則不然,弊性事情,勞煩教詔,雖治猶未至也。

(說苑)


“복자천은 단보를 다스렸다.

거문고를 뜯으며, 당 아래에 내려오지 않고도 단보를 (잘) 다스렸다.

무마기 역시 단보를 다스렸다.

별이 뜨거나 지거나 종일 밖으로 나오지 않고, 친히 일을 하여 단보를 다스렸다.


무마기는 복자천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복자천이 말하다.


‘나는 남에게 일을 맡기는데,

그대는 스스로의 힘에게 맡긴다.

자신(힘)에게 맡기면 힘이 들고,

남에게 맡기면 편하다.’


사람들이 복자천을 두고 말하였다.


그는 군자다.

팔다리, 눈귀를 편히 쉬고도, 

평상의 심기(心氣)만으로 백관을 다스린다.

그들에게 맡기고도 일은 잘 마쳐진다.


무마기는 그렇지 않다.

성정이 다 하도록 번거롭게 애를 쓰고, 가르침을 폄에도,

그 다스림은 아직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한비자엔 이와는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먼저 그 내용을 들춰보자.


宓子賤治單父,有若見之曰:「子何臞也?」宓子曰:「君不知賤不肖,使治單父,官事急,心憂之,故臞也。」有若曰:「昔者舜鼓五絃之琴,歌南風之詩而天下治。今以單父之細也,治之而憂,治天下將奈何乎?故有術而御之,身坐於廟堂之上,有處女子之色,無害於治;無術而御之,身雖瘁臞,猶未有益。」

(韓非子)


“복자천이 단보를 다스렸다.

유약(有若)이 그를 만나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그리 말랐는가?’


복자천이 말하였다.


‘임금은 내가 불초함을 아시지 못하고 단보를 다스리게 하셨다.

관청의 일이 급하고, 마음이 걱정되어 그리 말랐습니다.’


유약이 말하였다.


‘옛적 순임금은 오현(五絃)의 거문고를 타고, 

남풍의 시를 노래 부르면서도 천하를 다스렸다.

이제 단보와 같은 작은 곳을 다스리는데도 걱정이 많다면,

천하를 다스리게 되면 장차 어찌할 것인가?


고로 술법을 익혀서 다스리면,

몸은 묘당 위에 앉아,

처녀의 안색을 하고서도,

다스림에 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술법 없이 다스리면,

몸은 피곤하고 마르면서도,

외려 도움이 없을 것이다.’”


옛 이야기들은 출전에 따라,

내용들이 뒤바꿔지거나,

주인공 인물이 바뀌어 대신 꿰넣어지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것 출전들의 시간적 흐름을 따라가 보면,

애초 ‘복자천 < 유약’의 관계였는데,

후대엔 유약은 지워지고,

복자천이 단박에 홀로 우위(優位)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나는 진실이 궁금하지 않다.

다만 이런 일련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말씀의 훈향만 놓치지 않을 일이다.


子產治鄭,民不能欺;子賤治單父,民不忍欺;西門豹治鄴,民不敢欺。

(史記)


“자산이 정나라를 다스렸다.

백성은 사기를 칠 줄 몰랐다.


복자천이 단보를 다스렸다.

백성은 사기 치는 짓을 차마 하지 못하였다. (不忍人之心)


서문표가 업 땅을 다스렸다.

백성은 감히 사기 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不能欺, 不忍欺, 不敢欺


不能欺는 사기를 칠 줄 몰랐다기 보다는 그럴 능력을 잃었다든가 숨겼다고 볼 수도 있다.

위정자가 밝으니(明) 그리 할 생각을 거둘 수밖에 없다.


不忍欺는 사기를 참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차마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덕에 감화되어 그런데 뜻을 두지 않았단 말이다.


不敢欺는 설혹 하고 싶어도 하지 않았음이니,

이는 그리 함으로써 얻는 득보다,

걸렸을 때 입을 손해가 크고 가혹하였기 때문이라 이해를 하면 좋겠다.


혹자는 이를 두고서는 어떤 이가 제일 뛰어난 집정관이었나 견준다.

하지만 내 생각엔,

인물들의 개성과 특질에 따라 정치가 달리 펴진 소이가 있겠지만,

이 삼자를 견주기보다는 현실 정치 현장의 조건에 따라,

나눠 동원할 필요적, 실천 적응 모델로 이해를 하면 어떨까 싶다.


그러려면 선결적으로 현실 조건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정치 현장을 살펴보자면,

저기 정치 객체로 등장하는 민(民)이 문제가 아니라,

실인즉 주체에 해당하는 위정자들이 사기(欺)를 치고 있다.

이것 사뭇 비극적 사태라 하겠다.


난, 생각한다.

삼불기(三不欺)에서 깨우쳐야 할 것은,

정치 객체가 백성이 아니라,

기실은 정치 주체로서 시민이 자각하고, 실천적으로 스스로 나투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정치인들은 주체가 아니라,

정치를 위임(委任) 받은 자임을 명확히 인식하여야 한다.

저들은 선량한 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만약 서투른 짓을 저지르면,

촛불을 넘어 횃불로 지지고, 나아가 화톳불로 태워버려야 한다.


작금의 우리네 현실을 살펴보면,

不敢欺가 가장 필요한, 시대 요청적 상태 조건에 놓여 있지 않은가 싶다.

죄를 지어도 사면이 예정되거나,

댓가를 치루지 않는 사회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왔다.


이번 새 정치 현장에선,

적폐(積弊)를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제단에 눕히고 시시비비를 가려 처단하게 되길 바란다.


사실 삼불기(三不欺)는 말은 그럴 듯하지만,

이 실현을 위해 민복(民服)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백성들이 삼불기(三不欺)에 복종하는 사회를 상정한 것이다.


오늘날 시민 사회는 이리 하향식으로 권력이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위정자가 위임된 권력을 사기 치지 말고,

제대로 민복(民福)을 위해 집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삼불기(三不欺)는 민복(民服)이 아니라,

실인즉 관복(官服)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가치 전복(顚覆)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에 집권한 세력은 이 말 뜻을 잘 새겨 들어야 한다.


자, 이제 그대들,

준비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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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7. 5. 10. 14:06 :